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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어쩔 수가 없다'라고 말할 상황이라 자신하나?

당신이 당연하다고 우기며 넘어가는 상황들에 대해...

by 발검무적

얼마전 종영한 드라마 <협상의 기술>에서는 대기업의 CFO를 맡은 전무라는 자가 M&A를 진두지휘하며 회사의 투자를 통해 투자를 받는 회사의 이익을, 주가조작을 통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유혹적 상황에 대해 이렇게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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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M&A라는 업무를 하다 보면, 이게 그래요. 수백수천억, 혹은 조 단위의 돈을 주무를 수 있게 되거든. 그러면 그게 내 돈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돈에 무덤덤해져요. 예컨대, 100억의 가치도 안 되는 회사를 들고 와서 200억에 사달라고 하는 놈들이 천지에 깔렸거든. 그러면 그걸 결국 50억에 팔 수밖에 없는 결과를 맞게 되지. 그러면 그 업무를 진행하고 결정권이 있는 회사원 입장에서는 이게 웃기거든. 100억짜리 회사를 50억에 사 온다고 하면 회사에는 50억이나 절약해 주는 꼴이지만 내 입장에서는 내 월급을 더 받는 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내게 돌아오는 게 없거든. 그러니까 이제 내 몫을 챙기고 싶어 지지. 회사를 파는 사람에게 '당신이 80억을 불러. 그러면 내가 그렇게 해줄게. 그리고 나한테 20억을 챙겨줘.'라고 하면 그렇게 하지 않을 사람이 없거든."


정말로 현실적인, 실제로 우리 사회에서 아주 오래전부터 지금까지도 버젓이 터지고 있는 경제 범죄의 원인에 대해서 한 마디로 정리하는 대사에 다름 아니다.


은행 혹은 제2금융권에 있으면서 대출을 담당하는 자들이 원칙에 따르지 않으면서 더 많은 돈을 대출해 주는 대신 자신에게 커미션을 챙겨달라고 하는 일은 충격적인 범죄라고 불릴 레벨에도 오르지 못하는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대사였다.


보이스피싱을 넘어서 리딩방이니 어마어마한 폰지 사기를 치는 자들을 수사하는 경찰이 그들을 잡는다고 해서 엄청난 금전적 보상을 받거나 총알승진을 통해 특진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그들은 누구보다 잘 안다.


그러니 칼 들고 설치는 똘아이를 신고해도 범죄현장에 들어갔다가 '꺄야~'하며 저 살겠다고 도망치는 정신 나간 여경이 버젓이 경찰을 돈벌이 직업일 뿐이라고 말하는 나락까지 우리 사회가 떨어지고 만 것이다.


돈 만지는 사기업만 그런가?

철밥그릇 공무원은 다른가?


형사사건을 주로 하는 현직 변호사 친구가 웃으며 내게 심각한 충고를 던졌었다.


"교수님은 너무 고지식해요. 일단 언어 선택이 무섭잖아요. 법을 잘 알고 수사 체계를 다 꿰고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몇 마디 나눠보면 짭새들은 다 알아요. 그런데 걔들이 교육 수준이 높습니까? 그렇다고 경제적 수준이 높습니까? 아닌 거 걔들도 알고 우리도 다 알아요. 걔들이 또 얼마나 소심한데요. 걔들의 자격지심은요? 검찰에 수사지휘받으면서 검찰에 들어가서 검사는 고사하고 검찰 수사관에게도, 계장이라는 사람한테도 고개 빳빳이 들지 못하는 얘들이에요. 그런데 교수님처럼 그렇게 잘잘못에 대해서 바로바로 지적하고 제대로 하지 못하는 거 다 집어내면 걔들이 교수님의 편을 들까요? 아, 물론 교수님이 걔들이 편들어 달라고 하지도 않으시죠. 교수님은 그저 공정하게 제대로 하라고 하시는 거죠. 그런데 걔들이 그런 평정심을 유지하고 정의구현을 위해 그렇게 열심히 수사를 하고 범죄자를 잡아 처벌하고 불쌍하게 돈 잃은 서민들이 내 가족인 것처럼 일할 것 같으세요? 안 그런다고요. 그러니까 걔들이 원하는 비위 맞춰주면서 살살 달래서 걔들 자존감 지켜주는 것처럼 해서 일을 되는 쪽으로 만들어야 하는 거라구요. 교수님은 그게 안되시잖아요."


블랙코미디 같은 상황이었지만 그의 말이 어디 하나 틀린 구석이 없어 반박의 여지가 없었다.

가장 효율적인 것은 내가 원하는 결과를 얻어내기 위해 쓰레기에 못 배워서 머리는 나쁜데 돈까지 없어서 뒷돈을 밝히고 제대로 수사를 하지 못하는 짭새를 최대한 정의구현이라는 목표에 활용할 수 있도록 얼르고 달래야 하는데 삐딱하기 그지없는 내 성정에 그런 같잖은 꼴을 두고 보지 못하니 그 한소리를 듣고 마음이 움직여서 반성하고 제대로 수사하려는 짭새가 한 마디로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그걸 몰라서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요 몇 달간 서울 한복판에 있는 경찰서 두 곳과 그 상위 기관이라는 서울청의 청문감사관실과 실랑이를 하는 중이었다.


청문감사관실은 청문인권감독관실이라고 하는 명칭을 두고서 경찰서 내에 배치되어 경찰의 비위 행위와 불법행위를 적발하고 무엇보다 이름에서 나온 대로 민원인의 인권을 침해하는, 조금 정확하게 말하자면 금품과 향응을 제공받는 등의 비위행위로 수사를 덮거나 없는 범죄를 만들어 애먼 사람을 잡는 쓰레기 짭새를 내부적으로 조사하여 징계하라고 만든 곳이다.


그런데 당신도 잘 알고 있다시피 경찰의 비위행위와 범죄행위는 연일 전국 각지에서 드러나고 짭새들은 수갑을 차는데도 그것이 청문인권감독관실의 수사와 조사에 의거하여 검찰에 송치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렇다면 해당 부서의 존재이유자체가 의미가 없어지지 않겠는가?


경찰서의 수사지원팀장이라는 여자 경감이 문득 전화를 걸어왔다. 자신의 계급이나 이름을 밝히지도 않고 건방지기 그지없는 목소리로 자신이 해당 경찰서의 수사지원팀장이라고 했다. 중요한 것은 그 여자애가 자신이 무슨 건으로 왜 전화를 했는지를 제대로 명확하게 설명하지도 않고 말을 뭉갰다는 점이다.


한참을 통화한 끝에야 내가 묻는 과정에서 그 여자애가, 내가 국수본에 제기한 한국국제교류재단의 채용비리 사건을 왜 서울청의 반부패수사대가 아닌 일개 경찰서의 수사팀에 보냈는가에 대한 민원을 받고서 전화했다는 사실을 어렵게 알게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국수본이랑 이전부터 접촉해서 그쪽도 사정을 잘 알고 있다고 말하는 순간 벌어졌다.


"그러면 그쪽이랑 얘기하세요. 제가 뭐 따로 설명드리지 않아도 되겠네."


그런데 막 경찰청의 간부에게서 전화가 오길래, 자세한 설명을 못 들었으니 퇴근 전에 다시 전화를 해서 설명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자 자기는 전화하지 않아도 되지 않냐고 실랑이를 하던 여자애가 계속된 채근에 마지못해 '예. 그럼 전화드리도록 하겠습니다.'라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퇴근시간이 다 되도록 전화를 오지 않았다.

다음 날, 점심시간이 지나서야 전화를 걸었다.


"윤** 경감인가요?"

"네. 무슨 일이시죠?"

"무슨 일? 당신이 어제 나한테 퇴근 전에 전화를 걸어서 무엇 때문에 전화를 걸었는지 제대로 설명해 주기로 하지 않았던가요?"

"아, 그거요? 제가 엉겁결에 그러겠다고 대답하긴 했는데 반드시 선생님에게 전화를 드려야 했나요?"


어이가 없었다.


"내가 당신이랑 일면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연애하자고 전화한 것도 아니고 업무상 전화를 걸었으면 당신이 무엇 때문에 전화를 걸었는지 제대로 설명을 해야 할 거 아닙니까? 게다가 당신이 직접 퇴근 전에 전화 걸겠다고 약속을 했잖아요?"

"아니 그러니까 제가 꼭 그래야 할 의무가 있나요? 바빠서 전화 끊습니다."


결국 그 실랑이는 아주 작은 파문이었지만 나비효과를 거쳐 그녀의 정식 사과를 요구하는 민원으로 이어졌다.

그런데, 해당 경찰서의 청문감사관실에서의 반응이 기가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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