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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검무적 Sep 01. 2021

공범을 옹호하던 현직 경찰 참교육시키기

엎드려 절 받기+ 소귀에 경 읽기

지난 이야기

https://brunch.co.kr/@ahura/273


어제 사건에 대해 많은 독자분들이 고구마 수십 개를 먹은 기분으로 남아있게 하기 뭐해서 결과보고서를 쓴다.

어제 마침 전화를 끊고 그 감찰수사팀의 현직 경찰 녀석의 상관이라는 팀장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전화를 받지 않았다. 아침에도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

그의 생각, 그들의 생각은 뻔했다.

대부분의 사람은 이 정도 의도적으로 무시하면 지풀에 지친다.

어쩌냐? 니들 사람 잘못 봤다. 잘못 걸렸다.


경찰청 본청에 전화를 넣었다.

그 경위와 그의 팀장인 경위의 족보를 보고받고 그들을 내가 어떻게 조져줄까, 물었다.

"제가 먼저 그쪽 팀에 전화해서, 녀석들에게 교수님께 전화 올리도록 조치하겠습니다. 조금만 기다려주십시오."


전화를 끊고 채 10분도 지나지 않았다.

내가 서른 번도 넘게 누른 팀장의 전화번호가 핸드폰에 반짝하고 떴다.

"아! 팀장님. 이 전화가 통화는 되는 전화기였군요?"

"죄, 죄송합니다. 교수님. 제가 어제랑 아침 일찍 회의에 들어가느라 자리에 없었습니다."

"그럴 수 있지요. 왜 전화했는지는 아는 눈칩니다?"

"압니다. 죄송합니다. 다 들었습니다. 제가 어쨌거나 책임을 맡은 사람으로서 죄송하다는 말씀 먼저 드립니다."

"됐고. 다 들었다고 하니 하나 물읍시다. 감찰을 담당한 경찰이 감찰 보고서를 민원인에게 보내면서 결론을 '수사과정에 과오가 발견되어 징계 조치하였습니다'로 내리면서 그 문서의 시작을 '수사과정을 살펴본 결과 과정상 과오나 문제는 발견되지 않았습니다.'라고 쓰는 게 말이 됩니까?"

"으음, 말이 안 됩니다."

"그걸 당신 부하가 한 시간을 대답하지 못하겠다면서 버티고 개겼습니다. 이게 감찰을 담당한 현직 경찰이 할 짓입니까?"

"입이 열개라고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다만, 제가 한 말씀드리자면, 수사팀의 능력은 수사로 결정되는데 수사는 잘하는 친구인데, 교수님처럼 법률 전문가도 아니고, 그쪽으로 훈련된 경찰도 아닌 친구들이 많은지라 말귀도 잘 못 알아듣고, 자기가 잘못 알고 있는 걸 우기는 친구들도 많긴 합니다. 저희 쪽 수사관이 부족한 것을 양해해달라고 말씀드리는 게 말도 안 되긴 하지만, 교수님도 이쪽과 무관한 분도 아니시고 잘 아시는 분이시니 너그럽게 용서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말귀를 잘못 알아듣는 정도로, 이 당연한 대답을 안 하겠다고 한 시간 이상을 버티고 이죽거리는 게 법률적 상식이 부족하거나 지능이 부족하다고 변명하자는 겁니까?"

"아닙니다. 죄송하다는 말씀밖에 드릴 게 없습니다. 뭘 우려하시는지 알고 있습니다. 제가 그 건을 담당하고 싶은데, 조직의 규정상 팀장인 제가 직접 할 수는 없고 원하시면 제가 직접 중간 보고를 드리거나 정 최 경위가 미덥지 않으시면 기피신청을 하신 걸로 해서 다른 감찰관으로 교체하도록 지시하겠습니다."

"그 밥에 그 나물이라고, 옆 자리에 있는 친구로 바꾼다고 될 일도 아니니 그대로 하되, 팀장이 책임지고 이 사안에 대해서 체크하고 어설픈 결론 내리기 전에 나한테 피드백 콜 하는 걸로 마무리합시다."

"네. 감사합니다."

"그리고 한 가지만 더! 그 버릇없는 최 경위에게 정중하고 예의 바른 사과 전화 넣으라고 꼭 가르치도록 하세요."

"아, 그게, 아, 알겠습니다."


그렇게 팀장과 전화를 끊고 차 한잔을 내리기 전에 전화벨이 울렸다.

"어제 전화드렸던 최 경위입니다. 죄송합니다. 교수님."

다른 때 같으면 '뭐가 죄송한데요?' 하면서 풀코스를 밟았을 텐데, 이제 더 이상 이 녀석의 가증스러운 목소리를 듣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내가 짧게 끝내주려는데 이 녀석이 치고 들어왔다.

"죄송한데, 제가 또 수사 때문에 외근을 나가야 하는데 오늘은 짧게 이야기를 마무리하면 안 되겠습니까?"

살짝이었지만 강한 스팀이 머리로 올라왔다.

'이 놈 봐라?'

사과를 하긴 싫은데, 자기의 통제권을 가진 부모나 담임이 사과를 하라고 할 때, 사춘기 양아치들이 보이는 행동이다. 이 녀석은 어제 공범을 감싸는 묵비권 행사부터 소년원 들어가기 전에 억지 사과하는 양아치 코스프레까지 연기력이 무르익은 녀석이었다.


"그럼 내가 2분만 씁시다. 오늘 당신 팀장에게 질문했고 팀장의 대답은 이미 들었어요. 다시 똑같은 질문을 합니다. '수사이의제기팀에 있던 비리 경찰이 종로서의 잘못된 수사에 대해 의율 적용을 잘못한 수사과오가 인정되어 징계하였다.'라는 결론의 수사결과보고서를 민원인에게 보내줄 때, 그 문장의 시작을 '조사해본 결과, 수사과정 상에 과오나 문제는 발견되지 않았습니다.'라고 쓰는 게 정상입니까?"

녀석이 숨을 가다듬었다. 설마 확인사살을 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가보다.

"제 생각에는,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거봐, 대답 잘하잖아요. 진작 이랬으면 내가 쓸데없는 에너지 낭비 안 하고 좋잖아!"

"죄송합니다. 그럼 오늘 좋은 하루 되십쇼~!"

그렇게 후다닥 치욕스러운 통화를 얼른 끝내려고 녀석이 말을 질러갔다.

"아니요, 잠깐! 어제 왜 전화를 했었는지 잊었어요? 일 얘기해야지. 오늘은 바빠서 지금 나가봐야 한다니까 어제 물어보려던 본 사안에 대해 언제 전화를 드리겠습니다,라고 얘기를 해줘야지요."

"네?"

"맞잖아요. 어제 용무가 있어서 전화한 거잖아요. 그런데 이렇게 끝낸다고?"

"아, 그럼 내일까지 다시 전화드리겠습니다."

"그럽시다."

통화는 그렇게 끝이 났다.


경찰은 인사에 가장 민감하다.

크게는 자신의 비위행위로 인해 옷을 벗게 되는 문제는 물론이고, 작게는 자신의 업무상 문제가 불거져 인사고과에 반영이 되기라도 하면, 진급이 늦어지거나 물 말아먹는 경우가 태반이기 때문에 인사에 가장 민감하다.

또 하나, 조직의 특성상 위에서 내리누르는 명령에 절대복종한다.

전에도 몇 번 글에 쓰긴 했지만, 젊은 시절의 나는 이렇게 유들유들한 스타일이 아니었다.

https://brunch.co.kr/@ahura/44

결혼을 하고 아이들이 태어나고 자식들을 키우면서 환골탈태 수준의 물커덩한 스타일이 되어버렸다.

물론 처음 보는 사람들은 지금의 수준도 충분히 말도 안 된다고 혀를 내두르긴 하지만, 침대를 함께 쓰는 산증인이 그 부분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인정을 한다, 자신이 만날 즈음의 이 사람은 사람이 아니었다고.

내가 그 경위 녀석에게 물었다.

"결국 당신이 전화번호도 알려주지 않은 팀장에게서 당신에게 연락이 가고 내게 사과하고 일을 바로잡게 될 거라고 내가 말했어, 안 했어?"


난 분명히 부탁했다, 나중에 일이 커지면 너도 곤란해지고 백배사죄하게 되는 상황이 되면 쪽팔릴텐데, 본건에 집중해야지 너까지 엮어서 혼내고 싶은 생각 없으니까 지금이라도 말 들으라고.

짠것처럼 아무도 그 부탁을 곧이듣지 않았다.

그건 이번 건의 그 경위 녀석에 한정된 이야기가 아니다.

공무원, 은행원, 통신사 직원, 보험사 직원, 검사, 판사, 교수에 이르기까지.

그 버르장머리 없는 것들은, 살아오면서 이제까지 단 한 번도 이런 꼴을 당해본 적 없으니 해볼 테면 해보라고 버텼다. 그래서 난 참교육인지 뭔지를 시연하고 이렇게 억지로 진정성이 채 담겨있지 않은 백배사죄를 받으며 그들의 머리를 발로 밟아줬다.


그런데 기분이 영 개운치가 않았다.

그들이 이 일을 통해 개과천선하고 새 사람이 되어, 나 같은 유별난 괴짜가 아닌, 평범한 시민들에게는 또다시 배운 도둑질을 시연하며 원래의 타성에 젖은 채 돌아갈 것이 빤히 보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귀찮고, 짜증나고, 에너지 낭비이며, 같은 침대를 쓰는 분에게 '돈도 안 되는 쓸데없는 짓 좀 그만하라'라고 구박을 좀 듣더라도,

끝장을 보고야 만다.


왜?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나마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달라지지 않을거라고 투덜거리면서 무슨 말이냐고?

그들이 처음 나 같은 괴짜에게 영혼까지 털리고 나서도 금세 다시 타성에 젖어 돌아오긴 하지만,

학습효과라는 것도 무시할 수 없는 것이

나에게 참교육을 받았던 비슷한 분위기가 형성되는 데자뷔가 오면 본능적으로 움찔하게 되고 그것이 반복되면 조건반사로 인한 사회변화를 꾀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물론 한 번엔 절대 안된다.

귀찮고 진 빠지고 의미 없는 짓의 반복 탓에 스스로 허무해질 때도 있다.

그래도 누군가 하지 않으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


그렇게 배웠고 그렇게 가르치고 있는 자가

그렇게 행하지 않는다면

배워 무삼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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