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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검무적 Apr 30. 2024

한국인들은 왜 그렇게 질투심이 심한 건가요? (2)

한국인이 어떤 사람들인지 알려주마. - 51

지난 이야기.

https://brunch.co.kr/@ahura/1809     


  전술했던 최근 심리학 연구에서, 샤덴프로이데(Schadenfreude)를 일으키는 세 가지 원인이라고 분석된 공격성, 경쟁성, 공평성이 있다고 했는데요. 이 세 가지의 성향에 대해 한국사회를 적용시켜 좀 더 세밀한 잣대로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다음과 같은 분석이 가능해집니다.


  첫 번째, 공격성이 원인이 되는 경우부터 살펴보면, 해당 연구에서는 이것이 그룹 정체성과 매우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는데요. 이것이 개인의 감정에 한정된 것이 아닌, 그룹 vs그룹의 상하관계에서 기반된 원인임에 주목합니다. 한국인의 그룹 정체성은 앞서 누차 언급했던 기묘한 집단주의와 굉장히 밀접한 연관을 맺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쓰기 때문에 그들이 어떻게 자신을 생각하는지 어떻게 평가하는지가 매우 중요한 관심사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죠.

  이것은 반대로 새로운 대상을 알게 되었을 때 그들에 대한 시시콜콜한 부분에까지 관심을 갖고 다소 불쾌하리만큼 개인적인 질문을 서슴지 않는 것과도 연관이 있습니다. 나이가 몇 살인지를 물어 상하관계를 확실하게 정하고 호칭과 말투를 정해야 하고, 그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가 나의 감정보다는 그가 어떤지에 따라 달라지는 묘한 한국인과 한국사회만의 형태로 규정되는 것이죠.


  심지어 해외에 나가게 되더라도 한국의 개신교와 한국인 사회라는 독특한 부분들이 묘한 케미를 일으키며 한인교회라는 공간은 그야말로 한국인 사회의 단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대개는 서로 간의 눈치와 공격과 난장판이 그 안에서 모두 이루어진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경험한 사람들이라면 모두가 혀를 내두를 정도이지요.


  두 번째, 경쟁성이 샤덴프로이데의 주원인인 경우는, 개인과 대인관계에 관련된 경쟁과 매우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고 해당 연구에서는 주목하여 설명합니다. 이는 자신이 주변의 사람들, 특히 자신과 면식이 있는 친구나 동료보다 뛰어나다고 인정받고 싶은 욕망과 실제로 더 나은 결과를 내고 싶어 하는 욕망이 만나면서 극대화되게 됩니다. 바람에서부터 유발된다. 이 경우는 앞서 살펴보았던 공격성과는 달리, 그들의 개인적 정체성과 자신감과 관련될 때 더 나은 기분을 느끼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는데요.

  앞에서 설명한 그대로, 한국인에게 있어 집단주의는 대부분에게 따르고 묻히고 싶어 하는 심리와 그들 중에서도 늘 선두에 속해있어야 하고 인정받아야 하며 1등이 아니면 의미가 없다는 심리가 혼재되어 있음을 의미합니다. 특히, 어려서부터 강제적으로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에 주입된, 다른 아이들보다 더 나은 성적을 받아야 한다는 최면과 정신교육은 실제적으로 한국인들에게 1등 제일주의, 2등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는 강한 피해의식까지 동반하게 됩니다. 이것은 조금 더 깊이 들어가게 되면, 1등이 무너져 내리거나 어떤 실수나 잘못으로 인해 1등의 자격을 박탈되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쾌재를 외쳐버리는 사람으로 아이들에게 각인되기 일쑤입니다. 그것이 한국의 교육이 갖는 상대평가의 가장 큰 폐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공정성이 샤덴프로이데의 주원인이라고 분석한 경우는, 조금은 상식적인(?) 부분에서 출발합니다. 이 부분은 이른바 ‘공정성 이론(equity theory)’에 근거한 설명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요. 사회 내에서 어떤 인물이 부도덕한 행위를 저질렀거나 나쁜 행동에 대한 처벌받을 때에 나오는 감정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이상하게 비틀린 감정이라고 보기에 어려운 부분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사회 내에서 분명히 지탄받아 마땅한 잘못된 거나 범법의 행동을 했기 때문에 그로 인해 처벌을 받거나 징계를 받게 되는 것이니 그것을 보면서 정의와 상식이 통하는 사회에 속해있다는 사이다 감정을 느끼는 것이 이상할 것이 없는 것이죠.

  그런데, 한국에서는 그게 또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요몇년전부터 등장하신 ‘내로남불’이라는 신조어가 그것을 반증해 주는데요. 힘을 가진 자, 부와 권력을 가지고 자신들이 잘못하고서도 처벌받지 않고 징계받지 않는 경우가 비일비재한 부패한 사회일수록 이 부분에 대한 감정은 더 왜곡되기 쉽습니다. 원래대로라면 사회에서 정한 규정이나 법률에 의해 범죄자들이 그들이 저지른 범죄행위나 잘못에 대해 처벌을 받고 징계를 받는 것이 올바른 것이고 그것을 보면서 그 사회에 속한 이들은 기쁨을 느낍니다. 이것을 변태적이라고 비난할 여지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정당한 처벌이고 징계일지라도 그놈의 정치적인 색깔이 끼게 되면서 그 본질이 한국사회와 조직에서는 빛을 바래버리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회사에서 여직원을 성희롱하고 능력도 없으면서 낙하산을 타고 내려와 승승장구하는 인간이 있다 칩시다. 그가 잘못한 행위를 지속적으로 벌인 것은 이미 오래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정치적인 이유(예를 들어 그의 낙하산 지주역할을 하던 자가 회사의 더 꼭대기 오너에게 부정과 비리가 적발되면서 그 라인이 청산되는 상황)로 인해 그간의 잘못을 빌미로 처벌받게 된다면, 사람들은 그가 처벌받는 것에서는 샤덴프로이데를 느낄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근본적인 사회적 모순과 정치적인 이유로 그를 팽한 조직사회의 썩은 부분에 대해 여전히 싸늘한 썩소를 날린다는 사실이지요.


  현재 대한민국을 절반으로 나누어 싸우게 만드는 정치권력의 문제만 해도 그렇습니다. 잘 나가는 서울대 교수였고, 청와대 민정수석이었으며 법무부장관이던 사람이 자신의 자식들을 더 나은 대학에 보내겠다고 스펙 쌓기에 동조하고, 그 부정을 저지르고서도 제대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고개 숙여 사과하기는커녕, 자신은 검찰개혁을 하기 위해 멸문지화(滅門之禍)의 치욕을 당해가면서까지 억울함을 당했다고 호소한다면, 그것에 공감할 수 있는 이들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그가 기소당하고 그의 아내가 기소당하고 감옥살이를 하면서도 다른 수많은 케이스들과 달리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지 못하고 그의 딸이 의사국가고시를 패스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의사면허가 취소되고 학부 자격이 박탈되는 일을 보면서 측은지심을 느끼는 사람들보다는 샤덴프로이데를 느끼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은, 현재 대통령이 누가 되었는지를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즉, 이 사태의 독특한 한국적 샤덴프로이데는 이전에라도 잘못된 것이 처벌받지 못했던 것을 지금이라도 받게 함으로써 마치 사람들에게 공정함을 느끼게 만든다는 얄팍한 수법에 지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이제까지 살아왔던 잘못된 부분들과는 무관하게, 반대 진영에서 역시 서울대 법대 출신에 검사로 승승장구하다가 법무부장관까지 하고 대선후보로 꼽히는 자 역시 그의 딸이 앞서 멸문지화(滅門之禍)를 당한 자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살아있는 권력의 곁에 있다는 이유로 똑같이 자신의 자식이 비난받고 수사받고 압수수색을 받아야 할 칼날을 피해 갔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한국인들에게 ‘나만 아니면 돼.’라는 식의 말도 안 되는 게임플레이어 같은 장난 같은 논리가 아주 깊숙한 기반에 깔려 있음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정의와 상식, 공정 같은 것을 내뱉는 자들이 버젓이 자신이 이익을 더 챙기기 위해 권력을 챙기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될 것도 없다는 듯이 행동하기 때문에, 그러한 일들이 한국의 현대사에서는(실제로는 역사가 있어온 이래로 쭈욱 계속되어 온) 비일비재하게 터져왔기 때문에 엄밀하게 보면, 한국인에게 있어 공정성이 원인인 샤덴프로이데는 그 전제부터가 비틀린 모순의 형태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한국인들이 특별히 질투가 강한 민족이라서가 아니라 한국사회가 아니, 좀 더 정확하게는 그 사회를 그렇게 만들어나간 한국인들의 심리가 내가 돈을 더 벌고 더 잘나고 더 많은 점수를 따는 데 있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도 된다고 목적을 정당화하면서도 상대방이 심지어 정당한 방법으로 그것을 성취했다 하더라도 그 위치에서 꼬꾸라져 떨어지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 희열을 느끼는 것은 웃프지만 그들이 자초한 결과라고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죠.

  도대체 왜 한국인들이 언제부터 그렇게 되었는지는 좀 더 알아보지 않고서 섣불리 결론지을 수는 없겠습니다. 50편이 넘게 한국인의 특징을 설명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가야 할 길이 먼가 봅니다.     


  다음 편은 여기...     

https://brunch.co.kr/@ahura/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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