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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사랑이 슬픔이라는 이름으로 변색되어 버릴 때...

사랑한다면, 정말로 사랑한다면...

by 발검무적

지난 이야기.

https://brunch.co.kr/@ahura/1941


당신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어느 정도까지 해줄 수 있나요?


유치하지만 세월의 흐름과 상관없이 수많은 이들에게 스쳐 지나갔을 뻔한 질문 중의 하나이다. 사랑을 위해서라면 죽어도 좋다는 치기 어린 젊은 사랑에서부터 내가 사랑하는 자식들을 위해서라면 언제든 가시고기가 되어도 좋다는 눈물겨운 전통적인 부성애에 이르기까지 그 사랑에 대한 맹세는 지나칠 정도로 쌓여 왔다.


사람의 마음만큼 간사한 것이 없다고 했던가. 그렇게 죽고 못 사는 사랑이라고 했던 사람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바로 싸우고 서로 죽일 듯이 비방하고 재판정에까지 나와 전혀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도 창피한 줄 모르고 조금의 재산이라도 더 뜯어내겠다고 으르렁거리는 낯부끄러운 짓을 서슴지 않게 되는데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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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지금 헤어짐을 생각하게 된 이유나 당신이 왜 그 사람을 사랑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정말로 신중하게 당신의 수많은 남은 날들을 파트너로서 그 사람과 함께하고 싶었는지를 아무리 되뇌고 정리하고 초심으로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결국 현재 당신의 마음이 상대방에게서 돌아섰다면 그 어떤 논리적인 근거나 설명도 당신의 결정을 뒤바꾸는 데에는 효과적이지 못할 것임에 자명하다.


누차 강조한 바 있다시피, 당신이 그 결정을 내림으로 인해서, 아니 최소한 그 결정을 하기 위해 지금 당신의 생각이 정리되고 당신의 삶이 가졌던 그 무거움이 훨씬 더 가벼워질 수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허나, 지금 당신이 그것들에 대해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아프고 이것저것 생각해야 할 것들이 더 많아지고 무엇보다 당신의 마음이 불편하다면, 그래서 내친걸음이라고 또 감정이 툭 하고 불거져 올라와 이혼을 결정하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당신은 결코 홀가분하거나 행복해지지 못할 확률이 훨씬 더 크다.


상담을 하다 보면, 그리고 실제로 이혼한 당사자들에게 전방위적으로 여론조사를 하더라도 그들은 대부분 감정적으로 상대방에게 서운함을 느낀다고 한다. 그 서운함은 여러 종류가 있을 수 있겠지만, 무엇보다 가장 기본적인 내용은, ‘내가 너에게 그렇게까지 해주었는데 그 고마움을 너는 몰라주었다.’라고 한다.


아무 생각 없이 끄덕이고 있다면 당신도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부류겠다. 여기서 끄덕이지 않고 뭔가 이상하다고, 잘못되었다고 느끼는 것이 정상 범주에 해당한다. 물론 최근엔 그 정상이라는 기준조차도 희미해질 정도로 찾아보기 힘든 부류가 되긴 하였으나 어찌 되었든 두 대상이 서로 똑같은 서운함의 감정을 가지고 이미 이혼을 하고 나서까 지도 자신이 더 잘해준 것에 대해서 상대방이 고마움을 느끼지 못했다고 하는 부분으로 섭섭했다면 그것은 분명히 문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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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하면, 그 두 대상은 아직까지도 두 사람의 관계가 하나가 아니라 자신을 위주로 한 일방적인 개인관계로서의 타인으로 파트너를 인식하고 있다는 반증을 스스로 자백한 것이기 때문이다. 조금 풀어서 이야기하자면, 서운함이라는 감정을 객관화하여 풀어서 설명까지 하지 않더라도 제삼자의 입장(판사, 혹은 정신과 의사, 상담사)에서 보면, 서운한 감정을 들게 만든 것에 대한 피의자와 가해자는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다.


다만, 그것이 경우에 따라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서로 본심을 이해하지 못한 상황에서 엇나가는 경우도 있을 것이고, 처음 본심은 상대방을 위한 배려였는데 그것이 나를 위주로 한 생각에서 출발한 것의 오류로 인해 상대방이 좋아하는 것을 해주는 것이 아닌 배려로 서운함을 야기했을 수도 있다.


여기서 중요한 부분은, 그 사실적인 관계를 규명하거나 오해를 풀거나 하는 따위가 아니다. 서운함을 느끼는 것에조차, 미성숙한 이들은 결국 자신의 감정만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여 자신의 주관화된 감정이 인정받지 못한 것에서 오는 섭섭함을 서운함이라고 표현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다.


두 사람의 관계설정에 있어, 특히 부부관계의 경우 객관적으로 사실관계가 어떠한가라던가 일반적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가는 실제 그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다. 왜냐하면 결국 두 사람 간의 관계설정이 저마다 다르고 받아들이는 정도가 다르며 무엇보다 두 사람이 관계를 맺고 유지하는데 있어 서로 간에 암묵적 동의한 부분이 저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정법원의 판사조차 일반론적인 객관성을 담보하면서 부부의 이혼문제에 대한 확정적 기준을 제시하지 못하는 것이다.


예컨대, 매일같이 아이들을 챙기고, 집안일을 챙기고, 하나부터 열까지 공주님 챙겨주듯이 남편이 아내를 챙겨주면서 지냈던 가정에서 남편이 도저히 지치고 속상하고 억울해서 이제 그런 생활을 하지 않겠다고 한다면, ‘일반적인’(이 단어 자체가 굉장히 사용에 위험하다는 것을 이제 감지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이라면 공주 대접을 받다가 이제 와서 남편이 해주던 것을 해주지 않아 서운하다고 하는 언행에 비난을 보내며 철딱서니가 없다는 둥 뻔뻔하다는 둥 욕할 것이 뻔하다.


하지만, 처음 남편과 만났을 때부터, 아이들이 태어나고 십수 년을 사는 동안 그것이 사랑이라고 믿었고 당연한 패턴이라고 믿고 의지했던 여자의 입장에서는 남편이 갑작스럽게 모든 배려를 중단하는 것이 배신이고 배반이라고 충분히 느낄 여지가 있다. 조금 심하게 말하자면 여자는 이미 길들여진 상황과 동의되어 진행되었던 계약(?) 상황이 계약과 달라진 것에 불만과 서운함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남편의 입장에서는 억울하지 않은가? 어느 정도 자신이 헌신적으로 노력하면 아내도 그렇고 아이들도 그렇고 자신의 희생과 사랑에 대해서 고마워하고 가족애가 더 돈독해질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내가 어느 순간부터 그것이 당연한 권리라 누리기 시작하며 그것을 해주지 못하는 것에 대해 부족하다고 핀잔을 늘어놓거나 심지어 아이들이 자라면서 그 모습을 그대로 따라 하며 아빠가 모든 것을 챙겨놓고 배려하고 안배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고 그것도 하지 않을 거라면 도대체 뭘 해주는 것이 있느냐는 말까지 듣게 되면 영혼의 깊은 곳이 깨지는 듯한 상처를 받는 것이 이상할 것도 아니다.


결국 모두가 상처받는 이 바보 같은 상황에 잘못한 사람은 없는 것일까? 머리가 나쁘면 몸이 고생한다. 마찬가지로 진심이 진심으로 상대에게 전달되는 것을 목표로 하는지 아니면 상대방이 전혀 고마움을 전혀 알지 못하고 느끼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내가 내 마음이 좋자고 하는 일인지를 스스로 구분하지 않으면 위의 사례에서 남편이 느꼈던 것처럼 마음이 고생할 뿐이다. 그리고 50%는 스스로 자초한 것이기에 어디에 하소연할 곳도 없어지게 된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배려 따위를 하지 말아야 할 것인가? 아니면 매번 뭔가를 해주면서 그것에 대해서 고마움을 느끼도록 강아지나 고양이 훈육하듯 가르쳐 나가야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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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은 없다.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수천수만의 부부가 있다면 케이스 역시 수천수만의 경우가 있을 뿐, 그 어느 한 케이스가 정답이고 정상이며 일반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전문가는 그 어디에도 없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 관계에서 두 사람이 행복감을 느끼고 불평이나 서운함을 최소화하는 이상적인 형태로 만들어나가기 위해 서로의 동의하게 노력을 해나가야만 한다는 것이다.


한쪽에서 코스프레 옷을 입고 관계를 맺는 것에 집착하며 그러고 싶지 않은 상대에게 강요하는 것은 변태성욕일 수 있겠으나 두 사람 모두가 그런 퍼포먼스 관계에 즐거움을 느낀다면 그리고 그것에 동의하고 두 사람이 즐긴다면 그것은 아무도 변태성욕이라 욕할 수 없는 것이다.


당신이 지금 헤어짐을 생각하게 된 가장 근본적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당신은 상대방의 동의를 아직 구하지 못했거나 그것을 어떻게 구할 것인지 처음부터 단추를 끼우는 방법에 대해서 신중하게 고려하지 못했을 확률이 크다는 점을 인정해야만 한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어쩌면 가장 빠른 시기일 수 있다. 당신의 마음을 상대에게 온전히 전달하는 것만 생각한다면 그것은 이기적인 것이다. 편지에 아무리 절절한 내 마음을 쓰고 한 박스로 보내더라도 그 마음이 전달되어 답장에 교감이 이루어진 내용이 오지 않았다면 그건 그저 일방적인 스토킹에 지나지 않았을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상대방이 무조건 당신을 걷어낼 리는 없다. 일단 당신과 사랑을 전제로 남은 평생을 함께 하겠다고 결혼을 하지 않았던가?


완전 처음부터 당신이 짝사랑하는 사람에게서 사랑을 얻어내기 위한 구애과정은 스킵해도 좋다. 하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으로 이제 당신이 어떤 부분에서 서운했는지 왜 당신이 슬픈지, 그리고 당신의 고귀하고 아름다웠을 그 사랑이 왜 지금 슬픔으로 변색되어 가려던 것이었는지를 분명하게 구분하고 분석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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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사랑은 아직 슬픔으로 변색되지 않았다. 설사 변색되어 가려던 찰나였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당신이 깨닫는 순간 얼마든지 다시 원래의 사랑으로, 아니 훨씬 더 아름답고 큰 사랑의 추억으로 만들어갈 수 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당신 혼자만의 노력으로 혹은 당신 혼자만의 생각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그 기본적인 전제를 마음 깊이 깨닫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점만 간과하지 않으면 된다.


다음 편은 여기에...

https://brunch.co.kr/@ahura/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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