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사랑하며 살아가지 않은 자, 모두 유죄.

내가 헛되이 보낸 오늘은 어제 죽어간 이들이 그토록 바라던 하루이다.

by 발검무적

지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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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하루가 멀다 하고 싸운 것도 맞아요. 시어머니의 아바타인지 마마보이짓거리를 하는 남편이 너무너무 한심하고 싫었거든요. 오히려 시어머니에 대한 미움보다 남편에 대한 서운함과 실망감이 더 컸어요. 그런데 그런 거 다 생각하더라도 지금은 그렇게 싸울 수 있는 남편이라도 있었으면 해요. 이제 막 사춘기를 심하게 겪으며 힘들어하는 딸아이를 생각하면 남편의 부재(不在)가 더 마음의 구멍을 크게 느끼게 해요.”


여자는 뼈가 시리도록 휑한 겨울바람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그 말들을 가지런히 내려놓았다.


여자의 남편은 술버릇이 굉장히 안 좋았는데, 매번 죽는다, 죽어버린다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떠들다가 결국 술을 잔뜩 먹고 온 어느 새벽, 정말 거짓말처럼 방문 손잡이에 수건을 목에 걸고 세상을 등졌다고 했다.


그가 그렇게 허망하게 세상을 떠나고 나서 그녀의 마음은 여러 가지로 복잡했다고 했다. 이렇게 무책임하게 자신과 딸을 놔두고 황망하게 세상을 등졌다는 생각에 원망도 들다가 그렇게 허망하게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 줄 알았다면 조금이라도 더 따뜻하게 대해줄 걸 하는 미안함도 들다가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그 마음이 바뀌어 힘들다는 것 이상으로 삶의 고통이 적지 않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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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말처럼 그가 그렇게 황망하게 세상을 떠난 지 10년이나 지나 당시 어린아이였던 딸아이가 심한 사춘기를 겪는 나이가 되자, 딸아이의 힘겨운 문제로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더라도 자기 자식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진 남편의 존재가 사무치게 그리웠다고 말했다.


물론 소멸한 것에 대한 인간의 애틋함, 그리움이라고 쉽게 폄하해 버릴 수도 있겠다. 아니, 조금 더해, 당신이 헤어짐을 생각하게 만든 웬수같은 배우자가 차라리 벼락을 맞고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내심 그것을 바라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심리학적으로 보면, 자살을 위해 유서를 남긴 사람들마다 보이는 특징이 있다. 유서의 내용이 온통 남아 있는 사람들에 대한 미안함을 표현한다는 점이다. 너무도 당연하게 인간은 자신이 태어날 때의 인지는 없지만 죽기 직전의 자신이 죽음을 인지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 갑자기 탄 지하철에서 유독 가스가 나오고 열차의 문이 열리지 않아 조금씩 자신이 죽음을 인지하기 시작한 이들이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남긴 메시지나 문자들을 보면 그러한 사실을 훨씬 더 자연스러운 인간의 본능임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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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자신이 죽음을 통해 살아있는 이들과 이별을 택하면서 미안함이 온통 마지막 말의 주류를 이루는 것일까? 그 이유에 대한 다양한 견해가 있을 수 있겠으나, 기본적인 사안은 인간이 죽음을 앞두게 되면 자신의 욕망보다는 이제 더 이상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살아있는 사람들을 ‘남기고 간다’는 의식이 크기 때문이기도 하고, 자신은 죽음을 통해 그 어떤 것의 책임으로부터도 추궁받지 않는 입장이 되기 때문에 남겨진 이들에 대한 미안함이 클 수밖에 없다고 한다.


물론 사람은 저마다 다르다. 아주 특별한 예외이긴 하지만, 자신이 스스로 죽음을 택하며 오로지 다른 사람에 대한 원망이나 저주로 점철된, 철이 들지 못한 이들도 있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세상에 더 이상 존재하지 못하게 된다면 가장 먼저 드는 감정과 생각이 남은 사람에 대한 미안함이라는 사실은, 지금 헤어짐을 생각하고 있는 당신에게 시사하는 바가 결코 작지 않다고, 나는 생각한다.


물론 이혼을 한다고, 사별을 하는 것이 아니니 그것은 비교의 대상이 잘못되었다고 반박할 이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비교하고자 하는 것은 이제 헤어지게 되면 상대가 죽어 사라져 없는 것처럼 되는 사별과 똑같다는 의미가 아니다. 당신이 스스로 헤어짐을 결정하게 되는 순간, 당신이 준비하는(?) 감정이 무엇인가에 대한 차이를 언급하고자 함이다.


스트레스에 죽을 것 같은 회사일을 하면서도 다음날 아침이면 회사에 나서는 이의 마음이, 회사 내에서의 출세를 통해 자신의 명예와 권력, 그리고 부를 쟁취하겠다고 여기는 사람도 분명히 있을 수 있다. 또, 자신이 가족을 위해 최소한의 생계를 위한 월급을 가져다주지 않으면 당장 평화로운 생활이 모두 깨져버리기 때문에 마지못해 회사를 다니는 사람도 있다. 그 어느 하나의 정답이 있다고 할 수 없겠지만, 자신의 고통을 감내하면서 가족의 행복이 바로 자신의 행복이라고 여기며 사는 사람들이 적지 않음을 당신도 나도 잘 알고 있다.


사랑하며 살아가든 서로 미워하며 살아가든 삶은 살아가진다. 하지만, 먹고 싶은 것을 못 먹고 그 돈을 아껴 가족들을 위해 쓰도록 하기 위해 사는 것은 우리는 단순히 ‘희생’이라고만 명명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그렇게 자신의 생이 가족들의 행복으로 맞춰지는 것이, 가족들이 행복한 것이 자신의 행복이라는 공식에 대해 스스로가 ‘희생’이라 여기지도 언급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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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도 분명히 그랬을 것이다. 당신의 부모가 그러하였고, 당신도 결혼을 할 당시에는 그럴 마음으로 백년해로하겠다고 했을 것이다. 맛있는 것을 대하면 당신의 입에 집어넣던 당신이 멈칫하며 그것을 당신이 사랑하는 가족에게 가져다주면 얼마나 좋을까를 먼저 생각했었을 것이다. 당신의 입에 맛있는 것이 들어가는 것보다 당신이 사랑하는 가족의 입에 무언가 들어가고 그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훨씬 더 행복하다고 느꼈던 때가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그런 당신이 왜 바뀌었을까?

당신이 바뀐 것이 아니라 모두가 상대의 탓이라고 말하고 싶은가? 그럴 수도 있다. 당신이 멋지다고 존경할만하다고 사랑스럽다고 여겼던 부분들이 불과 몇 년 지나지도 않아 모두 단점으로 뒤바뀌고 당신의 속을 터지게 만들고 당신을 여러 번 실망스럽게 하고 당신이 내린 결정을 후회하게 만들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로 바뀐 것이 당신의 배우자이거나 환경만일까?

시간이 흐르고 상황이 바뀌었다고 당신의 마음이 바뀌어버린 것은 아닐까?


옛날에도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사람 일은 언제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될지 그 어느 누구도 모르는 것이다. 내일 갑작스러운 사고로 유명을 달리하는 일이 당신이나 당신의 배우자에게 일어나게 된다면, 당신은 아무렇지도 않게 어차피 헤어질 사람이 죽었다고, 아니면 어차피 헤어질 거 내가 사라지는 것도 큰 문제가 아니라고 여기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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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당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일까?


다음 편은 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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