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함과 싫어함은 개수로 형평을 가늠할 수 없다.

수많은 이유를 아무렇지도 않게 만드는 단 하나.

by 발검무적

지난 이야기.

https://brunch.co.kr/@ahura/1929


주는 거 없이 미운 사람이 있다. 내 심장을 바로 꺼내줘도 아까울 것 같지 않던 사람이 불과 몇 년 살붙이고 살았다고 돈 주고 킬러를 사서라도 죽여버리고 싶은 대상으로 바뀔 수 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해서 애증의 관계가 되는 부부는 가까운 가정법원만 구경 가더라도 어렵지 않게 그 바닥까지 살펴볼 수 있다.


참 사람의 감정이라는 것이 간사하기 그지없는 것이, 연애를 할 때는 그 이유 때문에 그렇게 좋아 보였던 사람이 결혼을 하고 같이 살면서 그 이유 때문에 헤어지고 싶어지는 결정을 내리는 모순된 양날의 검을 선사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사랑의 콩깍지가 씌워지면 다른 모든 사람들의 눈에 보이는 단점마저도 사랑스럽기 그지없는 요소로 화학적 작용을 해서 변모하여 장점으로 뒤바뀌고, 사랑의 콩깍지가 벗겨지고 나면 남들이 객관적으로 괜찮은 부분이라고 평가하는 부분마저도 마뜩잖기 여지없는 단점으로 보이거나 꼴 보기 싫어지기 마련이다.

search.pstatic.jpg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를 굳이 그렇게 쭈욱 늘어놓는 이유가 뭐냐고 묻고 싶은가? 아니 여기까지가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였다면 나는 그다음 누구도 생각해보지 않은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이 이야기를 끄집어냈다.

도대체 무엇이 왜 그렇게 만드는가 하는 부분이다. 이미 수천 년 인류의 역사에 사랑의 콩깍지가 부여한 딜레마는 늘상 있어왔다. 하지만, 정작 그 부분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분석과 해결은 수천 년 인류의 역사 내내 숙제거리이고 케바케의 문제였다.


당신이 지금 헤어짐을 생각하게 된 이유에는 여러 가지 복잡다단한 문제들이 얽히고설켜 있긴 하겠으나 가장 근본적인 이유를 살펴보게 된다면 의외로 단순한 문제들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것을 직접 확인하는 방법은 그리 어렵지 않다. 종이와 펜을 준비하고 아무도 당신의 시간과 감정을 간섭할 수 없는 조용한 공간과 시간 속에서 당신이 도대체 왜 헤어짐을 생각하게 되었는지를 브레인스토밍의 방식으로 낙서하듯 적어나가는 것이면 충분하다.


넉넉하지 않은 경제적인 이유라면 그것에서부터 시작하되 사소한 작은 것들까지 생각나는 대로 다 적으면 된다. 나는 열심히 돈을 벌어오는데 배우자가 전혀 경제활동은 하지 않으면서 내가 벌어온 돈을 축내기만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라면 그것을 그대로 적어나가면 된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그다음 단계의 당신의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오도록 끄집어내기만 하면 된다. 도대체 어떻게 내 돈만 축내는지 그 과정에서 뭔가 가장 기분이 나쁜 부분인지, 거기에 연루된 사람은 없는지.


감정적으로 나에 대한 사랑이 식은 것 같고, 나도 상대에 대한 사랑이 식은 것이 근본적인 문제의 출발점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역시 똑같은 방식으로 그것에서 파생된 아주 사소한 당신의 불편함을 꼬리에 꼬리를 물고 끄집어 올리면 된다. 잠자리하는 횟수가 점점 줄어들어 이제 섹스리스 부부가 되어가는 것이 불만인지. 맞벌이를 똑같이 하는데 오피스 허스번드, 혹은 오피스 와이프를 두고서 나보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더 즐거워하고 정신적인 외도를 하는 것 같아서 내가 힘이 드는지 그 생각들을 아주 상세히 찬찬히 당신의 불편함 마음속에서 끄집어 올려 메모로 낙서하듯 적기만 하면 된다.


그렇게 A4용지를 하나 가득 채우고 나면 당신의 머릿속에, 가슴속에 있던 불편함의 응어리들이 어느 순간 툭 하고 덩어리째 수면 위로 올라온 것처럼 명확하게 들어오는 그 무언가가 눈에 보일 것이다. 반드시 하나만 있을 리도 없다. 당신은 그저 당신의 마음속에 있던 그 불편한 응어리들이 왜 당신으로 하여금 지금 헤어짐을 고민하게 만들었는지 당신의 저 깊은 속에서 외치는 소리를 부러 외면하지만 않으면 된다.

search.pstatic.jpg

그렇게 끝이냐고? 그럴 리가 있나? 병을 진단만 하고 치료하지 않는 명의(名醫)는 없다. 당신이 모르는 사이에 점점 커져 갔던 그 마음의 병을 진료할 수 있는 명의(名醫)는 다른 동네에 숨어 살고 있지 않았다. 결국 그 병을 고칠 수 있는 것도, 그리고 그 병을 더 키워 인생을 망쳐버리는 것도 결국 당신의 결정으로 좌우된다.


당신은 이제 빨간펜을 들고 당신이 쏟아냈던 그 깊은 곳의 소리들에 원인분석을 해주기 시작해야 한다. 브레인스토밍으로 의식이 흐름을 따라 끌어올린 그 내용들에 정확한 근본적인 이유에 대해 주석을 달아주는 작업을 하기 시작해야 한다. 단순히 내 잘못도 있고 상대의 잘못도 있고 혹은 시어머니에게 원인이 있고, 장모에게 문제가 있고 따위의 대상을 적으라는 것이 아니다. 근본적으로 당신이 그렇게 생각하게 된 원인, 다시 말해 당신의 의식이 왜 그것을 상처라고 느꼈는지 왜 그것이 암세포처럼 병으로 내려앉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좀 더 깊숙한 내면의 소리를 감성이 아닌 이성에게 물어 표기하는 과정이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생각이 바로 들지 않거나 정말로 적을 내용이 없다고 생각이 들더라도 끊임없이 당신의 이성에게 더 이상 이 문제들을 감정의 쓰레기통에 적당히 던져두고 묻어둘 생각이 없다고 밝혀야만 한다. 처음 시작이 아무렇지도 않았던 당신의 인내였는지 아니면 그것이 정말로 상대방의 악의적인(그러기는 힘들긴 하지만) 의도가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그것에 대해서 당신이 당신의 감정이 그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혹은 그것이 서운했다고 말하는 타이밍을 놓쳐버리면서 자연스럽게 상대방도 눈치채지 못하고 넘어가버렸는지를 구분해야만 한다.


그렇게 하나씩 당신의 이성이 감정에 의해 뒤엉켜있던 실타래를 풀겠다는 사인을 스스로에게 보내는 지난한 과정들은 작지만 아주 큰 파문을 당신의 일상에 가져다줄 것이다. 이제까지 아무렇지도 않게 넘어갔던 디테일한 부분들이 당신의 머릿속과 마음속에서 새롭게 인지될 것이고, 당신이 단 한 번도 심각하게 따져 물어가며 분석하지 않았던 호불호에 대한 표현방식이 필요하다는 사인을 하루에도 수차례 받게 될 것이다.

search.pstatic.jpg

이상한 것은 하나도 없다. 당신이 하루 정도의 시간을 들여 당신을 들여다보고 A4 한 장 가득 낙서 같은 메모를 하고 빨간펜으로 빼곡히 마음의 소리를 썼다고 해서 당신이 사는 주변 세상이 바뀌어 있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최소한 당신의 세상은 완전히 바뀌어 있을 것이다. 당신이 보고 있었지만 보았다고 인지하지 않았던 부분, 분명히 들었다고 생각하지만 당신의 마음속에서 피드백 과정을 거쳐 표출되지 않았던 그 부분들이 다시금 새롭게 일어나 이제까지 당신이 생각지도 못했던 일상을 선사해 줄 것이다.


이제 병이 완치되었느냐고? 말도 안 되는 소리, 천만에 만만의 콩떡이다. 이제 시작이다. 언제든 본질적인 병폐는 재발의 위험이 있는 것이고, 무엇보다 이제 당신의 부분이 정리되었을 뿐 관계에 있어 필수적인 상대방 그리고 주변이 당신의 변화를 인지하지 못하고 공유하지 못하고 공감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관계를 개선하는데 결정적인 요소를 투여해주지 못한 채 허망한 공전을 반복할 여지가 굉장히 크다.


그럼 이제 다시 새롭게 A4 용지를 꺼내 들고 두 번째 작업에 돌입한다. 당신의 배우자가 가지고 있는 장점에 대해서 하나씩 써나가기 시작한다. 누군가에게 보여줄 것이거나 보고할 것도 아니니 기존에 한 번 시도했던 브레인스토밍식으로 낙서처럼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면 된다. 행여 장점을 쓰다가 불쑥불쑥 그것이 단점일 수도 있다던가 그것 때문에 안 좋은 부정적인 생각이 일어나려고 할 때 그것만 냉정하게 잘라내고 장점에 대한 부분만을 차곡차곡 써 나가면 된다. 헤어짐을 생각하게 만든 상대에 대해 장점을 쓰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으나 의외로 상대방에 대한 장점은 종이 하나 가득 채우는데 그리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배우자에 대한 장점을 모두 적은 다음, 당연히 새로운 종이를 꺼내서 상대의 단점을 적어야 할 준비를 할지도 모르겠다. 아니다. 이게 그렇게 바보 같은 수순을 따르지 않는다. 당신은 이제 빨간펜을 들고 그 장점들의 곁에 내게 그것이 왜 장점으로 느껴졌고 인식되었는지를 차곡차곡 적어나갈 필요가 있다. 예컨대, 대부분의 케이스를 살펴보면, 당신이 원가족에게 갖지 못했던 결핍을 배우자가 제공(?)해주었기 때문인 경우가 적지 않음을 알 수 있다.

search.pstatic.jpg

그런데 여기서 단순히 당신이 결혼 전에는 이런 부분에 대해서 제공받지 못했던 결핍을 배우자가 채워주었다는 식의 메모만으로는 부족함이 있다.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그래서 당신이 그 장점에 대해서 헤어짐을 생각하게 된 지금 시점까지 오롯이 다 누렸는지 아니면 그런 줄 알았는데 그게 모두 연기였다고 느꼈는지 등등에 대한 함께 했던 세월의 증거 보고서가 더해져야만 한다.


그렇게 하나하나에 빨간펜 주석이 모두 달리고 나면, 당신이 왜 상대를 좋아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살면서 좋았던 부분이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무엇보다 그 모든 장점에도 불구하고 왜 지금 헤어짐을 고민하는 상태까지 몰리게 되었는지가 자연스럽게 정리될 것이다.


아무리 많은 장점이 있더라도 그것이 사회생활 속에서 다른 이들에게 칭송받는 부분일 뿐 나에게는 아무런 좋은 점이 아닐 수도 있고, 아무리 장점이 많이 있어도 단 하나의 단점들이 그 장점을 모조리 추풍낙엽처럼 떨어뜨려 마이너스를 만들어 버리는 경우도 적지 않을 것이다.


이 과정들을 스스로와 함께 걷다 보면 당신은 이제 막연하게가 아닌 명확하게 당신이 진정 지금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깨달음을 얻게 될 것이다. 그 깨달음은 당신이 득도를 할 것도 아니고 한 분야의 일가를 이룰 것도 아니지만 최소한 당신이 어떻게 남은 생을 스스로의 행복을 위해 나아갈 수 있을지에 대한 방향을 보여줄 첫걸음이 될 것이다.

search.pstatic.jpg

다음 편은 여기에...

https://brunch.co.kr/@ahura/1933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