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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가장 우선하는 가치가 당신을 서럽게 해도...

당신은 오늘 자신을 위해 무엇을 해주었나요?

by 발검무적

지난 이야기.

https://brunch.co.kr/@ahura/1948


나 자신이 아닌 누군가를 위해 무언가를 해준다는 것, 누군가를 위해 보이지 않는 배려를 하고 그렇게 그 사람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며 행복해하는 것, 심지어 자신의 몫을 포기하면서 혹은 자신을 우선가치로 두지 않고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누군가를 챙기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내가 짧지 않은 삶을 살아오는 동안,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을 위해 언제든 자신의 모든 것을 내놓을 수 있는 부모의 마음이나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자신의 이익이나 사회생활보다 언제나 자식이 먼저여야 한다는 생각이 모두가 똑같은 것은 아님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명분하에 가정보다 사회생활과 외부 생활에 더 무게를 두는 사람도 적지 않았고, 현실보다 더 영화같이 불륜을 저지르는데 어린 자녀가 거슬린다며 수면제까지 먹이는 정신 나간 아이엄마도 분명히 있었다.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와 ‘학교 다녀왔습니다~!’라고 말할 때, 집에 아무도 없는 것이 너무도 당연하다는 둥,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와 학원에 가기 전에 밥을 일하는 아줌마가 혹은 적당히 차려둔 냉장고 속의 음식을 직접 꺼내서 챙겨 먹고 나가는 것도 어쩔 수 없이 당연하다는 이들이 적지 않은 바 그것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적지 않은 것도 (나로서는 도저히 납득하기 어렵긴 하지만) 작금에 벌어지고 있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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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헤어짐을 고민하는 당신에게 왜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지 조금은 뜬금없다 느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미 당신이 눈치챈 것과 마찬가지로 당신이 지금 당신에게 가장 큰 가치를 차지하고 있던 가정을 깨고 가족과 남이 되어야 하는지를 고민하는 시점에 이 문제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임에 틀림이 없다. 이제까지 당신이 가족을 위해 자신의 모든 인생을 바쳤음에도 당신의 희생과 당신의 노력이 인정받지 못하는 상황 때문에 당신이 더 혼란스럽기 그지없다면 당신의 서러움이 과연 헤어짐을 생각할 정도에 이른 이유에 대해서 살펴봐야 할 것이다.


모두가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가장으로서 혹은 부모로서 경제적인 책임을 지기 위해 아이와 혹은 부부와 함께 여유로운 저녁을, 그리고 시간을 보내는 것이 여의치 않을 수밖에 없었다고 변명(?)하는 이들의 일상을 보라.


아주 냉정하게 말하자면, 맞벌이를 하는 가정의 경우, 벌이의 수준이 떨어지는 한쪽의 수입이 아이를 케어하기 위해 들어가는 지출을 모두 정산하고 나면 과연 경제활동을 하는 것이 더 큰 의미가 가지는지에 대해서 당사자를 비롯해 모두가 잘 안다.


어린 자식을 케어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 자신이 버는 돈보다 훨씬 더 많은 비효율적인 경제구조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자아실현을 위해 바깥 생활을 해야만 한다고 우기는 이들도 자신의 생각을 강조할 수는 있다. 여성을 폄하한다고 착각하고 오해하는 이들이 있을까 싶어 좀 더 궁극적으로 내가 지적하고 싶은 부분을 꺼내놓고자 한다. 자신은 가장이라고 가족들을 먹여 살리느라 바깥에서 힘드니까 가정 안의 시시콜콜한 부분은 자신에게 말하지 말라고 건방을 떠는 가장이라는 이들이 사실은 더 큰 문제이다.


바깥에 나가 돈을 벌어오느라 자식이 어떻게 삐뚤어지는지 몰랐다는 둥, 사고를 치고 나서야 경찰서나 법원에 부모의 입장에서 끌려 나와 배우자에게 언성을 높이며 ‘도대체 집안 단속을 어떻게 하고 자식을 어떻게 케어했길래 이따위 결과가 오도록 만들었냐!’라고 자기 체면을 세우겠다고 헛짓거리를 하는 이들이 보면 한숨이 나오는 것을 넘어 육두문자가 튀어나올 지경이다. 진정한 ‘가장’으로서 스스로가 챙겼어야 할 부분들이 과연 집에 생활비를 주는 것만이 전부였다면 뭐 하러 자식을 낳고 가정이라는 것을 만들어 굳이 그 아까운 돈을 가정에 쏟아붓는다는 말인가? 그리고 그 알량한 돈이 전부라면 돈을 벌게 되지 못하게 될 그 순간, 가장으로서의 역할을 상실되거나 끝이라고 생각한다는 말인가?


취미활동을 한답시고 조기 축구회를 가고, 골프를 치러 다니고, 낚시를 하러 다니고, 고가의 자전거나 오토바이를 타고 동호회 활동을 하고 다니는 시간에, 아이에게 자전거를 가르쳐주고 함께 운동하며 운동법을 가르쳐 주고, 서점에 같이 가서 읽을만한 책을 소개해주고 도서관에 가서 나란히 앉아 책을 읽고 맛있는 것을 사주는 것이 훨씬 더 가치 있는 행위임을 부정할 수 있는 뻔뻔한 부모는 어디에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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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렇게 하는 부모는 현실에 거의 없는 이유가 도대체 무엇일까? 결국은 자신이 가족보다 가치우위에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일 때문에 아이의 입학식이나 졸업식에 못 가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일일 수는 있다. 똑같은 직장생활을 하는데, 자식이 있는 사람은 자식이 있으니 여러 가지로 양해를 해주고 자식이 없는 사람은 그렇지 못하다면 그것은 분명히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 내가 지금 지적하는 것은 직장생활을 하면서 불가피하게 온전히 전업주부로서 부모의 역할을 하지 못한 이들이 모두 이기주의자라는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그것보다 더 큰 문제는, 당신이 그 어느 누구도 강요하거나 시키지 않았음에도 당신이 희생한 당신의 인생과 그간의 희생을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폄하하는 그 무지하고 생각 없는 자들의 이기주의적인 행태를 지적하는 것이다. 그리고 의외로 우리 주변에 많은 성역전 현상, 즉, 가정적인 남편을 비난하는 금전주의자 아내들의 문제를 지적하는 것이다.


이 칼럼에서 누차 강조한 바 있지만, 최소한 그 가정을 이루는 가족 구성원들 사이에 그 모든 사안이 합의가 되어 서로가 만족하고 불만이 없다면 그것 또한 또 하나의 가정일 뿐 누가 어떤 객관적인 기준이 있어 비난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다. 하지만, 어느 한쪽의 강요나 불만을 통해 내내 자신의 노력과 희생이 절대적인 가치가 아니라고 폄하되고 부정되고 비난받는 것만큼 서럽고 슬픈 일은 없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돈? 중요하다. 아이가 학원을 다니고 브랜드 운동화를 사고, 또래 아이들 사이에서 처지지 않는 삶을 영위하게 해 주기 위해서 부모로서 경제적인 지원을 해주려면 경제활동은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절대적인 비율을 차지하는 것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런데, 돈이 많아서 집안일을 해주는 아주머니를 통해서 아이에게 매번 따뜻한 밥을 해주고 운전기사가 학원에서 집을 매번 편하게 데려다준다고 해서 그 아이에게 부모가 해줄 수 있는 시간과 애정을 대신할 수 있을까?


그렇다고 단순하게 아이를 픽업하고 자동차 뒷자리에 따뜻한 차와 따뜻한 도시락, 제철과일 간식을 챙겨주는 엄마가 혹은 그 아빠가 더 훌륭하다는 단순비교가 아니다. 아직 인격이 온전히 형성되지 않은 미성년자 아이들이 아직 살아보지 않은 자신의 주요한 시기에 필요한 부모의 애정과 함께 하는 시간과 감정의 공유가 더 필요하다는 것을 판단할 길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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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하루를 시작하는 아침식사 자리에 가족이 함께 하는 것만으로 의미가 얼마나 큰지에 대해서 부정할 이들은 없다. 저녁식사를 함께 하는 자리에서 오늘 하루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요즘은 뭐가 유행하는지 뭐에 관심이 있는지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은 별도의 시간이 아니라면 식사시간 외에 따로 자리를 만들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가족이 함께 식탁에 모여 앉아 밥을 먹을 수도 없는 것이 정말로 생활비를 조달하기 어려워서 할 수 없는 일인가? 혹은 일도 하지 않는 주말에조차 가족과 함께 하며 아이와 함께 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전기밥솥에 오래된 밥을 넣어두고 아이들이 알아서 챙겨 먹게 하는 것과 매 끼니 식사 때마다 바로 한 밥을 먹이겠다고 밥을 준비하는 엄마의 마음은 사소한 듯 하지만 아주 큰 차이가 있다. 아이가 타고 다니는 자전거의 브레이크가 고장 난 것을 체크하고 바로바로 수리해 주는 일이 대단한 일이 아닐 수도 있겠지만, 아이를 케어하고 제대로 키우기 위한 마음이 먼저라면 시선이 늘 아이에게 향해 있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남들은 부러워하는 유명한 수영강사에게 돈을 더 주고서라도 수영을 가르치도록 맡기고 스키강사에게 스키를 가르치게 하는 것을 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더 많은 돈이 필요할 것이다. 그런데, 부모가 아이를 데리고 직접 가르치거나 아이가 배우는 현장에 함께 해주는 것은 그저 돈을 입금시켜 주는 것보다는 훨씬 더 가치 있다고 평가받아 마땅한 일이다.


당신이, 정작 당신이 하고 싶은 취미 따위는 꿈꿔보지도 못하고 아이의 양육과 교육을 위해 동분서주 뛰어다니고 조금이라도 더 나은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더 나은 결과를 만들어내기 위해 곁에서 도와주는 일을 해오는 것은 당신에게는 당연한 것이라 희생이라 생각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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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어느 순간 “누가 당신한테 그렇게 하래?”라건가 “그런 쓸데없는 건 어차피 돈 주고 사람 써도 되니까 그럴 시간에 그만한 돈이나 더 벌어와!”라는 모멸적인 비난을 당신의 배우자에게 듣는 순간, 당신이 그간 쏟아왔던 가족과 가정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이 모두 무너져내리는 실망감을 느끼는 것을 넘어 당신의 인생이 송두리째 부정당하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은 것 같은 마음을 모르지 않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당신은 어느 일면 바보였다. 아이들이 알지 못하는 어린 나이이고 철이 들면 당신의 노력과 애정을 알아줄 시기가 올 것이라고 막연히 기대했을지도 모른다. 아이가 지금 무엇을 고민하는지 내가 지금 어떤 힘겨운 일로 고민하는지 조차 제대로 시선을 두지 못한 당신의 배우자에게 실망한 당신은 바보다.


당신의 최우선 가치가 가정이고 가족임을 아예 바꾸라고까지 극단적인 조언을 할 수도 없고, 이제까지의 당신의 삶에 대한 태도가 한꺼번에 바뀔 리도 없겠으나 무엇보다 당신이 당신의 온전한 삶을 찾기 위해 당신은 가장 먼저 당신이 챙겨주는 가족에 대한 공감과 동의를 만들지 못해서 지금의 공허함을 맞닥뜨리게 된 것이다.


지금이라도 당신을 위한 삶과의 균형을 찾아라. 당신이 있고 나서 가족이 있고, 당신의 희생과 노력이 제대로 가치를 인정받으려면 그것이 ‘함께’여야 한다는 것이다. 당신 혼자서만 아무리 희생한다한들 그것이 공유되고 공감이 되어 가족 모두가 하나의 방향을 향하고 있지 않다면 무의미해진다는 뜻이다.


당신의 희생이, 노력이, 이제까지의 당신의 인생이, 당신의 가족을 일궈온 가장 주요한 거름이었음을 당신도 알고 나도 알고 하늘이 안다. 그러니 너무 슬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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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편은 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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