雪女(설녀;유키온나) 완결

납량특집 호러 판타지 멜로

by 발검무적

설녀의 입에서 우박과 눈보라가 근석을 향해 쏟아져 나왔다. 순간이었지만 설녀의 눈에는 근석의 얼굴에 자신을 버리고 간 남편 나카타니의 얼굴이 겹쳐 보였다.

콰과과쾅-!

근석의 앞으로 날아든 코유키가 더 강한 우박을 입에서 쏟아부으며 정면에서 설녀의 공격을 받아쳤다. 중간에 부딪혀 깨어지고 떨어지는 우박들이 얼음폭포를 이뤄 밑으로 쏟아져 내렸다.

“코유키!”

이미 설녀는 눈이 하얗게 동자가 없어져 이성을 잃고 폭주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공격을 받아내는 코유키의 눈에서는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 눈물이 눈의 결정으로 화하며 아래로 보석처럼 하나둘 떨어졌다.

‘어머니! 어머니의 마음만 제 가슴이 시려올 정도로 충분히 이해해요. 하지만! 아아! 죄송해요. 이 사람만은··· 이 사람만큼은···’

그녀가 양손을 들어 만류하듯이 슬픈 표정으로 폭주하는 설녀를 막아섰다. 근석은 코유키의 그런 모습을 보며 어떻게 해줘야 할지 몰라 가슴이 메어올랐다.

“모두 다 이 자리에서 없애버리면 그만 아닌가!”

하늘을 찢을 듯한 포효소리가 울리며 호귀가 설녀를 노려보고 공격할 태세를 잡자, 이번엔 칸나 카무이가 지팡이를 들어 다시 한번 바닥에 대고 내리찍듯 호통을 쳤다.

“모두들 그만두지 못하겠는가!”

지팡이에서 쏟아져 나오는 번개와 불꽃 덩어리가 설녀와 코유키 그리고 호귀를 향해 내려졌다. 설녀와 호귀는 가볍게 피했지만 코유키는 바로 뒤의 근석을 막고 서서 피하지 않았다. 그런 그녀를 보고 근석이 달려들어 그녀를 안고서 가까스로 불꽃을 피했다. 하지만 시계탑에서 부서져 나온 나무파편과 뒤집힌 자동차에 불길이 붙으며 불길이 코유키가 있는 쪽으로 높이 솟아올랐다.

“코유키!”

근석이 소리 질러 도와주려 했지만 불길이 거세지며 차가 폭발하며 근석을 튕겨버렸다. 거친 불길에 온 몸의 얼음이 녹아내릴 듯했다. 당황한 코유키의 모습이 근석의 눈에 비쳤다.

“히히히히! 불꽃은 널 녹이고 말 거다. 코유키! 어서 그놈의 앞에서 물러서! 그놈을 죽여버리란 말야!”

설녀가 미친 듯이 키득거리며 근석을 죽일 기세로 다시 입에서 우박과 눈보라를 뿌려대기 시작했다. 휙하는 소리와 함께 불길을 뚫고 몸이 녹는 고통을 감수하며 다시 코유키가 근석의 앞을 팔 벌려 서서 막아섰다.

“아뇨···. 어머니 저는 물러나지 않겠어요.”

지쳐 보이는 기색의 코유키는 가까스로 입에서 우박을 토했지만 이미 그 기운은 설녀에게 밀려 바로 앞에서 우박들을 겨우 막아내는 것이 고작이었다. 아까 뚫고 나온 불길이 옷에 붙어 있었는지 그녀의 등 뒤로 몸이 조금씩 증발하는 것처럼 수증기가 일어나며 그녀의 모습이 이따금 흐릿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코유키! 안돼!”

코유키는 마음속의 울림으로 그녀의 마음을 설녀에게 전했다.

- 어머니! 이 사람은 빙점 밑에서 태어난 차가운 눈의 결정이었던 제게 따스함을 주었어요. -

더욱 강해진 광기를 내뿜듯 설녀는 코유키를 몰아세우며 자신의 뜻을 딸에게 전했다.

- 그 자도 결국 네 진면목을 알게 되면 도망치고 말 거다. 내 남편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

그러나 코유키는 설녀의 협박에도 동요되지 않는 듯 점차 몸이 흐릿해져 가며 더욱 창백해진 얼굴이 되어서도 미소를 지어 보이며 대답했다.

- 전 이미 이 사람에게서 많은 것을 받았어요. 이제 아무것도 필요 없어요, 제겐. -

불길이 거세지면서 불타고 있던 차가 눈을 녹이며 스르륵 코유키 쪽으로 미끄러져 내려오기 시작했다.

“안돼!”

근석이 벌떡 일어나 불길이 채 가시지 않아 뜨거워진 자동차를 두 손으로 버티며 밀고 섰다.

“으아아악!”

그의 손이 타들어가기 시작했다. 차에 밀리지 않으려고 온몸으로 고통을 참고 버티며 코유키에게 더 이상 차가 다가서지 못하도록 막고 섰다.

“죽으면 안 돼! 유키 짱~!”

서로 등을 지고 바라보지도 못한 채 서로를 지키기 위해 두 남녀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근석이 열기에 타들어가는 손에 더욱 힘을 모아 가능하면 차를 코유키에게 떼어놓으려 차를 밀어내기 시작했다. 죽을힘을 다해 차를 밀었지만 금세 다시 발이 뒤로 밀려 나왔다. 가까스로 버티며 악을 쓰듯 근석이 외쳤다.

“모처럼 네 운명을 선택했잖아! 앞으로 즐거운 일도 많이 있을 거고, 재미난 곳도 내가 많이 데려가 줄게. 한국에도 같이 가기로 했잖아!”

코유키의 눈에서도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나왔다.

“네가 설녀든 요괴든 상관없단 말이야, 난!”

근석의 절규가 그녀의 심장에 박히듯 울렸다. 차를 더 이상 버티고 막는 것이 한계에 다달았다. 근석이 차에 깔릴 절체절명의 위기였다.

“멸(滅)!”

근석이 버티고 섰던 차가 두 동강이 나며 근석의 곁에 마사무네를 들고 선 류가 눈 위로 선혈을 토하며 거친 숨을 몰아쉬며 휘청거렸다.

“류 선생님!”

호귀가 쓰러지듯 마사무네를 버티고 주저앉는 류를 보며 구시렁대었다.

“또 쓸데없는 참견으로 제 명을 재촉하는구나···”

펑-하는 소리와 함께 불길은 가시지 않고 계속해서 그들의 뒤쪽에서 거센 기세를 죽이지 않았다. 코유키가 가까스로 막고 있던 설녀의 눈보라 공격에 이제 코유키도 한계에 다다른 듯 힘겨워보였다.

- 코유키! 어서 비켜! 뒤엔 불꽃이다. 눈보라를 더 이상 계속 토한다면 넌 녹아버리고 말 거다. -

더 이상 대꾸할 힘도 남아있지 않다는 듯 기운이 떨어지며 그녀의 입에서 냉기가 사그라들었다. 그때 그녀의 등 뒤에서 검게 타들어간 근석의 팔이 조용히 다가와 그녀를 꼬옥 안았다.

지친 듯 온통 팔이 검게 그을린 근석이 그녀를 뒤에서 끌어안으며 눈을 감고 그녀에게 얼굴을 기대 왔다.

“이제 됐어···. 괜찮아, 유키···짱.”

남자의 시커멓게 탄 팔부터 쩌쩌적 소리를 내며 얼어붙기 시작하는 모습이 보였다. 설녀의 공격을 막아내는 것도 고작인 코유키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몸을 뒤흔들었다. 하지만 쉽게 떨어질 근석이 아니었다.

“안돼요! 떨어져요! 빙점인 내 몸을 사람이 만지면 얼어붙고 만다구요. 알잖아요!”

그러나 근석은 코유키의 애원에도 불구하고 얼어붙어가는 팔을 더욱 꼭 쥐고 그녀를 부둥켜안으며 설녀를 노려보고 말했다.

“이봐! 할멈! 코유키에게 더 이상 얼음을 퍼붓지 마. 내가 사라져 줄 테니까 말야···.”

“그, 근석 씨···”

사그라들어가는 그의 숨결을 느끼며 놀란 코유키가 어쩔 줄 몰라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그의 이름을 불렀다.

“훗! 사실 난 죽을 자리를 찾기 위해 현해탄을 건넌 거였어. 후우, 똑같은 죽음이라도 이렇게 사랑하는 여자를 껴안고 갈 수 있다니···, 최고야···.”

“호오. 스스로 죽겠다 이거냐?”

만족스러운 미소로 얼굴에 주름이 잡히며 다 늙어버린 할멈의 얼굴로 변한 설녀가 말했다.

“놔요! 어서 놔달라고요.”

근석은 몸을 뒤흔들어 어떻게든 자신을 떼어내려는 코유키를 더욱 꼭 부둥켜안았다. 창백해진 근석의 얼굴을 살얼음이 감싸 오르기 시작했다.

“헤엣, 싫어! 싫다구!”

겨우 그녀의 볼 곁에 다가선 근석이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며 남은 숨결을 토해내듯 가까스로 중얼거렸다.

“이런··· 미인을 어···떻게 놓으란 거야?”

“안돼!”

마사무네를 다시 움켜쥔 류가 꿈틀거리며 몸을 일으켜 세웠다.

- 움직이지 마. 지금은 나설 때가 아니야. -

칸나 카무이의 전음이 들려왔다.

“근석 씨···.”

이젠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시무룩하게 그녀가 근석의 이름을 되뇌었다.

“참···지금 말하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아.”

잠들기 전의 잠꼬대를 하는 듯 고개를 푹 숙인 채 근석이 그녀에게만 들릴 정도의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유키 짱! 사랑해···”

“훗!”

코유키의 입에서 나오던 냉기가 헛웃음과 함께 멎어버렸다. 모든 것을 체념한 표정으로 미소를 지어 보이며 그녀가 눈을 감았다.

‘난··· 이 사람을 죽게 만들 수는 없어.’

“근석 씨!”

“응?”

거의 얼어붙어 정신이 흐릿해져 가는 근석의 이름을 그녀가 불렀다.

“눈을 꼭 감고···, 나를 힘껏··· 안아줘요.”

“응. 절대로 놓지 않아.”

선 채로 손을 다소곳이 모은 코유키를 부둥켜안은 채 근석의 몸은 이제 완전히 얼어붙어 버린 듯했다.

“어, 어쩔 작정인 게냐? 코유키?”

몸에서 냉기가 사라져 버린 코유키의 모습을 보며 설녀가 당혹스러운 듯 공격을 멈췄다.

쓰러져 있던 소명, 류 그리고 호귀와 칸나 카무이마저 숨을 죽인 채 코유키와 근석의 그런 모습을 어쩌지 못한 채 바라볼 뿐이었다. 순간 그녀의 몸에서 바람이 빠지듯 냉기가 빠져나가며 차가운 수증기가 증발하기 시작했다. 근석을 감싸고 있던 살얼음들이 깨져 나가며 증발하며 뿌연 안개를 만들어 냈다. 반대로 그녀의 몸이 점차 흐려져가며 투명해지기 시작했다. 그녀가 팔을 가만히 들어 자신을 부둥켜안은 근석의 손을 잡으며 온기를 느끼려는 듯 꼬옥 안았다.

“아아···, 따뜻해!”

“뭐 하는 거야, 이 바보야!”

근석이 갑자기 눈물을 쏟아내며 울부짖었다. 순식간이었다. 그녀의 투명해진 몸이 완전히 투명해지는가 싶더니 행복한 미소를 마지막으로 그녀의 모습이 사라져 버렸다. 그녀를 안고 오열하던 근석의 품 안에서 사라져 버린 그녀의 이름을 목놓아 불렀다.

“코유~~키! 이 바보··야···”

눈물이 하염없이 흐르는 근석은 물로 화해버린 그녀가 없어진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설녀는 힘없이 그 앞에 다가와 한 줌 물 웅덩이로 변해버린 자리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눈의 결정 하나가 반짝이는 듯했다. 설녀가 힘없는 노파의 얼굴로 중얼거렸다.

“코유키···! 인간과 요괴가 하나가 될 수 있을 리 없잖니? 어리석은 것!”

“뭐라구? 모두 네 잘못이잖아?”

소명이 피를 토하듯 설녀에게 악을 쓰며 폭주했다. 그런 소명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는 듯 그녀는 뭐라고 혼자서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래도 넌 사랑하는 남자와 함께 있기를 원하겠지···?”

아까까지 서슬 시퍼렇던 요기는 온데간데없이 그저 힘없는 노파의 모습으로 중얼거리는 그녀의 앞을 류가 막아섰다. 그런 류의 팔을 조용히 칸나 카무이가 제지하며 말했다.

“이제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자. 인간의 손이 미치지 않은 대자연은 아직 이 넓은 북국이라면 어디든지 있으니까··· 사람을 적으로 돌리는 짓은 그만두고 그들과 함께 사는 법을 배워나가지 않겠나, 토모에? 설녀가 살만한 곳이라면 내가 마련해주도록 하지.”

그의 말을 듣고 그녀는 조용히 고개를 돌려 뒤를 보았다. 그리고는 허리와 어깨를 감고 있던 천으로 망토같이 머리를 감싸 추한 얼굴을 감추고는 대답했다.

“그래 볼까? 너무 지쳤어. 그런 곳에서 살아보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그럼, 갈까?”

돌아서는 칸나 카무이를 소명이 불러 세우며 말했다.

“칸나 카무이! 죄송해요. 제가 요괴 퇴치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성급하게 구는 바람에···”

소명이 넙죽 엎드려 사죄의 뜻을 표했다.

“저는 그저 이들을 어떻게든 해주고 싶었는데··· 그저 그것뿐이었는데···”

너무 분해서 눈물이 쏟아져 나오는 것을 피할 길이 없는 아직 세상을 모르는 소년의 모습 그 자체였다. 그의 어깨를 류가 꾸욱 잡아 주었다. 류의 말없는 위로가 오히려 소명의 눈시울을 붉혔다.

“제가··· 제가··· 공연한 참견을 하고 나서는 바람에···”

눈물과 콧물을 줄줄 흘리며 자신을 자책하는 소명의 모습을 보며 칸나 카무이가 흐뭇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럴 때 보면 인간은·· 참 대책 없이 착하단 말이야. 안 그런가? 토모에?”

알아듣지 못할 말을 남긴 칸나 카무이는 구름을 이끌어 설녀를 데리고 공중으로 먼저 떠나갔다.

“내 남편도 너희들만 같았더라도···”

뭐라고 말을 하려던 설녀가 고개를 돌려 말없이 칸나 카무이를 따라 공중으로 몸을 띄웠다.

“아니···, 됐어. 잘 있거라···.”

그들이 사라진 자리에 맹호가 류의 앞으로 턱 하니 내려앉았다. 류가 눈물과 콧물로 뒤범벅되어버린 소명의 어깨를 토닥였다. 코유키가 녹아 물웅덩이가 되어 버린 곳이 그새 얼음으로 변해 있었다. 그 모습을 넋 나간 사람처럼 보고 있는 근석을 버려두고 떠날 자신이 없었다.

“도대체 넌 언제까지 그렇게 바보짓을 해야 직성이 풀린단 말이냐?”

호귀가 심드렁하게 소명에게 비아냥거리듯 물었다.

“뭐라구? 그게 무슨 소리야?”

“넌 아직 전음(傳音)도 듣지 못하는 수준이었던 게냐?”

류 역시 소명을 놀리는 듯한 말투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예? 도대체 다들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전음이요?”

“너 같은 멍청이를 믿고 퇴마행을 맡기는 공해 선사도 어지간히 힘들겠구나···”

소명의 뒷덜미를 물고 호귀가 류를 따랐다. 버둥거리는 소명에게 류가 말했다.

“설녀를 인간으로 만드는 방법을 찾아낸 것뿐이다, 저 둘이.”

“예?”

버둥거리던 소명이 류와 근석을 번갈아 보았다.

“설녀를 인간으로 만드는 방법을 칸나 카무이가 알려줬거든. 정말로 사랑하는 마음을 담고 설녀를 끌어안고 설녀를 녹이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이라고 말이다. 그걸 저 녀석이 해낸 거야.”

소명이 놀란 눈으로 근석 쪽을 바라보았다. 멍하니 물이 녹아내린 얼음을 바라보던 근석은 자신의 눈을 믿을 수 없었다. 얼음의 저 끝에서 심연에서 헤엄을 치는 것처럼 검고 긴 머리를 한 코유키가 올라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쩍 하는 소리가 나면서 얼음이 깨지고 그 위로 온몸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코유키가 맑은 햇살을 받으며 근석의 품에 안겼다.

“코유키!”

“근석 씨!”

구름 위를 날아가는 칸나 카무이의 뒤로 천으로 얼굴을 온통 휘감은 설녀가 빙경(氷鏡)을 두 손에 쥐고 사람으로 환생한 코유키가 근석의 품에 안기는 모습을 보고 있었다. 칸나 카무이가 대설산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저런 인간이라면 괜찮을 게다. 코유키와 둘이서 훌륭히 살아나갈 거야. 이 커다란 눈의 나라에서 눈이 사라지는 일은 없을 거라구.”

그의 말을 들으며 후회와 부러움과 온갖 감정들이 뒤엉켜 설녀는 하염없이 눈물을 삼키며 말을 잇지 못했다.


도시를 대혼란으로 몰고 갔던 눈의 전쟁이 끝난 지 2주가 지났다.

시계탑의 일부가 파손되고 얼어붙어버린 그날의 사고를 복구하는데 사람들은 여념이 없었다. 그날 방공호에 들어가 있다가 얼어 죽은 도지사를 비롯한 신관광을 추진했던 고위 관계자들의 공석으로 인해 당분간 신관광지 개발정책에는 ‘국회 재상정’이라는 결정이 내려졌고, 전대미문의 저기온 현상은 지구온난화의 심각성이 가져온 재난이라는 언론의 포장이 가해졌다.

일반인이라면 한 달은 넘게 병원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들었던 류는 하루 만에 자취를 감춰버렸고, 열흘간의 치료 만에 기적적인 재활능력을 보인 소명은 열흘 만에 퇴원하게 되어 고야산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비행기를 이용하라는 쿠와노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소명은 해저터널을 통과하는 해저 열차를 꼭 한번 타보고 싶었다면서 JR역으로 향했다.

“미안하네, 땡중. 어지간하면 며칠 데리고 홋카이도 관광이라도 시켜주고 싶은데 말야. 이 말도 안 되는 설원 살인 사건의 마무리 결제 보고서를 내가 다 마무리해야 해서 말이야. 난 소설 쪽은 영 잼뱅이거든.”

“괜찮아요. 그렇지 않아도 홋카이도의 에키벤(열차 도시락)은 어떤 맛인지 꼭 한번 먹어보고 싶었거든요. 혹시 대게가 들어 있나요?”

- 열차가 곧 도착하겠습니다. 승객 여러분께서는 안전선 뒤로 물러나 주시기 바랍니다.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시간 되어서 가보겠습니다. 언제든 오사카에 오시면 연락 주세요.”

소명은 쿠와노에게 인사를 하고 두리번거리며 근석과 코유키의 모습을 찾았다.

“누구 찾아? 아! 김 군과 코유키상 말이지! 두 사람 한국으로 여행 갔어. 빨리 김 군의 부모님께 허락을 받고 결혼하고 싶다면서 자네 돌아가는 것을 보지 못하게 될 것 같다면서 이걸 전해주라고 했는데··· 어라? 이게·· 어디 있더라?”

열차에 오르고 이제 열차가 막 움직이려고 하는데 쿠와노는 여전히 주섬주섬 호주머니를 더듬어대고 있었다.

“쿠와노 씨! 빨리요. 열차가 떠난다구요!”

문이 막 닫히려는 찰나 그의 점퍼 바깥쪽에서 작은 상자와 카드가 꾸깃거리며 나왔다.

“아! 여기 있다. 그럼 조심해서 가라구!”

막 열차 문이 닫히고 열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차창으로 손을 흔들며 쿠와노의 모습이 안 보일 때서야 소명은 티켓을 보고 침대칸의 자기 자리를 찾았다. 티켓 번호의 해당 칸 문을 열고 들어서자 맞은편 쪽 자리에 웬 남자가 벌써 자리에 들어와 책을 읽는지 등을 돌리고 누운 모습이 보였다.

“실례하겠습니다.”

자리에 짐을 정리하고 멀어지는 설원의 삿포로를 보면서 아까 받아온 선물과 카드를 꺼냈다.

-소명스님. 근석입니다.

유키 짱과 빨리 결혼하고 싶은 마음도 있고, 이번 일을 겪으며 느낀 바가 많아 한국에 부모님을 찾아뵙기로 하여 직접 인사 못 드리고 이렇게 편지를 씁니다.

저희 두 사람을 위해 여러 가지로 신경 써주신 점 다시 한번 감사하다는 말씀드립니다.

이 선물은 제가 이번 크리스마스이브에 프러포즈를 하면서 유키 짱에 주려고 했던 물건입니다. 제 곁에는 이제 유키 짱이 있으니 함께 많은 것들을 만들어 줄 수 있으니 이 선물은 소명 스님에게 드리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유키 짱과 결정했습니다.

모쪼록 오사카에 돌아가시더라도 저희 결혼식에 꼭 초대할 테니 언제고 한국에 한번 찾아주세요. 그리고 유리 공예 공부가 아직 완전히 끝난 것이 아니니 조만한 오타루로 돌아가 신혼살림을 차릴 생각입니다. 잊지 말고 홋카이도에 오시면 오타루를 찾아주세요.

다시 한번 소명 스님에게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합니다.

추신. 오사카는 눈이 많이 오지 않고 쌓이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여름 폭염에 홋카이도의 설원을 생각하시며 시원한 여름을 보내시길.

나무상자에서 조심스럽게 크리스털 모양으로 된 병모양을 꺼내드니 눈이 내리는 시계탑과 그 앞의 소녀가 보였다. 오르골이 안에 들어 있는지 예쁜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거참! 어딜 가나 시끄럽기 그지없는 녀석일세. 조용히 책을 읽는 꼴을 못 보나?”

소명은 익숙한 목소리에 건너편 남자를 바라보았다.

“류 씨?”

“무슨 퇴마승이란 녀석이 계집애같이 오르골을 보면서 눈물까지 흘리냐? 너 정말 수행을 제대로 하긴 한 거냐?”

류의 시니컬한 표정을 보며 소명이 어이없다는 듯이 물었다.

“어떻게 여길···”

“어떻게는. 요즘 고야산에 일손이 딸린다고 니 할아버지가 제발 어떻게든 좀 와주십사 한다고 해서 가는 길이다. 내가 차기 주지가 될지도 모른다나?”

“예? 설마요···”

그렇게 두 사람이 떠들고 있는 동안 열차는 삿포로를 벗어나 조용히 해저터널로 들어가고 있었다.


에필로그...


재미있게 읽으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사실 써놓은지 10년이 훌쩍 지난 작품이라

적당히 퇴고라도 해서 올려야 했는데 그냥 여름이면 늘 방영하던 '납량특집'이라는 타이틀이 생각나서 무심코 올리게 되었습니다.


사실 다양한 글쓰기를 해왔고, 하고 있지만,

이른바 주특기, 메인 장르는 소설이었습니다.

이전에 써둔 수백 편의 소설들과

출간했던 수십 편의 장편소설들을 제외하고서도

이 작품은 언젠가 반드시 직접 홋카이도에 가서

영화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시나리오 구상을 소설로 만든 작품이었습니다.


사실 이 작품을 10대 때 구상만 하고

내내 집필하지 않다가

갑작스럽게 일본에 교환교수로 가게 되어

3년이나 살며 홋카이도의

작품 속에 나오는 골목 구석구석

시골 설산의 구석구석을

취재를 빙자하여 여행 다녔더랬습니다.


홋카이도 도지사나 삿포로시 관계자와 술자리에서

만나 이 작품이 구체화되어 드라마나 영화로 만들게 되면 확실한 지원을 해달라는 약속도 했더랬습니다.


눈치 빠른 독자시라면 이미 아시겠지만,

캐스팅을 이미 염두에 두고 있었기에

이름에서도 캐스팅을 어느 정도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리 멀지 않은 조만간

이 작품이 영상화될 시점이 오면

다시 브런치를 통해 과정을 공개하도록 할게요.


읽는 동안 잠시라도

폭염이 지속되는

여러분의 여름날이 시원하였기를.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