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 어떤 사람들인지 알려주마. - 93
지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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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산업소재 생산회사인 듀폰에서 발표한, ‘2011 자동차 인기색상 보고’ 자료에 따르면 그 해 한국 소비자가 가장 선호한 색상은 은색으로, 전체의 30%를 차지하는 인기를 받고 있는 것으로 확인된 바 있습니다. 은색의 뒤를 이어 흰색이 25%, 검은색이 15%로 상위 3종 색상이 대한민국 차량 전체의 70%를 차지하면서 다른 국가에 비해 차량 색상 선호도에서 지극히 편향성을 보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세 가지 색을 이은 4위 선호 색상이 은색과 크게 구분되지 않는 회색으로, 12%를 차지한 것을 보자면, 그야말로 무채색으로 일관된 색사랑(?)이 80%를 넘는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됩니다.
이쯤 되면 궁금해집니다. 차량 색상에 무채색을 선호하는 것이 정말로 한국인들만의 특성인가 하는 점이 말이죠. 실제로 같은 해, 듀폰이 조사한 9개 국가의 선호색상을 종합해 보면 흰색이 22%로 가장 높았으며, 은색이 22%, 검은색 20%, 회색 13%로 나타났습니다. 약간 차이가 있긴 하지만 차량의 색깔로 선호하는 부분에 있어 무채색의 선호는 비슷해 보이기도 합니다.
국가별로 따져보면 북미지역의 경우는 흰색이 23%로 가장 높았으며 검은색이 18%, 은색이 16%를 차지했습니다. 다음으로 회색이 13%이었는데, 유럽지역은 검은색이 25%로 가장 높았으며 흰색 20%, 회색 18%로 뒤를 이었습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에이. 한국만의 특징이라고 판단하기엔 일반적인 사람들의 선호도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은데?’라고 여길 수 있겠습니다.... 만, 실제로 이렇게 차량의 색깔에 무채색의 편향성이 일관되었던 것은 처음부터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컨대, 북미만 하더라도 1990년대까지는 빨간색이나 파란색, 녹색 등등의 유채색이 무채색에 비해 인기를 끌었습니다. 북미에서 무채색 차량의 색상이 70%를 넘기며 주류 색상이 된 것은 2000년대가 넘어서부터였습니다. 한편,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무채색이 상위권을 점유하게 된 것은 1970년대부터였고, 흰색이 2000년대 중반부터 선호색상의 1위를 차지하는 경향을 보여주었습니다.
차량의 색상에 사람들이 무채색을 선호하게 된 것에 대한 다양한 분석이 있긴 한데요. 기본적으로 희색이 가진 고유한 특성 때문이라는 견해가 가장 일반적입니다. 빛을 반사하는 흰색의 특징상 에너지 흡수율이 낮아 다른 색상보다 실내 환경을 비교적 쾌적하게 유지할 수 있다는 설명이죠. 착시효과를 일으켜 작은 차를 커 보이게 하는 효과도 흰색을 선호하는 이유 중에 하나로 꼽힙니다.
여기서 궁금한 점이 생깁니다. 차량의 색상이라서 굳이 무채색을 선호하는 것인지 아니면 한국인들이 정말로 좋아하는 색상이 무채색뿐인 것인지 하는 부분 말이죠. 22년도 한국 리서치에서 진행했던 한국인의 색 선호도에서 한국인들이 가장 선호한다고 답했던 색은 파란색이었습니다. 2위를 차지한 검은색의 29%보다 무려 7%나 높은 36%나 되는 수치를 기록했습니다.
그런데, 다시 24년도에 한국갤럽에서 조사한 한국인이 좋아하는 옷 색상을 살펴보게 되면 2004년도부터 무려 20여 년에 걸쳐 꾸준하게 검은색이 압도적인 1위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백의민족(白衣民族)’이라고 불리는 별명 탓인지 무채색인 흰색이 2위를 꾸준히 점유했고요, 굳이 과학적인 근거를 대자면, 앞서 차량의 색상과 마찬가지로 일상생활에서 짙은 색 옷은 오염이나 변색의 우려가 적고, 시각적 수축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옅은 색 옷보다 유리합니다.
이 정도면 눈치채셨나요?
한국인이 좋아하는 색상과 선호하는 차량 색상이나 옷 색상에는 그것이 반영되지 않는다는 점을 말이죠. 다시 말해, 차량의 색상이나 옷의 색상은 자산이 가장 좋아하는 색상이 아니라 자신이 좋아하는 차량의 색상과 옷의 색상이라는 사실입니다.
심리학적으로 들어가 보면, 이것은 한국인이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심리와 아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대중 속에 숨고 싶어 하는 익명성과 동시에 자신이 튀는 색상을 선택하는 순간 다른 사람들에게 공격받을 수 있다는 강한 자기 보호 본능이 한국인 사회에서는 도드라집니다.
아무도 질문하지 않는 상황에서 자신이 궁금한 부분이 있어도 적당히 넘어가고 다른 누군가가 물어봐주면 고마운 것이고 굳이 내가 다른 사람들의 눈총과 시선을 받으면서까지 보고 싶다는 생각은 엄두조차 내지 않는 것이 한국인의 사회에서 보이는 집단으로서의 특징 중 하나입니다.
한편, 한국인은 색깔로 성별을 구분하는 경향도 매우 명확하게 드러내는 편입니다. 남자를 대표하는 색이 있다는 것 자체가 신기하게 느껴질 외국인들에게 한국인의 성별 선호 색상이 명확한다는 점은 색에 대한 한국인의 인식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앞서 언급했던 22년 한국리서치의 한국인의 색상 선호도 조사에서 남성의 경우는 파란색과 검은색을 선호했고, 여성의 경우는 분홍색과 보라색을 선호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실 이 조사에서 더 주목해야 할 부분은 차량이나 의상에서 선호했던 무채색 중에서도 회색은 선호도가 낮은 결과를 보여준다는 사실입니다. 조금 과장되게 표현하자면, 좋아하는 색상과 그것을 과감하게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받을 수 있는 장소에서 의상이나 차량에 선택할 수 있는가에 대한 부분은, 최소한 한국인에게 있어서는 완벽하게 분리된 개념이라는 의미입니다.
같은 동양권이지만 1위인 흰색 차량과 2위인 검은색 차량에 대한 선호도가 비슷한 한국과 일본에 비해 흰색 한 가지만의 차량의 선호도가 60%에 가까운 중국이 왜 검은색보다 압도적인 수치로 흰색을 선호하는지에 대한 설명은 한중일 민족성의 비교 분석에서 따로 언급할 기회가 있을 테니 여기서는 특이점을 지적하는 정도로 넘어가기로 하죠.
그렇다면 한국인은 정말로 튀지 않으려는 경향이 강한가? 이 부분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고 여길 분들도 적지 않을 듯합니다. 오히려 한국인은 무언가를 참지 못하고 튀어나오지 않느냐는 의견을 가진 이들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이죠.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아주 잠깐의 시간도 인내하지 못하고 엘리베이터의 닫힘 버튼을 연신 눌러대던가 전자레인지의 땡~소리가 나기 전에 중간에 바로 문을 열어젖히는 특이성을 보이는 민족으로 세계인들을 놀라게 하곤 했죠.
좀 더 정확하게 설명하자면 그것은 어떤 상황인가에 따라 구별된다는 설명이 더 정확할 텐데요. 10여 년 전에 포드사에서 16개국 8,000여 명(국가별 500명)을 대상으로 한 재미있는 ‘미래 보고서(Looking Further with Ford)’라는 조사가 있었는데요. 조사 결과 한국 응답자 중 33%만이 “튀는 행동(standing out)이 순응(fitting in)하는 것보다 낫다”라고 답한 결과가 나왔습니다. 이는 당시 조사에서 나온 전 세계 평균인 42%보다도 훨씬 낮은 수치였습니다. ‘과거보다 의견차를 더 존중하게 되었는가?’는 질문에 대해서는 한국인 응답자 중 49%만 “그렇다”라고 답했다고 합니다. 참고로 이 질문에 인도네시아의 응답자는 무려 83%가 “그렇다”라고 답했다고 합니다.
‘타인의 기분을 상하게 하더라도 자신의 의견을 피력할 것인가?’라는 궁극적인(?) 질문에 대해서는 한국인 응답자의 45%만이 동의했습니다. 전 세계 평균이 60%였던 것을 감안한다면 한국인들이 기본적으로 자신의 감정과는 무관하게 타인의 시선과 분위기를 얼마나 많이 인식하는가에 대해 아주 잘 분석한 자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것은 최근 한국사회에서 십수 년 전부터 사회적 문제가 되어왔던 익명성의 뒤에 숨은 잔인한 폭력성과도 무관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오프라인의 세계에서는 자신의 불만이나 상대방과 배치되는 자신의 의견을 드러내지 않고 그것을 ‘튄다’라고 여겨 튀는 행동을 지극히 자제하는 한국인들이 온라인상에서 자신이 드러나지 않는 익명 커뮤니티라던가 댓글에서 묻지 마 테러에 준하는 수준의 막말과 공격을 서슴지 않는 모습들이 더 심각한 부작용으로 드러나버리게 된 것이죠.
이러한 경향은 한국인의 말투에서도 아주 쉽게 발견됩니다. “~인 것 같아요.”라는 말은 실제로 그것이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맥락에서도 아무렇지도 않게 포장지로 사용됩니다. 자신의 느낌과 감정을 말하면서 마치 추정하듯, 혹은 짐작하듯 말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지만 그런 말투를 쓰는 것이죠.
그래서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이나 잘못을 지적하는 순간에도 한국인들은 절대 먼저 기치를 올리지 않습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그 기치를 누군가 올리게 되는 순간 한국인들은 누구보다 먼저 그리고 가열차게 그 의견에 불을 붙여버립니다. 마치 이제까지 그러지 못한 마음을 꾹꾹 누르고 참아왔던 사람처럼 누군가가 물꼬를 터주기만 하면 그 방향으로 확 쏟아져내듯 격한 감정을 동조시하듯 강한 행동화를 서슴지 않습니다.
그래서 일부 심리학자들은 한국인들이 사회생활을 하게 되면서 자신이 하고자 하는 바나 하고픈 바에 대해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려고 노력하지 않고 그냥 그렇게 묻혀 사는 무리 중 한 명으로 존재감을 잃어간다고 지적합니다. 그렇다면 한국인의 특성은 무리 속에서 개인적 목소리를 내는 것이 멸실해 가는 것이 맞을까요? 그렇다면 지금의 한류를 이룰 수가 없었겠죠. 이 부분의 양면성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좀 더 깊이 분석해 보기로 하죠.
다음 편은 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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