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감정에 휩싸여 말을 내뱉지 말라!
지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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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이 아니라도, 평범하게 결혼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이라도 상대방과 어떤 식으로든 감정의 대립이 오고 싸움이 일어나며 부대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사람들이 이혼을 결정하지는 않는다. 감정적인 싸움 때문에 이혼했다면 이 세상에 온전하게 결혼생활을 영위한 사람은 없다. 반대로 싸움이 없이 오직 나긋나긋하게 평화롭게 결혼생활을 유지하는 커플도 없다.
너무도 당연한 사실이긴 하지만, 감정이 섞인 싸움이란 상대방에게 감정이 있기 때문이다. 이미 다른 사람에게 마음이 가있고 몸도 가있는 상황이라면 굳이 결혼이라는 법적 올가미(?)에 묶여 있는 것을 답답해할 뿐 굳이 감정적인 싸움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누차 강조한 바 있지만 평균 성혼연령을 생각해 보면, 30여 년이나 넘도록 자기 방식대로 자기 집안의 방식대로 자신이 상식이라고 생각한 자신의 고작 1미터 반경의 사회적 범위대로 살아온 성인이 서로 전혀 다른 루트를 거쳐온 상대방과 아무런 감정의 부대낌이 없이 너무도 이상적으로 사랑만 하면서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문제는 그렇게 감정적인 싸움을 할 수는 있겠으나 그것이 돌이킬 수 없는 감정의 골로 상처를 만들어 결국 헤어짐을 넘어 법정 다툼으로 이어져 자신의 본래 의도와는 전혀 다르게 산불처럼 번져버리게 되는 경우가 생각보다 적지 않다는 점이다.
자신이 감정적으로 경도되었을 때는 결코 어떤 결정도 내리지 않는 것은 만고의 진리이다.
감정적으로 경도되어 내린 결정은 어떤 식으로든 당신의 인생을 좀먹고 망가뜨리는 결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혼을 하고서 후회하는 많은 사람들 중에서 가장 많은 공통점은 자신이 내린 결정이 결코 냉철한 이성에 의한 것이 아니었기에 일시적인 감정으로 인해 충분히 생각해보지 못하고 내린 결정이라고 후회한다는 사실이다.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이미 늦어버린 후이기에 후회라 부른다.
그러한 후회를 남기지 않기 위해서 당신이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당신이 감정적이었을 때 격한 감정으로 흥분했을 때 결정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것은 이혼을 언급하기 전에 당신이 결혼을 결정할 때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사안이다. 결혼이든 이혼이든 중대한 결정을 함에 있어서 당신이 감정적으로 격하게 경도된 상황이라면 그것은 어쩌다가 나중에 보니 옳은 결정이라 하더라도 우연일 뿐 결코 제대로 된 결정이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다.
감정적으로 휘둘리기 시작하면 무엇보다 표현이 격해지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 말이라는 것이 결국 시작할 때는 그럴 의도가 아니었음에도 감정이 개입하기 시작하면서 넘어선 안될 선을 넘기 시작한다. 그리고 상대방에게 그리고 더 나아가 자신에게 그리고 두 사람의 관계에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만들어 급기야 파국으로 치닫는 경우를 나는 너무도 많이 보아왔다.
“사람은 고쳐 쓰는 거 아니라고 하더니 내가 요즘 그 말을 실감한다.”
“니 부모가 하는 거 정말 어이가 없었는데 정말로 배운 게 그것뿐인지 똑같구나.”
“어떻게 이렇게 사람이 하나도 변하질 않냐? 발전이라는 게 없구나.”
“그렇게 무능하니 직장에서도 알아줄 리가 있니?”
“니가 뭘 알겠니? 먹는 거랑 돈 쓰는 거밖에 모르는 애가....”
“그러고 빈둥거리며 살았으니 지금 이 모양 이 꼴로 살지... 쯧쯧”
이런 언급들은 설사 당신이 극강의 T성향을 가지고 있고 정말로 상대를 생각한답시고 말을 했다고 실드를 치더라도 결코 입 밖에 내서는 안 되는 말들이다. 그리고 대개 이런 말들은 온전하고 바른 의도라기보다는 감정이 개입하여 자신이 가진 창의 길이를 가늠하지 않은 채 방패가 없는 상태의 무방비한 심장 근처를 찌르고 마는 치명적인 결과를 만들어낸다.
당신의 감정이 상대에게 공격성을 드러내려고 요동을 치기 직전 당신은 한 마디만 하면 된다.
“미안해. 대화를 하지 말자는 게 아니라 내가 더 이상 이야기를 하면 내 마음과 다른 말들이 당신을 상처 입게 만들고 나도 다치게 만들 것 같으니까 잠시 냉정할 시간을 서로 갖자.”
그저 자신이 더 심한 말을 할까 봐 “더 이상 말하지 말자! 내가 너랑 무슨 말을 하겠니!”라고 하는 것보다 이 말이 나오는 순간, 상대는 물론 당신의 뇌도 아이스버킷만큼이나 차가운 이성의 물이 정수리로부터 내리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최대한 상대와 부대끼지 않도록 드라이브를 하던가, 동네 산책을 하던가 혼자서 에어팟에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아무런 생각 없이 최대한 이성적인 상태로 자신을 리셋하는 과정들이 필요하다. 의외로 이 과정에 필요한 시간은 별거를 할 정도의 며칠간이 아닌 몇 시간 혹은 반나절이면 충분하다. 그 잠깐의 화를 삭이지 못해 우발적인 살인이 나고 가정폭력이 일어나고 극단적인 선택이 일어나며, 물리적인 충돌이 아니더라도 서로 간의 심장이 걸레가 되도록 난도질해서 기어코 변호사의 주머니를 부풀려주는 뻘짓을 하고 나중에 후회할 이혼이라는 것을 파도에 밀려 들어가듯 해버리고 만다.
그것이 이혼을 하고 나서, 이혼하고 나면 뭔가 대단히 달라지고 행복해질 줄 알았는데 그런 것도 없네, 라며 씁쓸한 미소와 함께 후회를 하게 되는 것이다.
모든 전쟁은 싸움으로부터 말미암는다.
그리고 그 싸움은 아주 사소한 감정대립에서 시작하는 것이 역사를 통해 확인된다. 물론 역사적인 전쟁의 경우 정치적인 이유가 깔려 있는 경우가 다반사이기는 하지만, 결국 사람의 다툼이라는 것은 결국 사람의 감정에 휘둘리기 마련이다.
자원이 고갈된 한 나라에서 독재를 꿈꾸는 독재자가 자신에 대한 불만을 해외에 돌리기 위해 자원이 많은 힘없는 나라를 침략하는 전쟁처럼 정치적인 배경을 감안한다면, 굳이 당신이나 당신의 배우자가 이미 다른 사람과 벌이지 말아야 할 사랑에 빠져서는 상대방에게 위자료를 주기 싫은 것을 넘어 재산을 유리하게 받아내기 위한 정치적인(?) 사악한 의도가 있어서 그런 것이라면 그런 결혼은 조속한 이혼만이 답이다.
하지만 실제로 그러한 경우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자신이 사랑하는 마음만큼 상대방이 사랑해주지 않는 것 같은 마음이 들고, 연애하고 결혼할 때만 하더라도 자신을 존중해 주고 존경에 마지않던 사람이 이제는 발가락의 때만큼도 나를 생각하지 않고 함부로 구는 모습에 실망하고 지쳐 ‘내 사랑이 이렇게 비참하게 변질되어 끝나는 것이 싫다’라고 생각하는 것 때문에 헤어짐을 생각한다면, 먼저 자신을 돌아보고 자신에게 문제점과 원인을 찾으려고 노력하되 그것을 상대에게 알리고 상대가 같은 노력을 경주할 마음이 있는지를 마주하여 고민할 필요가 있다.
그 과정은 굳이 전문 상담가나 정신과 전문의의 도움이 아니더라도 처음 사랑하며 결혼을 생각했던 두 사람의 마음을 조금 다시 일깨우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능하다.
올해 최고의 드라마 히트작 중 한 편이라고 꼽히는 <눈물의 여왕>을 보면, 그러한 결혼과 이혼의 현실이 로맨틱 코미디에 버무려져 표현되었다. 서울대 법학과 출신의 자칭 시골 출신의 변호사가 재벌집 사위가 되면서 3년 만에 결혼이 지긋지긋해져 이혼을 꿈꾸다가 아내의 시한부 판정을 들으면서 새롭게 사랑을 깨닫게 된다는 다소 진부한(이 표현 자체가 사람들에게는 익숙한 현실이라는 의미를 배태한다.) 스토리텔링을 재미있게 그려내고 있다.
단언컨대, 살면서 싸우지 않는 부부는 없고, 이혼을 생각해보지 않은 부부는 없다.
자신들은 그런 적이 없다고 하는 부부들의 경우를 조심스럽게 탐문 상담방식으로 살펴보면, 그들은 그런 소통을 하지 않은 것이지 그럴 위기(?)의 순간이 없었던 것이 아니다.
부부 중 한 사람이 갑자기 시한부 판정을 받거나 불의의 사고를 당해 배우자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경우, 해당 배우자를 버리고 저 혼자 잘 살겠다고 끊어버리는 이혼을 하는 확률은, 이혼을 하지 않고 배우자를 부양하며 살아가는 확률보다 지극히 낮다.
첫 번째 글에서, 당신이 헤어짐을 생각하는 이유와 원인부터 명확하게 규명하라고 설명한 바 있다. 그것은 없는 원인을 부러 만들어내라는 말이 아니다. 헤어짐을 생각하게 된 이유를 꼽자면 수도 없이 많은 것 같지만, 그렇게 수많은 같이 살고 싶지 않은 이유들이 있음에도 왜 결혼했고 왜 여태 살았는지를 생각해 본다면 그것만큼 모순된 자가당착은 없다.
두 사람이 같이 살기로 결정하고 심지어 아이까지 낳으면 살았는데, 그것이 잘못된 결정이고 자신의 인생을 상대방이 망쳐버렸고, 더 멋지게 살 수 있었는데 똥 밟았다는 식의 태도나 발언은 어쩌면 당신만의 생각이 아닐 수 있다. 상대방은 안 그런가?
실제로 나와 살 때는 그렇게 변변치 못하고 시답지 못했다고 생각했던 상대가 이혼하고 나서 승승장구하며 심지어 나보다 훨씬 더 나은 상대와 재혼까지 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당신이 느낄 처절한 자괴감을 굳이 맛보고 싶은가?
다음 편은 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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