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선택이 실수나 잘못이라고 인정은 하나?

그렇다면 배우자가 아닌 스스로를 비난하라.

by 발검무적

지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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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짐을 결정하고서 당신이 법원에서 악다구니를 쓰면서 싸우는 이유에 대해 당신은 스스로에게 다시 되물을 필요가 있다. 있는 트집 없는 트집 다 잡아서 당신 재산 뜯어가는 변호사의 준비서면에 가득 써서 채워준 배우자에 대한 비난은 엄밀하게 말해 당신이 그런 사람을 선택했고 그런 사람과 살을 부비며 살았으며 그런 사람과 함께 자식을 낳아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말년까지 행복하게 지낼 거라 믿었다는 확신에 대한 잘못과 실수를 적나라하게 인정하는 것이다.


그래서 정말로 자신의 잘못된 선택과 그 과정에서 자신의 그릇된 처신이 없었는지 고민한 사람들은 이혼을 하게 되더라도 그것이 상대방 때문이라고 이야기하지 않고 모두 자신의 부덕함이라고 말한다. 결코 그가 그것을 포장해서 정치인처럼 표를 얻겠다는 의도가 없는 다음에야 굳이 그렇게까지 말할 필요가 없는데도 말이다.

그런데 이혼법정에 가보면, 아니 그 법정에 들어서기 전에 각자의 변호사를 앞세워 내놓은 준비서면만 보더라도 그들은 서로를 죽이지 못해 으르렁거리는 원수처럼 아주 사소했던 부분까지 부러 왜곡시키며 상대방이 얼마나 결혼생활에 무책임했고 문제가 있는 사람이었는지 헐뜯는 내용으로 빼곡하게 채워 비수를 찌른다.


세상에 좋은 끝은 없는 거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을지도 모르겠으나 이혼이 인생의 끝이 아니라는 점에서 굳이 자신이 인생을 함께 하자며 선택했던 사람과 헤어지면서 그 사람을 인간 같지도 않은 사람으로 비난하는 것이 과연 이치에 합당한가에 대해서 당신은 다시 한번 스스로에게 되물을 필요가 있겠다.


물론 좋을 때 선택한 상대가 오래 함께 생활하면서 마음에 안 드는 구석이 하나둘 발견되고 도저히 맞춰서 살 수 없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사람의 감정이 워낙 간사한지라 죽고 못 살겠다고 했던 사랑도, 상대를 죽여버려야만 속이 풀릴 것 같을 정도로 미워하게 되는 수가 충분히 생길 수 있고, 실제로 그러하기도 한 것이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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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세상에 어느 한 부부도 살아가면서 너무 죽이 잘 맞고 너무 사랑스럽기 그지없어서 떨어져 있으면 못 살 듯이 매일같이 연애하는 기분으로 살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미워죽겠는데 억지로 애들을 한부모 가정 자식이라 손가락질받게 만들고 싶지 않아서 꾸역꾸역 살지도 않는다. 함께 웃고 행복한 나날들도 있고, 때론 어렵고 실수하고 잘못해서 싸우고 고생하고 어그러지는 날들도 있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부부는 가족은 그렇게들 살아간다.


속 썩이는 자식 때문에 힘들기도 하고 잘 나가던 회사에서 갑자기 짤려서 어떻게 할지를 모르는 상황이 생기기도 하고, 정말 어이없게도 멀쩡하게 배우자를 두고서 바람을 피우는 불륜을 감행하는 경우도 생긴다. 돈 때문에 힘들어 도저히 헤어지지 않을 수 없다고 하는 사람들은 경제적으로 풍족하고 돈 문제만 없다면 마냥 행복하게 결혼생활을 할 거라고 하지만, 실제로 돈이 남아돌아 외제차를 몇 대씩 굴리는 이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이혼하면서 서로 맞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을 보면 이해하기 어려울지도 모를 일이다.


모든 가정에는 저마다 피치 못할(?) 그 가정만의 문제가 어떤 식으로든 존재한다. 가족 중에 많이 아픈 사람이 있다면 일단 그 병을 치료하기 위해 시간과 비용이 무한정으로 들어갈 것이고 그것과는 별개로 건강한 일반 가족들이 할 수 있는 아무렇지도 않은 일상을 영위하는 것조차도 사치처럼 느껴질 수도 있는 것이다.


가족 모두가 건강하고 무탈한 것만으로도 행복이라고 ‘아무런 일이 생기지 않은 아주 보통의 하루’를 강조하는 요즘 사람들의 캐치 프레이즈는 이런 현실적인 어려움을 겪은 적지 않은 사람들의 고난을 경험하거나 듣고 본 이들의 진심에서 피어난 것이다.


“실망이야!” 라든가 “당신에게는 이제 더 이상 기대할 수 있는 게 없어~!”라는 식의 감정적인 비난은 “당신이라면 분명히 이겨낼 거야.”라던가 “내가 당신을 이래서 믿고 의지하는 거잖아.”라는 심정적인 지지와는 아주 상반대의 대척점에서 사람의 마음을 병들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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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50을 전후로 ‘사오정’이라고 하여 명퇴를 당한 남자들이 벌어오던 월급이 떨어졌으니 소용가치가 없어졌다며 황혼이혼이 급증한다는 사회적 풍토가 있었더랬다. 남편으로서 혹은 아버지로서의 가치가 단순히 집에 일용할 양식을 조달하는 경제적인 부양 능력뿐이었다면 그 결과는 너무도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여자가 종족 번식을 위해서만 그 존재가치가 있는 것이 아닌 것과 같이 남자가 가정을 부양하는 경제적인 능력이 없다고 해서 그 가치를 부정당하는 일은 분명히 잘못된 일이다. 혹자는 남편으로서 아빠로서 가장이 식구들을 위해서 밖에 나가 일하고 일용할 양식을 구해오는 경제적인 능력을 방기 하는 것부터가 기본이 안 된 것이라고 비난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가장이 가족부양의 의무를 ‘일부러’ 방기하고 방치하며 제멋대로 베짱이처럼 살겠는가?


아이들이 먹고 싶은 것을 먹지 못하고 갖고 싶은 것을 갖지 못하고 제대로 된 책상 하나 갖지 못해서 공부하지 못하는 상황에 자기 혼자서 맛있는 거 먹으러 다니고 예쁜 여자와 바람피우러 다니는 인간쓰레기는 굳이 그 가정에서 욕을 먹지 않더라도 사회에서 매장되어야 할 존재로 비난을 받고 폐기될 것이니 여기서 새삼스레 논의할 것도 없다.


일이 안 풀리거나 잘못 실수해서 사업을 말아먹고 수억 원의 빚더미에 내몰려 지하 단칸방에서 온 가족이 함께 살았다는 이야기는 그리 드문 이야기도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렇게 일을 망친 아버지나 어머니를 어느 한쪽이 무능하다거나 집안을 다 말아먹었다고 자식들 앞에서 비난하거나 그 사람의 인격을 모독하는 것은 아이들의 부모로서도 해선 안될 일이지만, 그 사람을 선택하고 믿었던 사람으로서 해서는 안될 일이다.

앞서 칼럼에서 70이 넘도록 자신의 뜻을 이룰 타이밍을 기다리며 낚시를 했던 강태공의 고사나 10년 계획으로 책만 읽으며 세상에 나가지 않겠다고 하여 구박을 받고 집에서 쫓겨나 허생의 이야기를 다시 꺼내지 않더라도 그렇게 훌륭한 이들이 왜 그런 악처와 결혼을 했냐고 물을 바보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강태공과 허생은 자기 배우자에 대해 그 어떤 불만도 갖지 않고 자신의 선택이 낳은 결과임을 알기에 그녀를 품고 수십 년을 함께 지냈고 그녀의 최종 선택조차 그대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자신이 사랑하는 가족에게 더 많은 것을 해주고 싶은데, 그럴 수 없는 상황이 처한다면 그것을 받지 못하는 가족이 더 힘들까? 아니면 그렇게 해주지 못하는 사람의 마음이 더 아플까? 가족은, 그리고 부부는 더 힘든 상황을 직접 해결해주지는 못하더라도 그 힘겨움을 조금이라도 덜 아프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 가장 큰 존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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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다쳐서 아플 때, 다쳐서 우는 아이보다 훨씬 더 마음이 아픈 것이 부모다. 부모가 어려서 자신이 아이의 입장이었을 때는 모르는 그 사실들이 누가 가르쳐주지 않았지만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다. 내 피가 섞인 아이에 대해서는 그렇고 피가 섞이지 않은 배우자에 대해서는 또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배우자가 사고로 병상에서 일어나지 못하는 상황에서 그 병상을 지키는 배우자의 힘겨움만큼이나 자신이 그저 짐이 된 것만 같은 죄책감은 이루 말할 수도 없을 것이다. 그렇게 경제활동도 못하고 오히려 경제활동을 해야 하는 사람을 묶어두는 돌덩이가 된 것 같은 사람의 마음이 편할 리가 있겠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돌보고 더 나아질 것이라며 서로를 도닥이고 걱정해 주고 아프지만 않으면 뭐든 할 수 있을 거라고 손을 꼭 잡아주는 부부의 마음은 단순히 아픈 사람에 대한 동정이나 연민 따위가 아니며, 힘겹다고 해서 버릴 수 있는 가족이라면, 가족이 손절할 수 있는 대상이 될 수 있는 거라면 그것은 부부의 연을, 그리고 가족의 연을 너무 쉽게 본 것이다.


내가 짧지 않은 인생을 살면서, 혈연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혈연을 만들어내는 그 연을 쉽고 가벼이 여기는 이가 행복한 삶의 마무리를 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누구에게나 부족한 점은 있기 마련이다. 혼자서 사는 사람이 가족과 함께, 혹은 결혼을 하고 가정을 이루고 사는 경우에 비해 훨씬 더 힘겨운 일에 처했을 때 극복하기가 어려운가에 대한 것은 굳이 분석하거나 통계자료를 볼 필요도 없다. 사람은 원체 연약하기 그지없는 존재였기에 서로가 의지하고 살 수밖에 없고, 그렇게 물리적으로든 감정적으로든 혼자서 지내는 것보다 ‘함께’ 지내는 것이 훨씬 더 나은 삶이 형태라고 생각했기에 인간은 무리를 이루어 생활했고, 가족을 만들었다. 그것은 단순히 동물적인 의미에서의 종족 번식을 위함이 아님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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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돈 하면서 살던 사람이 배우자의 무능을 욕하며 이혼하고 새롭게 돈이 많은 사람을 골라 찾아다니다가 새살림을 차렸다고 해서 그 삶이 재기에 성공한 삶이라고 그 어느 누구도 칭송하지 않는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콕 찝어주자면 그 사람 자신이 누구보다 잘 알 것이다, 문제는 결코 돈이 아니었다는 것을.


당신이 ‘본능적으로’ 당신의 인생이 이 잘못된 결혼으로 모두 망쳐버린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고, 괜히 이런 사람을 만나서 나의 화려한 젊은 날이 모조리 날아가버렸다고 한탄할 수도 있을 거라 생각한다. 괜찮다, 사람이 다 그런 거지 어떻게 바른 생각만 하고 살 수 있겠는가, 마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당신의 짝이 시한부 판정을 받았다고 축 처진 어깨로 훌쩍이고 있다면, 거기에 대고, “차라리 잘 됐네, 어차피 헤어지려고 했었는데 그냥 혼자서 조용히 가도록 해.”라고 할 수 있을까?


당신이 누구보다 더 가슴 아프고 더 힘들어할 것임을 당신도 알고 나도 안다.

왜냐하면, 그것이 당신이 사람이라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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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편은 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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