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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소소하고 사소해서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당신의 삶에서 가장 소중한 시간은 언제인가?

by 발검무적

지난 이야기.

https://brunch.co.kr/@ahura/1944


최근 이혼을 결정하게 된 이들의 절반은 결국 그놈의 돈 때문에, 그리고 나머지 절반은 바람난 상대방 때문이라고 하는 웃지 못할 이야기들이 서초동 법조계에는 공식처럼 공허한 메아리를 날리고 있단다.


돈? 중요하다. 자칫 내가 경제적인 부분을 너무 평가절하하여 말한다고 생각하여 풍족하게만 살아봐서 돈 때문에 치사해지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알기나 아냐며 항변할 사람들이 부지기수로 튀어나올 수 있을 법도 하다는 상상을 해본 적이 있다.


분명히 말하지만, 경제적인 부분은 결혼을 한 부부관계에서는 물론이고, 혼자서 사는 이들에게는 더더욱, 나이가 들어 자식들에게 제대로 된 봉양은 기대할 수도 없는 노년에 이르기까지 가장 기본적인 부분이라고 수십 번을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그간 글을 어설프게 읽어온 이들이 행여 내가 돈 문제를 폄하하는 것처럼 인식하게 된 이유에는 내가 그것을 최우선의 가치에 두고 있지 않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강조하였기 때문에 얻게 된 부작용 정도라는 생각이 든다. 더 많은 돈을 벌어오지 않는다고 남편을 남편으로 보지 않고, 경력 단절이 되어 아이를 키운다고 주저앉았다며 아내를 돈 먹는 하마정도로만 보는 그 같잖고 얄팍한 이들의 배금주의에 대해서 비난을 가하는 것이 조금 강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다못해 모든 것이 다 맘에 들어 보이는 연애를 할 때에도 남들처럼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메뉴판의 가격을 굳이 생각하지 않고서 맛있는 것이 뭐가 있는지를 순수한 호기심에 같이 고를 수 있으려면 어느 정도의 경제적 안정은 그야말로 필수적이다. 하물며 결혼을 해서 두 사람의 수입이 2배는 아니더라도, 함께 생활하면서 서로의 수입을 각자 관리하네 뭐 하네 하는 MZ세대가 아닐지라도, 서로 살 집을 구하고, 그 집을 더 늘려 나가고 태어날 아기를 위해 이것저것 준비하고 실제로 아이가 태어나 부족한 것 없이 지원해 주며 키우고 싶은 부모의 마음을 완성하려면 연애를 하기 이전의 젊은 날에서부터 부단히 노력하고 통장을 두둑하게 부풀려놓아야만 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 현실에 대해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하필이면 모두가 같은 시기에 쉬는 여름휴가에 남들 다 가는 해외여행이라도 가보려면 집을 얻으나 내고 있는 대출원금과 이자, 그리고 자동차 할부, 거기에 매달 들어가는 이것저것 명목들은 언제나 돈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지도 모른다.


그런데, 나는 오늘 헤어짐을 고민하고 있는 당신에게 이 뻔한 돈돈하는 걱정거리를 공감해 주기 위해 이야기를 시작한 것이 아니다. 당신을 비롯해서 돈이 좀 여유 있어서 집도 대출 없이 강남의 중형이상의 신축 아파트에 살면서 외제차를 부부가 각자 굴리고 아이가 학원을 마치고서도 여유롭게 과외를 몇 개정도는 할 수 있는 경제적인 상황을 갖춘 가정보다는 그렇지 못한 가정이 훨씬 많다는 현실에 근거하여 당신이 그간 아무렇지도 않게 홀대해 왔던 당신의 진정한 ‘행복’이라는 녀석에 대해 이야기해 주려고 돈 이야기를 꺼낸 것이다.

집에 들어오는 돈이 넉넉해서 일하는 아줌마를 쓰게 되면, 그리고 당신이 굳이 매일 같이 아침에 지옥철에 타고서 출근하지 않고 적당히 일주일의 반 정도만 일하던가 일하지 않고서 프리랜서로 가끔씩 일을 하더라도 밑반찬부터 제철과일까지 알아서 인터넷에 주문해서 냉장고에 가득 넣어놓고 유유자적하듯 배우고 싶은 것들을 배우고 여유로운 티타임을 즐기며 듣고 싶은 음악을 가만히 틀어놓고 별장에서 책장을 펼치며 일요일 오후를 맞이할 수 있다면 정말로 행복할까?


어디서 태어나 어떻게 자랐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가끔 자신이 가장 일반적이라는 특징을 강조하면서, 밥때가 되었을 때 막 새로 한 밥을 먹이기 위해 아등바등 거리며 요리를 준비하는 모습을 보면서, 혹은 일하는 아줌마가 가족이 함께 하는 공간에 들어오는 것이 껄끄럽다며 일일이 세탁기를 돌리고 빨래를 가지런히 널고 깨워주는 모습을 보면서 당신은 배우자에게 “그런 사소하고 지엽적인 일들은 누구나 할 수 있어! 차라리 그럴 시간에 돈을 벌어와! 그러면 그 돈으로 아줌마 쓰고 얼마든지 프로다운 정리와 밥상차림을 누리고 살 수 있다고. 왜 그런 구질구질한 집안일에 시간과 에너지를 쏟는 거야?”라는 망령된 헛소리를 내뱉을 수도 있다.


그게 뭐가 그렇게 틀린 말이냐고 따지고 싶은가? 앞서 몇 번이나 강조했지만, 두 사람 모두가 그런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면, 그리고 그것에 동의해서 서로 그것이 최상의 행복을 추구하는 데 맞다고 공감했다면 그것은 그 가정사일 뿐이니 맞고 틀리고를 논할 바가 아닌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 역시 그 후안무치한 헛소리를 내뱉으며 자신이 일반이고 상식임을 자처한 자의 면전에 대고 똑같이 말해줄 수 있다.


“도대체 당신이 생각하는 가장 행복한 순간들이 언제였느냐?
과연 무엇이 당신에게있어 행복이냐?”


아이가 태어나고 처음 부모가 되어 생전 처음 아이를 씻기는 법을 배우고 땀을 뻘뻘 흘리며 아이가 좋아할 만한 물온도를 맞추고 매일 씻겨주는 일에서부터 똥기저귀를 갈고 징징거리기 시작하면 안고서 다시 젖을 물리고 트림을 시키고 하는 일이 그런 이들에게는 산후 우울증이 올 정도로 정신적으로 피폐해지고 육체적으로 한계에 치닫게 하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아니, 객관적으로 말하더라도 그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그 사서 고생은 그럼 인간이 왜 할까? 당신의 부모님들은 왜 그 육아 스트레스를 받아가면서 당신이 천사같이 자는 모습을 보면서 같이 웃고, 당신이 행여 뛰어놀다가 다쳐 무릎이 깨져서라도 들어오면 그렇게 하늘이 무너지는 표정으로 같이 슬퍼했을까?


사춘기가 된 아이에게 말을 붙이는 것도 쉽지 않다면서 그저 그럴 나이니까 상관하지 말라고 내버려두라는 이들을 보면 나는 늘 똑같이 어이가 없다. 사춘기를 겪어보지 않은 부모는 없다. 어떤 식으로든 그 질풍노도의 시기는 지나온다. 그렇다고 해서, 아무 상관도 하지 않고 내가 하라는 대로 내버려 두고 그저 방치해 두는 것이 좋았다는 사람은 이제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유치하게 가족과 같은 밥상에 앉아서 밥 먹고, 맛있는 거 찾아서 가족끼리 먹으러 다니는데 사춘기의 자녀가 순둥이처럼 네네, 하고 아기 때처럼 신나게 따라주지 않을 것을 부모 역시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절할 거고, 애들처럼 부모님이 놀러 가자고 하는데 같이 어울려주지 않을 것이긴 하지만, 그래도 물어봐주지 않고 너무 당연한 것처럼 자신만 남겨두고 가족들이 따로 외식을 나가면, 같이 가자고 물어봤을 때 귀찮다는 듯이 “됐어, 난 안가!”라고 하는 것과는 또 다른 서운함이 사춘기에는 몽글거리며 튀어 올라온다.


아이가 막 자전거를 배우려고 자전거가 무서워할 때, 자전거 전문 강사가 일하는 캠프에 집어넣어 놓고 아이들끼리 재미있게 배우게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 생각할지도 모르겠으나 아빠가 뒤에서 잡아주고 불안해하는 아이의 목소리 하나하나를 느껴가면서 엄마가 뒤따라가면서 아빠에게 자연스럽게 자전거를 놓아주라고 하고 박수를 치며 좋아하는 일은 그 가정이 생기고서 두어 번이나 반복적으로 거듭되는 이벤트가 아님을, 그들마저도 지나고 나서는 안다.


가족 먹여 살리느라 아침에 나가서 밤늦게 들어와서 아이들이 어떻게 크는 줄 몰랐다고, 목돈이 필요해서 원양어선을 타고 돌아왔더니 아이가 어느 사이엔가 자신보다 목 하나가 더 커져 있다고 하는 말은, 그렇게 되는 과정을 함께 하지 못한 부모의 서글픔이 찐득하게 녹아있는 말임을 우리는 안다.


고작 해봐야 자녀와 함께 그렇게 지낼 수 있는 시간은 자녀가 대학에 입학하기 전이 전부다. 그 20년도 되지 않는 시간을 함께 하면서 매일같이 싸우고 화해하면서도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서로를 누구보다 잘 알게 되고 정말로 일일이 설명하지 않아도 뭘 말하고 싶어 하는지를 알 수 있는 가족이 되어간다.


중간고사 기말고사에 성적이 몇 점을 맞았는지 성적표가 중요한 게 아니라 무슨 과목을 좋아하고 무슨 과목을 왜 싫어하고 어떤 선생님이 좋고 왜 좋은지를 함께 식사하는 자리에서 재잘거리며 공유하고 자란 아이와 그렇지 못한 아이의 정서적 깊이가 얼마나 큰 차이를 보이는지 나는 상담케이스를 통해서 수십수백 번에 걸쳐 확인해 왔다.

돈이 많아서 운전 잘하고 싹싹한 기사를 두고 아이를 학원에서 학교로, 집으로, 과외공간으로 픽업하는 것이 더 효율적 일지는 모르겠으나 막 준비한 김밥 도시락에 행여 식을까 막 보온병에 넣은 된장국이, 한여름 시원하게 마시라고 미리 집에서부터 얼려온 생수병이 아이의 정서에는 훨씬 더 오래 남는다.


당신의 경제관념이, 그리고 당신의 효율성이 얼마나 객관성을 담보하고 당신의 삶을 윤택하게 해 주었을지는 모르겠으나 다 큰 아이가 뜬금없이 아이 때 놀던 보드게임을 가지고 나와서 가족끼리 놀고 싶다며 간식을 잔뜩 준비해 놓고 거실에 판을 벌일 때에는 아이가 이제까지 가져보지 못했던 그 무언가를 느끼고 싶어 하는 것임을 굳이 가르쳐주지 않아도 당신은 깨닫게 될 것이다.


아이가 그럴진대, 당신의 배우자가 그렇게 아이를 챙기고 가족을 챙기고 무엇을 하더라도 가족과 함께 하는 게 행복하다고 말할 때, 당신이 아무렇지도 않게 “그럴 시간에 돈을 한 푼이라도 더 많이 벌어와! 그러면 다 행복해져!”라고 찬물을 끼얹을 수 있을까?

그게 당신이 정말로 바라는 행복한 순간이던가?


다음 편은 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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