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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검무적 Jul 22. 2021

혼혈아에, 배운 거 없는 노비출신임에도 불구하고...

15세기 최고의 공학자가 되어 종 3품 벼슬에 오르다.

아버지는 원나라 출신 중국인이었다.

어머니는 관청에 속한 기녀로, 이른바 관노였다.

두 조건만으로도 조선시대에서는 가장 천한 천민으로 규정되기에 충분하고도 남았다.

지금이야 다문화가정이 워낙 많아

일반화되어 위화감이 줄어들긴 했지만

내가 살았던 불과 십수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혼혈아는 '튀기'였고, 놀림의 대상이었다.

하물며 신분제도가 엄연한 조선시대는

얼마나 더 심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상도 동래현에서 관노의 신분으로 있던 그가

공조 참판이었던 이천의 추천으로 세종에게 천거되어, 신분의 굴레를 뛰어넘은 조선 최고의 발명왕으로 등극한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과학자이자,

15세기 최고의 과학자로 손꼽히는

장영실(蔣英實)의 이야기이다.

사실 세종이 장영실을 뜬금없이 등용했다는 내용은 사실과 다르다.

이미 그는 태종 때부터 그 능력을 인정받아

궁중 기술자로 종사하였다.

제련(製鍊)·축성(築城)·농기구·무기 등의 수리에 뛰어났으며 1421년(세종 3년)에는 윤사웅·최천구와 함께 중국으로 유학하여 각종 천문기구를 익히고 돌아온 유학파였다.


세종과의 인연이 각별해진 것은 그가 총애를 받아

정 5품 상의원(尙衣院) 별좌(別坐)가 되면서

관노의 신분을 벗었다는 드라마적인 계기가 부각된 것뿐이다.


상의원(尙衣院)은 왕의 의복과 궁중에서 사용하는 물품을 담당하는 기관이었는데, 별좌는 종 5품의 문반직이었지만, 월급도 없는 무록관(無祿官) 직이었다.

그러니 관노의 신분을 면천시켜주기 위한 특별한 총애였음은 분명하다.

장영실의 최대 발명품으로 손꼽히는 자격루

이후 그는 천문 기구인 간의대 제작을 시작으로, 혼천의 제작을 1년 만에 완성하고

태종 대의 금속활자인 경자자의 단점을 보완한 갑인자의 주조를 감독했고,

우리나라 최초의 자동 물시계인 보루각의 자격루를 만든다.


장영실은 많은 과학적 발명품은

이에 그치지 않는다.

천체관측 기구인 대·소 간의와 휴대용 해시계인 현주일구와 천평 일구, 공공장소 설치용 해시계인 앙부일구 등이 그것들이다.

물론 이러한 천문기기들과 시계의 제작은

당시 임금이었던 세종의 강력한 지원이 없이는 제작조차 엄두도 내지 못할 작업이었다.


강수량의 정확한 측정을 위한 기구 제작에 착수해

세계 최초의 우량계인 측우기를 발명하고,

강의 범람 여부를 알 수 있는 수표를 발명하였다.

이 수표를 설치한 다리인 수표교는 청계천에 있다가 복개공사로 인해 해체되어 장충단 공원으로 운반된 뒤 재설치되어 오늘날까지 보존되고 있다.

이 공으로 '대호군'으로 특진하였다.


비교적 최근 제작된 '천문'이라는 영화를 비롯해

워낙 드라마와 영화를 통해 알려진 인물이라

장영실에 대한 이야기는 새삼 길게 하지 않겠다.

아산에 세워진 장영실의 동상

그가 겪었을 고난과 실패를 가만히 눈을 감고

그려본다.

태어났을 때부터, 아버지가 중국인이라는 이유로

어머니가 관청에 속한 기생이라는 이유로

그는 가장 바닥의 천민임을 온몸으로 느끼며 자랐어야 했다.


체계적인 교육을 받은 것도 아니었지만

그저 뚝딱거리며 만드는 것을 좋아했고

물건이 움직이는 이치에 호기심을 가졌다.


그 기술과 눈썰미가 인정되어 천거되어 궁중까지

진출하였으나 궁중이라는 곳의 특성상

천민이 재주가 좀 있다고 윗사람이나 하물며

왕에게 총애를 받는 꼴을 보지 못하는 이들이 가득했다.


일부러 시비를 걸었고, 모욕을 주었으며

농락하였고, 없는 말을 만들어 비난하였다.


그 역시 사람이었을 텐데 왜 속이 안 아팠겠는가?

그런데 그는 그저 묵묵히 성과를 냈다.

그가 연구자나 과학자라고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과학사학자들의 비난과는 별개로

그가 과학자의 지시를 받은 기능공이라 하더라도

그가 제작에 참여하고 그 솜씨로 성과를 낸 것은 사실 아닌가?

 

위의 세종실록에서 세종이 인정한 평가의 문자 그대로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저 묵묵히 성과를 냈고, 결과를 만들어냈다.


어쩌다 들렀던 호프집에서

명문대 출신도 아니고

대단한 집안 출신도 아니며

그렇다고 장사나 사업을 해서

돈이 많은 것도 아니라며

이번 생은 글렀다는 농담을 하는 젊은이들을

본 적이 있다.


그들의 생각이 한참 잘못되었다고

말해주고 싶은 것을 꾹 참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갖지 못한 것들에 대한 동경과

그로 인해 만들어진 콤플렉스는

어떤 약이나 상담으로도 해결하기 어렵다고

배웠던 내용이 생각난 것이다.


출신부터 비천하고, 태어나서부터 남에게

손가락질을 받으며 자라온 아이가

노비를 면천받아 높은 벼슬에 오르고

자신이 만든 각종 과학 발명품들이

우리나라 과학의 기반을 마련하게 되는 것은

호프집의 그들의 사고방식으로는

천에 하나 만에 하나 불가능했을

미션 임파서블에 해당한다.


시대가 변했다고?

예전에는 개천용도 있었지만

이젠 그것도 안된다고?


아니.

나는 그런 신포도 이론에 동의해줄 수가 없다.

아무리 시대가 변해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그들의 이론은 그저 중간적인 삶을 사는

주변에 가지고 있는 환경으로 자신의 삶이

결정되는 그저 그렇게 한 세상 묻혀가는

일반(사실은 일반보다 조금 쳐진)인의 삶일 뿐이다.


위인은 특별한 사람만이 되는 것이 아니다.

물론 출판사에 위인전 시리즈에 나를 넣어달라고

넣어주지도 않겠지만

스스로가 생각할 때,

그리고 내 삶을 반추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을 때

내 자식들에게 부끄럼이 없는

자랑스럽고 존경받을만한 삶을 사는 것이

위인이다.

그런 위인조차도 이젠 찾기 어려워졌다.


이유는 하나이다.

그 어려움을 뚫고 자신을 이겨내는 과정을

극복하는 사람이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돈이 많든, 똑똑하든,

잘 나가든 못 나가든

누구에게나 힘든 일이 있고

말 못 할 속사정이 있으며

고난이 있고 실패가 있다.

그 규모가 다르고 성격이 다르지만

결국 사람의 삶은 크게 다르지 않다.


당신이 그것을 극복할 것인지

그것에 굴복할 것인지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당신은 그저 그렇게

꾸역꾸역 하루하루 죽지 않고 삶을 연명할 것인가?

아니면

정말로 당신의 삶을 살아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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