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밑공작의 대가 - 1
지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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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고 이제 그냥 한국으로 돌아가는 게 좋지 않냐고 하더라구, 사토가.”
남편의 말에 지우는 어이가 없는 침묵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남편이 굳이 한국에서의 안정된 교수직을 선택하지 않고 더 큰 세계로 나가기 위해 또 하나의 박사학위를 위해 공부하겠다고, 그래서 일본으로 나가겠다고 했을 때도 반대하지 않고 따랐던 그녀였다. 하지만 이제까지 2년이 넘도록 일본에서 어린 학생들 틈에서 자존심 죽여가며 온갖 스트레스 속에서 참고 공부해 온 남편에게 지도교수라는 사람이 그런 말을 하다니, 자신의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처음 자신이 일본에 가서 인사를 나누고 나서, 사토 교수와는 자주 식사를 함께 했었고, 한국어를 가르쳐달라는 핑계로 개인적으로 몇 번 만났던 터라 그가 남편의 지도교수로서 뿐만 아니라 한국인에게 우호적인 사람이며, 무엇보다 남편과 자신을 가장 잘 이해해 주는 유일한 아군이라고 생각했던 터라 남편의 말을 선뜻 믿기에도 어려웠다.
하긴, 그가 아무런 의미 없이 우호적이기만 한 인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 같은 순진한 얼굴을 하고 아무런 생각 없이 늘 뭔가 잊었다고 덤벙거리고 호들갑을 떠는 뚱뗑이 일본 아저씨의 모습에, 공부를 하기 싫어해서 남편이 논문지도나 연구를 함께 하자고 하면 도망가거나 하는 모습이 사람이 나쁘다고만은 할 수 없다고 그를 변호까지 했던 그녀였다.
하지만, 일본에서 임신으로 하고 남편이 디스크 수술을 받기 위해 한 달간 병원에 입원했을 때, 굳이 동민이 비틀거리며 허리를 움켜쥐고 있는데, 얼굴을 보고 입원에 대한 대면보고를 받겠다고 우겼을 때부터 이미 사토에 대한 인간적인 신뢰는 버린 지 오래였다.
동민을 질시하고 모함하는 이상한 연구실의 어린학생들이야 그렇다손 치더라도 그런 루머에 넘어갈 사토가 아니라고 믿고 있었는데 남편의 존재가 한국으로 내쫓고 싶을 만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한국에 남편과 함께 들어오기 직전, 만삭의 몸인 자신에게 도시의 야경을 보여준다는 2년 전의 허풍 어린 약속을 지키겠다고 기어코 자신의 차에 태워 그 안개 낀 언덕을 꾸역꾸역 올라가지 않았던가.
남편이 얼마만큼 심약한 사람이고 이번 사건으로 인해 얼마나 고민하고 끙끙 앓을까에 대해 알고 있던 그녀였기에 남편에게 일단 방학 중이니 한국으로 들어와 종합검진이라도 받아보자고 해두고는 사토 렌코쿠에게 이메일을 썼다.
정식으로 메일을 보내는 것은 처음이었지만 어색한 일본어라고 할지라도 그에게 확실하게 의사를 타진해 볼 필요가 있다고 지우는 생각 했다.
사토 선생님에게
오랫동안 연락을 못 드려서 죄송합니다.
한국의 김 지우입니다.
처음으로 이렇게 선생님께 이메일을 보냅니다.
저의 이 서툰 일본어를 아무쪼록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이렇게 편지를 쓰게 된 이유는 선생님께서도 예상하고 계실 거라 여깁니다.
8월에 한국으로 남편과 함께 돌아와 남편이 선생님께 안부 편지를 보내고 답장이 오지 않자 뭔가 불길한 예감이 든다며 내내 날카로워진 것을 보며 저 역시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습니다. 워낙 바쁘신 선생님이니 안부편지에 답장이 없는 정도는 신경 쓰지 말라고 충고했지만, 저 역시 남편이 한국에 나왔을 때마다 연구실 학생들의 모함과 루머가 있었던 것을 생각하면 그다지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았습니다. 그리고 난 후, 남편은 제대로 먹는 것도 그렇고 제대로 자는 것도 하지 못할 정도의 날카로운 정신상태가 계속되었습니다. 한국에 와서 제대로 휴식을 취하는 것은 고사하고 그토록 좋아하던 공부마저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힘겨운 나날을 보냈습니다. 결국 피로에 지쳐 쓰러진 남편을 데리고 병원을 갔더니 신경성 위경련과 극도의 과로라고 들었습니다. 아무래도 남편의 건강상태가 걱정되어 병원에 간 김에 건강 정밀진단도 받고 돌아왔습니다.
제가 이렇게까지 구구절절한 사연을 적는 데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제가, 일본에 있을 당시 경험해서 알고 있는 연구실의 대학원생들은 거의 유치원생 수준으로 근거도 없는 루머를 만들어 내어 그 사람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비방하는 것이 익숙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 어처구니없는 원생들과 함께 어울려 공부하는 과정에서도 지도교수인 선생님께서 저희 부부를 너무나도 따뜻하게 감싸 주어 남편의 성실성과 연구능력을 인정해 주시고 이해해 주셨기 때문에 저는 제가 출산을 위해 한국에 나와 남편이 혼자 있는 기간 동안에도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제가 한국으로 떠나오기 하루 전 야경을 보러 갔을 때도 선생님께서도 아무 걱정할 것이 없다며 저에게 말씀해주시지 않았던가요?
그렇게 믿고 있었는데, 이번에 남편이 일본에 돌아갔다가 선생님을 통해 들었다며 어이없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남편을 통해 대만학회에서 생겼던 사건에 대해서는 저 역시 대강 들었습니다. 제가 너무도 놀랐던 것은 선생님이 다른 학생들의 말만 믿고 이유나 근거도 없이 무조건 남편을 탓했다고 하는 이야기였습니다. 저는 그 이야기에 남편이 과장해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까지 생각했습니다.
모두가 수준이하라고 선생님께서 판단하고 위로해 주시며 이끌어준 남편입니다. 남편이 일본에서 공부하는 데 있어 마지막 신뢰의 보루였던 사토 선생님께서 그렇게까지 남편을 믿지 못하고 무조건 자퇴를 하고 한국으로 돌아가라는 협박을 했다니 도저히 믿기지 않습니다. 이미 선생님은 내가 치대 대학원에 진학하기로 예정되어 있는 것을 알고 있는 선생님이 그런 식으로 말한 것을 보면 이제 막 보자는 식으로 나오는 것이 아닌가까지 의심하게 됩니다. 선생님은 더 이상 더러운 꼴을 보지 않고 안정된 한국의 생활로 돌아가라고 마치 남편과 저를 생각해 주는 것처럼 말씀하셨다고 하지만 선생님이나 제가 아는 남편은 자신이 문제가 있어 등을 보이고 도망치는 패배자가 되고 마는 것이라면서 자신의 신념을 꺾을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제가 일본에 있는 동안은 물론, 이번에 혼자서 일본에 돌아가도 이상한 루머자체를 만들게 하지 않기 위해 연구실에 출입을 하지 않았던 남편이었습니다. 그렇게까지 치욕적인 행동을 하면서까지 자신의 연구만을 위해 노력했던 남편을 선생님이 이해할 수 없다면 굳이 남편이나 제가 일본에 더 이상 남아있을 아무런 이유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견디기 어려운 곤욕스러운 나날이 계속되겠지요.
월요일에 나온 건강 진단의 결과가 당분간 절대 안정을 취하지 않으면 컨디션이 점차 더욱 나빠질 위험이 있다고 들었기 때문에 남편에게는 ‘뭔가가 발견된 것 같으니 조직검사를 받아봐야 한다고 하니까 일단 한국으로 귀국하라.’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남편은 절대로 한국에 돌아와서 휴식을 취하지 않을 사람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일단 남편이 다음 주 한국에 돌아오면 당분간은 아무것도 하지 않게 하면서 절대 안정을 취하도록 할 생각입니다. 선생님도 잘 알고 계실 거라 생각합니다만, 남편은 겉보기로는 강해 보여서 오해를 살지 모르지만 마음은 너무 약하고 순수해서 상처받기 쉬운 공부밖에 모르는 학자입니다. 그렇게 순진하고 세상모르고 학문만을 생각하는 남편을 지도교수인 선생님이 아니면 누가 보호해 준다는 말입니까?
남편이 이번 문학부 교수 임용에 지원했다고 들었습니다. 만약 교수에 채용되게 된다면 현재 원생 신분을 그만두게 되어 더 이상의 비방을 신경 쓰지 않아도 좋을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남편의 힘이 되어주십시오.
재차 부탁드립니다.
제가 돌아가기 전까지 남편이 상처를 입어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남편의 힘이 되어 주세요.
김 지 우
2007년 10월 14일
남편 동민이 사토 렌코쿠 교수와 마지막 만남을 갖고 돌아왔던 금요일의 저녁 남편과의 통화 이후 지우가 던질 수 있는 마지막 카드였다. 물론 사토 렌코쿠가 얼마만큼 믿기 어려운 인물인가에 대해 알고는 있었지만 무엇보다 귀가 얇고 남편이 그에게 얼마나 깍듯했는지에 대해 알고 있었기에 해볼 수 있는 마지막 카드였다. 최소한 자신의 지도학생을 챙기는 것은 한국은 물론이고 일본에서도 국립대학에 남아있는 최후의 자존심이라고 지우는 믿고 있었다. 하지만 하루도 지나지 않아 도착한 답장은 그녀의 그러한 기대를 산산이 부숴버리고 말았다.
삼가 아뢰옵니다 친애하는 김 지우 님
사토 렌코쿠입니다. 편지 감사합니다. 뱃속의 아기는 순조롭습니까?
대만이 학회가 끝나고 모두가 귀국한 후, 유하즈 선생을 통해 참가했던 학생들로부터 발표가 성공적이었다고 보고를 받고 기뻐하였습니다.
남편이 접대를 했던 대만의 정치 대학의 여학생과 트러블이 있었다고 하는 보고는 여러 명의 학생들로부터 있긴 했습니다만, 나는 ‘또 인가’싶은 생각에, 대단한 문제가 아니라면 그냥 흘려버려도 되겠지 하고 지나쳤습니다. 부군의 안부메일에 답장하지 않았던 것은, 당시에 내가 너무 바빴던 탓으로 다른 의도는 전혀 없었습니다. 부군이 그렇게까지 신경을 쓰고 스트레스를 받을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9월5일에 내가 지도하는 여학생으로부터 상담이 있었습니다. 내용인즉, 남편과 대만에서 트러블이 있어, 남편에게 공포감을 느꼈기 때문에 얼굴을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두근두근거려 몸이 불편해지므로, 나의 수업에서 남편과 동석할 수 없기 때문에, 쉬게 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요사이, 타무라 군도 등교할 수 없는 정신 상태가 되어버려, 더 이상 트러블로 인해 남편을 포함하여 내 연구실에 환자가 늘어나는 사태는 피하고 싶었습니다.
사실, 남편이 무서워서 수업에 출석할 수 없다고 하는 학생이 나온 이상, 지도교관으로서 그 여학생에 관여하지 말라고 남편에게 주의를 주지 않을 수는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남편을 둘러싸고는 이번이 벌써 세 번째 사건입니다.
현재, 대만에서의 사건에 대하여 동석한 사람들로부터 사정을 청취 중입니다만, 남편에게 있어서 유리한 상황이라고는 말하기 어렵다고 생각됩니다. 남편이 한국으로 돌아가 내게 연락이 없다며 신경질적이 된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까? 조금이라도 자신이 뭔가 잘못한 것이 있으니까 대만에서 있었던 자신의 잘못된 행동을 감지했기 때문에 불안해서 그랬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것이 나의 이성적인 판단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괴로워하고 스트레스를 받는 것보다는 그냥 귀국하는 편이 좋지 않겠느냐고 재삼 권했습니다만, 남편은 본 대학의 교원에 응모한다고 말하며, 내가 말하는 것을 들을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번 교원응모는 일본어나 한국어의 교사를 모집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언어학의 전문가를 모집하고 있으므로, 내가 보건대 채용의 가능성은 전혀 없습니다. 현재의 상황에서는 추천도 해줄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최근 2년여간, 남편이 열심히 공부한 것은 누구보다 내가 제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조사의 결과에 따라서는 무조건 변호해 줄 수만은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우 씨가 임신 중이며, 불쾌한 일들에 대해서는 가능한 한 듣지 않게 하려고 했습니다만 이렇게까지 되었으니 현재 상황을 알려드릴 수밖에 없겠군요.
현재, 세크하라의 문제에 대하여 일본의 국립대학에서는 민감하고 엄격한 대처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조기에 자신의 선에서 그냥 귀국되는 것이 문제를 표면화시키지 않는 제일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남편에 있어서도 다른 학생에 있어서도 ‘서로 관여하지 말라’고 했던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현명한 지우 씨라면 나의 괴로운 마음을 이해할 수 있지 않습니까?
나는 남편을 포함하여 내 연구실의 학생이 다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습니다. 남편은 다음 주 월요일에 귀국한다고 들었습니다만, 별 자극 없이 편하게 요양하도록 조치해 주세요.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내가 너무 바빠서 안부편지에 답장하지 못했던 사실만으로 신경쇠약이니 과로이니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것은 보통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최악의 불명예스러운 사태를 피하기 위해서도, 조기에 모든 것을 정리하고 귀국하는 것만이 제일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내 생각에는, 불쾌하고 억울한 상황을 계속 맞으면서 굳이 일본에 머물면서 공부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듭니다. 굳이 더러운 꼴을 봐가면서 일본에서 계속 공부를 하는 것보다는 한국에 돌아가는 것이 좋다고 하는 지우 씨의 의견에 찬성입니다. 남편의 자존심을 손상시키지 않도록, 잘 설득해 주세요.
사토 렌코쿠
2007년 10월 14일
다음 편은 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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