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아이는 당신의 생각보다 훨씬 더 자라 있으니 말이다.
지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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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이 마치 죄인의 낙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여겼던 시대가 분명히 있긴 있었다. 그렇다고 지금처럼 너무 흔해 빠져 도리어 돌싱인 것이 자랑인 것처럼 여기는 철딱서니 없는 이들도 없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이혼은 남들에게 대놓고 자랑할만한 요소 따위는 결코 될 수 없다.
그런데 이혼이 죄이고 낙인이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묘하게 공통적으로 이혼하지 못하며 계속 결혼생활을 지속하는 이유로 자녀를 ‘핑계’ 삼는 경우가 적지 않게 보인다. 가정법원에서도 합의이혼의 경우마저 미성년자 자녀가 있을 경우에는 자녀가 없는 경우와 달리 숙려기간을 3개월로 규정하고 있다. 법리만을 따지는 법원에서조차 이혼에 있어 미성년자 자녀들의 성장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최대한 숙려 하도록 강제성을 띤 조치까지 안배한 것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만 독특하게 이혼을 하지 않는 핑계로 수십 년간을 내려온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바로 ‘아이들이 결혼해서 출가할 때까지는 힘들고 더러워도 참는다’이다. 이것은 시대가 조금씩 변해오면서 결혼이 늦어지자 ‘아이들이 최소한 대학을 가고 성인이 되는 그때까지만이라도 이혼가정이라는 딱지를 붙여주기 싫어서 참고 산다’라는 명제로 포장되곤 했다.
심리학계의 다년간의 상담 데이터와 분석자료에 따르면 일반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보다 한부모 가정, 즉 이혼한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의 심리적 성숙도가 상대적으로 훨씬 빠르다고 보고하고 있다. 사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굳이 연구 데이터까지 살펴보지 않더라도 상식적인 수준에서 추론이 가능하다.
생각해 보라. 늘 부모가 싸우고 관계가 안 좋고 집안 분위기가 화목이라고는 찾아보기 어렵다면 그 아이의 입장에서 자신이 어떤 스텐스를 취해야 할지를 생존 본능에 가깝게 늘 생각하고 판단하게 몰아세운다. 아무리 어린 나이의 아이라도 자신이 위협받는 듯한 안 좋은 가정 분위기에서는 자신이 살기 위해서라도 숨던가 아니면 늘 밝은 척 연기를 하던가 어떤 방식으로든 아이가 굳이 해서는 안될 생존 본능 스킬을 배우지 않아도 구현하게 된다는 말이다.
최근 수년간의 이 분야 관련 심리연구 데이터에서는 오히려 쿨하게(?) 이혼을 하고, 아이들의 양육권을 명확하게 나누고 양육하지 않는 부모와의 교섭권을 정기적으로 유지하면서 할리우드 스타일로 엄마와 아빠가 이혼했을 뿐 부모님은 여전히 자신들을 사랑하고 있다는 관계를 보여주는 방식으로 자란 아이들에게서는 억지로 불편한 결혼생활을 유지하는 가정의 아이들에 비해 훨씬 더 성숙한 긍정적 심리상태를 관찰할 수 있다고 보고하고 있다.
전에도 수차례 설명한 바와 같이, 세상에는 수천 가정이 있고, 수천의 커플이 있으면 그 수천수만의 가정과 부부의 양상은 제각기 저마다 다른 모습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한 기준에 맞춰 모든 양상이 같다고 평준화하여 일반화할 수도 없을뿐더러 개개인의 감정과 역사를 급변하는 상황에 맞춰 일일이 지시하거나 가이딩 해줄 수도 없다.
당신이 지금 헤어짐을 생각하고 있는 이 시점에, 혹여 당신의 자녀를 위해, 당신의 이혼결정이 혹시 만에 하나라도 아이가 정상적인(무엇이 정상인지에 따라 그 의미가 완전히 달라지긴 하겠다만)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에 비해 안 좋을 수도 있을 것이라는 우려는 그렇기에 유의미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하지만 말이다.
실제로 이혼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이나 이후 성인이 되어 그것 때문에 힘들었다고 하는 이들의 상담을 진행해 보면, 당신이 생각하고 우려하는 것보다 이혼 가정의 아이들은 훨씬 더 성숙해 있고 똑똑하며, 당신이 어설프게 쉬쉬했던 그 모든 진실의 이면까지도 모두 읽고 있는 경우가 많다.
전문가들에게도 다양한 견해가 있긴 하겠지만, 내 개인적인 의견은 가정의 모든 일은 가족과 공유하는 편이 결과적으로나 과정의 의미에서도 훨씬 더 나았다는 점이다. 물론 아주 세세한 일까지 모두 어린 자녀에게 공유하는 것이 아동학대에까지 해당한다며 길길이 날뛰는 이들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니지만 내 이론과 경험으로 보건대, 기본적으로 쉬쉬하며 질질 흘리며 잘못된 정보나 그릇된 인식을 가공하게 만드는 것보다는 당사자인 부모를 통해 현재의 상황이나 부모가 왜 그런 고민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확실하게 설명해 주는 것은 아이가 자신의 입장을 정리하고 더 이상 쓸데없는 고민을 하지 않게 하는데 아주 큰 일조를 할 수 있다.
당신에게 이혼이 결코 작은 일이 아니고 당신의 심리상태를 혼란스럽기 그지없게 하는 것만큼이나 당연히 당신의 자녀에게도 부모의 결별은 결코 작은 일일 수 없다. 하지만, 앞뒤 다 빼고 다짜고짜 아이의 아빠 혹은 엄마에 대한 욕설이나 비난만으로 일관된 목소리를 각기 다른 부모의 입으로 듣는 것만큼 아이에게 악영향을 주는 일은 없다.
그렇다고 어설프게 아이가 나타나기만 하면 날리던 육두문자를 수습하기 급해 쉬쉬하며 아이가 아무것도 모른 척해주기를 기대하는 멍청한 짓은 앞서 설명한 바보짓보다 훨씬 더 어리석은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아이가 돌아가는 집안 사정에 대해서 모른 척하는 연기를 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한번 모른 척을 했는데 갑자기 이미 모든 것에 대해서 다 알고 있었다고 커밍아웃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당신은 상상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가정의 문화가 저마다 다르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모든 부모는 아이가 좋은 일이든 기쁜 일이든 모든 일을 부모에게 상의하고 이야기해 주기를 바라고 그렇게 가르칠 것이다. 아이에 대한 가정교육은 교실에서 화이트보드를 놓고 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가 하는 것을 그대로 보고 따라 익히는 것에 있는 가장 기본적인 사실을 당신을 비롯한 꽤 많은 부모들이 놓치곤 한다.
부부 사이에 사소하지만 서로 직장에서 있었던 일이나 집에서 가사를 돌보며 있었던 일에 대해서 저녁 식탁에서 둘러앉아 이야기하는 문화가 자연스러운 집에서는 아이도 당연히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며 가족 구성원으로서 성장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정작 식탁에 함께 앉더라도 서로 자기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것에 익숙하고 개인적인 대화라고는 찾아보기 어려운 문화를 유지하던 이들이 갑자기 심각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좀 하자고 하는 것 자체가 난센스일 수밖에 없다.
역으로 거슬러 생각해 보면, 당신의 부부생활이 배우자와의 관계가 소원해지고 소홀해진 부부분에는 그 사소한 생활의 공유가 결여되고 굳어져가면서 그 틈이 다시 메워질 수 없는 지경으로 변질되었을 가능성을 배재하기 어렵다.
이것은 성향의 문제가 아니다. 가족은 처음 만나는 대상이 아니며 내외를 하며 서로 알아가기를 해야 하는 사회적 관계가 아니다. 특히 부부보다 자녀와의 관계는 그 아이가 말을 따라 배우기 시작하고 걷고 뛰는 과정 내내 함께 했던 부모에게 자신의 이런저런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하는 것이 이상할 것이 하나도 없는 것이다. 오히려 말이 터지고 이야기할 주대상이 부모였을 그 시기에 조금씩 그렇지만 견고하게 당신이 TV나 보고 아이에게 스마트폰을 던져주면서부터 대화라는 것은 사라졌을 것이고, 서로의 관심사나 서로의 생각에 대해서 굳이 이야기를 나눌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을 확률이 매우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로 콩가루 집안이 아니라면 아이는 부모에게서 느껴지는 미묘한 변화와 문제를 가장 먼저 눈치채고 가장 먼저 눈치를 보게 된다. 당신이 아이를 그렇게 만들고 싶은 마음이 추호도 없었다고 입에 침을 몇 천 번 바르고 항변하더라도 당신은 1차적으로 당신의 잘못부터 돌아봐야만 한다.
그렇다고 당신의 속앓이를 자녀에게 풀어놓으라는 말은 아니다. 아이가 당신과 가깝다고 해서 성인과 똑같이 당신이 한꺼번에 쏟아내는 정보와 선별되지 않은 그 감정의 홍수를 모두 수용할만한 준비가 되었다고는 볼 수없기 때문이다. 다만,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가 지속적으로 부모가 힘겨워하는 상황에서도 자신을 대화의 상대로 생각하고 있고, 무엇보다 부모가 어떤 결정을 내리게 되더라도 자신의 부모가 달라지거나 자신의 처지가 급변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안정감을 느끼게 해주는 것은 부모로서의 당연한 의미이자 책임이다.
절대, 단언컨대 당신이 말도 안 된다고 여기며 깨버리고 싶은 결혼생활을 자녀 때문에 죽지 못해 연명한다는 핑계를 자녀에게 옭아매지 마라. 양육권 문제로 법원에서 파견된 조사관이 자녀와의 상담을 하더라도 대부분의 자녀들은 자신들이 짐이 되거나 거래의 대상이 되어 부모의 다툼에, 그 지저분한 이혼과정에 얽히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오히려 대화와 공감이 충분히 형성된 자녀들은 그게 아빠 쪽이든 엄마 쪽이든 이혼을 통해 지금의 불행한 가정보다 훨씬 더 나은 형태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제대로 아이의 생각이나 감정을 읽어보지도 않은 채 당신의 기준으로 당신만의 생각으로 자녀들의 생각을 속단하지 마라. 당신이 이혼이라는 큰 결정을 내리기 전에 충분히 배우자와 이야기를 나눠보지도 않고 혼자만의 추정과 판단으로 그것이 사실인 것처럼 호도하지 마라.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당신은 당신의 그 일방적인 어리석은 서툰 판단으로 인해 당신의 인생은 물론 당신이 사랑해 마지않는 당신의 자녀에게까지 안 좋은 영향을 끼쳤음을 후회하게 될 것이다.
모든 관계에서 상대방의 감정과 생각을 묻고 공유하고 공감하지 않은 상태에서 그럴 것이라고 추정하고 혼자서 판단 내리는 것은 사실에 부합하지 않을 확률이 너무도 높다는 점을 당신이 간과하지 않기를 바란다.
다음 편은 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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