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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에게 솔직하지 않다면 당신은 결코 행복해질 수 없다

외적인 어려움이 원인인지 내적인 갈망인지 확인하라.

by 발검무적

지난 이야기.

https://brunch.co.kr/@ahura/1881


내 앞에 앉아 상담을 받으러 왔다고 하던 남자는 금세라도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아무런 말도 못 하고 그저 애꿎은 자신의 손만 뜯고 있었다.

“이혼을 정말로 하고 싶으세요?”

오랜 침묵 끝에 조심스럽게 그 말이 나오자마자 오십이 훌쩍 넘은 나이의 남자는 소리 없이 눈물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아니요. 저는 그러고 싶지 않아요.”

남자는 마지막 버티던 감정의 보루가 무너져 내린 사람처럼 그동안 참고 있던 눈물을 쏟아냈다.

“그런데 왜 이혼에 동의하시고 협의이혼을 하신 거죠?”

“그 사람이 그러고 싶어 했으니까요.”

그의 대답을 듣고는 잠시 할 말을 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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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은 혼자서 하는 것이 아니다. 당시 남자에게 내가 왜 그리 어리석냐고 혼을 낼 수만은 없었던 이유는 그 남자의 진심이 온몸으로 전해졌기 때문이었다. 남자는 명문대 출신에 배울 만큼 배운 상당한 인텔리였다. 그렇다고 잘 다니던 회사에서 갑자기 잘려 경제적인 능력이 없어져버려 아내에게 버림받은 케이스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그가 사업을 하다가 빚을 져 풍비박산을 내서 집안을 거덜 내버린 것도 아니었다. 자신이 하고 싶은 공부를 계속하면서 학계에 남고 싶었으나 원하던 교수직을 얻지 못하고 오십이 넘어버리면서 내내 아내에게 구박 아닌 구박을 받았던 소심한 남자였다. 그의 아내는 그의 나이를 보나 상황을 보건대 더 이상 기대할 부분이 없다며 이혼을 요구했던 것이고 남자는 아무런 대꾸 없이 그에 따랐다고 했다.


당신이 헤어짐을 생각하게 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당신의 마음도, 상황도 그리 좋지 않기에 헤어짐을 생각하고 고민했겠지만, 당신의 마음을 정리하는 것만큼이나 더 중요한 것은 상대방과의 합의(?)이다.


재산을 조금이라도 더 움켜쥐겠다고 변호사 주머니 채워주면서 알량한 얼마 안 되는 재산을 목록화하고 싸워서 나누는 법정다툼도 가관이지만, 둘이 가정법원에 가서 협의이혼을 결정하는 것도 생각보다 아무렇지도 않은 과정은 아니다. 두 사람이 정말로 협의에 의해서 이혼을 결정한 것인지 법원은 묻는다. 그리고 자녀가 없으면 조금은 짧게, 미성년자 자녀가 있으면 조금은 길게 숙려기간을 둔다. 정식으로 조금은 더 진지하게 서로 고민해 보라고 갖춘 최소한의 형식이다.


이미 전술한 바 있지만, 이혼은 현재의 고통이 이혼을 통해서 해소될 수 있다는 전제하에 상정할 수 있는 최후의 수단이다. 사람이 좋은데 특별한 이유가 없는 것처럼 사람 싫은 데도 특별한 이유가 없을 수 있다. 그런데, 그것이 어느 일방의 요구에 의한 결과라면 그것은 이혼을 결정한 이후에도 분명히 문제가 생기게 된다.


이혼을 하지도 않은 채 다른 이성과 바람이 나서 짐승 이하의 삶을 유지하고 싶어 하는 것들에 대한 경우는 이제까지와 같이 논외로 하기로 한다. 그들은 자신의 불륜이 들통났을 때에 크게 두 가지 지저분한 짓을 한다. 자신이 결혼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누리고 있는 것은 확보한 상태에서 바람은 바람대로 누리고 싶어 하거나 걸린 참에 아예 재산을 확 뜯어내고 화려한 싱글로서 새로운 삶을 찾는다고 하는 경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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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정작 상대방은 이혼하자고 하는데, 당신은 결코 이 가정을 깨고 싶지 않다면 어쩔 것인가? 나를 찾아와 결코 아내 앞에서는 내놓지 못했던 진심을 토로하며 눈물을 쏟았던 남자처럼 상대방이 원하니,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이제까지 해주지 못했으니 마지막이라도 그 사람이 원하는 대로 이혼합의서에 도장을 찍어주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라고 희생하듯이 자신의 인생을 망쳐버릴 셈인가?


수차례 강조한 바 있다시피 결혼은 결코 비즈니스나 게임이 아니다. 한 번 해보고 자신이 원하던 그림이 나오지 않는다고 리셋 버튼을 누르고 다시 게임을 하거나 재창업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란 말이다. 마치 인생 쿨하게 사는 사람처럼, ‘길지도 않은 인생, 얼마나 산다고 고통을 참고 산다고 하는 말인가?’라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이혼을 결정하는 쓰레기들도 적지 않다.


왜 이런 격한 용어까지 써가면서 생각이 다른 사람을 폄하하느냐고 따지고 싶은가? 아니. 그들도 알고 당신도 안다. 그들의 생각은 한결같다. 지금의 배우자를 버리고(?) 내가 더 나은 배우자를 만날 수 있는가에 대한 주판알을 튕기는 자들의 심리는 결코 그들을 행복하게 만들어주지 못한다.


그런 대부분의 족속들은 결혼을 결정하면서도 다들 그렇게 해왔다. 수많은 후보자들 중에서 여러 가지 측면에서 자신을 만족시키는 부분에 점수를 더 주면서 결정 내린 것이다. 그렇게 결혼하고 나서 약간의 과정이 자신이 원하는 그림으로 그려지지 않았다고 해서 이혼을 결정해 버린다면 그것은 남들이 다 하는 결혼이니까 결혼했고, 이혼도 이제 흉도 아니고 다들 이혼하고 잘들 사는데 나도 그렇게 해도 특별히 달라질 것은 없다고 여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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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가 경제적으로 돈을 잘 벌어와주지 못한다고 이혼하고, 잘 나갈 때는 좋았는데 사업을 쫄딱 말아먹었으니 같이 침몰하기 싫다고 이혼하고, 이제 회사에서 잘려 늙어서 어디 가서 돈을 더 벌어오지도 못할 것이니 이혼하고, 이제 쭈글쭈글하고 젊고 탱탱한 돌싱들도 많은데 도저히 쳐다도 보기 싫다고 이혼하니 지금 대한민국이 이혼이 성행하고 만연하게 된 것이다.


이혼율이 지금과 같이 높아지기 전에도 결혼 전 연애하면서 사귀다가 헤어지는 일은 수도 없이 많았다. 결혼 전 연애와 결혼은 단순히 사회적 법제로 묶여 있다는 것만 다른 것이 아니다. 아이가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다. 결혼이 당신과 상대방에게 갖는 심리적 무게와 사회적 환경의 무게를 생각해 보면, 연애나 동거를 하다가 헤어지는 것과 결혼을 하고 헤어지는 것의 차이가 하늘과 땅차이라는 점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


당신의 지금 어려움이 부부라는, 가족이라는 힘으로 함께 해서 이겨낼 수 있는 것인지 같이 하는 것만으로 고통인지를 생각해 본다면, 그 답은 더 명쾌해질 것이다. 부부가 결국 전우애(?)로 세월을 이겨내고 함께 늙어갈 수 있는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이유는 여유롭고 즐거울 때의 시간들이 아니라 어렵고 힘겨운 시기에 믿음만으로도 서로를 지탱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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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부부라는 이름이 갖는 진정한 의미이다.


다음 편은 여기에...

https://brunch.co.kr/@ahura/18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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