雪女(설녀;유키온나) 11

납량특집 호러 판타지 멜로

by 발검무적

“뭐냐, 너는? 니가 왜 이곳에?”

설녀가 갑작스럽게 호귀와 함께 나타난 신령의 모습에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유키온나! 아니, 그 옛날 사람이었을 때의 이름을 따서 토모에라고 불러줄까?”

구름을 밟고 서 있는 듯한 신령의 모습을 한 칸나 카무이가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그는 이미 그녀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듯했고 설녀 역시 당혹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무, 무슨 말을 지껄이고 싶은 게냐?”

당황하는 설녀의 모습에 비해 신령은 너무도 차분한 모습으로 그녀에게 한발 다가서듯 말을 이었다.

“토모에, 당신이 이들에게 당신을 쫓아낸 이 도시에 복수하겠다고 떠들어댔다고 하더군.”

“그렇다. 날 도시의 이런 좁고 낡은 건물까지 쫓아내 버린 인간들을 모두 얼려버릴 테다.칸나 카무이! 이곳 북국(北國)을 다스리는 신이라고 해서 주제넘게 나서지 마!”

까랑까랑한 설녀의 목소리가 냉기를 가르며 울렸다.

“으음. 내 기억에는 그런 게···, 아닌 것으로 아는데?”

“무, 무슨 소리를 하려고 그러는 게냐?”

“네가 증오하는 건 고작 한 명의 남자 아닌가? 그 인간에 대한 뿌리 깊은 증오를 이 도시의 인간들에게 풀려고 하다니··· 그것이야말로 너무 유치하고 치졸한 복수 아닌가?”

“어머니! 이게 무슨 얘기예요? 그 남자라니···”

신령이 말에 설녀의 얼굴이 진한 흑회색빛으로 어두워졌다. 뜻 모를 대화에 코유키가 설녀를 바라보며 의문의 시선을 던졌다.

“닥쳐! 칸나 카무이! 닥치란 말이야!”

신령은 악다구니 쓰는 설녀의 모습을 안쓰러운 듯 바라보며 그녀가 감추고 싶었던 오래된 이야기의 숨겨진 진실을 들려주었다.

아마 지금으로부터 100년이 훨씬 더 된 이야기가 되겠군.

당시 설녀, 아니 설녀의 후예라고 해야겠군. 토모에는 천년이 다 되어가도록 요괴로 사는 것에 회의를 품고 있었지. 늘 인간의 정기를 빨아먹거나 눈의 결정 속에 숨어 살고 있긴 했지만 그렇게 살아 있는 것들의 정기를 빼앗아 살아가는 것에 회의적인 마음을 품기 시작했던 거지.

그러던 중에 인간이라는 존재들이 ‘도시’라는 것을 만들어 나가기 시작하면서 이전과는 다른 모습을 보이며 발전해가고 빛이 많아지기 시작하면서 그녀도 인간에 관심을 갖게 되었지.

당시엔 삿포로는 물론이고 이곳 홋카이도 자체가 엄청난 오지였지. 사람들이 많이 찾지도 않고 도시로 번성하지도 않았던 불모지 시절이었지.

‘나카타니 쥰이치로’라는 남자가 홋카이도 대학에 부임되어 오게 되었어. 이 시계탑이 삿포로 농학교 극장에 생겼을 무렵이었으니까 대중교통은 고사하고 전기가 온전하게 들어오기도 전 이야기지. 도쿄대학교 출신의 전도유망한 물리학자가 홋카이도 대학의 교수로 자청해서 오는 일이란 상당히 이례적인 경우였지.

나카타니는 아주 정열적인 사람이었어. 홋카이도 대학에 발령을 받아 이곳으로 오기 전까지 단 한 번도 이곳을 와본 적이 없었으면서도 이곳에 빨리 적응하려고 무던히 노력했었지. 원래 홋카이도 사람들은 한해의 절반 가까이를 눈과 추위로 휩싸여 지내기 때문에 여간해서는 능동적으로 무언가를 하려고 움직이거나 하질 않거든. 그래서였는지 도쿄에서 온 천재 물리학자의 괴짜 행동은 학교에서는 물론이고 주변 사람에게 신기하기 그지없는 것이었지.

그런 그에게 토모에가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어찌 보면 운명이었을지도 모르겠군.

홋카이도 대학 물리학부의 교수로 부임하고 맞게 된 첫겨울의 첫눈이 내리던 날.

나카타니는 자신이 왜 홋카이도에 오게 되었는지를 깨닫게 되었지. 그토록 엄청난 눈이 내리고 쌓이는 것을 본 건 그가 태어나서 처음 있는 일이었거든.

“교수님. 눈, 처음 보세요?”

연구실의 큰 창으로 내리는 눈을 멍하지 보고 있는 나카타니를 조교가 신기한 듯 쳐다보며 물었다.

“으응? 아니. 눈을 처음 볼 리가 있나? 날 너무 도쿄 촌놈으로 모는 거 아닌가?”

“아니, 그런데 뭘 그렇게 신기하게 보세요?”

“자네도 들어봤겠지만 한 겨울에도 도쿄엔 눈이 쌓이는 일 같은 경우는 없거든. 그런데 이렇게 금세 자전거가 덮일 정도로 많은 눈이 내리는 건 처음 봐.”

마치 아름다운 선녀라도 보고 반한 나무꾼처럼 나카타니는 연구실을 나섰다. 그 길로 뭔가에 홀린 사람처럼 건물을 빠져나와 눈이 내리는 교정의 한 복판에 서 하늘로 팔을 벌리며 웃기 시작했다.

“아! 이거야! 바로 이거라구! 하하하하!”

그렇게 눈의 세계의 초대에 흠뻑 빠진 나카타니는 더 이상 시간을 낭비할 수가 없었지. 당장 눈이 내리기 시작하면 계속해서 눈이 올 테고 눈이 그치는 4-5월 전에 알고 싶은 것과 보고 싶은 것이 너무도 많았거든. 그래서 그는 여기저기 우편물을 부치고 자료를 모으기 시작했지. 그다음 주부터 그의 연구실에 엄청난 소포들이 도착하고 그의 연구실은 온통 이상한 형상의 사진들로 가득 차기 시작했어.

“교수님. 이게 다 뭐예요? 무슨 사진입니까?”

조교 나카야가 물었다. 계속해서 연구실로 들이닥치는 소포들은 책 아니면 사진자료들이었고, 현미경과 사진관에서 보았음직한 커다란 사진기도 그 안에는 들어있었다.

“응. 나카야 군. 이게 벤틀리가 찍은 눈의 결정들이야. 예쁘지 않나?”

“벤틀리요? 그게 누굽니까?”

“음. ‘윌리엄 벤틀리’라고 눈에 있어서는 독보적인 양반이지. 미국 사람인데 아마도 나처럼 눈에 미쳐있었던 게지. 이 모든 사진을 그 사람이 직접 찍었다네.”

나카타니가 이것저것 사진을 벽에 직접 붙이며 신이 난 어린아이 마냥 자랑하듯 말했다.

“눈이요? 이게 눈이라는 말입니까?”

“응. 정말 예쁘지 않나? 눈의 결정 모양이야. 이제부터 나는 이 눈에 대해서 연구하기로 결정했네.”

“예? 눈이라니요? 물리학에서 눈을 연구하는 것이 무슨···”

이미 나카타니의 귀에는 조교의 말 따윈 들어오지 않았지. 눈의 연구라고 해봐야 고작 장비라고는 현미경과 사진기가 고작이었지만 그는 눈에 대한 연구에 들어갔지. 본격적으로 홋카이도의 눈 사진을 찍겠다고 마음먹고 나서는 언제나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실험실 복도에 눈 받이와 현미경도 설치를 했지. 나중엔 그것으로도 성이 차질 않아 기어이 해발 2077m 높이의 토카치 산맥(十勝岳)의 중턱에 눈 구조를 촬영할 수 있는 연구공간을 마련해 섭씨 영하 20도의 추위 속에서 눈 사진을 찍겠다고 설산을 올랐지. 그렇게 찍은 눈의 사진은 그가 그곳에서 찍은 사진들로 눈 결정 구조에 대한 연구논문을 발표하기까지 2년 동안 3천여 종류에 이를 정도였다네. 벤틀리가 찍었던 눈의 모습들 대부분이 홋카이도에서도 확인되기에 이르렀지.

그렇게 눈 속에서 살던 나카타니를 근 2년간 눈 속에서 바라봐왔던 눈동자가 있었다는 것을 그는 눈치채지 못했어. 당시 설녀에게는 어쩌면 당연한 운명처럼 나카타니라는 인간이 다가왔던 거지.

폭설이 들이닥쳐 토카치의 연구공간에서 나오지 못하고 열흘째 갇혀 있다가 얼어 죽을뻔한 나카타니의 앞에 그녀가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지.

얼마나 오랫동안 정신을 잃었던 걸까? 입안에서 비릿한 내음이 진동을 하며 숨통이 트이는 듯했다.

“괜찮으세요?”

눈앞에 어른거리며 투명하리만큼 창백한 여자의 얼굴이 들어왔다. 짙은 검은 머리에 비해 너무 창백한 얼굴을 한, 핏기라고는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창백한, 하지만 묘한 매력이 있는 여자의 얼굴이 또렷이 눈에 들어왔다.

“누, 누구세요? 여기가 어디죠?”

막 정신이 들고 그녀가 황급히 자신의 입에서 손가락을 떼는 것이 보였다.

“한동안 정신을 잃고 계셨어요. 마침 이곳을 지나던 길이어서···, 큰일 날 뻔하셨어요. 이 산장은 이미 눈에 무너져 입구가 막혀 있었어요.”

나카타니는 그제야 모든 상황이 머릿속에서 정리되는 것 같았다. 밤사이 내린 눈의 무게를 버티지 못해 어떻게 해서든지 산장에서 마을로 내려가려고 하던 순간 문, 뒤쪽에 지붕이 무너지면서 문안으로 자신을 튕겨내듯 밀어 넣고 눈이 입구를 막아버렸던 것이 하나씩 기억났다. 혼미한 상태에서 자신의 입안에 손가락을 넣고 있다가 뺀 이 얼굴이 창백한 여자가 누구인지 알 수 없을 뿐이었다.

“여긴 어떻게 들어온 겁니까? 그리고 이 피는?”

그녀의 손가락에서 계속해서 배어 나오는 붉은 피가 그녀의 몸에서 조금씩 빠져나가듯 더욱 창백한 피부로 변해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오랫동안 정신을 잃고 계셔서 어떻게 할 도리가 없어 응급조치를 한다고 한 게 이렇게 되어 버리고 말았네요. 죄송해요.”

잠시였지만 창백한 여자의 얼굴에서 붉은 홍조가 언뜻 도는 듯했다.

“그럼 날 위해 손가락을 물어뜯었다는 거···예요?”

나카타니는 얼른 자신의 셔츠를 찢어 황급히 그녀의 손가락을 감싸 묶었다.

한동안 눈이 내리지 않았는지 집을 막고 눌렀던 눈들은 마치 누군가 치워둔 것처럼 길게 통로를 만들어 밖으로 나갈 수 있게 되어 있었다. 나카타니는 그렇게 운명적으로 그녀와 만났다.

토카치에서 멀리 떨어진 마을에서 먼 친척을 만나러 왔다가 산사태로 가족을 잃었다는 설명 이외에 나카타니가 토모에에 대해 듣거나 알고 있는 것은 없었다. 아니, 굳이 알 필요가 없었다. 그녀가 그에게 있어 생명의 은인이었고 그녀는 누구보다 눈에 대해서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그는 충분히 감사했다. 눈의 결정이나 눈 결정의 형태가 달라지는 습도라던가 지역별로 차이가 생기는 원인에 이르기까지 나카타니에게 있어 그녀는 더할 나위 없는 동료이자 연인 그 자체였다.

그렇게 두 사람은 그 해 눈이 그칠 즈음에 결혼을 하게 되었다.

결혼을 하고 첫눈이 내릴 즈음 두 사람에게 첫 아이가 생겼고, 이어 둘째와 셋째가 태어났다. 첫째와 둘째는 딸이었고 막내는 아들이었다.

그즈음 나카타니의 연구는 눈이 내리지 않는 지역에 눈을 내리게 할 수 있는 인공눈에 대한 연구로까지 확장되어 있었다.

“이건 아닌 것 같은데···”

적당한 환경을 만들기만 하면 될 것이라고 쉽게 생각한 것이 불찰이었다. 역시 문제는 눈의 결정이었다. 핵이 되는 눈 결정을 만들지 못한다면 눈을 생성하는 것은 불가능한 문제라는 것을 깨닫고 좌절했다. 연구가 더 이상 진전될 수 없었다. 특히 눈이 내리지 않는 여름에는 연구를 위해 눈이 내리는 지역으로 가서 연구를 하고 싶은 충동까지 들 정도로 실의에 빠져 지냈다.

“요즘 부쩍 당신이 힘들어 보여요. 그렇게까지 눈을 만들고 싶은 이유가 뭐예요? 여긴 당신이 만들지 않아도 한 해의 절반 가까이 눈이 내리는 곳이잖아요?”

아내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나카타니에게 물었다.

“으음. 글쎄. 나도 처음에 눈이 이렇게 많이 내리는 곳에서 살며 눈에 대한 연구를 하게 될지는 몰랐다오. 그런데, 일단 눈이라는 것에 빠지고 나니까 이것이 없을 때도 내내 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견딜 수가 없게 되어버렸구려.”

“눈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는 알아냈어요?”

토모에가 궁금한 듯이 그에게 몸을 숙이며 물었다.

“눈은 고층에서 먼저 중심부가 생기고 그것이 지표까지 내려오는 동안 각 층에서 각기 다른 성장을 해서 복잡한 형이 되어 지표에 도달하지. 내가 눈의 결정구조에 대해서 관심을 보였던 것도 바로 그런 이유라오. 그래서 눈의 결정이나 모양이 어떠한 조건에서 생성된 것인지 알고 나서 현미경 사진을 보면 상층부터 지표까지의 대기 구조도 알 수 있는 거지. 근데 당신, 이런 얘기 재미없지 않소?”

“아니요. 전 당신 이야기라면 뭐든 재미있어요. 특히 눈에 대한 것이면 더욱이요.”

나카타니는 아내의 소녀 같은 모습을 보며 찬찬히 설명을 이어나갔다.

“그러기 위해서는 눈의 결정을 인공적으로 만들어 보고 천연에서 볼 수 있는 모든 눈의 종류를 만들어 낼 수 있으면, 그 실험실 내의 측정치로부터 이제는 역으로 그 결정 모양의 눈이 내린 때의 상층 기상 상태를 유추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현재 내 연구의 토대라오.”

“그럼, 당신에게 눈은 도대체 뭐죠?”

토모에의 의미심장한 질문에 나카타니는 잠시 머뭇거리는 듯하더니 그녀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내게 눈의 결정은 당신을 바라보면 당신의 눈동자에서 비치는 ‘하늘에서 보낸 편지’라고 하는 게 맞을 것 같소. 마치 당신의 눈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 안에 보이는 눈의 결정들 속에 뭔가 내게 말하고 싶은 것을 암호로 감춰둔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단 말이지.”

“무슨 대답이 그래요?”

토라진 듯 토모에가 눈을 쌜쭉하니 흘겼다.

“응? 글쎄. 난 계속해서 눈을 마냥 보고 있고 싶어 하는 당신에게 사시사철 눈을 내리게 해주고 싶은 맘뿐이오.”

나카타니의 말에 토모에는 부끄러운 듯 살포시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연구의 난항을 겪고 있던 나카타니의 연구실에 변화가 생긴 것은 며칠이 지난 어느 날의 일이었다.

연구실에 들어서며 소스라치게 놀란 조교 나카야와 마주쳤다.

“교수님!”

“오, 나카야 군. 무슨 일이야? 혹시 무슨 문제라도 생긴 건가?”

“아니요. 그런 게 아니라 눈의 결정이 생겼습니다.”

“뭐?”

바로 현미경 앞으로 가져간 그는 이제까지 보지 못했던 눈의 결정을 보았다. 순정의 모습에 가까우면서도 어떤 대기 상태에서도 보지 못했던 형태였다. 말로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그 모습에 그는 잠시 말을 잃었다.

“어떻게 이게 만들어진 거지? 데이터를 정리할 수 있겠나?”

“동일한 조건에서 다시 실험을 해봐야겠지만 너무 자연스럽게 아무런 흠집도 없이 그런 결정이 어떻게 만들어진 건지. 꿈만 같습니다.”

나카타니는 이제 연구의 마무리를 지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설렘과 기쁨에 몸이 떨려 주체할 수 없었다. 어서 이 소식을 아내에게 전하고 싶었다. 하지만 동일한 결정을 동일한 조건에서 또다시 만들어낼 수 없다면 그것은 우연이나 실수로 인한 요행이기 때문에 과학자로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작업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때문에 그로서는 섣불리 기뻐할 수만도 없는 노릇이었다.

“좋아. 오늘 어제와 똑같은 조건으로 연구설비를 다시 설정해두고 결과를 지켜보기로 하지.”

그날 밤.

집에 돌아온 나카타니는 오랜만에 아이들과 함께 나베요리를 만들어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도쿄에서 대학원을 다니고 있는 큰 딸이 있는 곳으로 대학생활을 시작할 둘째 딸을 보내고 나면 아들과 세 식구만이 남게 되는 것을 생각한 딸들이 마련한 저녁이었다.

“무슨 기분 좋은 일이라도 있나 봐요, 아빠.”

“그래 보이니? 이제 이 아빠가 하는 연구가 빛을 발할 것 같기도 해서 그렇단다. 그래도 아빠는 우리 딸들이 모두 타지에 보내는 것이 썩 좋지만은 않구나.”

그렇게 오랜만에 술을 한잔 거나하게 마시고 난 나카타니는 기분이 좋아져 아내와 함께 조용히 음악을 듣고 있었다. 오래된 축음기에서 나오는 가녀린 바이올린 소리는 집안 구석구석 조용히 스며들 듯 울렸다.

“연구에 진전이 있었나 봐요.”

토모에가 자신의 무릎을 베고 잠든 듯 색색거리는 남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물었다.

“음. 어쩌면 이제 당신에게 약속했던 사시사철 내리는 눈을 선물해 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소.”

“그래요? 그럼 전 조만간 당신이 만든 눈을 맞아볼 수 있겠네요?”

토모에가 가녀린 손가락으로 그의 안경을 살포시 벗겨 곁에 두었다.

“한잠 주무세요.”

막 일어나서 자리를 옮기려는 토모에의 손을 가만히 그의 손이 잡았다.

“가만히, 이 곡이 끝날 때까지만 그냥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안 될까?”

나카타니가 가만히 눈을 뜨며 흐릿한 시선으로 부끄러워하는 것 같은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안경을 벗긴 탓인지 또렷하게 보기는 힘들었지만 결혼한 지 20여 년이 지난 지금에도 그녀의 모습은 토카치 눈보라 속에서 보았던 그 모습과 그다지 달라 보이지 않았다.

“생각나오, 그때?”

가만히 남편을 안 듯 비스듬히 앉은 그녀가 부끄러운 듯 손을 살짝 빼내며 되물었다.

“네?”

“당신과 처음 만난 날도 이렇게 눈이 내리던 날이었지. 눈에 대한 옛날 얘기에도 있잖아. 눈 내리는 밤 한 남자에게 전설 속의 설녀가 우연히 만난 것처럼 꾸미고 결혼했지만 남자가 정체를 알게 되면서 슬프게 떠나가 버렸다는 얘기 말이야.”

“···”

토모에가 가만히 그의 이야기에 집중하는 듯했다.

“하하하! 긴장하는 거요? 우리와 비슷하지 않소? 내가 눈 속에 파묻혀 죽을 뻔한 그 순간에 이렇게 아름다운 여인이 나타날 줄이야 누가 알았겠소?”

아무런 대답 없이 긴장한 듯한 토모에를 놀리는 듯 나카타니가 웃었다. 막 축음기의 음악이 끝나고 바이올린 소리가 멎었다.

“내가 그렇다면 어떻게 할 건가요?”

토모에의 작은 목소리가 축음기의 소음을 밟고 누르듯 무겁게 들렸다.

“응?”

“내가 설녀라면 당신은 어땠을 것 같은데요?”

그냥 농담으로 넘겨 버렸으면 좋았을 것을.

여자는 남자의 마음을 알고 싶다는 욕구를 막지 못했던 거지.

“설녀는 그냥 요괴 이야기에 나오는 요괴일 뿐이라고···”

갑자기 눈보라가 일며 방문이 벌컥 열렸다.

“내가 바로 당신과 결혼한 그 전설 속의 설녀 라면요?”

차가운 냉기와 불어닥치는 눈보라가 믿기지 않은 듯 나카타니가 벌떡 일어나 안경을 주섬주섬 챙겨 들었다. 이미 토모에는 온통 하얀빛으로 가득한 옷과 머리로 눈보라를 온몸에서 쏟아내며 분노와 슬픔이 뒤섞인 듯한 서운한 표정으로 그를 응시했다.

“으아아악! 뭐야!”

“내가 그 설녀라고요. 그럼 이제 당신은 어떻게 할 건가요?”

“그,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이···어떻게 당신이···”

“대답해주세요. 당신은 당신의 아내 토모에가 설녀라는 것을 알면 어떻게 하실 건가요? 내가 당신의 아내라는 건 변하지 않는다고 말해주세요.”

“비켜! 이 요괴야! 아아아악!”

그렇게 소리를 지르며 뛰쳐나간 그를 그녀는 따라가지 않았지. 하긴 무리도 아니었겠지. 사람에게 요괴를 받아들일 여유 따윈 옛날부터 흔치 않았으니까. 남자는 그렇게 도망치고 말았던 거야. ‘토모에’라는 이름의 아내로부터 말이지.

“그렇다.”

아주 차갑고 냉기 어린 목소리로 설녀가 칸나 카무이의 말을 받았다.

“인간이 우리를 두려워한다면 우리는 완벽히 그런 존재로서 살아갈 테다. 모두 죽여버리고 나면 그만인 게다! 너도 똑같은 꼴을 보일 테니 말이다!”

설녀가 다시 근석을 노려보며 무섭게 눈보라를 내리쳤다.

“증오해! 증오해! 내게서 떠나가고 내 모든 것을 빼앗으려 하다니···”

칸나 카무이가 눈보라의 앞을 지팡이로 휘두르자 번개가 일며 눈보라 사이를 가르듯 때리자 눈보라가 감쪽같이 사그라들었다.

“그만둬! 토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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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편(완결)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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