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취재는 대만 친일파가 어떻게 대한민국의 고혈을 빨아먹으며 기생했는지에 대한 기록으로 이제까지 그러한 일이 있었음을 고백하고 이제부터라도 자각하여 이런 놈들이 결코 우리나라의 고혈을 빨아먹으며 기생할 수 없도록 하기 위한 기레기의 반성문이기도 하다.
그놈에 대한 기본적인 프로필이 모두 위장된 것이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은 인터넷 검색의 몇 글자만으로도 충분했다.
나중에 그놈의 정체를 파악하고 난 뒤에 이렇게 표현하는 것 자체도 그에게 사치이자 명백한 사기라고 생각했지만, 표면상으로 그의 프로필을 보자면, 그는 기자 출신이었다. 1954년생이니 올해로 환갑을 훌쩍 넘어 70을 바라보는 중늙은이였다. 그가 주로 직접 글을 올리는 인터넷상의 프로필을 보면, 정치대학교 한국어학과 출신이었고, 미국 스탠퍼드 대학에서 동아시아연구원에서 석사를 했다고 적혀있다. 85년부터 88년까지 대만 연합보(聯合報)의 한국 특파원이었다. 이후 대만 타이베이 타임스의 편집장을 거쳐 CTS-TV 부사장을 한 게 그의 공식적인 직함의 전부였다.
물론 그는 한국에서 열리는 비공식 세미나나 정치색을 띤 모임 등에 초청되었을 때, 자신을 아주 당당하게 ‘국립 정치대학교 교수’라고 소개하곤 했다. 하지만 명확한 팩트를 확인하자면, 그것은 명백한 사기행위였다. 학생들이 학내에서 강사에게 ‘교수님’이라고 그냥 부르는 잘못된 관행은 있을지언정, 외부에 그것도 해외에서 불려 간 세미나나 공식적인 자리에서 강사를 교수라고 부르는 것은 명백한 사기행위였다. 그는 '교수'라는 타이틀을 그의 평생에 단 한 번도 달아본 적이 없었다. 그는 방송국에서 잘리고 나온 10여 년 전에 자신의 모교라는 이유와 정치적인 동지들이 여럿 있다는 이유로 그 대학교에 빌붙어 한국어학과 강사를 하고 있을 뿐이고, 어디에 있는 단체인지 알 수 없고, 실제로 현재에는 실체도 없어졌다고 하는 ‘지한원’의 원장 혹은 CEO라고 스스로 명함을 파고 이름을 팔고 다닐 뿐인 말 그대로 자기 연구실조차 없는 보따리 장사였다.
그나마 한국에 기사를 송고하고 있는 통신원이라는 애매모호한 알바생들을 통해 취재하고 알아본 결과, 한국대표부의 행사나 한국 관련 행사에 초대되어 취재랍시고 나갈 일이 있을 때면, 머리가 백발에 대머리가 슬쩍 벗겨진 그놈의 모습이 늘 눈에 띄었다고 했다. 타이베이까지 가서 내가 그놈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만났던 통신원 알바는 그놈을 처음 만났던 행사가 한국대표부의 행사였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처음 만났을 때도 그의 나대고 싶어 하는 특유의 행동과 튀고 싶어 하는 독특한 옷차림은 상당히 도드라졌었어요. "
그것은 실력이 아닌 관계를 강조하거나 어떻게든 튀어서 다른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싶어 하는 나름 그만의 전략인 듯했다. 입만 열면 술자리에서 도올 김용옥과 자신은 막역한 친구라는 둥, 현재 한국의 언론사들 데스크는 다 자기 밑에 있었던 후배들이었다는 둥, 당장 확인할 수 없는 허풍으로 그렇게 자신의 허장성세를 떨었다고 했다.
나중에 알게 된 에피소드이긴 했지만, 2017년 한국 민변에서 타이베이를 변호사들이 방문할 일이 있을 때, 무슨 인맥에서였는지 또 그놈이 가이드 겸 통역으로 나왔다고 했다. 당시 그 여행에 참석했던 민변의 변호사들은 결국 저녁 술자리에서 그가 내뱉는 허장성세와 한국에 대한 폄하성 발언, 친일파적인 본색을 드러내는 것에 불편함을 느껴, 다음날부터 그를 배제해달라고 요청했다는 말까지 전해주었다.
내가 그 부분에서 신기했던 것은, 그놈이 술을 먹고 한국의 변호사들 앞에서 당당히 친일파임을 커밍아웃한 것도 아니고, 늘 하던 그 미친 헛소리를 자신의 개집 앞에서 한 것도 아니었다. 도대체 누가 한국의 민변에서 가는 공식적인 여행 자리에 가이드로 그를 추천했다는 것인가? 결국 그가 거미줄처럼 먹고살기 위해 한국의 여기저기 끈을 매달아 두었다는 바로 그 점이었다.
한 마디로 그는 늘 대표나 다른 사람들과의 친근한 관계를 뻐기고 싶어 하는 권력지향적 성향이 도드라지는 지극히 정치적인 인물이었다.
그다지 그와 인연이 없었던 타이베이 통신원 알바가 그에게 다소 삐딱한 시선을 갖게 된 이유는 2017년 초 중선 일보에 대서특필되면서 폭로된 한 기사 때문이었다.
"‘한국인은 전후(戰後), 민족의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해 역사를 조작해 왔는데 오히려 일본이 역사를 조작했다고 비판하고 있다.’라는 식으로 한국이 역사를 조작하고 있다는 식의 비난에서부터 시작해서, 더 심하게는 근거 없이 한국 자체가 신용이 없는 나라라서 대만에 한국의 은행이 없다는 황당한 궤변까지, 도저히 더 이상 그놈을 선생님이라고 말하며 만날 자신이 없더라고요."
만약 일본의 정신 나간 우익 중 한 사람이나 그들에게 스폰을 받고 있는 한국의 정신 나간 친일파가 이런 글을 썼었더라면 그다지 그도 그리 흥분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그런데 대만에서 스스로 방송에 노출되려고 난리를 피우며 나대는 친한파를 표방하는 이 인간이 일본에서 스폰을 받으며 몰래 썼던 이 기고글이 하루 만에 한국의 중앙지에(물론 인터넷판이긴 했지만) 폭로되었던 것이다. 그놈은 한국대표부와의 친분을 자랑하며 적지 않은 지원과 지원금을 받았었고 친한파라는 것을 강조하며, 5.18과 4.3 사태가 대만의 민주화와 비슷하다는 식으로 자신이 한국 전문가인 것처럼 포장하며 각종 재단의 지원금을 받아왔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내가 타이베이로 날아가기 전, 인터넷으로 확인한 것만 해도, 주로 5.18 사업회 관련 패널로 대만 국립대 교수 입네 하면서 들락거렸던 것과 제주 4.3 기념사업회 등의 패널로 단골손님처럼 귀빈으로 초대를 받아 패널 역할을 했다.
문제는 그놈의 정체를 과연 5.18 사업 관련자나, 제주 4.3 관련 사업자들이 몰랐는가 하는 점이었다. 취재를 굳이 깊이 하지 않아도 그것은 금세 사실로 드러났다. 그놈에게서 린치를 당해 타이완에 노리개 감으로 전락되어버렸던, 나에게 정확하게 한방을 날려 정신 차리지 못하고 케이오시켜버린 그 교수가 해당 사실을 5.18과 제주 4.3, 그리고 이한국 열사 기념사업회에까지 한데 묶어 한국 언론사를 통해 알려온 것이었다.
반응은 어이가 없었다.
언론사는 나를 포함해서 꿩처럼 얼굴을 풀섶에 박고 내 몸이 안보이려니 하는 행태로 일관하였고, 다른 사업회들은 긴급하게 그놈과의 무관성을 강조했다.
가장 가관이었던 것은 제주지역 방송사였다.
제주도 출신이 아닌 파견기자가 9시 뉴스 첫 지역 단독으로 그놈의 정체에 대해서 까발리고 그놈에 대한 제주 4.3 기념사업회의 지원이 있었음을 터트린 것이었다. 다음날, 해당 방송국에서는 인터넷에 올라왔던 기사를 없애고 기념사업회가 아닌 유튜브 채널에 인터뷰까지 했던 놈과의 관계를 기념사업회가 부정하고 있기 때문에 그 모든 것은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며 모르쇠로 일관했던 것이다. 그렇게 해프닝처럼 사과방송까지 하고 증거는 인멸되었다.
한민족 신문사 광주지부장이라는 자는, 자신이 직접적으로 그놈에게 뭔가 지원을 해준 것은 없다고 하며 연락을 피했고, 5.18 기념사업회의 홍보담당자는 교수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자신들은 그러한 사실을 몰랐으며 앞으로 절대 그와 연계한 그 어떠한 활동도 진행할 계획이 없으니 언론사에 더 문제를 키우는 것을 말아줬으면 좋겠다는 간곡한 협박(?)을 전했다.
그렇게 그놈에 대한 한국과의 접접이 끊기나 했으나 이한국 기념사업회에서는 그놈에 대해 교수라는 호칭만 바꾸고서 또다시 언론사에 보도자료를 뿌리고 그놈을 기어코 초빙해서 그놈이 내밀 사진값을 치렀다.
그렇게 그놈에 대한 공식적인 초청건은 조금 사그라든 정도가 다였다. 각종 기념사업회에서는 외국의 국립대학교 교수라는 저명한 사람이 필요했고, 그놈은 대만에서 한국 전문가로 행세하며 살려면 공식적인 행사에 패널로 초청되어 다녀왔다는 광고 브로셔가 필요했다. 그 서로의 필요는 맞닿아 있었다.
대만의 민주화운동이라고 하는 2.28 사태에 대한 기념사업회의 회장을 자신이 맡고 있는 것처럼 내세워 한국에 빨대를 꽂고 고혈을 빨던 그놈은 그렇게 양쪽으로 다리를 벌려 대한민국의 고혈을 빠는 모기로 전락했던 것이다. 그 와중에 친한파를 가장하며 일본에까지 빨대를 꽂고 결국 자신은 친한파가 아닌 친일파로서 한국을 돌려 까기 하는 식으로 치부를 해온 것이었다.
결국 한국에 공식적인 지원이 끊긴 그놈이, 새 학기에 자신의 대학교 강의에 ‘한국인은 내 강의에 얼씬도 하지 말라.’라고 종주먹질을 하며 소리를 높였다는 소문이 공공연하게 들려왔다.
그놈에 대해 제대로 확인하겠다고 2박 3일의 짧은 일정을 만들어 타이베이를 돌아다니며 통신원 알바를 통해 그놈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다는 정보원을 드디어 소개받은 것이 한국으로 돌아오기 몇 시간 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