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자가 갑자기 낯설어지는 순간이 찾아올 때.
지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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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짐을 생각해보지 않고 산 부부는 결단코 단 한 커플도 없다. 오히려 그런 생각을 해본 적 없다고 하는 커플의 경우 아무렇지도 않게 마지막 한 가닥 끈이 툭 끊어지듯 이혼서류를 내놓는 케이스가 오히려 굉장히 많다.
어느 부부나 두 사람 중의 한 사람은 컨트롤러가 되어 있음을 느끼게 된다. 그것이 조금 더 강해 강압적인 통제로 이어져 파국으로 치닫는 경우도 있고, 제대로 통제가 되지 않아 서로 봇물 터지듯 감정이 터져버리고 이성으로 조절하지 못해 파국으로 치닫는 경우도 적지 않게 보아왔다.
내가 컨트롤러인지 상대방이 컨트롤러인지는 살다 보면 주도권과는 상관이 없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누가 관계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가에 대한 부분이 두 사람의 부부생활에 큰 영향을 차지하는 요소가 아닐 수도 있다는 진리(?)를 아무렇지도 않은 순간 깨닫게 되는 수가 있다. 아쉬운 것은 적지 않은 커플들은 결국 헤어짐을 선택하고 남남이 되어 혼자가 되고 나서야 그 사실을 깨닫고 덩그러니 혼자 남겨진 거실에서 오열하게 되는 경우를 맞게 되기도 한다는 점이다.
오늘은 당신이 그런 황당한(?) 경우를 당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 지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당신은 배우자를 많이 참아주며 배려하고 있다고 생각하나? 내게 부부문제 혹은 커플 문제로 상담을 왔던 수천 명의 이들 중에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을 찾는 것이 드물 정도로 신기하게 거의 대부분은 자신이 상대방을 참아주고 배려하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것은 그 사람들이 지나치게 이기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거나 제대로 이성적인 판단을 하기 어려울 정도로 감정에 휩싸여 상대를 적대시하는 등을 이유로 발생하는 문제가 아니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자신이 부부관계에 있어서 자신들이 늘 손해 보거나 상대방을 위해 배려함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이 자신의 배려를 알아봐 주지 못한다는 서운함에 감정적인 불균형을 호소하고 있었다.
앞에서도 한번 설명한 바 있지만,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전혀 다른 가정문화를 통해 자라온 성인이 아무렇지도 않게 아무 설명이 없어도 서로 간의 상황을 모두 이해하고 넘어갈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난센스다. 게다가 세대가 거듭되며 세월이 지나갈수록 이러한 상황들은 전혀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이른바 요즘 MZ세대들은 자신들이 손해 보는 상황을 전혀 용납하지 않는 것이 마치 자신들의 기본 상식처럼 되어 있어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기본상식이던 아재 세대들과 완전히 다른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다.
물론 세대와 상관없이 개인차가 있어 평균이라거나 특정군을 규정하긴 어렵지만, 남자니까 여성에게 양보를 하고 배려를 해야 한다는 것이 상식이라거나 데이트를 하면 남자가 반드시(?) 계산해야 한다거나 결혼하고 나면 집안일은 여자가 해야 한다거나 등등의 고정관념은 구시대의 유물이라고 하면서도 부모세대의 인식과 맞물리면서 매번 충돌을 빚게 된다.
예컨대, 이혼의 꽤 많은 포션을 차지하고 있는 고부갈등이라는 부분도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전 구시대적인 발상으로 보면 남편의 집안에 들어가서 살아야 하던 한국식 전통문화에 힘입어 며느리의 ‘시집살이’라는 것이 있었기에 고부갈등이 마치 부부생활에 있어 아주 치명적인 저해요소인 양 언급되곤 했었다.
하지만, 맞벌이가 당연시되거나 자연스러운 사회적 분위기에서 결혼과 동시에 시부모님의 집에 들어가서 시집살이를 하는 것은 그야말로 구시대의 유물로 먼지가 쌓이다 못해 거미줄이 잔뜩 쳐진 지 오래이다. 도리어 처가 쪽의 입김이 더 세서 본의 아니게 처가살이를 하는 케이스도 적지 않아 졌다. ‘겉보리 서 말만 있어도 처가살이는 하지 않는다.’는 옛말이 고부갈등만큼이나 심각한 이혼사유로 등장할 수 있음은 최근에 갑자기 등장한 흐름만은 아님을 알 수 있다.
정작 본질적인 문제는 자신의 부모님에게도 제대로 하지 않는 자식이 새삼스레 배우자의 부모에게 제대로 할 리가 없다는 너무도 당연한 자연의 순리를 결국 당사자만이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예전처럼 제사를 맞이하여 일하는 며느리가 전날부터 제사상에 올릴 장을 하나 가득 보고 제사음식을 준비하느라 허리를 펼 겨를이 없는 고전적인 시추에이션은 벌어지지 않는다. 심지어 민족의 대명절이라고 떠들어대는 설이나 추석에조차 며느리 코스프레를 하며 시댁에 가서 하루 종일 음식을 만들고 수발을 드는 경우는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똑같이 맞벌이를 하는 경우는 물론이거니와 전업주부로 아이들을 케어하는 가정의 구조에서도 가부장제를 부활시킨 듯이 자신은 집안일에 손가락 까닥하지 않으면서 가장 대우를 받을 수 있는 시대는 이제 없어진 지 오래다. 빨래는 어차피 세탁기가 다 하고, 집안 먼지는 어차피 로봇 청소기가 알아서 다 빨아들이고 치우는 시대에 빨래를 널고 개고, 자신이 먹은 그릇들을 설거지하고 가족을 위해 요리하는 것이 남자 혹은 여자의 전유물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슨 문제가 있다고 상대에 대해 내가 늘 배려하고 피해를 감수하고 있다는 불만을 가슴 가득 터질 듯이 안게 되었을까? 이 부분에 대해서 당신은 스스로에게 가만히 물어볼 필요가 있다.
앞서 내가 예를 들었던 사례처럼, 같이 먹으려고 챙겨둔 맛난 디저트를 저 혼자서 다 먹어버렸다고 해서 빈정이 상하는 일은 일상생활에서 비일비재하다. 그렇게 사소하게 빈정이 상한 것은 일상생활 곳곳에 널려있다. 늘 집안을 청결하게 유지하려고 청소하는 사람 앞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빵을 흘리고 과자부스러기를 소파에 널려놓는 것은 사소한 듯 하지만 어느 순간에는 나 자신의 생활관을 무시하는 것 같다는 선전포고가 되기도 한다.
매번 취미생활이라고는 언감생심, 용돈을 아껴가며 돼지 저금통에 돈을 저금하고 있는데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이 답답하고 짜증이 난다면서 해외여행을 덜컥 예약하고 떠나자고 요구하는 모습을 보면서, ‘과연 이 사람이 나와 함께 생활을 꾸려나가자는 사람이 맞아?’싶을 정도로 좌절할 수도 있다. 혹은 반대로 내내 꼬질꼬질하게 늘어날 면티만을 입고 제대로 된 명품도 하나 질러보지 못하면서 살다가 참다 참다 자신도 자신을 위해서 뭔가 해주고 싶다는 생각에 정말로 가보고 싶었던 해외여행을 함께 가자고 말을 꺼냈더니 마치 정신 나간 사람을 쳐다보는 듯한 눈빛으로 ‘지금 우리 형편에 휴가까지 내면서 해외여행을 가자는 말이 나오니?’라고 면박을 준다면 그 순간이 그간 쌓였던 울분의 심지에 불을 당기며 이혼도장을 찍어버리는 트리거가 될지도 모른다.
어느 날 갑자기 당신은 전혀 그 어떤 마음의 준비조차 되어 있지 않은데, 상대방의 도장이 이미 찍혀 있는 이혼서류를 받는다던지 한술 더 떠서 당신이 이혼사유의 당사자로 지목되어 황당하기 그지없는 비난들이 열거된 이혼 소장을 받는 경우가 발생할지도 모른다. 당신은 도무지 이유를 알 수도 없고, 이제까지 같은 침대를 쓰던 멀쩡한 배우자가 왜 이런 황당한 사고를 쳤는지에 대해서 쇳덩이로 머리를 후려 맞은 것 같은 느낌으로 아무런 말을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아니 한술 더 떠서 어느 날 힘겨운 일상을 마치고 집에 돌아갔는데 덩그러니 거실의 탁자 위에 짧은 아디오스 인사가 남겨져 있는 메모를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당신만 빈정상하는 일이 있는 것이 아니고, 당신만 헤어짐에 대해서 생각한 것이 아님을 당신은 그제서야 깨닫게 될지도 모르겠다. 당신이 당신의 배우자에 대해서 얼마나 잘 알고 있는지 그리고 그 속속들이에 대해서 얼마나 잘 이해하고 있었는지와는 별개로 상대방은 당신이 전혀 상상하지도 못할 부분으로 속이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고 말하고, 당신 같은 사람과는 도저히 더 이상 함께 지낼 수 없다고 결론 내려 폭탄을 던진 것일 수도 있다.
그것이 단순히 부부간의 대화가 단절되어 있다거나 소원한 관계가 지속되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도 없다. 오히려 굉장히 많은 대화를 나누고 심지어 같은 사업을 하며 24시간 붙어지내는 부부 사이에도 위에서 언급한 극단적인 상황은 어렵지 않게 연출되곤 하였다. 깊은 속내를 나누며 감정적으로 교감을 이루는 행위가 단순히 붙어 있는 시간이 많고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고 하는 것과 정비례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당신은 언제나 상대방에 대해서 용인하고 참아주고 당신만 피해자고 당신이 모든 것을 배려했다고 착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결국 당신이 상대방에게 주었던 상처에 대해서 당신은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었는지도 모른다는 의미다. 그것을 상대방의 입을 통해 하나하나 듣는 것은 법정이나 상대방 변호사가 쓴 준비서면에서 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당신은 이제 당신이 헤어짐을 생각하게 된 이유와 당신의 감정을 상대방에게 진솔하게 이야기하고 상대방이 그것을 인지하게 해야 하는 일을 하기 전에, 당신의 배우자가 당신에게 느꼈을 그 모든 서운함과 상처에 대해 들어야 할 필요가 있다. 모두 듣고 나서 두 사람의 관계가 어떻게 될지에 대해서는 두 사람이 결정할 문제다. 물론 두 사람의 결혼을 부부관계를 어떻게 정리할 것인지 지속할 것인지를 판단하는 것도 중요한 문제이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두 사람의 오롯한 인생에 대해서 서로 간에 피해자라고만 주장하는 어린아이 둘이서 징징거리며 혼잣말을 하고 등을 돌리는 것보다는 훨씬 더 나은 어른다운 행위를 해야 한다.
당신에게 당신의 인생이 결혼생활에 앞서 훨씬 더 소중한 것처럼 상대방의 인생도 당신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무시당하거나 폄하될 정도로 가벼운 것이 아니다. 무엇보다 그 판단은 당신이 내릴 수 있는 범위 밖이다. 당신은 늘 당신의 삶이 존중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단 한 번도 상대방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당신이 너무도 아무렇지 않게 놓쳤던 그 부분을 전혀 반성할 생각조차 없이 당신만의 결론을 내리려 했던 것이다.
만약 당신이 당신의 그 소홀함과 경솔함에 대해서 이 글을 읽고 나서도 깨닫지 못한다면 당신은 설사 이혼을 통해 혼자가 되어도, 그리고 뻔뻔하게 상대방 때문에 당신의 결혼생활과 인생의 일부가 망가졌다고 투덜거리면서 또다시 다른 사람의 인생을 망치겠다고 재혼상대를 찾으며 새 삶을 꿈꾸고 있을 것이다.
어리석은 자에게 영원한 안식은 결코 찾아오지 않는다.
다음 편은 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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