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로 돈 때문에 가정을 깨겠다는 마음을 먹었다면
지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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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10년 전 뉴스를 다시 언급하는 기사가 많은 이들의 클릭수를 자랑하며 눈에 거슬리듯 튀어 올랐다.
서초동 세 모녀 살해사건.
이른바 아버지이자 남편이 아내와 자신의 두 어린 딸(당시 14세와 8세)을 존속살해하고 자신도 자살하려다가 미수에 그치고 체포된 사건이다.
워낙 끔찍한 사건들이 드라마나 영화보다 더 리얼하게 펑펑 터지는 세상인지라 뭐가 더 잔인하고 이상할 것이 있겠는가 할 수 있겠지만, 10년 전 이 사건이 세간의 주목을 집중시켰던 것은 존속살해라는 잔혹감에 더해 생활고나 경제적인 어려움이 없었음에도 한 가장의 삐뚤어진 자괴감으로 죄 없는 강남 한복판의 고급 아파트에 살고 있던 세 모녀가 죽임을 당했기 때문이었다.
추후 수사과정에서 드러났지만, 부부관계가 나쁘지도 않았다. 만약 부부관계가 안 좋았더라면 홧김에 혹은 불화로 인해 싸우다가 우발적으로 등등의 말이 붙었겠지만 회사에서 잘리고서도 그 사실을 숨기고 고시원을 얻어 타고 다니던 외제차를 그대로 타고 출퇴근을 하는 시늉까지 하며 5억이나 대출을 받아 매달 400만 원의 생활비를 아내에게 꼬박꼬박 건네주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 잔혹하기 이를 데 없는 존속살해를 저지른 가장은, 전형적인 엘리트 코스를 밟아 온 50을 앞둔 남자였다. 그는 2009년 경 외국계 건축설계 소프트웨어 회사에서 회계 및 재무파트 담당으로 일하면서 상무이사까지 승진하여 근무하다가 퇴사하고, 서울특별시 강남구에 있는 모 한의원에 재무담당으로 입사하여 근무했는데, 이때 연봉이 9천만 원에 달했다고 한다.(연봉 9천이라고 해봐야 실수령액으로 500만 원 남짓밖에 안되지만 20년 전이라는 기준으로 보면 그리 적은 금액이라고 볼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2012년 11월 원장이 바뀌면서 퇴사를 종용당했고, 그 무렵 은행에서 자기 명의의 아파트를 담보로 5억 원을 대출받았다. 그렇게 권고사직으로 일을 관둔 후 재취업에 어려움을 겪자, 아내에게 2년 동안 매달 400만 원을 생활비 조로 주었고, 두 딸에게는 실직 사실을 숨긴 채 선후배들이 일하는 사무실을 전전하다가, 2012년 12월부터 출퇴근하는 것처럼 집에서 약 1.5km 떨어진 고시원에 머물다가 오고는 했다.
취업 대신 주식투자라는 잘못된 길을 택한 그는 5억 원 중 4억 원을 주식에 투자했으며, 1억 원은 생활비로 지출했지만 투자한 금액에서 이득을 보기는커녕 약 2억 7천만 원을 날리기만 했다. 이에 대한 부담감을 느끼며 스트레스를 받고 있던 중 아내로부터도 "대출금을 빨리 변제하라"는 소리를 듣게 된다. 이에 미래가 없다는 불안감에 휩싸여 자살하기로 결심했지만, 자신만 죽으면 아내와 두 딸들도 불행해질 것이라고 생각해, 가족 살해 후 자살을 한다는 단단히 정신 나간 결심을 하기에 이르렀다.
2015년 1월 5일 11시경 강 씨는 미리 처방받아 놓은 수면제를 와인에 타서 아내 이 씨에게 건네주고, 그 시간 동안 모녀가 잠들기를 기다리며 책상에 앉아 메모를 남겼다. “미안해 여보. 천국으로 잘 가렴. 나는 지옥에서 죗값을 치를게.” 타 직계가족에게도 메시지를 남겼는데, “통장에 남은 돈은 부모님과 장인, 장모님의 치료비와 요양비에 쓰라”는 내용이었다.
새벽 3시 거실에서 잠들어 있는 아내에게 다가가 두 손으로 목을 조르고, 확실하게 살해하기 위해 스카프로 목을 힘껏 졸라 살해했다.
새벽 3시 10분, 작은 딸이 잠들어 있는 안방으로 들어가 목도리로 목을 감아 힘껏 잡아당겼는데, 작은 딸이 축 늘어지자, 살해엔 목도리보다 스카프가 더 용이하다고 생각한 강 씨는 아내의 목에 묶어두었던 스카프를 풀어 와 스카프로 재차 목 졸라 살해했다.
새벽 3시 30분, 강 씨는 큰딸의 방에 들어갔으나, 인기척을 느낀 큰 딸이 잠에서 깨어나 배가 아프다고 하자, 수면제를 건네주며 "배 아플 때 먹는 약이다"며 먹게 한 후 큰 딸이 잠들 때까지 기다렸다. 이후 강은 잠든 큰딸을 목도리로 목을 졸라 죽였다.
아내와 두 딸을 직접 죽인 이 파렴치범은, 직접 119에 전화를 걸어 "아파트에 가면 내가 살해한 아내와 딸들의 시신이 있다. 나도 죽으려고 나왔다"라고 통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수사에 나선 경찰은 이날 오전 8시 그의 휴대전화 신호가 충북 청주시에서 잡히는 것을 확인하고 일대 검문검색을 강화해, 경상북도 문경시에서 검거하는 데 성공했다.
경찰은 승용차를 타고 도주하던 강 씨가 오전 10시 47분 경북으로 들어오다가 경북대 상주캠퍼스 인근 CCTV 영상에 찍힌 것을 확인하고 추적했다. 승용차로 도주하던 강 씨는 반대 방향으로 운행 중이던 순찰차에 발각돼 1㎞ 가량 도주하다, 이날 낮 12시 10분께 경북 문경시 농암면의 한 도로에서 검거됐다. 강 씨의 옷은 모두 물에 젖은 상태였으며, 손목을 그어 자해를 시도한 흔적이 발견돼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는데, 이는 충북 청주시 대청호에서 자살을 시도했으나 미수에 그쳤기 때문이었다.
수사 결과, 그에게 주택담보대출 5억 원 외에 다른 빚이나 대출은 없었다. 결국 그의 수중에 집을 담보로 빌린 돈 5억 원 중 1억 3천만 원이 아직 남아 있었다는 점, 아내가 생활비를 아껴가며 저금한 돈이 통장에 무려 2억 원이나 들어 있다는 점, 살고 있던 서초동의 40평대 고급 아파트의 가격이 당시 기준으로만 11억 원(23년 기준으로 27억까지 올랐다고 한다) 등을 고려하면, 실수해서 날린 대출금을 갚고도 최소 7억 원에서 10억 원가량의 여유자금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양가 부모도 모두 중산층으로, 특별한 경제적 어려움이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가족들도 '부부 사이에 불화가 전혀 없었다, 두 사람이 원만한 관계였다'라고 진술했다. 이런 정황을 고려할 때, "강 씨가 어처구니없는 범죄를 저지른 이유는 성공 가도를 달리던 자신이 실직 후 계속 추락하고 있다고 느끼면서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은 탓"이라는 전문가들의 분석이 있다.
내가 굳이 헤어짐을 생각하며 힘들어하는 당신에게 이 잔혹한 존속살해의 진상을 매우 상세하게 하나하나 소개한 것은 나름의 이유가 있다.
최근 급격하게(?) 늘어난 이혼의 사유는 앞서 분석하고 언급한 바와 같이 시대적인 흐름(그것을 유행이라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자칭 개념은 없으면서 지기 싫어하는 MZ세대의 특성, 사회의 그릇됨에 기인한 외도의 폭발적인 증가 등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이혼한 이들의 사정을 속속들이 들여다보고 캐보다 보면 그들에게 의외로 경제적인 갈등이 심각하게 깔려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돈이 많은 재벌가에서부터 돈이 없어서 생활고로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딸아이의 생리대조차 넉넉하게 사주지 못하는 가정에 이르기까지 돈의 많고 적음만의 차이가 있을 뿐 그들은 돈 때문에 으르렁거리며 싸우고 서로 그보다 더 갖지 못함에 대한 원망을 상대에게 쏟아놓는다.
그런데 한 수 접어두고 한 걸음 멀찍이 떨어져 다른 사람들의 그 한심한 다툼을 보게 되면 그것이 얼마나 한심하고 어이없는 수준의 싸움인지에 대해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게 된다. 최근 다양한 방송을 통해 방영되는 이혼 위기라며 방송에 등장하는 그야말로 철딱서니 없는 부부들을 보면서 함께 출연한 또 다른 철없는 부부들이 고개를 내젓는 모습에서 우리는 그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된다.
경제적인 것이 결혼생활에 있어 아무런 영향력을 갖지 못하는 가치 없는 것이라는 고결한 논의를 하자는 의도가 아니다. 먹고사는 것, 그리고 가장으로서 가족들에게 기본적인 경제적 지주로서 사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을 해줄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의무감 등등이 모두 녹아 있는 문제이기에 결코 가볍거나 쉽게 배제할 수 있는 요소가 아님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그것 때문에, 자신의 자괴감 때문에, 자신이 연봉 9천만 원을 받고 있었고 강남의 40평대 고급 아파트에 살면서 외제차를 굴리면서 살았는데 갑작스레 그 자리에서 쫓겨났다고 해서 누구나 자살을 생각하거나 심지어 자기가 죽으면 남은 가족들이, 어린 자녀들이 제대로 살 수 없을 것이라는 망상에 사로잡혀 자기 손으로 자녀를 죽이는 말도 안 되는 짓을 벌이는 짐승 같은 것들이 더 이상은 이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만약 그가 소박한 마음으로 하루 일당 몇 만 원을 벌더라도 살아만 있었다면, 그리고 그렇게 두 딸이 잘 커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서로 보듬고 사랑할 수 있었다면, 하다못해 원래 호텔리어로 일을 하다가 전업주부로 돌아섰던 아내와 상의해서 집을 줄여서라도 무언가 함께 위기를 타개해 나가자고 노력했더라면, 그와 같은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당신이 지금 헤어짐을 생각하면서 당신 혼자서 온갖 상상의 나래를 모든 경우의 수에 대비하여 늘어놓는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좁디좁은 당신만의 생각일 뿐, 당신의 가족에 대한 동의와 상의는 배제되어 있을 뿐이다. 당신의 결혼생활이고 당신이 결정할 문제라고 착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이미 당신의 헤어짐이 주는 파급력은 당신의 배우자는 물론 당신의 자녀를 비롯하여 원가족인 부모님들에게까지도 상당한 영향력을 미칠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당신이 낳은 자녀가 당신의 소유물이 아니기에 당신 멋대로 그들의 목숨을 거둘 자격이 없는 것처럼 당신이 결혼해서 자녀를 낳고 만든 가정이 당신만의 것이니 당신 혼자서 고민하고 당신 멋대로 결정할 수 있을 것이라는 착각을 하지 말라는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를 위해 10여 년 전에 벌어진, 그리고 지금도 당신 주변에서 버젓이 벌어질지도 모를 일을 당신의 앞에 놓아둔 것이다.
당신은 그 짐승들과 과연 무엇이 다를 것인가?
다음 편은 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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