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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은 야근과 회식이 싫다면서 왜 하나요?

한국인이 어떤 사람들인지 알려주마. - 94

by 발검무적

지난 이야기.

https://brunch.co.kr/@ahura/1926


다양한 나라의 세계인들이 한국인을 설명할 때, 공통적인 성향으로 소개되는 것은 특유의 성실과 근면, 그리고 무엇보다 그 실적들을 스피디하게 해낸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한국인이 슈퍼맨의 DNA를 가지고 있지 않은 이상, 똑같은 시간과 똑같은 노력을 하면서 훨씬 더 우월한 결과물을 도출해 낸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물론 기본적으로 한국인들이 일을 빨리 배우는 습득능력이 기본적으로 뛰어나다는 점이나 눈치가 빨라 현장 대응능력이 뛰어나다는 사실은 앞에서 우리가 이미 살펴본 바와 같습니다.)


결국 더 많은 일을 더 완벽하게 끝내기 위해서는 절대적인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것이 사실이죠. 그래서 한국은 ‘야근’이라는 것을 밥먹듯이 해냈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굳이 야근에 대해 과거형을 쓴 이유는 현행법상 현재의 한국에서는, 주당 근로시간이 52시간을 넘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규정대로 주당 52시간 이내에서만 근로를 시키는 기업은 사실상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이른바 연장근로나 야근은 일상화되어 있는 셈이죠.


야근(夜勤)이란, 일반적인 의미로, 근무 시간이 지나서, 밤늦은 시간까지 하는 근무를 뜻합니다. 대한민국의 현행 근로기준법 제56조에 의하면 야근의 정의는 ‘오후 10시부터 익일 오전 6시까지의 근로’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퇴근 시간 이후부터 오후 10시 전까지 하는 근무는, 근로기준법상 ‘연장근로’ 내지 ‘잔업’이라고 하여 야근과는 구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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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우리가 보통 칭하는 ‘야근’은 정확히 구분하여 표현하자면 ‘연장근로’와 ‘야간 근로’를 통틀어 일컫는 용어입니다. 다만 ‘야간 근로’ 중 날짜가 바뀌는 경우(밤을 새워 익일이 된 경우를 의미함), 이는 야근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주로 밤샘근무, 철야근무라는 용어로 설명합니다.


지금의 노동계에서는 주 52시간을 지켜달라고 외치고, 주 5일제도 많다고 주 4일제를 주장하며 유럽의 선진국과 같은 형태로 노동시간을 줄여나가자는 의견도 적지 않은 것이 사실이긴 합니다. 하지만 ‘한강의 기적’으로 일컬어지는 한국의 급격한 성장과 발전에는 이와 같은 야근이 절대적인 그 발전의 원동력 역할을 했음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야근으로 성과를 올리려는 욕망(?)은 대한민국 기업을 이끌었던 오너들이라면 공통적인 부분이 아니었나 싶을 정도로 한국의 대기업들의 야근 문화는 그야말로 어마어마했었습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삼성그룹과 현대자동차그룹의 업무 문화를 살펴보더라도 워라밸보다는 업무성과를 강조하는 문화가 팽배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1960년대~1980년대 주요 기업들에서부터 영세기업들까지 노동규제가 없다시피 한 상황에서는 오너들이 직원들을 마구잡이로 굴려대면서 수익을 크게 늘린 경험이 있는 데다가 민주화 이후로도 언론들이 뒤로 광고비를 받으며 블랙 기업들을 포장하다 보니, 직원들을 어떻게든 벼랑으로 몰 듯 채찍을 휘두르며 굴리면 회사가 성장한다는 마인드가 산업계 상당수에 뿌리 깊게 남은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최악은, 여건이 열악한 기업들은 아예 야근 수당조차 주지 않고 야근, 밤샘까지 시키는 경우가 많아 문제가 심각했습니다. 그래서 당시 CNN 등의 해외 방송사에서는 야근이 한국의 상징이 되었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야근이 업무실적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고, 월급을 주는 오너들 입장에서는 당연히(?) 같은 월급을 주면서 최대한 회사원들을 더 굴리고 싶겠지만 근로자들 입장에서는 노동력을 착취당하는 것 같아서 언제나 노사갈등의 원인이 되기도 했죠.


이런 역사를 가진 야근을 좋아하는 직장인이 있을 리가 없죠. 그래서 직장에서는 야근이라는 채찍과 아울러 회식이라는 당근을 사용하곤 합니다. 말 그대로 직장동료들끼리 같이 저녁을 먹고 술까지 먹으며 직장이라는 조직에서 동료 간의 단합 도모한다는 자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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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회식자리마저 업무의 연장이라고 느껴 요즘 MZ 세대들은 부담스러워 직장 상사와 함께 밥을 먹거나 술자리를 하는 것 자체를 선호하지 않는다고 하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사의 법인카드로 혹은 회사 책임자가 쏘는 전제하에 평소에 먹지 못했던 비싼 레스토랑에서 맛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기회로 회식을 십분 활용하려는 MZ들도 적지 않습니다.


대개 회사의 업무와 개인의 사생활을 확실하게 분리하는 서양의 마인드로 볼 때, 한국의 회식문화는 야근 문화만큼이나 독특한 문화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야근을 하기 위해 정상 업무시간을 마치고 나서 어쨌거나 밥을 먹어야 한다고 하면, 술자리까지는 아니라 하더라도 회사 앞에 나가서 모두 함께 밥을 먹어야 한다거나 배달음식을 시켜 왁자지껄 식사를 하는 경우가 빈번한 것을 생각해 보면 ‘모두가 함께 모여 식사한다’는 개념의 ‘회식’은 야근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채찍과 당근일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이 독특한 문화 속에서도 한국인의 특징은 드러납니다. 야근이 싫고 회식이 싫다고 하는 사람들뿐이라면 당연히 지속될 수 없는 그 문화가 산업화를 일구며 야근하던 그때부터 회식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는 MZ가 등장한 최근에까지 그 생명력을 아주 길고 끈끈하게 이어오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한국인들은 가족이 아닌 직장의 동료와 함께 밥을 먹거나 술을 먹는 행위에 상당한 의미를 부여합니다. 밥을 같이 먹는 사람들을 ‘식구(食口)’라고 명명했던 것처럼 집에 있는 시간보다 훨씬 더 긴 시간을 사무실이라는 공간에서 함께 하는 직장동료와 같이 밥을 먹고 술을 먹고 2차, 3차까지 달린다는 것은 당연히 한국인들에게 있어 동지의식을 맺어주는 의미 있는 행위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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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다들 야근을 싫어하고, 회식조차 그리 달가워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왜 그 문화가 지속되는가 하는 부분입니다. 이것은 한국의 남성들에게는 아주 익숙한 군대 내에서의 폭력문화에 대해 모두가 싫어하고 혐오하면서도 끊이지 않고 지속되는 것과 맥락을 같이 합니다.


조금 엉뚱한 이야기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한국의 야근 문화를 설명하는 배경으로 일본의 황군의 정신적 기반이 되었던 근성론(根性論)의 영향이라고 설명하는 견해도 있긴 합니다. 자수성가하듯 한국의 초기 산업화 기업을 일궈낸 오너들이 정신력만 있다면 뭐든 해낼 수 있다는 만능주의 정신론으로 밑의 부하들을 격려(라고 쓰고 ‘학대’라 읽습니다.)하며 직원들과 함께 허구한 날 날밤을 새우며 연구와 생산에 매진했다는 역사적 흐름에 근거한 견해입니다.


굳이 일본의 근성론까지 언급한 이유는, 한국인이면서도 한국인들이 자신이 명령하는 위치에 있을 때 자신도 모르게 한국인의 성향을 일제 식민지 치하 당시의 멸칭으로 떠들어대는 어리석은 이들이 적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일제 식민지 치하에서 광복이 되고 나서 일본인들이 도주하고 난 자리에 결국 일을 시키는 역할을 다시 맡게 되었던 자들은 대개 친일적 성향을 보이며 일본인들의 간접적 수하노릇을 했던 친일파들이 많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월급을 주는 것에 비해 더 많은 일을 시키고 더 많은 성과를 얻고 싶어 하는 오너들의 입장에서는 중간 관리자들이 자신의 마인드를 그대로 답습해 주며 성과를 내주길 바라죠. 야근을 시키는 사람은 결국 오너가 아닌 중간 관리자들입니다. 그들 역시 오너의 명령을 받고 감시와 인사고과를 받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실무자에 해당하는 아래 직원들에게 더 많은 일을 시키고 더 많은 성과를 만들어내야만 자신들의 능력을 인정받아 더 높이 올라갈 수 있음을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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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해, 한국인은 나도 일하지 않고 스탠더드로 야근하지 않을 테니 시키지도 않겠다는 합리적인(?) 사고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이는 앞에서 살펴보았던 성적 위주의 서열 줄 세우기 방식으로 어려서부터 자라온 환경도 한몫을 하게 됩니다. 같은 일을 하더라도 누가 먼저 빠르고 정확하게 하는가는 아무도 경쟁시키지 않더라도 실질적으로는 격하게 경쟁하는 전쟁터를 만들어 버립니다.


그리고 회식의 자리는 채찍으로 사용했던 야근에 대한 미안함과 아랫사람들에게도 좋은 상사여야만 한다는 인사고과의 관리는 회사의 돈(법인카드)으로 할 수 있다는 공식적인 도깨비방망이로 활용하곤 합니다. 분명히 공산주의가 아닌 민주주의 국가이고 회사조직임에도 누가 시키지 않아도 서로 경쟁하고 감시하고 아랫사람들을 최대한 부려서(?) 최고의 성과를 쥐어짜 내는 것이 자신의 능력임을 오너에게 어필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폭력이 난무하며 자신이 피해자일 때는 불합리하다며 없앨 것 같던 군대 문화에서 자신이 상관이 되면 자연스럽게 집단속에 파묻혀 자신이 당한 만큼 똑같이 하급자들에게 반복하는 것에 대한 죄의식을 나눠갖고 싶어 합니다.


이것은 자연스럽게 앞에서 살펴보았던 동지의식을 불러일으키기 쉬운 지연, 학연 등등으로 자신과의 공통분모를 중심으로 ‘우리가 남이가~!’를 외치는 공범의식으로 확장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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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보면 야근을 좋아하는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지만, 야근을 함으로써 정상 근무만으로는 이뤄내지 못할 업무 성과들을 만들어내고 그 성과를 모두 함께 만들어내는 것이 팀워크라고 가스라이팅을 하며 실질적인 결과물이 보였을 때 대대적인 부서 회식을 하는 것의 악순환(?)이 반복되는 형태가 된다고 할 수 있겠네요.


왜 피해자였던 한국인들은 자연스럽게 자신이 가해자의 입장이 되더라도 그것이 불합리한 것이 아니라 공평한 것이라고 착각하며 스스로에게 합리화를 시도하는 것인지 그 복잡하고 묘하게 꼬인 심리의 저편에 대해서 이제 조금은 깊숙이 들어가 분석할 때가 된 것도 같습니다.


다음 편은 여기에...

https://brunch.co.kr/@ahura/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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