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모르면 손을 빼라.

당신의 인생에 신박한 훈수 한 점을 더한다면...

by 발검무적

지난 이야기.

https://brunch.co.kr/@ahura/1965


‘손을 빼다.’라는 바둑용어는 그 상황에서 더 이상 가일수를 하지 않고 다른 쪽으로 손을 돌려 국면을 전환하라고 할 때 사용하는 뜻으로 사용됩니다. 그런데 ‘모르면 손을 빼라’는 오늘의 가르침은 그리 간단하게 이해가 될 만한 수준의 단계가 아니라는 느낌이 듭니다.(물론 그런 느낌조차 들지 않는다면 아직 바둑도, 인생도, 문해력도 초보이기 때문이니 차차 배워나가면 될 뿐입니다.)


이 짧은 바둑 격언에는 어렵고 심오한 가르침이 숨겨져 있습니다. 그래서 이 격언은 초보에서부터 고수에 이르기까지 그 눈높이에 맞춰 깨달음을 줄 수 있는 포인트가 단계별로 안배되어 있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먼저 ‘모른다.’라는 첫마디의 의미를 어떻게 분석하는가에 따라 격언의 의미가 깊이를 달리합니다. 바둑에서 자신의 순서에 돌을 둘 때 제대로 알고서 그 돌을 두는가에 대한 기본적인 의문을 이 동사에서는 모두 담아내고 있습니다. 바둑에서 어디에 바둑돌을 둘지 명확하게 알고서 두는가에 대한 부분은 아주 어려운 질문일 수밖에 없습니다. 돌이야 어디에도 둘 수 있긴 하겠으나 그 돌을 그곳에 두는 것이 정말로 맞는 것인지 그것이 제대로 둔 것인지 알 수 있는 사람은 최고수가 아니라 바로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바둑을 이제 시작한 18급에게는 자신이 둔 자리가 맞는 자리인지 아닌지조차 제대로 알 수 없고, 자신감도 없어 늘 불안할 것입니다. 물론 겁 없이 그저 아무 데나 두는 저돌적인 초보자도 있을 수 있지요. 하지만 인생이 그렇듯이 바둑도 조금이라도 더 알게 되면 함부로 출수(出手)를 하지 못하게 되고 신중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 한 수가 바둑의 향방을 결정하는 반환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10급에게는 자신이 충분한 수 읽기를 했고 상황을 잘 알아서 두었다고 생각하는 수도, 1단의 눈에는 어설프기 그지없고 허점이 너무 많아 공격하기 쉬운 헛방일 수 있습니다. 그것은 프로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수많은 경우의 수에서 수순까지 생각해야 하는 확률을 계산하는 상황에 그 수가 과연 정답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프로조차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서로 간의 수준이 이미 프로에 와닿은 상대와의 승부에서 그 한 번의 삐끗함에서 상대가 그 실수를 놓칠 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바둑은 아마추어와 프로가 자신을 걸고서 승부를 거는 일이 벌어지지 않지만, 인생에서는 급수의 차이가, 혹은 일을 처리하고 판단하는 능력의 차이가 크다고 해서 서로를 피해 주거나 양해해 주는 일이 없으니 바둑보다 인생은 훨씬 더 가혹하다고 부르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시 본래의 이야기로 돌아와 볼까요?

그래서 바둑에서 ‘모른다’는 개념의 정의는, 본인의 기력에서는 어떻게 응수해도 만족스러운 수순을 찾지 못했다는 뜻으로 해석하는 것이 가장 적합할 것입니다. 실제로 아마추어의 바둑에서는 이런 경우가 상당히 자주 발생합니다. 그런데 이 격언에서는 이런 상황이 발생했을 때, 손을 빼라고 단언합니다. 바둑의 초보나 하수들이 상대가 둔 자리의 근처에서 과감하게 손을 뺄 수 없는 것은 거의 본능에 가깝습니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brunch membership
발검무적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글로 세상을 바꾸는 일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호기심과 희망에서 글을 저장하는 공간으로 원고지대신 브런치를 택했습니다. 많은 이들의 공감이 움직이게 되길 바라며 펜을 듭니다.

1,626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최근 30일간 49개의 멤버십 콘텐츠 발행
  • 총 186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