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행복할 때는 언제였을까?

내가 사랑하는 것에 대하여...

by 발검무적

내 아이를 뱃속에 품고 색색거리며 잠들어 있던 아내의 모습을 보면서 왠지 모르게 안쓰러우면서도 행복하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코로나 사태 시기 갑작스러운 전쟁까지 터진, 한반도의 가장 꼭대기 끝자락 러시아의 외딴섬, 바다가 보이는 호텔방에서 매일같이 A4 20장의 분량을 써재끼면서 강의를 나갈 때와 식사를 직접 요리해서 준비할 때가 유일한 휴식시간이라고 느끼며 지냈던 그 1년이 내게는 지루하기 그지없는 루틴에도 행복했더랬다.

마치 유배생활이라고 해도 다를 바가 없었던, 갈매기가 가끔 창가를 찾던 그 호텔방에서 그저 읽고 쓰는 일외에 다른 일탈(?)은 없었던 그 생활에서, 2주에 한번 바꿔주는 시트를 바꾸러 갔다가 와서 거친 러시아 억양을 내뿜는 여자직원 아이가 아닌 상냥한 직원을 만나 뽀송뽀송한 시트를 받아오는 날이면 사탕을 받아 입에 물고 함박 미소를 지어보이는 아이처럼 행복해했더랬다. 일주일에 한 번 주말에 학교 셔틀을 타고 시내의 마트에 나가 일주일 일용할 음식재료와 러시아 맥주를 몰래 숙소로 가지고 들어오는 것이 소소한 행복이라 느꼈었다.


이제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첫째 아이가 꼼지락거리며 내 배 위에 가만히 기대어 있다가 새근거리며 잠든 모습을 침대 앞 거울을 통해 보면서 행복이라고 느꼈던 것 같다.


둘째까지 쑥쑥 자라서 TV에 게임기를 연결하고 둘이 편을 먹고 신나게 상대편 진지에 들어가 적들을 물리치며 키득거리는 아이의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나는 행복에 겨워했더랬다.


눈이 자동차 높이보다 더 높이 쌓인 홋카이도의 설원을 눈길로 달리며 무비캠을 차창 밖으로 향해놓고 탄성을 지르는 아내와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눈이 시릴 정도로 쨍한 설원에 반사된 햇빛에 눈시울이 아렸더랬다.


무심해하던 사춘기의 아들 녀석이 엄마가 아닌 아빠에게 어버이날 편지를 썼다며, 학원을 가기 전에 집안일을 해주는 아줌마나 엄마가 아닌 아빠가 막 해준 밥이 몸에 좋다며 챙겨준 것에 대해 감사한다는 서툰 글을 건네줄 때 나는 행복이 별 것 아니라고 느꼈던 것 같다.


팔순을 훌쩍 넘어버린 시아버지가 너무도 가부장적이신 모습을 생경해하며 그런 아버지를 챙겨드려야 하는 연로하신 시어머니가 불쌍하다며 갑자기 폭풍오열을 하는 아내를 안아주면서 가슴이 짠했었다.


겨울마다 다니던 일본의 한 온천에서, 뜨거운 온천물에 들어가기 불편하다던 아들 녀석을 가만히 무릎 위에 앉혀 놓고 움직이지 않으면 뜨겁지 않을 거라고 안아주고 있었던 때가 내게는 다시 돌아오지 않을 거라는 사실에 갑자기 슬퍼 코끝이 찡해졌던 기억도 소매 어딘가에 묻어 있다.


전국 입시생을 번호표로 줄 세우는 시험에서 내 앞에 몇 명이 없는 성적표를 보시며 내심 뿌듯해하던 부모님의 미소를 보는 것만으로도 내가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하는 이유는 그것 하나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여기며 행복하다 느꼈었다.


강사시절, 하루종일 강의하고 나서 새로 나왔다는 딸기 아침햇살 큰 통을 하나 사 와서는 의국에 있던 냉장고에 넣고 아무 때고 혼자서 꺼내서 컵도 쓰지 않고 위스키처럼 수시로 마시는 것만으로도 행복감이 그득했더랬다.

어려서 해보지 않았던 짓을 새삼 해보겠다며, 약혼녀와 일본에 여행 가서 건담 프라모델 중에서 가장 복잡해 보이는 모델을 하나 사 와서는 그것을 조립하는 내내, 신기한 행복감이 들었다. 정작 그것을 완성해서 장식장 안에 놓았을 때 그 감흥은 그것을 집중에서 조립했던 것과는 사뭇 다르다는 느낌에 의아해했더랬다.


이렇게 다 지나와 생각해 보면, 내가 행복하다고 느꼈던 것들은 내가 처음 집을 샀을 때이거나 멋진 차를 샀을 때가 아니었던 것 같다. 명품을 사거나 엄청 비싼 식도락을 했을 때 역시 아니었던 것 같다.


반백년을 훌쩍 넘겨 넘게 살아오면서 내가 어떤 것에 행복해 하는지를 알기 위해, 혹은 그것을 추구하기 위해 매진해왔던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행복하기 위해 살아간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부인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왜 내가 어떨 때 행복했는지를 기억하고 잘 알면서도 그 행복감을 내내 누리면서 살 수 없는 것일까?


지나고 보면 위에 나열한 행복했다고 느꼈던 기억의 파편들 속에도 나는 때때로, 쉼없이 여러가지 일들로 인해 힘겨워했더랬다.


코로나라고 가족과 함께 지낼 수 없어 외국의 외딴 호텔방에 갇혀 있다시피 글만 써대는 날들이 반복되는 나날이 힘겨웠었고, 내가 쏟아부은 노력보다 내 기대에 부응하는 결과물들이 나오지 않아 그래도 나에게 한 가지 선물하자며 새로 나온 음료 한 통을 사 와서 먹는 것으로 스스로를 위로하던 시절이 마냥 행복했다고만 느끼지는 않았을 게다. 그 당시엔 말이다.

어느 누구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행복해하는 것에서 내가 행복감을 느끼는 가치관이 삐뚤어지거나 잘못된 방식이라고 단정 지을 수만은 없다.


무엇보다 나같은 사람일수록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이 행복하지 않다고 말하는 상황을 견디지 못한다. 그런 불행한 상황을 만든 장본인이 자신이라 자책하게 되기 때문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면 그걸로 다 된 거다.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고 살아가기로 한다.

내가 지금 이 나이에 무슨 엄청난 부귀영화를 누리는 삶을 영위하겠다고 그리 발버둥을 치겠나?

결국 다 고만고만한 사람의 삶에서 뭐가 그리 대단할 게 있다고 명예를 노리고 엄청난 부자가 되어 보겠다고 버둥거리겠는가 말이다.


폭설에 무너져버린 노송의 쳐져버린 모습을 뒤로하고 그 매섭던 겨울은 기어코 다가오는 봄을 이기지 못한다.

꽝꽝 얼어 풀리지 않을 것 같던 땅에서 그 단단함을 다 뚫어버리고 새싹이 초록 고개를 든다.


희망이다.

그게 삶이다.

희망 없는 삶에 행복이 있을 자리가 그 어디에 있겠는가?


나는 그래서 또 으샤하며 몸을 일으켜 세우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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