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이야기
지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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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그 집에 들어가게 된 건 내 의사와는 전혀 무관한 일이었다.
물론 그 이전에도, 또 이후여도 마찬가지이기는 했겠지만 난 내 자신이 그렇게 고급스러운, 특히 경제적인 면의 호사스러운 삶을 영위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는 점에 대해 너무나도 확실하게 알고 있었다.
여느 동화에서 보이는 주인공들처럼 욕심이 없고, 마음이 착해서가 아니라, 그 때부터, 그러니까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그렇게 오랜 시간 병치레를 할 때부터, 나는 내가 신데렐라를 읽으며 그런 허황된 꿈을 꾸어서도 안되고 그런 일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자연스레 결정 내려 버린 터였다.
설사 그런 꿈이 있다 하더라도 그 꿈이 실현될 수 있는 확률이 오늘내일하시던 아버지가 예전처럼 벌떡 일어나 우리들의 가장 노릇을 할 수 있는 확률보다 더 희박하다는 것을 우리 집에서 누구보다 먼저, 충분하게 인지하고 있었고, 그런 꿈들은 나를 비참하게 만드는 것 외에도, 나만을 바라보며 날품을 팔며 생활을 연명하고 계시던 어머니와 나이 어리고 철없던 동생들에게 못할 짓이 될 뿐이라는 점에 대해서도 결코 간과하지 않았다.
결국 그렇게 아버지가 세상을 뜨시고 난 후, 그 생각은 이제 나의 생각뿐이 아니라 내 삶의 증거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
“아버지 약 챙겨드려라. 잊지 말구.”
“엄마! 제발!”
난 진저리를 쳤다. 이제 그 말만으로도 소름이 돋을 정도로 싫었다. 엄마는 그런 식으로 아버지의 사망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 하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에도 가끔씩 힘겹게 사는 것에 대한 정신적 고통과 괴로움들을 아버지가 있는 것처럼 행동하고 말하는 것으로 대신 위안받고 싶어 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렇게 말하고 행동하는 걸 보고 있노라면 왠지 아버지가 살아 계실 것만 같았고, 실제로 어디선가 아버지가 불쑥 튀어나와 나에게 뭘 해달라는 눈빛으로 신음소리를 내고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어 너무도 무서웠다.
“그러지 말구, 공부하다가 잊지 말구 챙겨드려야 한다.”
“······”
환자이기 이전에 우리 집안의 가장이던 사랑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긴 병치레를 겪으며 이제 그만 가족들을 힘들게 하고 죽어줬으면 하고 바라는 생각을 자연스레 빚어냈다. 처음엔 무겁다고 느끼지 못했던 짐들이 긴 여정으로 점차 무겁고 쓸모없다고 느껴져 벗어 내던지고 싶다고 생각하는 마음은 얼마나 간사한가. 나는 그런 나 자신에게 다시금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생각들을 하는 내가 그닥 별스럽지 않다고 느낄 정도의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아버지는 가족들을 묶었던 사슬을 자의와 상관없이 풀어주셨다. 그런 몹쓸 딸이라서였던지 아버지의 죽음 이후 종종 아버지가 살아 계시다는 듯한 엄마의 노망 아닌 노망스런 행동들은 나를 몹시도 힘겹게 괴롭혔다. 나는 아버지가 살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말도 안 되는 상상만으로, 아버지가 끝 방에 누워 계신다는 상상만으로, 그렇게 내 자신이 몸서리 칠 정도로 두려워할 수 있다는 사실이 내게 있어서는 결코 하기 싫은 되새김을 해야만 했다.
신들린 연기도 아니고, 아무렇지도 않게 늘 아버지가 있는 것처럼 행동하고 말하는 엄마를 보며 나와 어린 내 동생들은 그렇게 치를 떨었다.
하지만 그런 세월이 켜켜이 쌓여 훌쩍 흐르고 난 뒤에서야 나는 엄마가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 한편으로는 이해가 갔다. 그나마 환자로라도 집안의 가장이라고 방구석 한 켠에 아버지가 누워있다는 것이, 어머니에게는 의지가 되셨던 거였다.
어머니는 방에 틀어 누워있기만 아버지일지라도 가장을 대신해서 아이들을 데리고 생활을 유지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있었고, 그나마 아버지가 없다면 그런 생활들을 지탱해나갈 용기가 엄마에게는 없었을 것이다. 5년이나 되는 긴 병수발 끝에서도 어머니가 아버지를 원망하지 않으셨던 데는 다 그런 나름의 이유가 있으셨다. 그 병수발이 없었더라면 우리 가족이 피폐해질 것이 뻔할 거라는 걸 어머니는 직감적으로 알고 계셨던지도 몰랐다.
그 힘든 생활 속에서 아버지가 가시던 그해 어느 겨울밤, 말을 알아듣는지도 불확실한 아버지 곁에서 눈물을 흘리며 혼잣말로 뭐라고 계속 얘기를 해나가시던 엄마의 모습이 당시 사춘기였던 나의 뇌리에는 아직도 선명히 각인되어 남아 있다.
그러나,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엄마는 그 어린 자식들에게 그런 내색을 하지 않으면서 억지로 버텨왔던 원동력을 잃고서 차츰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그래도 남에게 손까지 벌리지는 않았던 살림도 5년간의 병수발 끝에 하나하나 다락방에 곶감 빼어먹듯 야금야금 날려버리고 되려 개미집에서 개미 불어나듯 늘어만 가던 빚은 결국 아버지의 장례와 함께 빚잔치로 모두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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