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은 절대로 정면승부를 하지 않는다. - 2
지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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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모리입니다. 답신 감사합니다.
우선, 일정한 이해해 주실 수 있었던 것에 대해서, 깊이 감사드립니다.
번역이라고 하는 작업은, 구미(歐美)에서는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다고 합니다. 어느 구미 언어를 전공하는 한 선생님은 저에게 ‘시간의 낭비이니까 그만둬라.’라고까지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나는, 문장 쓰는 것을 좋아해서, 저 자신에게는 상당한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문장에는 자신의 개성, identity가 나타난다고 생각합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고, 현재의 해당 책의 일본어 번역에는, 직역이 많고 어색한 부분들이 많아서 상당한 수정이 필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문체에도 크게 손을 더하게 되어, 교정의 범위를 넘어 ‘나의 문장’이 되어버린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어를 모국어로 하는 사람들에게는 이해를 돕기 위한 주석도 필요할 것입니다.
나는 나 자신의 문장(=나의 개성)에, 한국인 작가의 이름을 붙여 세상에 내는 것에 상당한 반감을 갖고 있습니다. 반대로, 한국 작가분도 나의 개성이, 그분의 개성인 것처럼 생각되는 것은 원치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실례인 줄 알면서 몇 마디 드리자면, 이 출판 불황의 시대에, 출판사나 편집자도 정해져 있지 않은(=출판이 될지도 안될지도 모르는) 책에, 기분만으로 진심으로 돕겠다고 나서는 사람은 적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두가 자신의 일로 정신없이 바쁜 세상입니다. 교정을 부탁받더라도 ‘그림책이니까 예쁜 그림에 예쁜 문장으로 만들어야지’라는 말에 대강 일본어의 ‘은,는,이,가’정도를 고쳐주는 것이 전부일 겁니다. 저 역시 문법적인 실수에는 조금은 손을 봐주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면 실례하겠습니다.
코모리 유키코
두 번째 이메일까지 보고 나니 왜 동민이 이렇게까지 확신에 차서 말하는지, 더욱 확연하게 상황파악이 되었다. 사실 이 증거들을 보기 전, 렌코쿠가 학생들에게 설명을 들은 상황은 대강 이랬다.
동민이 '코모리'라는 전공도 다른 연구실의 여학생을 복도에 세워두고 소리를 지르고 협박을 하는 통에 여학생은 아무런 저항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눈물을 뚝뚝 흘리고 일방적으로 가혹행위를 당했다. 그것을 안 보는 척 안 듣는 척하는 연구실의 숨은 귀와 눈이 모두 듣고 봤다는 제보였다. 심지어 그 일이 터진 이후, 코모리라는 여학생이 다른 주변의 여자 선배들에게도 자신은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갑자기 박상이 불러서 자신을 비난하고 폄하하는 행동을 서슴지 않았다고 하소연을 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두 번째 이메일까지 읽고 나니 한국인에게 이렇게까지 비굴하게 자신의 입장을 구걸하듯 설명하는 일본인, 그녀의 태도가 눈에 보이듯 선했다.
“그래서 사람들이 다 보이는 복도에서 소리를 지르고 여학생에게 윽박을 질렀나?”
마지막이지만 어쨌거나 방법만큼은 분명히 동민이 잘못된 것이라고 몰아세울 작정으로 렌코쿠가 다시 한번 동민을 추궁했다.
“그렇게까지 거절을 했는데도 끈질기게 저를 찾아와 괴롭히길래 그렇다면 저에게 가져간 그림책과 원고들을 모두 다시 돌려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함께하기로 한 일본어와 한국어 공부도 없었던 것으로 하자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녀가 책과 원고를 건네주기 위해 만나기로 한 자리에서 저를 놓아주지 않고 왜 자신을 번역자로 해줄 수 없냐고 끝까지 추궁하길래 저의 뜻을 확실하게 말했을 뿐입니다. 소리를 지르거나 윽박지른 사실도 없습니다. 마지막 메일이 그 이후 받은 메일이니 제 설명에 대한 확실한 증거라고 생각합니다만.”
“그 여자애는 우리 학교 학부 출신도 아니고 학력 수준이나 수준이하의 아이니까···”
갑자기 렌코쿠의 표정이 온화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 태도를 전환하여 냉소적인 말투로 코모리라는 여학생을 폄하하기 시작했다. 마지막 메일의 내용이 더 이상 동민의 말을 반박하기에 너무도 확고하고, 코모리라는 일본 여학생의 태도가 구차하기 그지없다는 사실을 이미 확인했기 때문이었다.
몇 번이나 답신 감사합니다.
말씀하시는 뜻은 잘 알겠습니다. 저도 일단, 시험을 봐서, 번역 회사에 번역자 등록을 해 보았습니다만, 한국어의 등록자는 매우 많습니다. (재일 교포나 유학생 등등) 일거리가 생기더라도 저에게까지 일거리가 돌아오는 일은 결코 없었습니다. 또, 경험자를 뽑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저같이 경험이 한 번도 없는 사람들은 결국 똑같은 위치일 뿐입니다. 그래서 그 경험이라는 것을 어디서 쌓으면 좋은 것인지도 걱정입니다.
최근의, 한국어에서 일본어로 번역하는 것은 이렇다 할만한 명번역은 나온 일이 없습니다. 그 이유라면 두 언어가 매우 비슷하다는 점과 일본어를 번역 없이 그대로 읽을 수 있는 독자들이 많다는 점을 들 수 있을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한국인의 원작자로부터 불평을 듣는 것을 두려워하고, 직역위주가 되어 버리기 쉽다는 점이나 번역문장이 일본어로 보기에 위화감이 있더라도 의미가 대충 통하기만 하면 그대로 출판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만약 제가 번역하게 된다면, 작자가 납득이 갈 때까지 상담할 수 있는 입장을 살리고, 이제까지의 번역과는 조금 다른 것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개인적인 생각이 있었습니다만, 그렇게 할 수 없다니 참으로 유감이 아닐 수 없습니다.
박상은 일본어 회화가 능숙하신데, 어째서 해당 번역에서, 번역 프로그램을 사용한 것처럼 보이는 부분이 있는 것입니까? 이전 메일만 봐도 그렇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일부분이 가타카나로 표기되어 있는 것을 수정하지 않으셨더군요. 가타카나로 표기되는 부분은, 박상정도의 수준이라면, 자신이 직접 타이핑을 할 수 있는 내용입니다. 박상의 성의에 대해서 조금 불신감을 느꼈습니다.
그럼, 박상, 좀 더 노력해 주세요. 조금 시간을 많이 들여서라도 본인의 선에서 조금 나은 수준의 원고교정을 보여주십시오.
코모리 유키코
“그러면 아예 상대를 하지 말아야지, 왜 그런 말이 나오게 하나?”
어느 사이엔가 렌코쿠의 말투가 한결 부드러워져 있었다. 마치 자신이 모든 상황을 이해한다는 투였다. 동민의 표정도 함께 조금 누그러졌다.
“이것도 5월에 있었던 일인데, 5개월이나 지난 지금, 그것도 제가 일본에만 없으면 그런 말도 안 되는 누명과 모함이 있다는 것이 저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만약 정말 문제가 되는 행동이었다면 5개월 전인 당시에 벌써 문제가 되었을 것 아닙니까?”
동민의 지적에 내심 뜨끔한 생각도 들긴 했지만 정작 자신이 귀가 얇아서 들리는 소문을 그대로 믿었다고 말할 수도 없는 터였다.
“어차피 공부도 잘하지 않는 아이들이고, 그런 애들한테 왜 자꾸 그런 말이 들리게 해? 자기 공부만 해. 다른 교수 도와준다고 그림책이니 출판이니 그런 거 하지 않아도 되지 않나? 자꾸 학생들과 트러블이 생기는 것도 그렇고 그런 말들이 내 귀에까지 들려오는 거 나도 좋지 않아!”
렌코쿠가 완전히 표정이 아이처럼 돌아오고 코모리의 이메일이 출력된 종이를 다시 가져가라며 내밀었다.
“정말 속상합니다. 저를 가장 잘 알고 계신 선생님께서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문을 믿는 것도 그렇고 예의를 그토록 중요시하는 저를 누구보다 잘 아시면서도 제가 10년도 더 어린 여학생을 괴롭히거나 윽박지른 일이 있다고 믿는다는 사실 자체가 저는 납득하기가 어렵습니다.”
“그거야···, 나는 박군을 믿어. 그런데 자꾸 연구실의 학생들과 부딪히니까··· 머리도 안 좋고 공부도 안 하는 학력도 낮고 수준도 낮은 애들이랑 왜 자꾸 그래? 나이도 박군이 가장 위니까 그냥 무시하고 자기 공부만 하면 안 되나?”
“선생님! 너무 하신 거 아닙니까? 제가 그런 얘들이랑 싸운다니요? 저는 선생님이 아시는 것처럼 제 공부만 할 뿐입니다. 공부 이외에 아이들과 놀 생각을 하는 것도 아니고 여기까지 유학 온 것은 이곳의 학생들과 교류를 통해 보다 새로운 공부와 지식을 접하겠다는 것 아닙니까? 선생님은 저에게 그저 틀어박혀 지내는 히키코모리가 되라는 뜻입니까? 그러려면 한국에서 편하게 생활하지 뭐 하러 이 먼 곳까지 와서 돈을 버는 일도 다 고사하고 제 돈까지 써가면서 유학을 옵니까?”
약간 흥분한 동민이 언성이 높아졌다. 그러나 렌코쿠는 그런 동민의 반응이 아무렇지도 않은 듯 히죽거리며 맞받아쳤다.
“일본어? 지금 일본인처럼 훌륭하게 하잖아. 1년 전에는 박군이 하는 일본어를 들으면 외국인이라고 당연히 생각되었었는데 요즘은 완전히 일본인처럼 말하잖아. 그러면 된 거 아냐?”
그의 논리에 동민의 짜증이 울컥하고 솟구쳤다.
“한국에는 일본어 학원이 없습니까? 그리고 제가 일본어가 부족해서 일본에 유학 온 것도 아니고 제대로 공부하려면 현지의 학생들과 머리를 부딪혀가며 토론도 하고 공부도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박군과 학술교류를 할 만한 수준의 학생은 우리 연구실엔 없잖아!”
자기 연구실의 학생들을 폄하하면서도 아무렇지도 않은 듯 렌코쿠가 웃었다.
“그러면 어떻게 합니까? 선생님은 바쁘셔서 일주일에 한 번 논문 지도하는 것도 될까 말까지. 그나마 지난 학기에 선생님이랑 논문지도를 몇 번 했습니까? 단 3번이었습니다.”
“자자! 일본어도 일본인처럼 훌륭하게 말하고 외국인이라고 말하지 않으면 눈치채지 못하 정도로 일본인 같아졌으면 됐지, 너무 성급하게 굴지 말자고, 논문도 너무 급하게 쓸 거 없잖아. 3편만 발표하면 되는데 왜 그렇게 서둘러?”
“선생님···!”
동민은 히죽거리는 렌코쿠의 얼굴을 보며 더 뭐라 말을 이을 수 없었다. 하지만 터무니없는 누명을 푼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또’ 여기고 넘어가기로 했다. 지도교수가 진실을 알게 되었고 그 진실을 통해 자신에게 다시 우호적인 원래의 자리로 돌아온 것만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면 오늘 논문지도나 시작할까요?”
공부할 시간이 부족하다고 여긴 동민이 화제를 돌렸다. 그러나 렌코쿠는 그렇게 바로 다시 공부를 하자는 동민의 제안이 부담스럽고 껄끄러웠다. 그냥 이렇게 소문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여자 탤런트나 한국의 소식을 듣는 수다는 마냥 좋았지만 논문을 지도한답시고 빨간 볼펜을 들고 논문을 함께 읽는 것은 공부자체가 싫은 그에게 있어서는 참으로 고역이 아닐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오늘은 기분도 그렇고 일본에 돌아와서 첫 시간이니까 그냥 쉬지.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네? 부인은 지금 어디 있나? 함께 식사라도 하러 가지.”
“아내는···”
대답을 하려다가 동민이 고개를 떨구었다.
이런 식으로 논문지도시간이 무마되는 것은 이젠 새삼스럴 일도 아니었다. 원래 약속한 시간이 늦는 것은 다반사요 그나마 논문지도의 절반 이상은 수다로 채우고, 논문지도랍시고 논문을 가져가서도 그 자리에서 처음 읽어가면서 현장에서 빨간펜으로 교정하는 것이 전부인 말뿐인 논문지도였다. 이전에 메일로 보냈음에도 단 한 번도 읽지 않은 학술논문을, 자신이 이해하기 위해 읽어가며 단 한 번에 교정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성의 없는 것인지 동민은 누구보다 잘 알았다. 하지만 그것에 대해서조차 뭐라고 항변할 수도 없는 처지였다. 한국의 국립대에서 겪은 것과 똑같이, 아니, 그 오리지널에 해당하는 일본의 더욱 옹고한 지도교수의 막대한 권력은 조금만 눈 밖에 나게 되면 학위수여는 고사하고 연구실에서 공부를 계속할 수 있을지도 보장할 수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늘 공부는 이걸로 끝내고 맛있는 거라도 먹으러 가지.”
그렇게 또 한 번의 논문지도를 무위로 만들고 연구실을 나서는 렌코쿠를 보면서 동민은 씁쓸한 미소를 삼킬 수밖에 없었다.
* 사진설명 : 1909년 10월 26일 안중근 의사는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여 사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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