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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보며 오늘을 살아, 어제를 돌아보지 말고...

어제를 그리며 불행한 오늘을 사는 당신에게

by 발검무적

지난 이야기.

https://brunch.co.kr/@ahura/1946


부부싸움의 시작은 언제나 그렇듯 사소하고 유치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그 사소하고 별 것 아닌 말 몇 마디와 상대를 배려하지 않은 행동들이 돌이킬 수 없는 감정의 선을 넘어 도저히 수습할 수 없는 상황으로 악화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가장 좋은 갈등 해결의 방법은 당사자인 두 사람이 머리를 맞대로 가슴을 열고 무엇이 문제인지를 고민하고 연구하고 대화를 나눠가며 풀어가고 성장해 나가는 것이겠으나 어떻게 하는지를 배운 적도 없고, 굳이 그걸 배워가면서 혹은 전문가의 도움까지 받아가면서 풀 일이냐고 생각하는 이들이 적지 않은 상황인 것을 감안하면, 오히려 빨리 갈라서되 얼른 돌싱의 배지를 달고 또 다른 괜찮은 짝을 찾아 나서겠다는 허황된 꿈을 꾸고 있는 철딱서니 없는 이들이 흘러넘치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그들이 원래 가지고 있는 그 코딱지만 한 재산을 더 챙기도록 도와주겠다며 거기서 부스러기를 챙겨 먹겠다고 기생하는 변호사들이 기생충처럼 득실거리며 늘어난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어디 그들뿐이겠는가? 정신과 상담이네, 부부위기 상담이네를 표방하며 TV에서의 간접광고 흐름을 타고 온갖 인터넷 광고를 도배하며 문제 있는 부부를 해결해 줄 것 같은 그 수많은 가짜 전문가들은 실상은 그저 자신들의 돈벌이를 위해 제대로 공부하지도 않고 그저 자신이 원래 하던 루틴대로 부부들을 자신의 패턴에 맞춰 돌려가는 우를 범한다. 오히려 기초 공부도 되어 있지 않은 채 상담학 대학원이니 상담과정이니를 가까스로 마치고 그게 돈이 된다니까 매뉴얼에 맞춰 두꺼운 심리 상담지를 내밀고 분석조차 하지 않는 이들이 지천에 깔린 시대가 되어버렸다.


유치하기 그지없는 사소한 말다툼에서 시작되었을지언정, 결국 그 발끈함과 서운함의 안을 파고 들어가 보면 기본적으로 상대에 대한 신뢰의 균열, 혹은 의심, 불안함, 서운함, 자신이 존중받지 못하고 있었다는 복합적인 심리에서, 각자의 원가족인 시댁과 처가로 확장되면서 그 문제들은 언제든 터질 수 있는 부비트랩이었음을 그리 어렵지 않게 분석해 낼 수 있다.


오늘은 그중에서도 대다수의 이혼을 생각하며 법정까지 오는 이들의 대다수가 가지고 있는 잘못된 착각, 삐뚤어진 삶의 사고방식에 대해서 당신에게 이야기해주려고 한다.


‘그때 그 사람이랑 깨지지 않고 그대로 연결되었더라면, 그 사람이랑 살았으면 더 낫지 않았을까?’


이 바보 같은 상상이 그저 상상에서 끝이 아니라, 지금 헤어짐을 생각하는 심리적인 공허함이 작지만 강한 마음속 파문을 일으킬 수 있음을 아직 당신은 잘 모르고 있다.


후회를 머릿속에 마음속에 기본 탑재하고 있는 어리석기 그지없는 인간의 특성 탓에, 행여 학창 시절 사귀었던 상대가 멋진 방송 패널이 되어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있음을 확인하게 되면 괜스레 마음이 묘해질 수 있다. 게다가 그(그녀)가 그 경력을 만드느라 아직도 결혼을 하지 않았다거나 일찌감치 이미 다녀온 돌싱이라는 사실을 검색을 통해 알게 되면 현재 당신의 곁에서 늘어진 티셔츠를 입고 거실을 어슬렁거리는 당신의 배우자와 비교되는 것은 어찌 보면 인간적인 본능에 가까운 행위라고도 변명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은 당신이 배우자와의 사소하지만 그 끝은 격렬한 싸움 끝에 무작정 밖으로 나와 바에서 술 한잔을 하고 있는데 처음 보는 상대가 그런 당신을 건드려보겠다고 작업(?)을 걸었을 때, 못 이기는 척 원나잇 스탠드로 이어져 일탈을 하는 것만큼이나 지극히 짐승스러운 본능이라고밖에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다.


사춘기의 애들마저도 홧김에, “내가 기분이 나쁘니까 학교에서 혹은 집에서 나를 기분 나쁘게 했으니까 나는 막 나갈 거야, 그리고 그건 내 책임이 아니야.”라고 하며 일탈 행동을 하게 되면 어리석기 그지없다며 부모와 선생님, 그리고 친구들에게까지 욕을 바가지로 먹는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스스로에게 부끄러운 짓을 했음을 스스로가 가장 많이 후회하게 된다.


지금의 삶이 경제적으로든 심리적으로든 육체적으로든 어떤 이유로든 힘이 들 때, 만약 지금의 상대가 아니었다면,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는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그리고 다른 선택을 해서 지금의 상대가 바뀌어 있다면, 하는 따위의 상상의 소재는 웹소설이나 드라마의 소재로는 사람들의 마음을 혹하게 만들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현실에서는 연전의 ‘아이러브스쿨’을 통해 만난 동창회에 가서 불륜의 도가니 속에 몸을 던져 자신이 짐승인지 인간인지를 구분하는 테스트를 거친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저 상상만 했을 뿐이라고? 드라마에서처럼 실제로 그 사람과 다시 만나거나 불륜을 꿈꾼 적은 한 번도 없다고 변명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당신은 아직까지 내가 오늘 하는 조언의 핵심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수준에 걸쳐 있는 상태라 하겠다.


당신의 배우자를 배반했다고, 혹은 어떻게 마음을 먹는 것만으로도 당신의 심리적인 불륜을 부인하느냐고 하는 따위의 도덕적 청렴결백 강박을 강요하는 뜻이 아니다. 당신이 미안해하고 부끄러워해야 할 대상이 당신의 배우자나 당신의 자녀가 아니라 바로 어제로 고개를 돌리고 오늘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내일을 향해 시선을 향하지 못해 내내 이리저리 우왕좌왕하는 당신에게 가장 미안한 일이고, 진정 후회할 일을 하고 있다고 ‘지금’ 말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일어날 수 없는 과거의 또 다른 선택으로 이어지는 길은, 어차피 당신이 시간을 되돌려 돌아갈 수 없는 길이다. 인간은 그것이 실행가능할 때보다 그렇지 못한 상황일 때 더 절박한 바보 같은 상상과 후회를 한다. 이전에도 언급한 바 있지만 후회는 가장 빨리 하더라도 늦어진다. 내가 바람을 피우며 선물이다 비싼 레스토랑을 다니는 동안 아이들에게 작아진 옷을 대강 입으며 자신의 물건을 제대로 사지도 않고 그 좋아하던 취미들을 쓸데없이 돈을 쓰면 안 된다고 아끼며 한두 정거장은 그냥 걸어 다니는 것이 건강에 좋다며 궁상을 떠는 당신의 배우자가 덜컥 불치병의 선고를 받고 드러눕고 나서야 당신의 그 철딱서니 없음이 얼마나 천벌을 받을 행동이었는지 후회하는 것은 이미 아무런 의미가 없어진다는 말이다.

아무리 보잘것없어 보이는 현재를 살고 있는 하찮은 이일지라도 자신이 생각했을 때 화려했던 그 어느 날이 있을 수 있다. 그리고 그만의 착각이라고 폄하될지언정 그가 그 화려했을 때에 지금과는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는 선택의 기로는 분명히 있을 것이다. 중요한 사실은 그가 거쳐왔을 그 수많은 선택의 순간을 다시 돌이킬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때 현실과는 다른 또 다른 선택을 했을 경우 어떻게 되었을지에 대해서는 그 어느 누구도 알 수 없다는 점이다.


단순하고 무지하면서도 욕심만이 드글거리는 당신에게는 그저 배우자의 선택 하나에 지나지 않을 그 어이없는 상상에는 그 이전에 당신의 삶과 연관된 수많은 선택들이 이미 뽑힌 상태였다는 의미이다. 당신이 선택하지 않은 길에 대해서 지금 이미 걸어온 길 위에서, 앞으로도 더 많이 늘어진 그 선택의 길에 집중하지 못한 채, 돌아가지도 못할 그 길에 고개를 돌리고 서서 이리저리 배회하는 걸음은 다른 사람들이 바르게 앞을 향해 용맹정진하는 것에 비해 더 뒤떨어지고 쳐지는 근본적인 원인을 제공할 뿐이다.


아무도 당신에게 지금의 선택을 강요하거나 운명처럼 이 길만으로 오도록 외길수순을 조작하지 않았다. 이제까지의 모든 상황은 당신의 선택에 의한 것이고, 바로 지금 이 순간에도 당신의 앞에는 작든 크든 또 다른 선택의 길들이 펼쳐져 있다. 그런데 그 선택들에 더 신중해서 더 나은 내일을 만들고 지금 함께 길을 걸어온, 그리고 걸어갈 가족들을 곁에 두고 당신만 호자서 고개를 뒤로 돌리고 저 멀리 걸어왔던 길에서 다른 길을 갔었으면 어땠을까라는 호사스러운(?) 망상을 하는 것이 도대체 당신의 인생에 무슨 도움이 된단 말인가?


당신의 주변에도 적지 않게 있겠지만, 첫사랑을 찾겠다고 멀쩡한 결혼 깨버리고 다시 옛사랑을 만나 재혼하고 삼혼 하는 어리석기 그지없는 이들의 선택이 어떤 끝을 맞이했는지 확인했을 것이다. 대개 그 어리석은 패턴을 반복하는 이들은,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차라리 옛사랑을 다시 만나지 말았을 것을’이라며 후회를 한다. 추억이 추억으로 아름다울 수 있는 이유는 그것이 다시 그때로 돌아가 지금의 현실로 가지고 올 수 없는 그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다.


당신이 지금 갑자기 <주역(周易)>을 공부하고, 체계적으로 그 공부를 바탕으로 지금 내가 해주는 조언의 과정과 의미를 모두 이해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임을 당신도 나도 잘 알고 있다. 모두가 심리학과 철학에 정통하고 작은 것들을 놓치지 않고 관찰하고 분석하며 사람공부에 매진할 수 있다면 지금의 이혼 러시가 일어날 리가 없지 않겠는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공부와 내공이 없는 당신마저도 단 한 가지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는 진리는 있다. 앞으로 향해 가야 할 여정에 뒤를 돌아다보며 돌부리를 피해 가고 날아오는 비바람을 제대로 대비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고개를 뒤로 돌리고서 앞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자는 없다. 당신은 지금도 멈춤 없이 앞을 향해 나아가고 있고, 실제 그 욕망에 드글거리는 당신의 마음에 비추어보건대 지금의 걸음걸음이 후회로 점철되기를 바라지는 않을 것이다.

오늘을 사는 사람이 어제를 계속 곱씹으며 후회하는 것만큼 바보 같은 짓은 없다. 당신이 지금 헤어짐을 고민할 정도로 힘겹고 감정적으로 지극히 약해져 있어 그럴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당신의 배우자를 위해서나 당신의 자녀를 위해서이기에 앞서 당신 자신의 삶이 갖는 후회를 최소화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다시금 생각해 볼 시간이다.


온갖 신경을 앞에 두고 멀리 시야를 넓히고 내가 챙겨야 할, 사랑하는 이들을 챙기기에도 당신의 능력은 그리 넉넉지 않아 보이는데, 그 와중에 건방지게도 옆도 아니고 뒤를 돌아보며 다른 길을 갔더라면 어땠을까를 생각하고 있다는 모양새를 상상해 보라.


그 어찌 한심스럽지 않단 말인가?

다음 편은 여기에...

https://brunch.co.kr/@ahura/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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