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항일투쟁열사기(抗日鬪爭烈士記) - 14

가장 지독한 혐한파는 친한파 - 1

by 발검무적

지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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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박사과정까지 10년이 넘게 대학에서 공부하면서 동민이 배운 것 중에 하나는 지도교수의 힘이 절대적이라는 사실이었다. 사립대가 어떠한지는 다녀보지 않아 잘 모르겠으나 국립대학에서 지도교수의 힘은 무소불위의 권력, 그 자체였다. 특히 학부에서는 느낄 수 없는 힘이 대학원에 들어서게 되면 특히나 석사를 지나 박사과정까지 들어가게 되면 지도교수와의 관계가 어떻게 형성되는가 하는 문제가 향후 미래와 관련된 행보 하나하나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온몸으로 세포 하나하나에 알알이 박히듯 경험하여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에서의 강사생활을 유지하며 번호표를 받고 기다려 교수직을 받아 안주할 것인가 일본에 나가 공부를 더하며 경력을 쌓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할 때도 그는 여러 가지로 생각이 많았다. 그리고 일본으로 떠나는 것으로 결정을 내렸을 때, 지도교수가 누가 되는가에 대한 문제로 상당히 많은 고민을 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학교 간의 협정에 의해 정해진 프로젝트로 간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에 가능한 한 자신이 원하는 역량을 가진 지도교수를 만나게 되길 바라고 또 바란 터였다.

처음 이메일로 혹은, 학교를 통해 문건을 받았을 때까지도 일본으로 떠나기 한 달 전까지 동민은 지도교수의 이름을 받아보지 못했다. 겨우 담당자에게 메일을 보내 지도교수가 결정되었다고 연락을 받은 것은 일본으로 1차 짐을 부치던 날이었다.


이름이 ‘사토 렌코쿠’라고 했다.

학교 홈페이지를 통해 겨우 알아낸 그의 전공은 중국 근세 사상이라고 적혀있고 구체적으로는 괄호 안에 주자학, 양명학, 선(禪) 등이라고 나와 있었다. 잡다하게 모든 걸 다 한다고 적혀 있는 사람치고 주전공분야가 없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조금은 걱정이 되었다. 사실 더 걱정되었던 것은 왜 그가 지도교수로 지정되었는가 하는 점이었다.

하지만 그 의문에 대한 실마리는 일본에 도착하고 만난 오영희라는 한국 여자 유학생의 입을 통해 너무도 허탈하게 흘러나왔다.


“S 대잖아요!”

“네?”

“렌코쿠 선생님도 동경대 출신이에요. 원래 소설을 전공한 스도우 선생님은 이 학교 토박이 출신이구요.”

“아, 그랬구나.”


동민의 머릿속에 그간의 의문이 탁 터지는 소리와 함께 모든 아귀가 맞아떨어졌다. 일본에 오기 전에 소개를 받았던 학부생 문재성의 메일에 나와 있던 문구와 똑같았다.


S대학에서 자기 제자가 되기 위해 이곳까지 온다는 분이 계셔서 연구실의 모든 사람들이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라던.


대학을 박사과정까지 졸업할 정도로 물리고 질리게 다니게 되면 본의 아니게 학교 안에 흐르는 파벌을 너무도 자연스럽게 목도하고 경험하게 된다. 누구의 라인이라던가 누구 사람이라던가 어디 출신이라던가 등등. 그런데 전공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중국철학 전공자가 왜 자신의 지도교수로 지정되었는가에 대한 것도 이를테면 알력싸움의 일환인 경우가 많았다. 명문대학의 유학생이 자신의 제자로 있다는 것은 나름 생색을 내는 데에 있어서는 더할 나위 없는 조건 아닌가. 그것은 일본에서만 일어나는 일은 아니라는 걸 동민은 보고 듣고 느껴왔던 터였다. 오히려 그 원조는 일본이었던가 싶을 정도로 사토 렌코쿠는 그 목적의식이 강한 사람이었다.


“S대학교에서 박사과정을 마쳤다구요?”


자기소개를 마친 동민의 모습을 보며 렌코쿠는 내심 놀라는 듯했다.


“나는 그냥 박사학위를 위해서 공부하러 온다고 하길래 학생인 줄 알았는데···, 그러면 그곳에서 강의도 했습니까?”

“네.”

“오! 대단하군요. S대학교의 선생이라니···. S대학교의 선생이 나의 제자라니··· 우리 밥이라도 먹으러 갑시다. 내가 살 테니까.”


렌코쿠는 동민을 학교 뒤편에 있는 허름한 소바집으로 데리고 갔다. 허름한 소바 정식이 1인분에 채 만원도 되지 않는 곳에 데리고 가서 렌코쿠는 부산을 떨기 시작했다.


“한국에서는 소바 같은 거 먹어본 적 없지요? 아! 돈가스는 먹어봤나?”


렌코쿠의 부산스러운 질문에 동민은 헛웃음이 튀어나왔다.


“동경과 한국은 그다지 차이가 없습니다. 모든 것이 다 똑같이 있고 물가는 현재 서울이 동경보다 조금 비쌉니다.”


동민이 아무렇지도 않게 현재 국제정세와 물가에 대해 짚어주었다. 하지만 렌코쿠는 그 당연한 사실을 쉽사리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에? 설마! 무슨 그런 거짓말이···”


렌코쿠는 한국을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동경에서도 한참이나 떨어진 시골 출신으로 일본 황실의 검도장에서 검도를 가르치던 사범인 조부의 밑에서 컸다고 했다. 시골에서 평범하게 농사를 지으며 살던 부모가 그나마 밥도 제대로 먹기 어려웠던 형편인지라 마침 적적하게 지내던 조부를 위해 그의 부모가 큰 도시로 보낸다는 생각에 그렇게 되었다고 했다.


“박군은 내 출신대학 알지?”


렌코쿠가 밥을 우걱거리고 입안에 넣은 채 동민에게 물었다.


“동경대 출신이시라고 들었습니다. 전공도 중국철학을 하셨다고, 그러면 박사논문은···”


동민이 가장 관심이 있던 것이었다. 홈페이지의 프로필만으로는 그의 주 전공 분야를 제대로 읽어내기 어려웠다. 동민은 조금이라도 자신이 연구하려는 분야에 연결되어 있는지 그것이 궁금했다.


“동경대 출신이지. 그런데 나는 대학도 2개나 나왔어. 동경외국어대학교 중국어 전공을 하고 또 대학을 들어갔지.”


나중에 알았지만, 그는 성적이 부족하여 동경대는 엄두도 내지 못해 동경외대를 졸업하고 결국 취업을 하지 못하여 평생 그의 가문에서 소원하던 동경대를 중간에 편입한 편입생 출신이었다.


“박사학위는 안 땄지. 당시 일본은 박사학위를 따지 않고 중퇴하는 것이 대세고 흐름이었거든.”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그 역시 사실과 달랐다. 그는 제대로 공부하지 못하는 태도가 문제가 되어 지도교수에게 찍혀 박사과정을 중퇴당한 경력을 지닌 인물이었다.


“내 전공은 중국 철학의 전반이지. 특히 양명학에 대해서는 전문가가 일본에 없는데 내가 유일한 전문가라고 일컬어지지.”


내내 쉴 새 없이 떠드는 그의 설명을 들으며 동민은 조금은 불안했다. 이렇게 말이 많은 경우는 그의 말속에 진실이 섞여 있는 경우라고는 현저히 적다는 것이 그의 절대경험으로 알게 된 진리였기 때문이었다.


“박군이 앞으로 하고 싶은 것 뭐지?”

“명말청초의 문예비평이론과 그 흐름을 공부하고 싶습니다.”


동민은 원래 1년 전부터 보냈던 연구 계획서를 떠올리고 그 역시 기억하고 있을 것이라는 기대 하에 차분히 그간의 연구계획을 말했다. 그러나 렌코쿠의 얼굴은 전혀 그런 것 따위에는 연연하지 않는 듯했다.


“그래? 그냥 내가 하는 분야에서 골라서 하지? 문학 쪽이잖아? 양명학 같은 거나 아니면 내가 정해주는 거 하지 않겠나?”

“예? 저는 S대학교에서 공부한 박사과정의 연구와 흐름이 연장선에 있는 분야를 공부해서 좀 더 깊이 있는 연구를 하고 싶은데요.”


동민이 의아해하는 듯한 렌코쿠의 표정을 살피며 조심스레 대꾸했다.


“그래? 일단 생각해 보자구. 원래 이 프로젝트가 2년이니까, 2년 내에 3편만 논문을 쓰면 되는 거니까, 보니까 일본어도 이 정도 하면 큰 문제가 없겠네.”

“감사합니다.”


일단 사토 렌코쿠와의 첫 만남은 그렇게 테이프를 끊었다.

이후 렌코쿠의 성향에 대해 너무도 쉽사리 파악할 수 있을만한 사건은 쉴 새 없이 이어져 나왔다. 사토 렌코쿠의 주관심사는 검도였다. 그리고 예상했던 대로 과시하는 것을 중요시하는지 주로 감투를 쓰는 것을 좋아했다. 하지만 감투에서 이어지는 업무는 지독히도 싫어했다. 예를 들어 동민과 함께 공부하는 일주일에 한 번 있는 논문지도시간에는 늦게 와서 사담 따위로 일관하기 일쑤였고 청강으로 들어가는 학부 수업에는 전날 본 한국 드라마와 최지우의 아름다움에 대해 논하는 시간이 본 강의내용보다 훨씬 많았다. 물론 학생들도 반발을 할만하다고 여겼지만 어느 누구 하나 그의 그런 행동에 제지를 가하는 학생은 없었다. 일본 학생들마저도 그저 그렇게 시간을 때우고 단위를 받으면 그만이라는 분위기가 팽배한 터였다.


렌코쿠의 주요 관심사가 검도라는 것은 그 지역의 검도 시합이라던가 동경에서 간혹 있는 시합들에 심판으로 불려 나가는 것을 즐겨했다는 점만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실제로 검도를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다. 검도 7단인 그가 8단이 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연습량도 정신수양도 아니었다. 그는 술을 잘 마시지 않으면서도 여자들이 있는 술집에 가는 것을 좋아한다는 소문이 있었다. 그 소문도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 나온 것이 아닌 간혹 가다 나오는 자신이 무엇을 하고 다니는가에 대한 말실수에서 튀어나온 진실이었다.


연말이면 가라오케를 너무 많이 다녀서 목이 쉬어 강의를 휴강하는 경우도 있었다. 일주일에 한 번 있다는 검도 연습에도 늘 참석한다고는 하지만 실제 검도 4단이었던 동민이 일본의 검도를 가르쳐달라고 했건만 2년이 넘도록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절대 검도장에 데리고 가질 않았다. 무엇보다 검도를 평생 해왔다는 렌코쿠는 과체중에 비만으로 인한 당뇨가 있었다.


렌코쿠가 동민에게 지극한 관심을 보였던 적은 2년여간 단 한 번이었다. 동민이 결혼을 하고 아내 지우를 일본으로 데리고 왔을 때였다. 렌코쿠는 지우가 일본에 도착한 것을 기념으로 자신이 한턱 쏘겠다며 동민 부부를 자신이 잘 아는 횟집으로 불러냈다.


동네의 조그만 전통 스시집에서 동민 부부는 식사보다는 우연치고는 너무 황당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텅 빈 동네 허름한 횟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약을 미리 해뒀다며 분잡을 떠는 것에서부터 이미 예상되었던 해프닝이었다.


두 사람과의 대화이기보다는 앞에서 회를 내주는 주방장이자 가게 주인이 렌코쿠와 검도동호회의 동기라는 것은 대화의 서두에서부터 알고 있던 일이었다. 렌코쿠는 동민내외를 그들에게 소개했다.


“이 사람은 내 제자로 S대학교에서 선생을 하다가 내 제자가 되려고 여기까지 온 학생이고, 여기 키가 훤칠하게 큰 분은 박군의 사모님인데, 서울에서 치과의사시고 자기 병원을 가지고 있는 부자라네. 내 제자는 이 정도 급이라구.”


듣고 있자니 낯이 간지럽고 은근히 부아가 나서 얼굴이 달아올랐다. 하지만 동민은 일본어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지우를 위해 그 어이없는 대사들을 쉴 새 없이 통역해 주었다. 가까이서 동민의 아내 지우에게 인사를 하면서 그 주접은 빛을 발했다.


“아! 영광입니다. 제가 박군을 지도하고 있는 사토 렌코쿠입니다.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렌코쿠는 순진무구한 얼굴에서 나오는 미소를 보며 지우는 자신을 환영해 주는 이 땅딸보 뚱뗑이 아저씨가 마음에 들었다. 일단 악의가 없어 보였고 자신이 내미는 손을 몸을 부들거리며 만지는 모습이 너무 순진해 보여서였다.


“예. 김 지우입니다. 남편이 큰 신세를 지고 있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간단하게 한국에서부터 외웠던 일본어로 인사를 하자 렌코쿠는 아예 자리에서 펄쩍 뛰듯 팔딱거리며 즐거워했다.


“일본어도 너무 잘하는군요. 이름이 내가 너무너무 사랑하는 최지우와 똑같아요. 원래 그렇게 키가 큽니까? 키가 어떻게 됩니까?”

“173입니다만···”


동민이 대신 통역해 주자 렌코쿠는 최지우의 키와 똑같다며 연신 지우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어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끊이지 않았다.


“저는 한국이 너무 좋아요. 한코쿠 여자배우들은 넘무 예뻐요. 최지우 싸랑해요.”

“한국어도 하시네요?”


엉성한 한국어에 지우가 반색을 보였다.

첫 만남에서 기획된 우연은 지인의 가게를 예약한 것에 그치지 않았다. 그들이 자리 잡은 가게로 들어서는 손님이라는 이들이 저마다 렌코쿠와 인사를 나눴다. 사람들이 들어올 때마다 렌코쿠는 손을 들고 벌떡 일어나 인사를 하며 그들에게 지우와 동민을 인사시켰다. 그들은 대부분은 그 지역에 살고 있으면서 렌코쿠와 검도 혹은 여러 가지 관계로 알고 있는 사이인 듯했다.


식사를 하면서 사토 렌코쿠의 부인이 원래 중학교 교사를 하다가 이 지역으로 오게 되면서 시의원을 시작으로 정치를 시작했다는 것을 알았다. 렌코쿠는 대학교수를 하면서 자신의 아내 얼굴을 보기가 어렵다는 투정까지 부렸다.


“자기는 국회의원까지 하겠다고 하는데, 모르는 일이지요 뭐.”


그렇게 말하면서도 박장대소를 하고 자신의 제자내외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들인가 주변에 앉아 있던 일본 친구들과 심지어 나중에 나타난 나이가 70이 다 되어가는 자신의 검도사범까지 동민의 내외는 영문 모를 통과의례라도 받는 느낌이라 회가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몰랐다.

언젠가는 한번 렌코쿠의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선생님은 자녀분이 몇 명입니까?”

“딸 둘에 아들이 한 명. 우리 두 딸은 모두 동경에서 대학을 다니지. 내 대학 후배이기도 하지, 내가 다닌 대학을 다니고 있거든 큰 딸은.”

“그럼 동경대에···?”


다음 편은 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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