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항일투쟁열사기(抗日鬪爭烈士記) - 15

가장 지독한 혐한파는 친한파 - 2

by 발검무적

지난 이야기.

https://brunch.co.kr/@ahura/2047


“아니, 동경외대에 있지. 한국어와 몽고어 전공인데···”


실제로 동경 외국어 대학에도 한국어와 몽고어가 한 전공이지 않다는 것쯤은 당연한 상식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대강 얼버무리고 자신의 딸을 아나운서로 만들 생각이라고 했다. 물론 1년쯤 지나고 그녀의 딸들이 예쁘지 않고 특히 아빠를 닮아 키가 너무 작아서 이상한 치아구조와 외모로 심각한 콤플렉스를 앓고 있다는 것도 우연히 듣게 되었다. 이미 그의 막내아들은 대학을 포기하고 만화가가 되겠다고 일찌감치 놀러 다닌다는 것도 연구실의 다른 학생들을 통해 듣게 된 것은 그리 시간이 오래가지 않아서였다.


하지만 사적인 것들을 모두 제외하고서라도 사토 렌코쿠는 동민에게 지도교수라는 절대 권력을 가진 존재였다. 그에게 거스른다거나 그의 언행을 비난하는 것은 적어도 공개적으로는 있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나마 결혼을 하고 동민의 곁에 지우가 함께하는 동안 동민이 혼자 지내며 렌코쿠에게 받았던 모순적인 스트레스는 많이 경감된 것이 사실이었다.


“오늘 공부는 여기까지 하고 부인을 나오라고 해서 같이 맛있는 거라도 먹으러 가지 않을래?”


렌코쿠의 애교 섞인 제안은 단호하게 거절할 수만은 없는 명령 같은 것이었다. 한 번은 ‘제발 빨리 논문을 진행하면 안 될까요?’라고 말했을 때도 렌코쿠는 굳은 표정으로 ‘아무리 박군이 많이 써와도 내가 봐주지 않으면 앞으로 진도가 나갈 수 없다는 것 모르나?’라며 쉽게 튕겨냈던 그였다. 동민은 만약에라도 그가 심술을 부리면 감당할만한 자신이 없었다.


“박군이 여자가 너무 따르는 거 알아요?”


뜬금없이 식사를 하러 간 자리에서 지우에게 심술궂은 표정으로 렌코쿠가 물었다.


“네?”


일본어 공부를 시작해서 일본어를 조금씩 알아듣기 시작한 지우가 황당하다는 듯이 렌코쿠를 바라보았다.


“선생님!”


약간 짜증 나고 당황스러운 동민이 외쳤다.


“아아! 알았다고! 지난번에 보니까 다른 여자랑 너무 사이좋게 얘기를 나누고 있길래···그냥 하는 소리였어.”


렌코쿠는 혼자서 얘기를 꺼내고는 다시 아무렇지도 않은 듯 농담이라고 말하고 말을 거두었다. 지우는 렌코쿠와 자주 자리를 함께 하면서 그가 어떤 타입이라는 것을 이미 파악한 터였다.


“난 이해가 안 간다니까, 왜 지우상 같은 능력 있고 예쁜 사람이 박군 같은 사람이랑 결혼을 했는지 말이야.”


이제 그 정도의 농담은 동민내외에게도 슬쩍 같이 웃어넘겨버릴 정도의 수준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렌코쿠가 동민 내외를 불러 지우에게 이런저런 이상한 농담을 하고 아내는 럭셔리한테 남편은 빈곤하다는 둥 인신공격에 가까운 이상한 말을 할 때에도 동민은 기분이 나빠도 내색조차 할 수가 없었다. 언제나 렌코쿠에게는 깍듯이 예의를 갖춰 말과 행동에 최고의 대우를 잊지 않았다. 지우도 그런 동민을 늘 위로해 왔다.


“오빠가 너무 완벽하고 이것저것 다 해내니까 질투가 나서 그러는 걸 거예요. 다른 나쁜 뜻이 있어서 그런 건 아닐 테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말아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지우도 렌코쿠의 언행이 심히 거슬리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자꾸만 자신들의 한국에서의 생활수준이나 자동차, 집 등의 얘기를 할 때마다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 얘기해 주면 일본이 훨씬 더 잘 산다고 무조건 우기는 렌코쿠의 의식구조를 쉽사리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뉴스만 틀면 한국소식이나 물가정세에 대해 알 수 있을 텐데 렌코쿠는 오히려 그런 정보를 눈을 가리고 귀를 막고 지내는 사람인 양 모른 척 다시 묻곤 했다.


동민이 논문 이외에도 일본의 잡지매체나 지인을 통해 원고 청탁을 받게 되자 그의 질투는 극도로 강해졌다. 렌코쿠 역시 외부 강의나 검도 관련 잡지에 글을 싣는 것에 대해 굉장한 자부심을 갖고 있는 터였기 때문에 그 반발은 오히려 더 강한 듯했다. 동민이 자신이 쓴 책을 일본어와 영어, 불어, 중국어로 직접 번역까지 해서 괜찮은 출판사를 소개해달라고 내밀었을 때 렌코쿠의 반응은 묘하게 뒤틀렸던 기억이 아직도 또렷했다.


“선생님 일전에 동경의 유명한 출판관계자들은 모두 동경대 검도부의 후배들이라고 말씀하셨었죠?”


동민이 운을 띄웠다.


“아! 물론이지. 플레이보이지 편집장에다가 고단샤나 슈에이샤 등등에 포진하고 있지. 왜? 뭐 그 사람들 소개해줄까? 내가 소개해주면 당장이라도 달려올 사람들 투성이라구!”


으쓱거리며 자기 자랑에 몰두한 렌코쿠에게 동민이 직격탄을 날렸다.


“이거, 제가 쓴 책인데요. 한국에서는 이미 출판되었던 책입니다만, 이번에 번역을 해서 일본에서도 출판하려고 하는데 어떨지 소개를 부탁드려도 될까요?”


동민이 내미는 책을 받으며 렌코쿠가 약간 당혹스러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으응? 그래? 별 걸 다했군, 박군은.”


“제가 처음에도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한국에서 출판된 책도 꽤 된다고···”

“응? 난 거짓말인 줄 알았지. 오 영희도 거짓말이라고 그랬는데···”


혼자서 책을 만지작거리며 혼잣말로 구시렁거리는 렌코쿠에게 동민이 물었다.


“예? 거짓말이라뇨?”

“응? 아니. 내가 아니라 오 영희가 좀 이상한 여자애잖아. 박군의 연구 경력이나 박군의 출판경력이 다 거짓말이라고 일본 애들한테 얘기하고 다닌다고 하더라구. 난 물론 믿지 않았지만 말이야.”

“제가 나중에 오 영희에게 확인하겠습니다. 그건 그렇고 소개해주실 수 있을까요?”

“아 그거야 뭐··· 일단 책은 두고 가.”


결국 책을 건네고 1년이 넘도록 동민은 렌코쿠에게 출판사 소개에 대한 회답은 전혀 받을 수가 없었다. 렌코쿠는 바쁘고 시간이 없었다고 말했지만, 결국 몇 번이나 다시 채근하고 나서야 바쁘고 정신이 없어서 소개를 해줄 수 없다던 그에게서 동경대 검도부 OB멤버의 연락처가 적힌 수첩에서 마지못해 적어주는 것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겨우 연락을 직접 취한 동민이 나중에 그들에게 들은 소식은 렌코쿠에 대한 너무 오래 연락을 안 하고 지냈다며 옛날 기억이 아련하다며 안부를 전하는 정도가 다였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었지만 렌코쿠가 늘 떠들고 다니는 대단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렌코쿠와 말 그대로 그저 그 옛날 같은 공간에 있어 알기만 한 사이인 경우가 많았다. 그것을 직접 확인해 보고서야 안 동민이 순진하다고 지우는 마음 아파했다. 사람을 믿어서 늘 마음이 아파지는 쪽은 순진한 사람이라는 것을 지우는 아는 쪽이었고 동민은 알고 싶지 않아 하는 편이었다.


동민의 순진함은 출판계의 편집장을 안다고 허풍을 떨었던 렌코쿠에게 순진하게 다시 글을 내밀었다. 그 글을 내밀게 된 후 사건은 훨씬 더 악화일로로 커지고 말았다.


동민이 일본 와서 만난 같은 대학 공대 교환교수에게서 받은 글을 일본어로 번역해 달라고 했던 글이었다. 학교 선배이자 유일하게 말이 통하는 사이라 쉽게 가까워진 사이였던 둘 사이에 당시 일본 만화계에서 부동의 1위를 고수했던 밀리언셀러 만화를 분석한 글이었는데 천상 글쟁이라 불리던 동민이 보기에도 그의 평론을 이끄는 시선은 탁월했다. 그 만화가 전국적을 넘어 전 세계적으로 히트를 치며 연재를 끝냈을 즈음인 당시에 따끈따끈하게 그 만화의 의미를 학술적인 느낌으로 분석한 글쓰기는 일본어로 번역하면서 읽어보아도 신선하고 충분히 주목할만한 수준이었다. 일본어로 논문을 쓰기 위해서 학술적인 글쓰기 형태를 익히기 위해 일본 논문 글쓰기를 연습하던 동민은, 만화를 국민정서적으로 선호하는 일본에서 만화를 근거로 삼아 집필된 문예비평이었다.


문제는 구체적인 그 글의 내용이었다.

https://brunch.co.kr/@ahura/27


그 만화에 대한 분석방향은 이제까지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던, 일본의 우익에 대한 우려를 나타낸 정치성이 다분한 분석 글이었던 것이다.


“이건 음... 박군은 일본어로 말하는 것은 일본인같이 하면서 글은 아직도 좀 많이 미흡한 것 같지 않아?”

“그렇게 생각하시면 제 글을 좀 더 많이 봐주시면 좋을 텐데요. 다른 분야에서는 제가 쓴 논문이 일본어 수준에서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하던데요.”


동민이 지지 않고 은근히 불쾌감을 드러냈다. 하지만 그 정도로 석이 죽을 렌코쿠가 아니었다.


“아니, 어떤 말도 안 되는 일본인이 그런 말을 하나?”

“이겁니다. 마침 오늘 최종본을 정리한 게 여기 있었네요. 읽어보시겠습니까?”


동민은 길지 않은 기간 내에 일본어로 논문을 완벽하게 쓰기 위해 사토 렌코쿠가 20대 초반부터 이제까지 쓴 적지 않은 잡글들과 논문을 모두 읽은 터였다. 렌코쿠는 믿기 힘들었지만 마츠모토와의 논문자료 수집조사의 해프닝이 있은 후로 최소한 렌코쿠에게 받은 모범으로 삼으라는 논문이나 문장은 이미 모두 몇 번씩이나 읽고 써본 동민이었다. 사실 굳이 문예비평까지 렌코쿠에게까지 내밀어 소개받을 필요 따윈 없었지만 우연히 그날 정리했던 최종본이 동민의 손에 있던 것이 계기라면 계기였다.


동민이 내민 논문의 제목에서부터 ‘우익’이라는 글자가 보이자 렌코쿠의 인상이 구겨졌다. 대강 훑어본 렌코쿠는 딱히 트집을 잡기 어려운 일본어라는 것을 알았다. 사실 렌코쿠는 논문지도시간 이외에 동민의 다른 장르 글쓰기를 본 적이 없었다. 논문지도라고 해봐야 바로 그 자리에서 처음 받은 논문의 내용은 고사하고 그냥 글을 받자마자 함께 읽어가며 자신이 보기에 느낌이 이상하다며 적당히 트집 잡고 교정해 주는 것이 고작이었다. 때문에 동민의 일본어 글쓰기가 뭔가 부족하다고 트집 잡았던 것도 사실 자신이 뭔가 확인한 것이 아닌, 연구실에서 동민이 글쓰기를 봐달라고 하고 있는 마츠모토와 타무라에게서 들은 비방정도가 다였다. 그런데 얼핏 보기에도 문예비평치곤 꽤 두툼한 분량의 정돈된 글이었다.


“논문도 아니고 이런 글까지 쓰고 번역하고 박군은 정말 대단하네. 굳이 이런 글까지 쓰지 않아도 되지 않아? 논문 쓰느라 바쁠 텐데 뭐 하러 이런 글까지 썼대? 그런데, 이 만화가 그렇게 재미있다며?”


화제를 넌지시 돌리려는 렌코쿠의 딴지가 동민은 거슬렸다. 하지만 먼저 일본어로 문장을 쓰는 것에 대해 시비를 걸었던 것부터 확실하게 해두고 싶은 맘이었다.


“읽어 보시니까 어떠십니까?”

“나야, 뭐. 만화 볼 시간도 없지. 우리 아들이 던져둔 거 아주 잠깐, 그냥 조금 봤었는데 이름만 적으면 죽는다며? 박군의 이름을 확 적어버릴까?”


어이없는 렌코쿠의 이죽거림에 어이없는 실소가 터져 나왔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긴 했다. 처음 이런 같잖은 일본식 허무개그가 나온 것이 아닌 터였기 때문이었다. 일본이 한국을 식민지로 정복하려고 하면서 현재의 한국이 발전했다는 둥 한일문제나 역사문제들이 나올 즈음이면 렌코쿠는 꼭 말끝을 흐렸다.

한 번은 수업 중에 잡담으로 독도문제를 슬그머니 꺼낼 때도 그랬다.


“박군은 다케시마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네? 아! 독도요. 그건 일본 우익과 관련 이익이 있는 어민들만 우기는 거지, 결국 역사적으로도 그렇고 국제행정상으로도 이미 한국 땅이라고 다 나와있는 거 아닙니까?”


언제나 논리적인 근거를 제시하고 상대방에게도 논리적인 근거와 이유를 묻는 동민의 방식이 렌코쿠에게는 참 까탈스럽고 불편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제까지 수많은 사람들을 이용해서 자신의 입지를 다져온 렌코쿠가 그 정도의 논리에 쉽사리 밀릴 리 없었다.


“그런데 말이지···. 사실 그 조그만 섬 가지고 니 꺼니 내 꺼니 하는 것도 웃기지 않나?”

“예?”


이번엔 또 무슨 괴변으로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하려고 드는지 동민이 의아한 표정이 되어 물었다.


“다케시마를 굳이 한국이 그렇게 군사적으로 점거하고 있으니까 일본 어민들이 무서워서 못 가는 거잖아. 그러니까 그냥 사이좋게 쓰면 되지 않을까? 굳이 사람이 사는 섬도 아닌데 왜 그렇게 니 땅 내 땅을 주장하는 거지?”


더 이상 대꾸할 가치나 논의할 대의명분이 생각나지 못하게 하는 렌코쿠만의 독특하기 그지없는 정신세계였다.


렌코쿠는 중국유학생들을 데리고 영화를 보러 다니는 것을 특히 좋아했다. 물론 별도로 보러 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 수업을 대신하여 점심을 사주거나 영화를 보러 가는 것으로 그 수업을 때우는 방식이었다. 어차피 수업에서도 별다른 것을 하지 않기 때문에 영화를 보러 가고 그나마 한 끼의 끼니를 해결해 주는 렌코쿠의 방식은 중국 유학생들에게는 서로 눈감아줄 만한 기브 앤 테이크 행위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특히 어떤 영화를 볼 지에 대한 선택권은 그의 특권이었는데, 일본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영화들이 그 주 대상이었다. 잊힐만하면 흥행하지도 않는 우익 영화를 만드는 묘한 흐름의 영화가 바로 그것이었는데, 주로 2차 세계대전 당시의 일본의 참상이나 당시 주변 나라의 식민지정책에서 일본인들이 보인 인간적인 휴머니즘을 극도로 미화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흥행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 같으면서도 묘하게 일본인들의 감정을 자극하여 묘하게 극우사상을 주입시키는 고도의 문화전략이기도 했다. 문제는 언제나 렌코쿠의 영화 관람대상이 되는 영화가 흥행영화나 할리우드 영화가 아닌 그런 영화들에 한정된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그러한 이유로, 동민은 단 한 번도 렌코쿠와 극장을 가 본 일이 없었다. 렌코쿠의 단골 영화관람 파트너는 중국 여학생이거나 신분을 밝히지 못할 입장의 여자였다. 늘 영화 얘기를 하다가 누구와 함께 그 영화를 보았냐고 동민이 질문을 던질 때면 렌코쿠는 화제를 바꿔 말을 돌리고 흐렸다.


하지만 그런 불편하기 그지없는 특징에도 불구하고 동민은 렌코쿠를 믿고 의지했다. 일본에 와서 누구보다 많은 시간을 이야기 나눴고 누구보다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낸 일본인이었으며, 다른 어떤 이유를 차치하고서라도 사토 렌코쿠는 박사학위 취득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일본의 국립대학, 그것도 자신의 지도교수였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다행히 2007년 여름예정이던 대만학회의 일본 대학 대표로서 동민은 학술적인 능력에 대해서도 공공연하게 사토 렌코쿠의 인정을 받은 터였고 사적인 질투와 질시는 배재하더라도 누구보다 연구실에서 열심히 연구에 임하는 사람이라는 공인을 받은 터였다.


동민은 렌코쿠의 수많은 역겨움을 감안하더라도 그것 한 가지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자위했다.

그러나 사토 렌코쿠는 동민이 생각하는 것만큼 공과 사를 확실하게 구분하는 냉정한 학자와는 거리가 한참이나 먼 인물이었다. 동민이 그 사실을 몸소 깨달았을 때는 이미 렌코쿠의 칼이 등에 깊숙이 꽂혀 있는 후였다.


다음 편은 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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