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의 조건 - 3

세 번째 이야기

by 발검무적

지난 이야기.

https://brunch.co.kr/@ahura/1980


집에 들어가는 길목에 어울리지도 않는 고급 외제 세단이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이런 산꼭대기에 프리미엄급 외제 세단을 그것도 기사가 차 앞에서 대기하고 서 있는 모습이 너무도 생경해 보였다.


“아니, 말이야 바른 말이지, 큰언니가 이러고 살 이유가 뭐가 있어?”

“됐어. 그런 소리 꺼낼 생각이면 아예 오지 말아. 얘들 들어. 쓸데없는 소리 하려거든 얼른 가. 나도 나가봐야 해!”


아파트 계단을 오르는 사이 엄마와 익숙한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렸다.


문을 열자마자 짙은 화장품인지 향수인지 싶은 냄새가 코를 찔러 들어왔다. 이모라는 여자가 눈 안에 들어왔다. 얼굴은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는 넷째 이모였다. 엄마와 친자매들이라고는 하지만 이모들에 대한 기억은 차라리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은 외가에 대한 기억만 못했다. 이모들은 언제나 자기네 잇속만을 차리고 언제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것을 빼앗길지 모른다는 아귀 같은 마음을 드러내기 일쑤였다. 특히나 외가의 소식이나 자기가 아쉬울 때만 찾아오는 것으로 우리 삼 남매에게는 유명했다. ‘그 애비에 그 자식’이라는 섬뜩한 말을 동생들에게 아무런 생각 없이 내뱉아서 나로 하여금 팔뚝을 물어뜯게 만들었던 그 넷째 이모가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외할머니의 마지막 성의라며 얄팍한 돈봉투를 내밀고 난 이후로 처음 우리 집을 다시 찾은 것이었다.


시민 아파트 방 두 개짜리를 그것도 전세로 살고 있는 언니에게서 돈을 꾸어가서는 아직까지 이런저런 이유를 달며 갚지 않는 그런 대단한 넷째 이모였다. 마치 우리 집이 뭔가 더러운 균이라도 옮길 것 같아서인지 앉은 자리에 머플러를 깔고는 앉아서 말하는 투가 늘 뭔가 베풀어준다는 식이었던 탓에 나나 동생들이 이모에게 갖는 인식이랄 것이 그닥 좋을 턱이 없었다.


“다녀왔습니다.”

라면을 사 가지고 들어오던 내 손에 낱개로 산 달걀이 들려 있던 것이 꽤나 측은했던지 딱하다는 표정을 짓는 것이 역력해 보였다. 시민 아파트를 들어서면서 이모가 아니면 절대 이런 곳에 서 있을 차가 아니라는 것을 혹시나 싶어 하며 들어섰지만 막상 이모라는 여자의 얼굴을 보니 썩 유쾌하지도 않았던 마음이 불쾌한 쪽으로 엎어져버렸다.


대강 얼굴을 무시하며 지나갔으면.


“어머 이게 얼마 만이니? 너도 벌써 시집갈 나이가 다됐구나···”

“아, 안녕하세요.”

“쓸데없는 소리 꺼내지 말아.”


엄마는 자신의 두어 치 끝의 이모를 보면서 다시금 입단도리를 시켰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이 이모는 그런 엄마의 제지에 댓구조차 하지 않고 제멋대로 다시 입을 놀렸다.


“이제 수은이두 시집을 보내야 할 거구. 사내 얘들도 있는데 방 두 칸에 이게 뭐유? 좋아요. 좋아. 내가 그럼 기본 생활비는 대줄게. 큰언니 보고 들어가 살라는 것두 아니구, 수은이만 들어와 살라는데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유? 안 그러니? 아니, 수은아 여기 좀 앉아봐라.”


이모의 너스레를 외면하고 라면과 계란을 부엌 한켠에 두고서 방으로 그냥 들어갔다. 잠바를 벗어놓고 나오는 나를 다시 다정히 부르며 동조를 구하는 이모의 모습이 일그러진 방 문켠으로 들어온다. 그 모습은 아직까지도 내 기억에 낙인찍혀있는 그대로 탐욕이 이글거리는 화장기가 짙은 욕심쟁이의 그것이었다.


“뭔데 그래요? 엄마?”

난 이모를 무시하고 부러 엄마 쪽부터 봤다.


“암 것두 아냐.”

이모를 흘기듯 보다가 체념한 듯 나를 보며 고개를 떨구는 엄마를 이모는 다시 누르고 튀어나왔다.


“수은아. 여기 좀 앉아 보라니까. 너 이번에 압구정동에 완공한 아파트 알지? 이모가 거기 이번에 입주를 해야 하거든. 뭔 놈의 법인지 몇 년은 살아야지 전세를 낼 수가 있다는 거야. 그래서, 지금 관리하고 있는 것만도 벅찬데, 직계 가족이 살아야 인정이 된다는 거야. 그러니 어떡하니? 나야 뭐 지금 살 곳이 없는 것두 아니구, 뭣보다 니 이모부 사업 때문에 좀 바쁘니? 여기저기 할 일도 많고 다닐 곳도 많고···”


이모의 얘기는 언제나 얘기를 부풀리는 서론과 자신의 입장을 높이는데 이야기의 80프로 무게중심과 에너지를 할애하곤 했다. 그래서 얘기의 본론을 추궁해야만 원하는 것을 겨우 들을 수 있는 그런 타입이었다.


“그래서요?”

“그래서요는 얘! 이 좁은 아파트에 말 만한 처녀애가 이제 턱 아래가 거뭇거뭇한 동생하고 또 영은이까지 데리고 살 수 있겠니? 그래서···”


난 말뜻을 대강 이해하고는 엄마 쪽을 봤다. 엄마는 아예 포기한 듯이 이모를 노려보던 눈빛의 노기를 풀고 다시 가슴을 쓸어내렸다.


“에휴!”

엄마가 가슴을 쓸어내릴 때마다 명치끝이 따끔따끔하면서 찔러오는 느낌은 처음엔 심리적 고통의 동일시려니 하고 지나갔었다. 그런데 이젠 엄마가 모두 체념한 듯 모두 포기하고 어쩔 수 없다는 듯 왜 이렇게까지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듯 그렇게 가슴을 쓸어내릴 때면 이젠 오히려 내속이 훨씬 더 아려왔다.


“수은이 너두 그게 편하잖니? 혼자서 50평짜리 아파트에서 사는 것도 괜찮지 않겠니? 이럴 때 아니면 언제 니가 그런 집에서 살아보냔 말이지. 괜찮잖아? 집안에 집기들은 내가 전셋집들 때문에 벌써 다 갔다 놨구 말야. 괜찮지? 괜찮지?”


집장사, 땅장사, 돈장사 이모는 이모부의 부동산 중개업이라는 버젓한 직업을 가지고 별 짓을 다하며 돈을 끌어 모았다고 했다. 그런 이모도 한창 아쉬울 때는 이모부라는 작자와 함께 와서 아버지가 쓰러지기 전에 사업의 밑천에 약간의 돈이 부족하다면서 우리 집이 이사하려고 모아둔 적금통장을 2개씩이나 깨뜨려 돈을 꾸어가고는 아직까지도 갚지 않고 있다. 그것도 결국엔 아버지가 도와주자고 결정을 내린 것이었기에 엄마는 정작 자기 동생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지금 이렇게 동생들이랑 엄마랑 살고 있는 집에서 내가 나간다면? 영은이랑 엄마는 좀 더 편하게 지내고 영준이도 훨씬 더 편할 텐데. 그런데 50평이라구? 압구정동의 50평이나 되는 아파트에서 나 혼자 어떻게 살라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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