雪女(설녀;유키온나) 9

납량특집 호러 판타지 멜로

by 발검무적

소년은 고아였다.

물론 태어나면서부터 고아인 자는 없다. 단지 소년은 그의 부모가 어떤 사람인지 기억이 없었다. 어느 누구도 그에게 부모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 적이 없었다. 어린 시절에 대한 기억이 하나도 없는 것은 아니었다. 말을 하고 주변의 모든 것을 기억할 나이에 절에 들어왔다는 것은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즈음부터 절에서 배운 모든 것은 몸으로 세포 하나하나에 기억되어 있었다.

소년에게는 또래 친구가 없었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그에게 친구라고 할 만한 사람은 자신을 키우고 가르치고 모든 것을 일깨워준 사부뿐이었다. 그를 아버지나 할아버지라고 부르지 않았던 것도 소년이 그를 만날 때부터 그와의 관계를 명확하게 기억하고 있음을 의미했다. 하지만 소년은 사부와 만나기 이전의 일을 도저히 기억해낼 수가 없었다. 사부는 애써 기억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라고만 말했다. 소년도 부러 기억해낼 필요가 없다 여겼다.

그래서 소년은 자연스레 보이지 않는 것들과 말벗을 삼는 것이 익숙해졌다. 익숙해지기보다 그럴 수밖에 없는 환경이 소년에게 보이지 않는 것들로부터의 두려움을 없애버렸다. 어둠이나 들짐승, 혹은 어둠에서 기생하는 존재에 대한 두려움이 소년에게는 없었다.

소년은 다른 이들이 쉽게 볼 수 없는 것들을 볼 수 있었다. 그것 역시 언제부터였는지 소년은 기억하지 못했다. 눈을 뜨면 언제나 ‘수행’이라는 이름으로 육체를 단련하고 눈을 뜨고 있지 않은 시간에도 도력을 키워나가야 했다. 아무도 없는 폭포 안으로 들어가 선술 수양을 하겠다고 한나절이 넘도록 사람들이 찾아 나설 때까지 숲에서 나오는 않는 것은 다반사였다. 다른 수행승들이 보기에는 늘 혼자인 듯했지만 소년에게는 늘 곁에서 속삭이거나 함께하는 존재들이 있었다. 그 지역에 자리 잡고 있는 토지신에서부터 지나던 신령과 인근에 억울하게 죽은 원한을 풀고 싶어 배회하는 영혼까지 너무도 많은 존재들이 소년이 자신들의 존재를 알아본다는 것만으로 신기해했다.

그래서였을까. 수행을 하며 인간세상의 질서를 깨뜨리는 존재를 퇴치한다는 명목으로 수행하는 퇴마승들은 소년을 싫어했다. 소년이 그들이 볼 수 없는 존재를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서는 아니었다. 단지 소년의 음습한 기운이 그들에게는 이유모를 두려움의 벽을 만드는 것 같다는 이유였다. 소년의 수행이 깊어지고 주지였던 사부의 혹독한 지도 탓이었는지 소년은 10년 수행이 지나지 않아 종정(宗正)에서 월등한 실력을 갖춘 퇴마승으로 성장해갔다. 정규 교육을 받은 적이 없었지만 늘 혼자서 가장 높은 나무 꼭대기에 올라가 책을 읽었던 탓에 문학, 철학, 과학에 이르기까지 소년은 독서를 통해 세상의 지식을 모두 흡수하는 스펀지가 되었다. 그렇게 조용하고 내성적이기만 하던 소년이 세상에 나가기로 한 성년을 한 달 앞둔 그즈음 문제가 발생했다.

소년이 아무 이유 없이 열병을 앓기 시작한 것이었다. 늘 엄하기만 했던 사부마저 소년이 병석에 누워 일주일째 일어나지 못하는 것을 보고서 그의 병석 머리에 자리를 잡고 앉아 불경을 외기 시작했다. 정신을 잃고 고열에 시달리며 신음소리만 내뱉던 소년은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 야위어만 갔다. 그렇게 열흘이 되던 날, 소년은 사부가 자리를 잠시 비운 사이 타는 듯한 갈증에 입안에 시원한 무언가가 닿는 것을 느꼈다. 온몸이 불덩이에 타들어갈 것만 같았던 그 순간 소년은 희미하지만 뿌연 빛 사이로 여인의 모습을 보았다. 부드러운 손길이 차가운 비단에 시원한 물을 적셔 자신의 입술과 이마를 닦아주고 있던 여자는 사부가 들어오며 내지른 일갈에 얼어붙는 듯 긴장했다.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네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냐!”

사부가 그렇게 엄한 일갈을 내뱉는 것은 처음 보는 일이었다. 사부는 소리를 지르거나 화를 내지 않아도 모든 수행승들이 어려워하는 무서운 존재였다. 오히려 그런 존재로 모두에게 인식되었기에 언성을 높이거나 누군가를 꾸짖고 화를 내는 경우를 단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그날은 달랐다. 사부는 사천왕의 노기 어린 모습과 같이 붉어진 얼굴로 그 여인에게 소리쳤다. 여인은 어느 사이엔가 사라져 버렸다. 정신이 없었던 와중에도 소년은 자신이 보았던 여인이 어디로 사라졌는지 알 수 없었다. 어쩌면 자신이 환각을 본 것이거나 늘 만나던 다른 존재들과 같은 것이었는데 느끼지 못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넘어갈 정도였다. 주지의 일갈에 놀라 달려온 것은 수행승들이었다.

“주지스님! 어쩐 일이십니까?”

고함소리에 놀라 달려온 수행승이 장도를 꽉 쥐며 물었다.

“아무것도 아니다.”

사부가 왜 그렇게 화를 냈던 것인지는 정확히 기억나질 않았다. 하지만 정신이 까무룩 해지는 그 상황에서 꿈인지 현실인지 모를 사부의 이야기만은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희미한 여인이 나타났다가 일갈에 사라지고 난 밤의 일이었다.

방장을 앞에 두고 주지가 옛날이야기를 해주고 있었다.

“주지스님, 류는 도대체 어디가 어떻게 안 좋은 것입니까?”

“류가 몸 안에 그것을 인지하고 자각을 하기 시작한 듯하다.”

“몸 안의 그것이라면?”

“자네도 모르는 일이었을 테지. 벌써 십수 년 전의 일이니 내가 자네와 같이 방장 일을 할 때의 일이었다네. 오키나와로 퇴마행을 떠났다가 인근 어부들과 바다에서 출몰한다는 요괴를 퇴치하기 위해 어선을 타고 바다에 나간 일이 있었지. 막상 실체를 대하고 보니 기가 막히더구먼. 요괴를 만들어 낸 것은 결국 인간들이었어. 요괴라고 한 것이 오랜 세월 섬 밑에 잠들어 있던 용의 전신(傳神)을 깨우고 말았던 거지. 목적이라곤 겨우 그곳의 섬사람들을 압박해서 이주하게 하려는 사이비 종교단체의 만용이었던 게야. 하지만 그것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때가 늦었어. 고용된 음양사는 단순히 봉인되었던 섬 밑의 동굴에서 결계를 깨고 자신이 만든 부적으로 어떻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겠지만 그 밑에 잠들어 있던 것은 단순한 용이 아니었던 거야. 바로 동해에 살고 있던 용왕의 아들을 끌어 잡아둔 것이었지.”

“동해의 용왕이요?”

“그래. 자넨 동해라고 하면 잘 모르겠구먼. 현재 우리 정부에서 한국의 독도를 우리 땅이라고 자꾸 우겨대는 일에 대해서는 들어본 일이 있겠지?”

“다케시마의 일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래. 그 독도도 그렇지만 ‘동해’라고 불리는 바다는 예부터 일본의 것이 아니었다네. 무엇보다 퇴마를 한다는 우리들이 거짓말을 할 수는 없는 게지.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는 그 옛날부터 그 바다는 동해라는 이름으로 바다를 관할하는 용왕의 아들이 살았지. 형태는 용이었지만 그도 신(神)급에 해당하는 이였기에 함부로 사람들을 해하거나 하지 않았지. 동해에 인접했던 지금의 한국 사람들은 그 옛날부터 바다에 제사를 지내고 용왕의 아들을 극진히 섬겼지. 그런데 음양사가 판을 치던 헤이안 시대부터 자라온 음양사 중에서 검은돈을 받고 신의 명령을 거스르는 짓을 하는 녀석들이 생겨나 그의 평온한 생활을 방해한 것이지. 결국 비를 부리고 도력이 출중한 용왕의 아들을 잡아내기 위해 오키나와까지 수백의 음양사들이 희생되면서 용왕의 아들을 오키나와까지 끌고 와 가까스로 봉인을 하게 되었다네. 나 역시 기록으로 읽은 것이라 그 전의 일까지 확실하게 기억하진 못하네만 그렇게 적혀 있더군. 그런데 그 기록 속의 용왕의 아들이 정말 용일 줄이야, 그리고 그것을 내 세대에 만나게 될 줄이야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이었지. 용은 오랜 세월의 잠을 방해한 어설픈 음양사와 사이비 종교단체의 의도와는 다르게 잠들 당시의 분노를 터뜨렸지. 결국 섬의 절반 이상이 날아갈 정도의 엄청난 힘을 보여주었지.”

“아, 십수 년 전 오키나와의 한 섬이 해일과 지진으로 반이 무너져나갔던 그…”

“그래. 하지만 그건 뉴스에서 대강 덮으려고 한 이야기이고 실제로는 바로 그 용이 한 짓이었다네. 그때 난 해서는 안 되는 짓을 하고 말았어. 내 앞에 그 엄청난 위용을 보고 나니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지. 해서 본 종정에 도움을 요청했고 당시 주지스님이셨던 해암 스님께서 기록을 보여주셨고 용왕의 아들을 잠재우기 위해 산제물을 바치기로 했다.”

“산 제물을요?”

“기록에 의하면 한반도의 사람들이 용의 진노를 잠재우기 위해 사용했던 유일한 방법이 마을의 여자를 용에게 바쳤다는 사실을 확인하고는 그 방법을 쓰기로 한 거지.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다른 방법을 모색할 수도 있었을 텐데 나는 그 엄청난 희생을 막지 못했다는 오명을 쓰고 싶지 않은 마음에 스스로를 설득하고 있었던 것이었던 건지도 모르지.”

“주지스님.”

방장이 괴로워하며 류의 손을 가만히 잡고 있는 주지를 바라보았다.

“여인을 산제물로 바친다는 것은 그녀를 먹이로 준다는 의미가 아니었어. 당시 마을의 제사를 맡고 있던 영매가 그 사실을 이미 알고 나보다 먼저 용이 미쳐있는 그곳에 가 있었던 거야. 그녀는 도력에서 나보다 훨씬 더 우위에 있었지. 나이는 나보다 훨씬 어렸지만 그녀는 어려서부터 자신의 운명을 알고선 한국으로 도망을 쳤었다고 하더군. 결국 남자를 만나 아이를 가졌지만 태몽으로 아이와 자신의 운명을 보고 난 후로는 아이를 위해 다시 섬으로 돌아왔다고 하더군. 그녀가 아까 보았던 바로 그 존재일세.”

“예? 그럼 류가?”

“그래. 그녀의 아들이야. 그녀가 자신의 몸 안에 용을 넣고 그 영혼을 진혼 하기 위해 자신의 온몸을 불태워 자기 섬을 구하고 바다에 수장될 뻔한 일본 열도를 구했다네. 그녀의 희생으로 가까스로 용의 분노를 잠재웠지만 그 용은 그녀와 하나가 되어 어디론가 사라졌지. 사라진 줄 알았던 그것이 류에게 전해져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는데…”

“그럼 지금 류가 아픈 것이 신병 같은…”

“아니네. 그런 단순한 것이 아니야. 자신의 아이가 태어나기도 전에 이름을 ‘류(龍)'라고 지은 데는 그녀의 예견이 있었던 거야. 용을 봉인해두려면 살아있는 강한 기운이 필요했고 그것을 통제할 수 있는 수행이 가능한 자여야만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거야. 그래서 그녀는 나에게 류의 수행을 부탁한다는 확인을 받고 나서야 그녀의 몸을 던져 용과 하나가 되어 봉인되는 길을 택했던 거지. 아기였던 류에게 평생 못할 짓을 하고 만 거야. 기록에 의하면 그렇게 봉인이 되더라도 봉인의 그릇이 자각의 시기를 한번 겪게 된다고 한다. 그것을 이기지 못하게 되면 그 존재에게 먹히고 마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통제할 수 있게 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지금 류는…”

“오늘로 48일, 내일까지 류가 깨어나지 못한다면 우리는 류와 함께 그 존재를 지워야 한다. 내가 그런 고민을 하는 것을 알았던 것인지 지금 그녀가 내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던 것이지.”

“그렇다면 류를 어떻게 하실지는…”

방장이 죽은 듯 잠들어 있는 류의 모습을 보았다.

“이 마지막 밤이 고비네. 그래서 자네를 부른 것이고, 이제부터 내가 류를 지키기 위한 의식을 치를 테니 자네가 나나 류에게 무슨 문제가 생기면 도움을 줘야만 하네.”

“도움이라면?”

“류가 각성하거나 내가 그 기운에 빨려 드는 것 같은 기색이 보인다면 자네는 가차 없이 우리를 성불시켜주어야만 한다는 거야.”

“주지스님, 그것은…”

“이제 내가 해줄 말은 없네. 시작할 테니 지금 이 누각을 폐쇄하라.”

그렇게 누각을 봉한 주지는 새벽이 될 때까지 끊임없이 피 같은 땀을 쏟으며 류와 함께 사선을 넘었다. 동이 트기 바로 직전의 어둠에 류의 몸이 고압의 전류가 통하는 듯이 뒤틀려 공중으로 튀어 올랐다.

“갈(喝)!”

마지막 일성과 함께 류를 억누르며 류와 포개져 주지도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그 엄청난 모습을 목격한 방장은 그제야 류를 감돌고 있던 용의 모습이 사라진 것을 보았다. 하지만 더 놀라웠던 것은 동이 트고 어스름한 빛이 들어오면서 류의 온몸에 마치 문신을 새긴 것처럼 용이 마치 살아 움직이는 듯하게 몸에 새겨져 있다는 사실이었다.

류는 그렇게 자신의 몸 안에 용을 가둬두고 사는 살아있는 부적이 되었다. 이후 류는 고야산에서 최정예의 퇴마승으로 명성을 날리게 되었다. 어떻게 그 이야기를 기억하는지는 몰랐지만 주지스님이 성불하는 그날까지도 류는 자신이 들었던 그 이야기를 아무에게도 꺼내지 않았다.

그렇게 류는 일본 열도를 돌며 인간의 삶을 위협하는 요괴들을 성불시키는 요괴 세계에서마저도 이름을 들으면 도망쳐버린다는 소문이 돌 정도로 강력한 퇴마사로 고야산에서는 이미 차기 방장으로까지 예견될 정도였다.

그가 한국으로 가는 밀항선에 올랐던 그날은 차기 방장에 대한 원로회의가 있는 날이기도 했다.

“우욱! 하필이면 왜 또 지금이냐?”

가슴을 쥐어짜는 듯한 통증이 심장박동과 함께 온 몸을 울렸다. 정기적이거나 자주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가끔씩 있는 통증은 심장의 위치에 있는 바로 등 쪽에 새겨진 용의 다리가 날카로운 발톱을 움켜쥐는 것만 같았다.

이제 막 물건을 싣고 배가 움직인 지 한 시간이 채 지나지 않은 시간이었다. 상자에서 흘러나온 요기는 이미 억제할 수 있는 수준의 것이 아니었다. 어설프게 부적과 결계를 휘감은 것 같아 보이긴 했지만 그 안에 어떤 물건이 있는지 마치 살아 움직이는 것 이상의 요기가 조금씩 하지만 아주 강하게 흘러나오며 마치 자신을 부르는 것만 같았다.

물건이 부산에서 내려서 어디로 가는지를 추적하기까지 그들의 이동경로는 치밀하기 그지없었다. 이미 부산항의 세관과도 이야기가 다 되어 있는지 큰 저지 없이 무사히 통과했다. 당장 그 물건이 무엇인지 열어보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면 이제까지 쫓았던 놈들의 실체를 찾을 수가 없을지 모른다는 사실에 다시 자신을 억눌렀다. 가슴의 통증이 점차 주기적으로 찾아들었다. 마치 자신을 유혹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마저 그 고통에는 담겨 있는 듯싶었다.

첫 희생자가 아이라는 것을 알기 전까지는 이 사건에 관여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것이 아이만을 죽이고 다닌다는 것과 마지막 희생자를 추적하다가 우연히 찍힌 카메라에 담긴 호랑이를 연상하는 듯한 묘한 그림이 실마리의 전부였다. 그것이 일본을 한바탕 뒤집어엎고 올림픽을 앞둔 서울로 거처를 옮긴 신흥 사이비 종교단체와 묘한 연관을 맺고 있다는 것을 알아내기까지는 꼬박 한 달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신흥 사이비 종교단체에서 돈을 모으는 방법이 문제였다. 한국의 유명한 문화재를 밀매하기 위해 무덤을 도굴하고 그것에서 나온 보물급 문화재들을 밀반입하는 것이 그들의 주 수입이었다. 그들이 그 무엇인가를 일본에 들여오면서 도쿄를 중심으로 유아 살해사건이 발생한 것이었다. 그 신흥종교는 살아있는 여자를 죽음 직전까지 몰고 가 자신들이 모시는 신에게 바쳐야 한다는 행태 때문에 5년 전에도 문제가 되었던 종교단체였다.

인사동 골목으로 물건이 옮겨지는 것을 확인하고 천천히 그들이 빠져나가길 기다렸다가 조용히 가게 근처로 걸어 들어갔다.

“어서 오세… 이랏샤이 마세!”

점원이 류의 모습을 보고서 익숙한 일본어로 말을 건넸다.

“나니까 사가시이 모노데모?(뭐 찾으시는 물건이라도?)”

“도크베츠나 모노가 쿄오 도착크시다토(특별한 물건이 오늘 도착했다고)”

류가 나지막이 가게 안을 살피며 물었다. 점원이 긴장된 표정으로 우물쭈물거리며 류의 안색을 살피다가 가게 안쪽 사무실로 들어갔다가 나왔다.

“고치라에 도죠(이쪽으로 오시죠)”

사무실 안으로 들어간 류는 사무실의 뒤편으로 장식장이 열리며 생긴 통로로 안내를 받았다. 그 안에는 그에게 익숙한 어둠이 길게 깔려 있었다.

“어서 오시죠. 류 선생님. 이렇게 누추한 곳까지 오시게 해서 죄송합니다.”

음침한 어둠 속에서 허리가 구부정한 늙은 노인이 얼굴을 모자로 감춘 듯 익숙한 일본어로 물어왔다.

“누군가, 넌?”

“류 선생과 아주 오래된 인연을 맺고 있는 음양사라고 해두지.”

듣고 있는 것만으로도 아주 기분이 불쾌해지는 쇳소리가 섞인 목소리의 노인에게 류가 다가서자 노인의 곁으로 검은 두 개의 그림자가 나와 앞을 막아섰다. 몸집이나 얼굴이 사람의 그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곳이 한국의 서울이라고 아직도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요? 이곳은 이 공간입니다. 당신이 찾아왔던 곳은 이곳으로 들어오는 그 수많은 입구 중에 하나였을 뿐입니다. 우리에게 당신은 아주 소중한 보물이거든요.”

“쓸데없는 소리는 집어치워! 너희가 호귀를 부리고 있나?”

“호귀라… 역시 당신을 끌어들이는 미끼는 그것만한 것이 없군요. 어찌 보면 당신의 본능이 그것에 끌리는지도 모르겠군요.”

노인은 뜻 모를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동안 류는 다시 한번 가슴에 밀어오는 고통을 느끼며 숨쉬기가 곤란한 느낌을 받았다.

“지금의 당신과 싸워 이길 자신도 없을뿐더러 우리는 당신을 죽일 의사도 없습니다. 아까도 말했듯이 당신은 우리에게 있어 아주 소중한 제물이거든요. 그래서 이것도 준비한 것입니다.”

류가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가슴을 부여잡고 무릎이 꺾이며 주저앉았다.

“그래요. 우리 같은 보통사람이라면 아무렇지도 않은 것이 당신 같은 분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고통을 가져다줄 수 있는 이 물건을 한국에서 발견하게 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일본에 갔던 것을 다시 찾아 본래의 땅에 가져오기까지 무려 수백 년이 걸렸습니다. 흐흐.”

노인이 낡은 나무 상자에 붙은 부적에 손을 댔다. 그의 손은 쭈글거리며 뱀의 비늘 같은 것으로 둘러싸인 낡은 고목의 형태였다. 그가 부적을 손에서 떼고 상자를 열자 그 묘한 요기가 터져 나오며 류는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정신을 잃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차가운 느낌에 눈을 류는 자신의 몸이 움직이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몸이 가는 쇠사슬 같은 것을 칭칭 감아 기둥에 막아놓은 채 주변은 마치 재단과 같은 형태를 갖추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어둠 속에서 초가 켜지며 무수한 사람들의 그림자가 드러났다. 그들은 모두 엎드려 류를 향해 무언가 계속 중얼거리며 기도를 하고 있는 듯했다. 기괴한 천으로 온몸을 휘감은 노인이 나오자 기도하고 있던 이들이 두려움에 떨 듯 그를 맞았다. 그들의 환대 아닌 영접을 받으며 노인이 묶여 있는 류에게 다가와 속삭이듯 말했다.

“류 선생. 이곳은 한국의 제주도라는 곳입니다. 당신은 이제 우리와 아주 오래된 인연으로 당신의 몸 안에 있는 그것을 해방시키는 열쇠 역할을 하게 될 것입니다.”

“닥치고 어서 이것을 풀어라.”

“제물을 들여라.”

죽은 듯 잠들어 있는 4-5세가량의 아이가 침대에 실려 나왔다. 아이는 자신이 앞으로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른 채 평온한 표정으로 잠들어 있었다. 류의 앞에 아이가 눕혀지고 노인이 뒤로 물러나 다시 제단에 제사를 지내듯 아이를 받아 들었다.

“이제 이 아이를 바치겠노니 우리에게 당신의 모습을 보여주소서.”

그러자 류의 등 뒤쪽에서 섬뜩한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거대한 무언가가 형체는 드러내지 않은 채 이쪽으로 나오려는 듯했다.


- 힘을 원하는가?

갑자기 심장이 튀어나올 듯한 울림과 함께 전음이 온몸에 울렸다.

“누, 누군가?”


- 힘을 원하는가? 그렇다면 그대는 나에게 무엇이든 바칠 수 있는가?

“크르르르릉”

묘한 짐승의 소리가 나는 듯 어둠 저편의 것이 보이지 않는 등 뒤쪽에서 서서히 그 힘을 드러내기 시작하는 것이 느껴졌다. 자신은 몰라도 아이를 잡아먹는 호귀를 부르는 의식임에는 틀림없었다. 하지만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는 그것에서부터 온 것이 아니었다.

‘좋다. 나의 무엇을 원하는가? 내게 저 아이를 지킬 힘을 다오.’

바로 그때 하늘에서 번개가 치며 어디선가에서 호랑이의 포효가 울려 퍼지며 류의 등 뒤로 다가서며 그 무엇인가를 막아섰다. 그리고 어둠 안으로 달려 들어가 두 괴수가 으르렁 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한참을 날카로운 소리로 싸우는 모습이 보였다. 노인의 양옆을 보좌하던 수호귀들이 아이 쪽으로 다가서는 순간, 눈빛이 인간의 그것이 아닌 류가, 검을 잡고 그들의 앞을 막아섰다.

“물러서라!”

노인이 사천왕의 모습을 띈 수호귀들에게 손사래를 그렸지만 때는 늦었다. 두 사천왕상의 귀신들은 이미 두 팔이 잘려져 나갔다. 류의 손에 있는 검은 이미 다시 자루에 들어간 후였다.

“서,설마…마사무네에게 먹히지 않고, 그것을 다루는 것인가?”

노인이 떨리는 목소리로 뒷걸음치며 류의 모습을 두렵게 바라보았다.

- 날 인간 따위가 소유할 수 있을 것이라 여겼는가?

류의 입술이 움직이고 있었지만 결코 류의 목소리가 아닌 것이 흘러나왔다. 기괴한 괴성을 지르며 덤벼드는 사천왕의 형상을 한 두 수호귀는 이미 그 존재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허공에 검신이 움직이는 것 같이 빛의 줄기만이 몇 줄 보였을 뿐인데 그 이후 수호귀들은 형태로 갖추지 못한 채 돌덩어리처럼 조각나 바닥을 나뒹굴렀다.

“아니야. 호귀가, 나에겐 아직 호귀가 있어.”

“크르르릉”

류의 뒤에서 어둠을 밀 듯 거대한 검은 그림자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호랑이의 그림자 형체가 다른 형체의 짐승의 목을 물고 으르렁거리는 모습이었다.

“호귀가 호귀가 네 놈을…, 우욱!”

노인이 어둠에 의지하려던 순간 어둠 속에서 나온 그것이 다시 노인을 덥석 물어버렸다.

“으윽! 넌 호귀가 아닌데…”

죽어가던 흉측한 뱀의 형상을 한 노인이 가까스로 말을 내뱉었다.

“감히 죽지 못해 연명하는 헤이안 시대의 음양사 따위가 감히 내 이름을 빌어 인간이나 먹고사는 저급한 놈을 부른다는 소문을 듣고 직접 내가 왔다.”

우욱! 용호상박이라 재미있는 싸움이겠군. 네 놈은 오늘 마사무네에게 씌운 용에게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이야.”

죽어가며 노인은 자신을 물고 있는 거대한 호귀에게 혼잣말처럼 저주의 말을 내뱉었다.

“용이 어쩌고 뭐?”

노인이 숨을 거두었다 싶은 순간 싸늘한 살기에 호귀가 몸을 띄웠다. 기다란 검흔을 날리며 인간도 뭣도 아닌 존재가 검을 들고 서 있던 것이다.

“뭐냐? 그 요도(妖刀)는?”

“인간을, 그것도 어린아이를 먹이로 삼는 너 같은 놈들은 내가, 이 류가 용서할 수가 없다.”

류의 목소리가 반쯤 섞여 손에 검을 꽉 쥔 채 서서히 호귀의 앞으로 다가섰다.

“요도에 영혼을 먹힌 녀석인 거냐? 어리석은 놈! 퇴마를 한다는 놈이 어쩌다 그런 요도에게 영혼을 먹히게 된 게냐? 너도 내가 성불시켜주마!”

호귀는 이미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모를 정도로 요도에게 영혼이 잠식당한 류가 자신의 이성을 가진 채 말하는 것이 신기했다. 하지만 그것을 양해할 정도도 성격이 온화한 호귀도 아니었다. 당장 자신을 사칭하고 돌아다닌 동류의 요괴를 물어 죽인 것이나 그것을 불러내 이용한 음양사를 죽인 것 정도로 속이 풀린 것은 아니었다.


마사무네를 들고 달려드는 류와 보이지 않는 속도로 날아드는 호귀가 서로 맞붙자 난장판이 된 제단은 용오름으로 회오리가 휘말려 하늘로 오를 기세로 말려들었다.


남자가 눈을 떴을 때 남자는 자신이 누구이고 어디서 왔는지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자신이 삼일 밤낮을 잠들어 있었다고 손짓 발짓을 하는 무당의 딸이 있을 뿐이었다. 무당은 자기 딸이 남자에게 관심을 갖는 것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있는 듯했지만 무엇보다 남자가 밥을 먹을 때조차 놓지 않는 검이 두려웠고 남자의 온몸을 휘감고 있는 용문신이 두려웠다. 남자는 왜 자신이 검을 쥐고 놓지 않는지 의문이 들지 않을 정도로 검과 한 몸인 듯했다. 그들이 한국어를 쓰고 자신이 왜 한국어를 못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그들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지도 나중에서야 알았다. 자신은 일본 사람이지만 그들의 말을 왠지 모르게 알아들을 수 있다는 것과 벙어리인 무당의 딸이 하는 행동을 한국어보다 빨리 알아듣는다는 것이었다.

제주도 바닷가의 외진 시골 마을에 그와 같은 외국인이 있는 것도 이상할 법했지만 무당의 집은 왠지 모르게 터부시 한 탓에 사람들의 왕래가 그다지 잦지 않았고 그저 검을 들고 다니는 차가운 인상의 그에게 무어라 말할 정도의 용기 있는 사람은 있지 않았다. 제주도 특유의 묘한 이방인을 향한 분위기만이 그에게는 오히려 귀찮을 일을 만들지 않아 주어 고마울 뿐이었다.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른다는 것만큼 짜증스러운 일은 없었다. 하지만 그는 그를 졸졸 따라다니며 밥에서 옷까지 모든 것을 챙겨주는 무당의 딸이 보이는 행동이 싫지 않았다. 나중에 무당에게서 들었지만 칼의 요사한 기운을 그녀의 딸이 중화시키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것이 무슨 이야기인지는 몰랐지만 무당이 딸과 함께 있으면 왠지 마음이 편했다. 그렇게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그곳에서 사는 것도 그다지 나쁘지만은 않았다. 어느 사이엔가 들고 있는 칼로 거친 숲에 길을 트고 바다에 나가 그녀가 바다 밑까지 들어가 뭔가 잡아 오는 것을 보는 것도 나쁘지만은 않았다.

그렇게 자신이 누구인지 알지 못해도 괜찮을만한 한 달이 지났을 무렵 그는 잠자리에 들자마자 이상한 목소리를 들었다. 누구의 목소리인지는 몰라도 귀에서 들려오는 것이 아닌 것만은 분명했다.


- 그것이 온다. 준비하라.

머릿속을 온통 울리는 듯한 그 소리는 남자를 초긴장상태로 만들었다. 옷을 단정히 하고 예의 그 검을 들고 마당을 나서야 시커먼 하늘에 달이 없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저녁에 줬던 음식에 무엇이 들어 있었던 것인지 자신은 설풋 잠이 들었다고 생각했었는데 꽤 깊은 잠에 빠져 있었던 듯했다. 머리가 아프고 가슴이 욱신거리도록 아팠다. 그러고 보니 늘 자신의 곁을 지키던 그녀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자신을 부르는 무언가에 이끌려 남자가 나간 곳은 물결이 세 군데에서 마주쳐 사람들이 많이 죽어간다는 바닷 기슭이었다. 쇳소리와 북소리 같은 것이 뒤섞여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이 보였다. 촛불이 흔들거리기는 했지만 그 동굴 같아 보이는 안에서 사람들이 모여 저마다 손바닥을 비비며 뭔가 기원하고 있는 듯했다. 자신이 늘 들고 다니는 검이 바닥에 꽂혀 있고 그 주위를 빙 둘러 사람들이 있고 검의 앞에 무당의 딸이 가만히 손을 모아 무릎을 꿇고 있는 것이 보였다. 자신도 모르게 바로 손에 잡혀 있던 검신을 보았다. 검을 뽑자 자루만 있는 이상한 쇠가 대신 꽂혀 있었다. 자신의 검을 그들이 빼내어가고 다른 것으로 꽂아 둔 것이었다.

그가 다가서려 하는데 누군가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 방해하지 말라. 너를 대신해 여인의 목숨을 가져간다. 이 여인의 피를 마셔야 내가 살 수 있다. 너는 나와 분명히 약속했으니 더 이상 방해하지 마라.

남자는 쥐어짜는 듯 머리가 터지는 고통에 힘겨웠지만 그녀가 아무렇지도 않게 그 칼의 희생이 되는 것을 지켜볼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자신을 대신해서 머리맡에서 자신을 지켜주고 검에게 잡아먹히지 않게 지켜주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결심했다. 이제 그녀를 자신이 지켜주어야만 한다고 마음속 어딘가에서 울림이 요동쳤다.

남자가 미친 듯이 달려 그녀에게 다가서려는데 몇 걸음을 앞에 두고 검에서 이상한 연기가 일어나며 그녀를 덮칠 기세로 피어오르는 것이 보였다. 무당의 딸은 다가오는 그를 느낀 사람처럼 평온한 아기의 표정으로 눈을 떠 그를 응시하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이 괜찮다는 것인지 아무 걱정하지 말라는 것인지는 몰라도 남자는 그녀를 지켜주지 못할까 싶어 에게 가슴에서 심장이 튕겨져 나올 것만 같았다.

“어흐흐흥!”

벼락이 치는 소리와 맞물려 괴수의 포효소리가 들렸다.

“여기 있었구나. 내가 칼을 놓고서도 네가 제 명에 죽을 줄 알았더냐?”

남자의 앞을 거대한 검은 호랑이의 그림자가 막았다. 정확히 보니 그림자가 아니라 검은 형체 그 자체였다. 그것은 날카로운 검은 발톱과 하얗게 투명한 달을 반사하는 이빨을 언뜻 보였다.

“비켜! 비키란 말이다!”

남자는 미친 듯이 외치며 그녀에게 다가서려 했지만 아주 가볍게 그 거대한 발톱에 맞아 10여 미터는 날아가 버렸다. 그때 무당의 딸이 칼을 들어 자신의 명치로 꽂는 모습이 남자의 눈에 들어왔다.

“안돼!”

남자는 미친 듯이 소리쳤지만 이미 그녀는 칼을 자신의 한 몸으로 받아들이는 듯했다. 그렇게 그녀는 남자의 눈앞에서 칼 속으로 빨려 들어가듯 자신의 몸에 칼을 받아들였다. 순식간의 일이었지만 무당을 미친 듯이 계속 펄쩍 거리며 뛰고 있었고 사람들은 연신 뭐라 중얼거리며 소리쳤다. 커다란 검은 호랑이 형체가 다시 날아와 남자의 몸을 눌렀을 때 남자는 그 고통보다 자신이 여자를 지켜주지 못했다는 사실에 오열했다.

“으아아아아아!”

남자가 손을 뻗자 그녀를 녹여버린 그 검은 다시 남자의 손으로 빨려 들어오듯 날아왔다.

호랑이 형상은 날아오는 검을 보고 다시 뒤로 한걸음 물러섰다.

- 힘을 원하는가?

“나는 너를 이 검신에 영원히 봉한다. 그리고 그녀의 영혼으로 중화된 요기를 봉한다. 이제 너는 평생 인간에게 업을 진 요괴들의 피를 빨아먹는 것으로만 연명할 것이다.”

남자가 검집을 들어 올리자 검은 마치 들어가기 싫은 듯 움찔거리다가 힘을 이기지 못하고 빨려 들어왔다.

“네가 아이를 먹고 다닌다는 그 호귀인가?”

남자가 아까와는 전혀 다른 사람인 듯 검은 그림자에게 검신을 겨누며 물었다.

“무, 무슨 소리하는 거냐? 그놈은 내가 죽였잖아? 그리고 넌…”

“살기 위해 거짓말을 하는 건가?”

남자가 나지막이 심호흡을 하며 검신을 바로잡았다. ‘호귀’라고 불린 검은 호랑이 형체는 아까와는 판이하게 다른 남자의 모습에 뭔가 오해라는 듯 해명을 하고 싶었지만 남자는 이미 너무도 차갑게 이성적인 다른 존재가 되어 버린 느낌이었다.

“언제고 너는 요괴 사냥을 하다가 죽을 운명. 하지만 마사무네를 들고 있는 너라면 그리 쉽게 죽지는 않을 것이다. 너의 목숨은 언제도 내가 끊어주도록 하지. 이 수백 년을 살아오면서 내게 검흔을 준 최초의 인간이니 말이다. 오늘은 내 이만 사라져 주지.”

그 말을 남기고 호귀는 구름 안으로 자취를 감춰버렸다.

호귀가 사라지자마자 남자는 검을 다시 검집에 넣었다. 그의 검고 긴 머리끈이 끊어지며 머리가 바닷바람에 날렸다.

“다시 고야산으로 돌아간다. 그녀와 함께….”

- 10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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