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이야기
나를 알아보기는 할까.
리셉션장은 영화에서 보았던 고급 사교 파티장을 연상시키는 분위기였다. 들어오면서도 느꼈었지만 어지간한 외제 고급차가 아니고서는 차를 끌고 오기가 민망할 정도로 건물은 화려하고 반짝이는 빛을 샹들리에를 통해 갖가지 색으로 물빛 머금은 듯 뿜어냈다. 연회장은 그 빌딩의 35층이었다. 여자는 그런 고급스러운 분위기나 그런 자리가 새삼스레 무척이나 어색하게 느껴졌다. 몸에 맞지 않는 웨딩드레스를 꽉 조여 입은 채 이제 같이 살아야 할 시부모 앞에서 웃고 있어야 할 재혼녀의 느낌이라고 생각한다.
부드럽게 열리는 엘리베이터 안으로 조심스레 사람들과 들어선다. 아주 부드러운 구름을 밟자마자 바로 옆에 보이던 사람들이 점점 작아질 정도로 빠르게 머리를 통째로 위에서 끌어당기는 쭈뼛한 기분. 층을 가리키는 붉은 불빛으로 가 있던 시선은 다시 흘러내려 발 코에 가 멈춘다. 그 발치 아래 깔린 고급 벨벳의 융단은 움직일 때마다 몸이 흔들릴 것 같은 상상을 자아내게 만든다. 색의 느낌이 깊다. 분명히 높고 푹신하며 부러 만져보지 않더라도 그 부드러운 솜사탕의 감촉을 느끼게 해 줄 것이 뻔하다. 한쪽으로 전망을 트여놓은 통유리는, 반대쪽으로 보이는 금색 표면과 초록색 라인의 푸른 선이 반사되며 붉게 금색으로 그을린 한강의 잔물결들이 부서지듯 쏟아져 들어온다.
혼자서 탔다는 느낌을 들게 만드는 묘한 짧은 환상에 시간이 멈춘다. 엘리베이터 문은 골드 장식으로 고급스레 은은히 노란 금빛을 내면서 중세의 어느 가문 문양을 떠오르게 만들어 바로크 양식을 연상시킨다.
저렇게 새기고 나서 부식하게 만드는 기법이 에칭이었던가?
초점을 비틀자 다시 눈 안으로 자신의 모습이 들어온다. 여자는 다시 그 안에 익숙지 않은 또 다른 여자가 들어와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나르시스를 연상케 하는 또 다른 자신과의 생경한 만남. 그녀는 지금 또 다른 자신이었을지도 모를 여자를 찾아가고 있다.
이제 조금만 있으면 만날 수 있다.
처음부터 그녀가 여자를 만날 마음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누구나 그렇지만 지나고 나면 그만인 관계는 얼마든지 있었다. 하지만 그녀에게 있어 여자는 분명히 그녀가 서른이라는 고개를 넘고, 인생이라는 고개를 넘는 동안 만날 수 있는 아주 특별한 사람임에는 틀림없었다, 최소한 그녀에게 있어서는 말이다. 그녀의 리셉션이 있다는 소식을 텔레비전과 신문을 통해 본 그 순간 그녀는 까맣게 잊혀가던 먼지가 뽀얗게 쌓여있을 여자의 일기장이 생각났다. 가만히 다가서면 천천히 이전의 모습이 떠오를 것 같은 황금연못에서 그녀는 그렇게 여자의 모습을 찾아 다가서고 있었다.
너무 놀라지는 않을까? 아니야. 알아보지도 못할 거야. 아니···
몇 번이나 여자는 다시 고개를 가볍게 흔들며 생각을 떨군다. 그때 다시 멈췄던 시간은 부드럽게 흐른다. 그렇게 부드럽게, 하지만 굉장히 빠른 속도로 엘리베이터가 올라가는 동안 그녀는 여자에 대한 기억들을 생각해내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문득 다시 자신의 앞에선 자신의 모습을 생경한 눈으로 바라본다. 금으로 치장된 표면 위로 또렷하게 그려지는 실루엣. 어깨까지 닿을 듯 말 듯한 보브식 단발머리, 아이보리색 바탕 위로, 얇은 검은 라인이 흘러내리는 깔끔하면서도 부드러운 정장 투피스. 짙은 남색으로 검게 보이는 보드라운 가죽 소재의 사슬형으로 고리가 연이어진 벨벳 핸드백. 그녀가 자신의 실루엣에서 여자의 모습을 발견했던 것은 우연이 아닌지도 몰랐다. 최소한 여자는 생각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는 그녀의 모습을 닮아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고.
딩동.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앞에 서 있던 남자가 내린다. 머쓱하게 있던 여자는 다시 헛기침을 하며 발을 내딛는다. 사람들이 들어가는 계단 끝 복도를 보며 다시 시선을 앞으로 하고 주위를 살핀다. 은은한 진초록이 섞인 카펫은 아까보다는 단단한 느낌이지만 겨우 중간 정도 높이라고 안심하고 샀던 힐이 조금은 걸음을 조심스럽게 만든다. 여자는 가능한 한 발걸음을 천천히, 그리고 조심스레 다음 계단으로 옮겨 딛으며 가벼운 설렘에 자신이 그녀에게 다가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흥분되어 가고 있음을 느낀다.
누군가를 만나기 전에 이렇게 떨려본 기분은 꽤나 오랜만이었다. 그 기분은 오히려 여자의 마음을 묘하게 안정시켜주었다. 여자는 누군가와의 만남을 설레어하는 것은 아직까지 자신에게 기다림과 설렘의 감성이 살아 있다는 것을 반증한다고 생각하기로 한다.
나도 다시 글을 쓸 수 있을지도 몰라, 그녀처럼. 아직 모르는 거야. 아무도….
자기도 모르게 자기 암시의 혼잣말들을 되뇌던 여자를 힐끗 옆의 중년 신사가 바라본다. 얼른 고개를 떨구는 여자의 앞으로 스쳐 지나듯 남자가 리셉션 장안으로 쑥 하고 들어가 버렸다.
자신이 없는데···
리셉션장 바로 앞에서 여자는 다시 아랫입술을 지그시 물고 발 코로 시선을 깔았다. 여자는 병원에 가기 싫어, 엄마의 손에 이끌리고 엄마의 엄한 눈빛을 힐끔 훔쳐보며 머뭇거리는 아이처럼 섰다. 물론 그녀가 다시 어떤 모습으로 변해 있을까에 대한 궁금함들이 발걸음을 재촉하고픈 마음도 없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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