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항일투쟁열사기(抗日鬪爭烈士記) - 20

일본 국립대에는 어떤 사람들이 오는가? - 1

by 발검무적

지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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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에서 온 유학생이 일본 국립대학에 도착하게 되면 당연한 일이긴 하지만, 아무런 정신이 없다. 그나마 학교 간의 프로젝트로 개인 유학이 아닌 공식적인 장학금을 받는 정부장학생이나 국비 유학생의 경우는 국립대 측에서 ‘배려’라는 명목으로 공항에 보란티어(자원봉사자) 학생을 보내준다. 그러나 그것이 얼마나 격식만을 위한 배려인가에 대해 동민은 일본에 오던 첫날 온몸으로 실감할 수 있었다.


1년 이상을 계획하고 일본에 오는 유학생은 당연히 짐이 많을 수밖에 없다. 특히나 물가고가 만연해 있는 일본에서 생활하기 위해 자신의 옷이나 책 짐은 물론 사소한 것 하나라도 챙기게 되면 그것은 모두 엄청난 짐이 된다. 한참이 걸리는, 가장 저렴하다는 우체국 택배를 이용한 해상운송을 이용하더라도 20킬로그램 한 박스에 7,8만 원은 감수해야만 한다.


처음 일본으로 떠나던 동민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나마 학교에서 제공하는 숙소를 들어갈 수 있게 된 것만 해도 동민에게는 행운이었다. 기숙사비용은 물론 무료가 아닌 개인이 지불해야 하는 것이었지만 30년도 넘은 그 낡은 기숙사마저도 주변 집값에 비해서는 어마어마한 가격차를 보이기 때문에 그곳에 들어가기 위해 외국 유학생들 간에 엄청난 경쟁이 붙는다는 것도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다.


짐을 해상운송을 이용해서 부치고서도 인천공항에서 최대한 짐을 계산해서 들고 들어간다고 했건만, 결국 오버차지를 해서 10만 원의 비용을 더 내고서 낑낑거리며 짐을 들고 일본 공항에 도착한 순간, 마중 나온다는 학생들과 만난 순간 조금은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그 무거운 짐을 조금이라도 들어줄 생각 따위는 하지도 않았다. 여학생 한 명과 남학생 한 명이 한 조가 되어 나온 그 어색한 만남의 자리에 진정한 ‘배려’라고는 그 어디에서도 엿볼 수 없었다.


그들도 처음엔 동민의 무거운 짐 가방을 보고 손을 댈지 말지 고민하는 듯했다. 그리고는 버스 정류장이 있다면서 고개를 홱 돌려 그곳을 향해 성큼성큼 먼저 발걸음을 옮겼다. 인천에서 공항 리무진을 타는 것처럼 늘 그러는 것이려니 생각하고 따라갔지만 똑같은 비용에 한국돈으로 2천 원가량의 금액차이로 지하철을 탈 경우 버스 이동시간의 절반정도의 시간에 학교까지 도착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동민은 어이가 없었다. 공항에서 내려서 화장실에 갈 틈도 없이 2시간이 넘는 버스에 올라야 한다는 사실을 그 누구도 먼저 알려주지 않은 채 덜컥 버스에 오른 것이다.


40분이면 도착할 수 있는 지하철이 있었고, 짐을 옮기는 것도 공항과 바로 연결되어 있는 지하철역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학교는 그 루트를 고수했다고 ‘친절하게’ 설명했다. 학생들은 자신들의 왕복 차비만을 학교에서 받아서 그냥 그렇게 나올 뿐이라고 했다.


“화장실을 좀 가야 할 것 같은데···”


동민의 곤란한 얼굴을 보며 일본인 학생이 둘이서 속닥거리다가 대답했다.


“도저히 못 참을 정도입니까? 아직 1시간도 더 가야 하는데···”


결국 30분 정도를 참다 참다 학교를 바로 앞에 두고 시내로 들어왔을 즈음, 화장실을 가려고 황급히 버스에서 내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 펼쳐졌다. 그렇게 버스에 내려 화장실을 찾아 시내 호텔에 달려 들어갈 때도 두 학생은 당황한 기색 없이 그대로 짐이 내려진 그 자리에서 동민이 호텔 화장실에 들어가 한참 뒤에 나올 때까지 가만히 기다려 버스가 서 있던 바로 그 자리에 서서 자기들끼리 노닥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그들에게 있어 보란티어(자원봉사)라는 것은 학교에서 멀리 떨어진 공항까지 버스를 타고 두 남녀학생이 드라이브를 하고 외국 유학생을 만나고, 그리고 그것이 다였다.


“전화 좀 할 수 있겠습니까?”


도저히 안 되겠다고 생각한 동민은 결국 중국문화론 연구실의 여자 유학생 오 영희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영희는 자신이 잘 알고 있는 연구실 후배 일본인 학생이 차가 있으니 전화를 건 호텔 앞으로 데리러 오겠다고 했다.


그렇게 오 영희와 일본 여학생이 차를 가지고 오기까지 두 학생은 그 자리에서 둘이서 이야기를 하다가 차가 오는 것을 보자마자 일언반구 인사조차 없이 그대로 돌아섰다.


“박 동민 씨?”


오 영희가 짐 덩이 앞에 앉아 있는 동민을 알아보고는 차에서 내리며 외쳤다. 그 모습을 보기가 무섭게 보란티어 두 학생이 동민에게 인사를 고했다.


“그러면 저희는 먼저 가보겠습니다.”


공항까지 마중을 나온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미국의 방식을 기대했던 것이 실수였다. 자동차를 가진 사람이 나와서 학교까지 데려다줄 것이라는 생각이 너무 바보 같았다고 동민은 스스로 한심하다 생각했다. 하지만 그 많은 짐을 두고 차에 싣는 것을 도와주기는커녕 아는 사람이 데리러 나왔으니 자신들은 할 일을 다 했다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는 그들이 야속하다고 말할 틈도 없었다. 인사를 던지는 둥 마는 둥 대강 나누고 차에 짐을 싣고 앞으로 지내게 될 30년도 넘는 무너질 것만 같은 3층짜리 기숙사건물로 향했다.


자동차를 가지고 나온 일본 여학생은 앞서 보았던 보란티어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또 옆에서 한국어로 떠드는 오 영희의 첫인상은 강하기 그지없었다.


실제로 버스에서 내린 곳에서 묵을 기숙사는 자동차도 채 5분도 걸리지 않는 거리였다. 어쩌면 택시를 타거나 길 안내를 해줬어도 될 거리였음에도 무심하게 사라진 보란티어 학생들이 여전히 야속하게 느껴질 정도의 거리였다.


“감사합니다. 여기까지 태워줘서···”

“별말씀을요. 한국의 최고대학에서 인재가 우리 연구실에 온다고 소문이 자자합니다.”


시원시원한 목소리로 운전을 해준 여학생이 차를 가지고 떠났다. 오 영희 역시 짐에는 손을 대지 않고 먼저 기숙사에 들어가 방에 들어갈 수 있을지를 물었다.


“들어갈 수 없다고 하던데요. 오늘이 말일인데 매월 1일부터야 들어갈 수 있다고···”


한국에서 출발하기 전부터 연락을 취해 부탁을 했지만 절대로 허가되지 않는다면서 대학 국제협력부의 직원의 완고한 대답을 받은 터였다. 일본은 원칙을 워낙 중시하는 나라이기 때문에 안 되는 것은 절대로 안 된다는 친절한 주석까지 방점을 찍어 보내온 터였다.


그런데, 나이가 80은 넘어 보이는 관리인 할아버지가 나오더니 방이 비어있으니 바로 들어가도 좋다고 선선히 대답하는 것이 아닌가?


짐을 대강 방에 옮겨두고 오 영희에게 감사의 뜻을 표하겠다고 식사라도 함께 하자고 제안했다.


“우리 집이 바로 이 뒷 건물 맨션이에요. 짐 정리하고 이따가 만나기로 하죠. 이곳 지리도 잘 모르시잖아요. 제가 안내해 드릴게요.”


오 영희는 작은 키에 매서운 눈매를 하고 앙 다무진 인상을 한 제주도 출신의 여학생이었다. 식사를 하면서 서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동민이 그녀에게서 느낀 것은 자신을 지키려는 선을 한참 넘어서 사람을 튕겨내는 강한 인상을 내뿜는 전형적인 제주도 출신의 냄새가 물씬 나는 여자아이라는 느낌이었다. 여자아이라고는 하지만 영희도 나이가 서른이 훌쩍 넘은 아줌마 외모가 확연한 나이였다. 원래 전문대학을 졸업하고 중국 북경에 무작정 중국어를 배우러 떠났다가 중국에서 돌아와 다시 집에 있어봤지만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하고 그나마 한번 외국물을 먹어 한국에서 자신의 사회적 입지가 얼마나 낮은지 온몸으로 경험한 터라, 다시 일본으로 무작정 떠나왔다고 했다. 일본의 대도시에서 일본어를 배우고 불고기집 등등을 전전하며 실전 일본어를 익히고 아르바이트를 악착같이 하면서 자신의 강한 생활력으로 지금까지 버텨왔다고 했다. 그러던 중 자신의 가방끈 콤플렉스에 한계를 느껴 아르바이트로 어느 정도 돈을 모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자, 대강 일본에서 인정되는 일본어 학교와 대학졸업장을 챙기고 어영부영 외곽 시골의, 그나마 국립대학에 입학하게 되어 석사도 마치고 현재 박사과정 2년 차라고 했다.


“대단하네요.”


동민의 감탄은 진정한 진심에서 우러나온 것이었다.

동민이 일본에 오기 전, 박사과정에 중국에 연구원으로 1년 동안 가 있을 기회가 있어 상하이에서 머무는 동안 그곳에서 만났던 한국 유학생들의 특징은 크게 한 가지밖에 없었다. 한국에서 제대로 대학을 입학하지 못한 찌질한 패배자들이 어떻게든 중국의 발전성을 핑계 대면서 중국어를 배우고 가능하다면 중국어 학교를 빙자해서라도 그곳의 명문대학 졸업장을 받고 싶어 했던 것이었다. 그런데 그것도 모자라서 중국에서 일본까지 와서 몇 안 되는 제국대학이었던 국립대학까지 어떻게 해서든 그 틈새를 노리고 진입한 것을 보면 그녀의 자생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그는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정말 이런저런 고생 많이 했죠. S대학교 나온 사람의 눈에는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외국생활이 10년 이상 되니까 이젠 웬만한 힘겨운 건 힘겨운 축에도 들지 않게 되더라구요. 박 동민 씨도 혹시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 알려주세요. 아, 밥솥 없죠? 내일이나 한번 우리 집에 들를래요?”


식사와 함께 맥주까지 한잔 곁들인 그녀가 한결 풀어진 어투로 동민에게 제안했다.


“아, 저야 고맙죠.”


동민은 당장 밥을 해 먹을 밥솥이나 여러 가지 생활에 대한 사소하지만 필수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그녀의 호의가 무척이나 고마웠다. 중국에서의 외국생활에서도 느꼈지만 한국 유학생들에게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것 중에 가장 큰 것은, 그곳을 떠나는 자에게 받는 살림살이와 내가 떠날 때 살림살이를 필요한 사람에게 건네줄 수 있다는 점이었다.


다음날 오전 약속한 대로 그녀의 맨션에 들른 동민은 일본의 지방 국립대학에 유학하는, 아니 좀 더 포괄적으로는 일본에 어떤 사람들이 유학을 오는지 면밀히 알 수 있었다.


“여기 밥솥하구요, 이 시디플레이어도 괜찮은 편이니까 가져가 쓰세요.”

“고마워요.”


동민은 좁은 방 한 칸짜리 맨션에 가득 들어 있는 살림살이에 적잖이 놀라며 대답했다.


“살림이 좀 많죠? 여기저기서 준다는 살림이 있으면 저는 일단 무조건 받아둬요. 다른 필요한 사람들한테 주거나 할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니까요. 여기 있는 사전이나 책들도 다 여기 있는 사람들한테 받거나 억지로 달라고 해서 빼앗다시피 한 것들이에요.”

“모로하시도 있네요?”


한문학이나 중문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갖고 싶어 한다는 모로하시 한자대자전도 해적판이긴 했지만 제대로 책장에 꽂혀있었다. 만화책에서부터 이런저런 잡다한 종류와 상관없이 한쪽 벽면을 천장까지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래도 책이 참 많네요. 공부를 많이 하나 봐요? 여기 학생들은 어때요?”

“솔직히 공부는 별로 안 해요. 그냥 살림 받으면서나 괜찮은 책들이 있으면 일단 받아두고 싶어서 챙겨둔 것뿐이죠. 여기 연구실의 일본 학생 애들도 공부를 하는 애들은 꽤 해요. 굉장히 열심히 하는 편이에요. 그렇지 않아도 오늘 연구실에 가려고 했는데 한번 같이 가볼래요? 학교 지리도 잘 모르시잖아요?”

“아, 그래요? 나 때문에 가는 거 아니구요?”

“아니요. 곧 중국학회를 우리 학교에서 개최하는데 20년 만에 우리 학교에서 여는 거라 이것저것 일이 많아서 가서 도와주기로 했거든요.”

“그렇군요.”


짐을 두고 학교로 길을 나서며 낯선 일본의 거리와 생각보다 너무 작은 고등학교 교문 수준의 대학 정문을 보며 동민은 여러 가지 생각이 많았다.


“학교가 굉장히 넓죠?”


동민은 영희가 제대로 된 대학을 다녀보지 못했다는 것을, 그리고 한국에서 대학구경을 제대로 해본 적이 없다는 것을 어렴풋하게나마 느꼈지만 그냥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줬다. 서울의 국립대, S 대는 물론이거니와 산 하나를 끼고 있는 지방 국립대의 경우는 그 규모만도 어마어마하다는 것을 굳이 말해서 그녀의 자부심을 처음부터 짓누를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영희는 내내 학교의 규모에서 연구실의 교수들도 대부분이 동경대 출신이며, 학생들이 너무 열심히 공부하기 때문에 자습실에서 미리 자리를 잡지 않으면 공부하기가 어렵다고 꽤나 자부심을 드러내며 설명을 이어나갔다.


“그렇군요.”


정신없이 여기저기 끌려 다니다가 겨우 문학부 5층의 연구실에 도착했을 때, 제법 많은 사람들이 연구실에 나와 학회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라는 설명과는 다르게 고작 서너 명이 이리저리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미즈카미상! 이 분이 그 유명한, 한국최고대학 S대학교에서 오신 박상이예요.”


체격이 좋고 있는 흰머리가 섞인 스포츠스타일 머리를 한 남자가 놀란 표정으로 동민을 맞아 책틈에서 걸어 나왔다.

첫 소개치고는 좀 어색하기는 했지만 금세 그녀의 까랑거리는 목소리에 그 남자 이외에도 구석에서 어슬렁거리던 학생들이 지들끼리 들릴 듯 말듯한 일본어로 웅성거리며 동민을 훔쳐봤다.


“안녕하세요. 한국에서 온 박동민이라고 합니다.”


자기소개를 끝내고 연구실 조수라는 미즈카미와 인사를 나눴다. 체격이 큰 그는 한국으로 치면 조교에 해당하는 조수직을 맡고 있다고 했다. 한국의 조교가 행정적인 업무를 하는 차원이라면 일본에서의 조수는 행정적인 업무를 보조하면서 자신의 연구를 하는 입장으로 가끔 강의를 맡기도 하지만 정식으로 자신의 학교에서 강의를 맡는 일은 없다고 했다. 이유는 교수들이 맡기에도 강의가 이미 충분하기 때문에 조수에게까지 나눠줄 강의는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미즈카미는 특유의 날카로운 눈매를 함박웃음으로 가리는 의뭉스러운 스타일의 초식남으로 대표되는 것과는 다른 의미에서의 전형적인 일본스러운 남자였다. 나이는 마흔이 좀 넘었고 1시간 거리나 되는 시골 마을출신으로 그 대학출신이기는 했지만 중간에 방황을 하여 늦깎이로 공부를 하고 있다고 했다. 오 영희의 부연설명에 따르자면, 실력은 있어서 교토대학의 특강까지 강사로 나갈 정도였다고 하는데 주위 사람들이 그가 교수가 되는 것을 내내 반대하고 있는 상황이라 교수직을 얻지 못하고 있다 했다. 물론 국립대학의 특성상도 그렇고 지방 국립대학의 토착세력들이 정치적인 성향을 띠게 되면 얼마나 자신들의 밥그릇을 유지하기 위해 악착같은지는 한국에서도 충분히 보아온 동민이라, 긴 설명이 필요로 하지는 않았다.


그래서였을까? 미즈카미는 한국에서 박사까지 마치고 굳이 또 하나의 박사를 따겠다고 일본까지 유학온 동민에게 큰 관심을 보였다. 그냥 유학생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터라 그가 한국에서 강의까지 했던 신분이라는 사실까지 확인하게 되자 더더욱 동민에게 관심을 보였다.


“박사과정을 마쳤다면 정확히 한국에서의 신분은 어떤 겁니까?”

“네? 음, 그게 강사라고는 하는데 일단 박사과정을 마쳤으니 언제 교수가 되더라도 이상하지 않은···뭐랄까···하여간 이쪽의 조수와 교수 사이의 중간 단계정도가 되겠네요.”

“아, 그런가요? 으음,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네. 우리 점심이나 먹으러 갑시다.”


점심시간이 넘었음에도 아무도 점심을 먹으러 가자는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의아했는데 그제야 우물쭈물거리던 사람들의 침묵을 깨고 미즈카미를 필두로 연구실을 나섰다. 사실 처음 연구실을 방문하고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어색하긴 했지만 뭔가 비슷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알 수 없는 미묘한 연구실의 공기는 동민이 바로 읽어내고 깨닫기는 많은 어색함이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굳이 식당가가 모여있는 역 지하상가로 점심을 먹으러 가서도 아주 특별하게 동민의 일본 도착을 축하한다며 미즈카미가 함께 했던 일행의 밥값을 냈는데 동민은 그것도 어색하기 그지없었다. 나이가 가장 많은 연구실의 조수라는 사람이 학생들과 함께 가서 밥값을 같이 내는 것이 뭐가 그렇게 생색을 낼 일이란 말인가, 싶었던 것이었다. 물론 일본인들이 워낙에 더치페이를 원칙으로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그것도 상황에 따라 다르게 해석할 문제라고 동민은 여겼더랬다.


그것은 이후에 만난 몇몇 유학생과 그 대학의 문학부에서 유일하게 한국인으로 교수가 되었다는 사람의 경우도 크게 상황은 다르지 않았다.


다음 편은 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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