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감찰수사팀의 경위라며 자신을 소개한 남자는, 이미 두 달이나 전에 민원을 넣은 건으로 이제사 내용을 확인하고나 전화했다고 했다.
민원사안은 간단했다.
4년전쯤의 일이었다.
법에 대해 잘 모르는 이가 억울한 일을 당했다며 SOS를 쳤다.
너무도 명백하고 뻔뻔한 범법자들에 대해서 일침을 가할 필요가 있어 보였다.
도저히 모른 척할 수가 없어, 그를 도와 종로 경찰서에 사이버 명예훼손과 모욕죄로 고소장을 작성하여 제출하도록 했다.
그런데 시간을 끌던 담당 수사관이 덜 무혐의 처분을 내버렸다.
무혐의 처분으로 검찰에 송치하면서 그가 보낸 결과 통지서가 또 걸작이었다.
사이버 명예훼손으로 고소한 자에 대해, 뜬금없이 모욕죄가 성립하지 않으니 무혐의라며 결론을 낸 것이다.
어이가 없었다.
사이버 명예훼손은, 명예훼손보다 양형기준이 더 높다. 죄가 더 엄중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모욕죄는 명예훼손이나 사이버 명예훼손과는 또 전혀다른 범죄라서 범죄구성요건이 다르다.
즉, 사건을 덮을 기가막힌 묘수(?)였다.
하여 서울경찰청 수사이의제기팀에 수사이의를 제기하도록 했다.
범죄가 당연히 성립되는 것을 확신했기에 검찰에서 경찰이 사건을 덮어주려는 의도대로 무혐의를 받아들여 불기소하게 되면 일이 돌이킬 수 없게 되기 때문에 서둘렀다.
그러나 서울경찰청 수사이의제기팀의 담당 수사관이라는 놈이 악질이었다.
질질 시간을 끌었다.
검찰에서 불기소가 나오면 '검찰에서도 그렇게 결론 내리잖아요.'로 뭉개겠다는 심산이 빤히 보였다.
그의 상관을 통해 압력을 넣었다.
말이 압력이지, 제대로 확실하고 빠르게 공정히 사건을 처리하라는 것이 전부였다.
'검찰의 따까리' 소리는 듣기 싫어하면서도 정작 일처리를 하기 싫을 때는 검찰의 핑계를 대는 경찰의 고질병이 온 도처에 독처럼 퍼져있는 것이 느껴졌다.
결국, 시간을 질질 끌던 수사이의제기팀의 담당 수사관이라는 작자는 상관의 명령에 마지못해 결론을 냈다며 결과 통지문을 보내왔다.
그 통지문이 또 걸작이었다.
A4 한 장을 다 채우지도 못한 그 수사결과 통지서의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본 수사과정을 조사한 결과 특별한 과오가 발생하지 않았음을 알려드립니다."
그리고 그 수사결과 통지서의 결론은 다음과 같이 끝난다.
"해당 경찰서의 담당 수사관이 의율 적용을 잘못한 과오가 발생하여 그에 대해 경고 조치하였음을 알려드리는 바입니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상황인지 이해가 되는가?
자기가 직접 작성한 한 장도 채 못 채운 공문의 내용에 모순된 내용을 버젓이 적어 보낸 것이다.
무엇보다 이 사안의 최대 심각성은, 그 행간에 감춰져 있다.
이 사안은, '절도죄로 고소를 했는데, 그 자의 죄를 없는 것으로 덮어주기에는 증거가 명백하니,뜬금없이, 사람을 죽이지는 않았으니 살인죄가 되지 않으므로 무혐의 처분한다.'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다시 말해, 만약 과오가 발견되었다면 수사이의제기팀의 본래 의무대로 사이버 명예훼손 범죄를 일으킨 범죄자에 대해 입건하여 처벌해야 하는 절차가 쏙 빠져버린 것이다.
2018년도의 일이니 그 일이 묻혔다고 그 작자는 생각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작자가, 이름만 바뀐 수사 심의계에 계속 조사관의 이름을 달고 버젓이 붙어 있다는 사실을 최근 다시 확인하였기 때문이었다. 다른 일 때문에 다시 그곳에 민원을 제기할 일이 생겼던 탓인데, 담당이라며 그 작자가 버젓이 자기 이름으로 연락을 해온 것이다. 그 작자가 4년이 넘도록 그 자리를 보전하며 경찰 조직을 보호한다는 명분 하에 사안을 뭉개가며 그 꿀보직에 붙어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이다.
독자들이 예상한 대로 그는 더 지능적으로 그 자리를 활용하고 있었다.
이번 건까지 똑같이 또 뭉개고 덮으려는 것을 보고,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2018년 당시의 자료까지 첨부해서 그 작자에 대해 정식 감찰수사를 해달라고 요청했다.
처음 감찰을 맡았던 자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럴 수도 있는 거라고 판단했습니다.'라며 똑같은 방식으로 뭉개려 들었다.
이번엔 도저히 그냥 넘어가 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올해 경찰이 수사 종결권을 가져오면서 새롭게 조직을 개편했다는 말을 듣고는 감찰수사팀에 감찰을 재의뢰하였다.
경찰은 지들이 수사 종결권을 가지고 온 것으로 인해, 내부 조직에서 사건을 덮어주거나 비리가 만연한 것이 밖으로 새어나가는 것에 굉장히 예민해져 있었다.
뭔가 크게 잘못 터지게 되면, 당장 '그러니까 그것들한테는 수사 종결권 같은 거 주면 안 된다니까'라는 여론이 형성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넣었던 민원의 담당자가 오늘에서야 마치 처음 배당받은 녀석인 양 연락을 해온 것이다.
"그러니까 주 민원내용은 2018년에 종로서에서 수사관이 의율 적용을 잘못한 것이고, 그것에 대해서는 수사 심의 조사관이 경고조치를 취했다고 되어 있거든요?"
자기가 사건에 대해 이제야 물어볼 것이 있다고 전화를 걸어 별문제될 것이 없다는 식으로 뻔뻔하게 말하던 녀석에게 내가 물었다.
"다 좋은데요. 사실관계 하나만 물읍시다. 그 자가 수사이의 조사 후 한 장 짜리 결과 통지서를 보낸 내용을 보면, 문장의 시작에는, '수사과정에 과오가 발생하지 않았습니다.'라고 적혀 있는데, 그 문단의 결론 문장에 보면 지금 경위가 말한 것처럼 '의율 적용을 잘못한 과오가 발견되어 경고 조치하였습니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게 정상적인 공문인가요?"
"..."
"왜 말이 없어요? 묻잖아요?"
"아, 저어, 제가 오늘 전화를 건 이유는 민원을 제기하신 사안에 대해 여쭤볼 것이 있어서 연락을 드린 건데요."
"알아들었어요. 그래서 지금 내가 가장 기본이 되는 사실관계부터 확인하자고 하잖아요. 그리고 대화를 할 때의 기본예절은, 상대가 뭘 물으면 그 질문에 대해 먼저 대답을 하고 자기 얘기를 하는 거예요. 그건 제대로 된 가정교육을 받고기본적인 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모두 아는 거예요. 맞죠?"
"음..."
"으음이 아니라, 다시 물을게요. 그 자가 작성한 문건에 그렇게 논리적 오류이자 모순된 내용이 여러 장도 아닌 딸랑 A4 한 장을 다 채우지도 못한 문장의 앞뒤로 배치되어 있어요. 그게 정상입니까?"
"..."
"대답!"
"아, 제가 오늘 전화를 드린 이유는...."
"지금 나랑 장난하자는 겁니까? 묻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먼저 하고 자신이 하고 싶은 얘기를 하시라고요! 그게 뭐가 대단한 거라고 대답을 못합니까?"
"아, 그러니까, 물으시는 질문에 대해서는 제가 답변드릴 수가 없습니다."
"왜죠?"
"제가 지금 조사 중이고 아직 결론이 나온 것이 아니니까..."
"재미있는 분이시군요. 내가 지금 수사 결론을 알려달라고 했나요? 사실관계 확인이 수사의 기초잖아요. 그 사람이 작성한 수사결과 통지서는 문건이 이미 있잖아요. 그 문건에 적힌 내용을 워딩 그대로 읽어주고 그게 정상적인 공문 작성이냐고 묻잖아요! 그게 수사에 대해 결론을 알려달라고 한 건가요?"
"....."
"대답!"
"그러니까 제가 오늘 전화를 드린 이유는...."
"그런 식으로 나온단 말이죠? 대답하지 않으면 오늘 전화 끊기 어려울 겁니다. 그냥 내가 포기할 거라고 착각하는 건 아니겠지요?"
"..."
"좋아요. 사건과 관련 없는 질문으로 바꿀게요. 만약 최 경위가 이 사안에 대해 감찰수사를 하게 되면 그 작자가 과오가 없다고 나오거나 과오가 있다고 나오는 둘 중 하나겠죠?"
"..."
"이것도 대답을 못해요?"
"둘 중 하나겠지요."
"그러면 만약 이 사람이 과오가 없으면 그건 말할 나위도 없을 것이고, 만약 과오가 있는 것으로 밝혀지면 나한테 결과 통지서를 문건으로 보내줄 거죠?"
"그렇습니다."
"그러면 그 문건의 결론이 과오가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고 한다면, 그 문건의 시작 문장을 '수사과정을 감찰한 결과 과오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라고 쓰면 그건 논리적 오류이자 모순이 맞는 거죠?"
"......"
"대답!"
"그러니까 제가 오늘 전화를 드린 이유는...."
"지금 나랑 장난하자는 겁니까? 이게 제대로 대답 못할 정도의 곤란한 질문인가요?"
"가정으로 물으시는 질문이라서 대답할 수가..."
"무슨 헛소리를 하시는 겁니까? '만약 너에게 1억이 생기면 뭐할 거니?'라고 물으면, '가정이라서 대답을 못해.'라고 말하는 게 정상이에요?"
"...."
"경위가 경찰인 건 맞죠? 그런데 무슨 공범을 절대로 불지 않겠다고 묵비권을 시연하는 범죄자 코스프레를 하고 그래요? 내가 뭔가 곤란한 걸 묻는 것도 아니잖아요? 왜 별 거 아닌 걸 대답을 못하냐고요? 당신이 왜 제대로 대답을 못하는지 내가 알려줄까요?"
"......"
"당신이 그걸 대답하는 순간, 담당 수사관으로서 중대한 과오를 인정하는 꼴이 되고 그 작자에게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는 족쇄가 되기 때문이라고, 그래서 이 건을 그냥 덮고 은폐해주고 우리 경찰 식구가 이런 일로 인사상 불이익을 당하지 않게 상부상조하려면 대답해서는 안된다고, 그래서 입 꾹 다물고 있는 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제가 오늘 전화를 드린 이유는...."
"가정교육을 제대로 못 받은 겁니까? 내가 아까 몇 차례나 알려줬잖아요? 누군가와 대화를 할 때의 기본예절은 상대방의 질문에 답변을 먼저 하고 자기 얘기를 하는 거라고."
"제가 오늘 전화를 드린 이유는, 민원에 대한 답변을 드리려고..."
"뭐라구요?"
당황했는지 그의 입에서 헛소리가 튀어나왔다.
"답변을 해봐요. 이 민원에 대해."
"아, 제가 그걸 말하려고 한 게 아닌데. 실수입니다."
"얼마나 입을 다물고 절대 대답하지 않겠다고 당황했으면 그따위 말실수를 합니까? 내가 결정적인 범죄 사안을 인정하라는 것도 아니고, 그냥 문건에 나와 있는 내용의 팩트 체크를 하는 것뿐인데도 대답을 못하는 이유가 뭡니까?"
"그러니까 민원사항에 대해서 말씀해주시면 제가 공정하게 이 사건을..."
"이봐!"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한옥타브 올라가며 쩌렁쩌렁 울려버렸다.
"아니, 왜 화를 내세요?"
그가 이죽거리며 물었다.
"당신이 공정하게 수사를 하는 건 딜의 조건으로 달 수 있는 게 아니야! 그런데 얻다 대고 감히 당신의 이야기를 따르면 공정하게 수사를 해주겠다는 말을 딜이랍시고건방지게 입에 올려?공정하게 수사하는 건 당신의 의무고 그건 굳이 요구하지 않아도 당연한 거야!"
"......"
"후우, 다시 컴 다운하고 내가 묻습니다. 만약 당신이 그 작자의 과오가 인정된다는 결론을 내리고 징계위에 회부한다고 결과 통지서를 보낸다면 그 결과 통지서에 '수사과정을 살펴본 결과, 과오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라고 적을 수 있느냐고요?"
"......"
"자아, 봐요. 만약 최 경위가 해당 문건을 아직 살피지 못해서 답변하지 못하겠다고 한다면, 그 문건을 찾아보고 나에게 다시 전화해도 좋아요. 하지만, 만약 그 문건을 이미 보고서도 지금 이 따위 짓을 하는 거라면 당신 상관에게 이게 뭐 대단한 질문이라고 팩트 체크조차 답변을 회피하고 묵비권을 행사하는지 내가 직접 물어보고 나서 당신과 통화를 할게요."
"......"
"당신의 지금 언행은 민원인에게 신뢰는커녕, 사건을 은폐하고 덮으려는 의도를 너무도 강력하게 드러내 보이고 있는 상황이란 말입니다."
"제가 그런 언행을 언제 보였나요?"
"아니라면 왜 이 간단한 팩트 체크에 대해 대답을 거부하는 거죠?"
"......"
"자아, 마지막으로 기회를 줄게요. 이 통화 녹취를 증거로 최 경위까지 감찰의 대상으로 몰고 싶지 않아요. 만약 당신이 수사한 결과 과오를 발견하게 되면 결과 통지서를 보내주게 될 텐데, 그 결과 통지서의 문장을 '수사과정을 조사한 결과 과오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라고 적시한다면 그건 심각한 논리적 오류이자 모순이 맞는 거죠?"
"그러니까 제가 오늘 전화를 드린 이유는...."
"좋아요. 계속 그런다면, 내가 당신 상관에게 전화를 걸어 직접 물어보리다. 도저히 사건을 은폐하려고 작정한 당신을 믿을 수 없으니 기피신청을 하겠노라고. 이 질문에 대해 당신 팀장도 답변을 거부하는지 한번 두고봅시다."
"그러니까 제가 오늘 전화를 드린 이유는...."
"팀장의 이름과 사무실 번호를 알려주세요."
"......"
"그럼 내가 전화를 끊고 서울경찰청에 직접 문의할게요. 어떻게 할래요?"
"그러니까 제가 오늘 전화를 드린 이유는...."
그렇게 나는 전화를 끊었다. 경찰청 본청에 연락을 취해 그의 상관인 팀장의 번호를 확인했다. 전화를 걸었는데 통화 중이었다. 그리고 2분 후 다시 전화를 걸었다. 그 후로 퇴근시간이 지날 때까지 20통의 전화를 단 한 번도 그들은 받지 않았다.
경찰청 본청의 설명에 따르면, 서울경찰청의 감찰수사팀은 새로 신설된 부서라고 했다.
문제의 그 작자가 2018년 수사이의제기팀에서 지금 이름이 바뀌어 수사 심의계에 일하고 있는 것을 확인하고 나니 너무도 당연하지만 역겨운 생각이 들었더랬다.
검찰도 그렇긴 하지만, 경찰도 따까리라서인지 그걸 보고배워, 조직의 이름을 바꾸고 조직을 신설하는 따위의 허울 좋은 쇼를 잘하는 편이다.
그런데 정작 그 조직을 구성하는 자들은 결코 바뀌지 않는다.
그들은 이름이 바뀐 그 조직에 그대로 들어앉아 자신의 이익을 위해, 혹은 경찰 식구라는 이름을 대가면서 서로의 문제를 크게 밖으로 드러나지 않는 것을 미덕이랍시고 사건을 덮고 잘못을 또 덮는다.
최근 살펴보았던 현역 목사 아동학대 사건을 통해 지켜봤던 다양한 수사와 감찰 관련 경찰들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런 자들에게 우리 사회의 안위를 우리는 과연 맡길 수 있을까?
이 글을 읽고난 당신에게 묻는다.
당신이 경찰이든 공무원이든 어떤 식으로든 조직 내의 감사를 맡았다.
조사 대상자가 절차상의 잘못은 물론이고 과오를 범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 문제점을 발견하고 제기했던 민원인에게 조사 결과 통지서를 보내면서문장의 시작에는 '과오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라고 쓰고,
문장의 결론을 '과오가 발견되어 징계조치하였습니다.'라고 쓰고서는
아까 전화를 걸었던 그 정신 나간 경위의 말처럼 '공정하게' 일처리를 했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겠는가?
감찰을 담당한 현직 경찰이 그따위로 말하는 것을 듣고 난 지금 도대체 어떤 생각이 드는가?
궁금해서 그 경위에게 물었었다.
"당신, 경찰대 출신입니까? 아님 순경부터 올라왔습니까?"
"순경 출신입니다."
"경찰대 출신 간부라는 놈들도 별반 크게 다르지 않지만, 정말 어렵게 진급 시험공부해서 경위까지 올라왔으면서 이 따위로 경찰로서의 자존심과 양심을 버리고 지금 당신의 행위가 조직을 보호하는 것이라고 자위할 수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