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C 384년 마케도니아의 스타게이로스(그리스어로 Στάγειρα, 영어로 Stageira)에서 아버지 니코마코스, 어머니 파이스티스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마케도니아 왕 아민타스 2세의 주치의였다. 그 인연으로, 왕자 필리포스와 어릴 적부터 친구로 궁정에서 자랐는데 아주 어려서부터 양친을 여의였기 때문에 프로크세노스가 그의 후견인이 되어 주었다. 17세 때 플라톤이 가르치던 학원 '아카데메이아'에 들어가기 위해 아테네로 유학을 떠나 플라톤이 죽을 때까지 거기서 수학했다. 플라톤은 제자 아리스토텔레스를, '아카데미의 정신'이라 부르며 칭찬했다.
그는, 아버지의 많은 재산을 물려받아 자유롭게 학문에만 몰두하고 연구할 수 있었다. 그래서 여타의 철학자들의 보이는 근검한 생활적 이미지와는 달리, 부유함도 행복의 조건으로 봤으며, 호화로운 집에서 많은 하인들을 거느리며 편안한 생활을 하는 것에도 상당한 가치를 둔 현실주의자였다.
게다가, 화려한 옷을 입고 손가락에 반지를 끼고 머리를 손질하는 등 외모를 치장하는 일에도 신경을 썼는데, 그 이유가 보잘것없는 용모를 더 나아보이기 하기 위한 자구책이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그의 눈은 작았고 대머리인 데다 혀가 짧았는지, 굳어버린 느낌이 있어 말을 더듬거렸다. 키도 작았으며 다리는 가늘었다. 또 겁이 많고 우유부단하고 현실 도피적이었으며, 나약하고 소심한 성격이었다고 전한다.
마케도니아 왕국 출신의 그리스 철학자. 스승인 플라톤과 함께 2천여 년 서양철학사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는 위인이었던 아리스토텔레스(그리스어로Ἀριστοτέλης, 영어로 Aristotle)의 이야기이다.
그는 형이상학, 논리학, 정치철학, 윤리학, 자연철
학, 과학, 생물학 등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분야에 통달하고 그것들의 기초를 마련한 철학사의 거인이자 시조였다.
그에 대한 공식적인 평가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스탠퍼드 철학 백과에는 ‘모든 시대의 가장 위대한 철학자 중 한 명’으로,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서는 ‘서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지성인 중 하나’로 소개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1998년 저명한 현대 철학자들이 ‘서구 철학계에서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철학자를 뽑는 투표’에서 압도적 1위를 차지했을 정도로 현시대의 철학자들에도 지대한 영향력을 끼친 철학자 되시겠다.
<아테네 학당>, 산치오 라파엘로, 프레스코 벽화, 1509~1510
17살에 아카데메이아를 입학해서 플라톤 밑에서 그가 죽기 직전까지의 20여 년 동안 학문과 그 모든 것을 사사했다. 또, 일찍부터 왕실과 가까웠다는 인연으로,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왕자 시절에 개인교사가 되어 7년 동안이나 그의 스승으로 그에게 학문을 가르쳤다. 정신적 세계의 제왕(플라톤)을 스승으로 삼고, 현실 세계의 제왕(알렉산드로스 대왕)을 제자로 삼은 그는 역사상 가장 대단한 인맥을 가진 시대의 행운아였다고 할 수 있다.
알렉산도로스 대왕
그저 아무런 반발없이 스승을 따르고 무조건 존숭하는 스타일과는 거리가 멀어, 플라톤의 생전에서부터 많은 논쟁을 치른 것으로 유명하다. 스승이 죽고 나서, ‘플라톤은 소중한 벗이다. 하지만 진리는 더 소중한 벗이다.’라는 유명한 말과 함께 스승의 그늘에서 독립을 선언하고 누차 스승의 이론을 비판하고 자신만의 학문세계를 구축하기 시작한다. 심지어는 그의 저술 중에는, 플라톤의 이데아론을 언급하며 '이 따위 헛소리는 집어치워야 한다'는 문장이 등장할 정도였다. 다만 그가 비판했던 내용은 주로 중기 이데아론이었고, 플라톤의 후기 이데아론에 대해서는 그 역시 거의 수용하는 모습을 보인다.
플라톤 사후 아카데메이아의 원장이 될 것이라 원생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지만, 외국인 유학생이라는 이유로 선발되지 못하고, 플라톤이 원장직을 조카에게 물려주자 아타르네우스로 돌아가버린다. 돌아간 이유에 대해서는 설이 분분한 편이다. 물론 인간적으로는 그 좌절감과 배신감이 들지 않았다면 이상하겠지만, 당시 아타르네우스의 참주였던 헤르메이아스 역시 아카데미아에서 공부한 인물로, 아리스토텔레스와 친교가 있었기 때문에 바로 그를 초청했다는 설도 있고, 2대 원장 자리에 오른 스페우시포스가 피타고라스 주의나 수학에만 깊은 관심을 보이자 그것이 영 탐탁치 않아 박차고 나왔다는 설도 있고, 올린고스가 함락되며 아테네에 반 마케도니아 정서가 고조된 까닭도 적지 않았을 것이라는 설도 있다.
B.C 342년 아리스토텔레스는 고향 마케도니아로 돌아가 어린 시절 친구인 필리포스 2세의 아들, 즉, 왕세자 시절의 알렉산드로스 대왕을 가르친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그가 추천한 책 <일리아스>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평생을 탐독했던 인생책이 되었다고 전한다.
알렉산도로스를 개인지도하는 아리스토텔레스
제자가 원정을 떠난 후 B.C 335년에 다시 아테네로 돌아와 ‘리케이온’이라는 학당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지금 남아 있는 저작의 대부분은 이 당시 강의했던 노트들이다. 그는 물리학, 형이상학, 시학, 생물학, 동물학, 논리학, 수사학, 정치학, 윤리학 등 다양한 주제로 책을 저술하고 강의하였다.
자신의 제자가 그리스는 물론이고 중동 전역까지 휩쓸고 다니면서 아리스토텔레스 역시 더욱 높은 명성을 떨치게 되지만 알렉산드로스가 인도 원정길에 요절한 뒤, 마케도니아가 분열되면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아테네의 미움을 사게 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신들을 정복한 마케도니아 출신인 데다 그 마케도니아 왕의 스승이기까지 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질시였다. 결국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죽자 불경죄, 즉, 신을 모독했다는 죄명에 의해 비참하게 추방당하고 만다.
당시, 그의 죄목에 대해 조금 상세히 들여다보면, 아타르네우스 체류 시절, 자신을 초청해주고 챙겨주며, 심지어 둘째 부인까지 자신의 친지 중에서 골라준 헤르메이아스를 기리는, <아레테 찬가>라는 시를 지은 것이 불경죄에 해당한다는 것이었다. 헤르메이아스는 한때 노예신분이었고, 노예 시절 거세까지 당했었는데, 아리스토텔레스가 지은 <아레테 찬가>는 감히 노예 출신 고자를 찬미하며, 감히 우리의 신성한 신들에게 비유했으니 불경하기 이를 데 없다며 말도 안 되는 죄를 만들어다 붙인 것이다.
이때 아리스토텔레스는 ‘리케이온’을 테오프라스토스에게 물려준 뒤, 에우보이아의 칼키스(Χαλκίδα)라는 작은 섬나라로 도망가서 조용히 자신만의 연구를 계속하다 이듬해 63세의 나이에 위염으로 사망하였다.
학교 다닐 때, 윤리 시간에 얼핏 들어보기는 했고, 워낙 유명한 사람이라 알고 있다고 당신이 착각했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인생을 살펴보았다.
왕가와 왕래할 정도의 부잣집 의사 집안 도련님이던 그가, 인생에 얼마나 많은 부침과 좌절을 맛봐야 했었는지 당신에게는 그 그림이 그려지는가?
원래 가난했던 사람에게서 집이 망하는 것과, 구중궁궐 대갓집에 살던 사람이 망해서 길바닥에 나앉는 것은 충격 정도가 차원이 다르다.
나름 자타공인 수제자라고 생각했는데, 외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후계자 원장직을 지명받지 못했을 때, 우등생으로만 인정받았던 그의 자부심은 모두 무너져 내렸을 것이다. 브런치 안데르센 대상에 어렵게 어렵게 공모한 당신이, 정작 대상을 포함한 15편의 허접하기 그지없는 유치원 학부형 구연동화 수준의 수상작들을 보면서 이해할 수 없는 분노를 느끼는 것의 수천수만 배는 더한 분노가 그의 온몸을 휘감았을 것이 눈에 선하다.
정작 자신의 제자가 대왕이 되어 전 세계를 정복하며 잘 나갈 때는 좋았으나, 갑작스러운 그의 요절을 접하고 세상이 자신을 대하는 것이 확 달라져 자신이 있던 나라에서 추방을 당하는 수모와 치욕은 천하의 대학자에게 있어 도저히 감내하기 어려운 지경의 모멸감을 선사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보라.
그가 그때마다 자신을 휘감는 분노에 사로잡혀 자신의 인생을 망가뜨리고, 좌절하여 술로 인생을 보내고 이번 생은 이미 망쳤다며 자조했던가?
스승이 만들었던 그것보다 훨씬 더 대단한 학원을 스스로 세워, 세상을 바로잡는 인재들을 양성하는데 힘썼고, 자신을 내쫓은 옹졸한 것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작은 섬나라에 들어가 자신의 죽음을 예상하기라도 한 사람처럼 조용히 그 학문세계를 정리하며 보냈다.
당신에게 인생의 정점이 이미 지났다고 생각한다면 그 정점에서 갑자기 꺾여 곤두박질쳤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상황을 곰곰이 곱씹어 돌이켜보라.
당신이 주변의 사람들에게 받던 존경과 부러움, 그리고 당신이 스스로 느꼈던 자부심, 그 모든 것들이 곤두박질치듯 꿇어박은 이후의 당신의 대처는 어떠하였는가?
현실을 부정하고, 스스로를 부정하고, 어찌할 바를 모르며 그저 당황하고 황망하여 일을 건사할 생각조차 못하고 망연자실 스스로를 놓고 술병을 움켜쥐고 세월을 탕진하였는가?
그렇게 해서 깨질듯한 머리를 움켜쥐고 벌건 대낮에 일어나 보니 세상이 다시 이전으로 돌아가 있던가?
당신이 생각하는 정점이 어떤 것인지 나는 잘 알지 못하겠다.
하지만, 나는 최소한 당신이 살아있는 동안 중간 어디쯤에 정점을 찍고 내려오는 삶을 사는 것이 당연하지 않다는 것은 확실하게 말해줄 수 있다.
인생의 정점이 어떤 의미에서건 그것은 젊음과 비례하는 것도 아니며, 단순하게 자산과 비례하는 것도 아니다.
당신 자신이 스스로 생각할 때 만족스러운 삶을 구축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 평생을 당신이 노력해야 한다는 사실만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이전 세기부터 바뀌지 않는 진실 중에 하나였다.
당신이 불완전한 당신의 삶을 온전한 그것으로 완성시키기 위한 노력은 당신이 이 세상에 생명이라는 것을 부여받아 탄생했을 때부터 당신에게 주어진 소명이다.
그것이 어떤 형태라고 말로, 혹은 글로 간단명료하게 서술할 수는 없겠으나,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당신이 세상을 떠나기 전, 당신만이 온 정신과 마음으로 체감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것만은 내 확실하게 장담할 수 있다.
당신이 이 세상에 나올 때는 정신이 없었겠으나, 이 세상을 떠날 때에는 당신 스스로가 평생을 어떻게 살았는지에 대한 평가가 마음속 깊은 곳에서 나올 지니, 그것이 바로 당신이 인생을 어떻게 살았는가에 대한 해답이 될 것이다.
아직 그 해답을 받아보지는 못하였겠으나, 그 해답이 당신의 생에 당당한 증명이 되기 위해 지금 당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는 당신이 가장 잘 알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