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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검무적 Oct 21. 2021

일곱 번째 차 - 무이암차(武夷岩茶)

푸젠성의 무이산에서 나는 우롱차의 지존

지난 이야기.

https://brunch.co.kr/@ahura/371


                    무이암차(武夷岩茶)

푸젠성(福建省) 북부 우이산(武夷山, 무이산) 지구에서 생산되는 우롱차(烏龙茶) 중의 최상품을 통칭하여 일컫는 말이다. 우이산(武夷山, 무이산)에는 절벽이 많으며 바위가 패인 곳에서 차를 재배하기 때문에 ‘암차(岩茶)’라고 부리기 시작한 것이다. 무이암차는 대홍포(大红袍), 백계관(白鸡冠), 철나한(铁罗汉), 수금귀(水金龟) 등의 다양한 종류가 있는데, 이 중에서도 절벽에 자생하는 네 그루의 차나무에서 생산된 대홍포(大红袍)를 최고로 칭하고 있다.

 


 

일반에게도 많이 소개되어 있고, 일반적으로 많이 마시며 심지어 캔음료로까지 판매하고 있는 ‘우롱차(烏龍茶)’의 지존이라고 설명을 했으니, 우롱차에 대한 개론격 설명을 하지 않고 넘어갈 수가 없겠다.

우롱차의 유래에는 아주 오래된 전설이 하나 있다.

 

우롱차의 전설도

어느 날 한 농부가 차나무가 심어져 있는 것을 발견하고, 찻잎을 따려고 다가가 보니, 검은 뱀[黑蛇]이 그중 한 그루의 차나무를 칭칭 휘감고 있었다. 농부는 처음에 놀라 뒤로 한 발짝 물러났으나 가만히 살펴보니, 그 검은 뱀이 사람을 공격할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 모습이 오히려 농부의 눈에는 아주 온순하게까지 보였다.

 

그래서 농부는 그 검은 뱀이 칭칭 휘감고 있는 차나무에 조심스레 접근하여 가만히 찻잎을 따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 검은 뱀은 농부를 공격하려고 들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따 가지고 온 찻잎을 가지고 차를 만들어 마셔보니 차 맛이 도저히 맛보지 못했던 천상의 맛이었다고 전한다. 이 차가 바로 청차(靑茶)의 대명사, 우롱차였다.

 

중국인들은 전통적으로 뱀을 싫어하면서도, 용(龍)을 숭상하는 문화가 있어 검은 뱀(黑蛇)을 까마귀같이 검은 용이란 뜻의 ‘오룡’으로 미화시키고, 이 차를 가리켜 ‘오룡차(烏龍茶)’라 이름 짓게 되었다고 전한다.

 

일곱 번째 명차를 논하는 이제까지의 차들을 살펴보더라도, 차를 즐긴다고 하는 이들조차도 10대 명중에서는 마셔본 차보다는 마셔보지 못한 차가 더 많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우롱차는 이제 차를 모르는 이들에게도 일반 음료로까지 만들어져 일반화된 차를 찾는다면 단연 단연 홍차(紅茶)와 우롱차(烏龍茶) 그리고 녹차를 대표하는 용정차(龍井茶) 정도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홍차는 100% 발효차로써 6대 차류로 보면 독립적인 홍차로 분류되지만, 홍차의 종류에 따라서는 발효의 정도가 조금 선을 많이 넘어서게 되면 보이차와 더불어 흑차류로 분류되는 경우도 있다. 이에 반해 우롱차는 반발효차로써 청차(靑茶)류로 분류된다.

모든 명차가 저마다 채엽부터 제다까지 모두 까다롭기 그지없다고들 하지만, 객관적으로 봤을 때, 많은 중국 차 마니아들이 제다가 까다로운 차로 우롱차를 대표적으로 꼽는다. 조금만 더 발효하거나 혹은 조금만 덜 발효해도 제대로 된 우롱차 특유의 향이 나오지 않는 특징 때문이다. 우롱차는 ‘엽홍양변(葉紅鑲邊)’ 즉, 초록 찻잎의 가장자리로 마치 붉은 홍선의 테두리를 두른 듯이 반발효가 제대로 진행되어 있어야 최상급으로 인정을 받는다.

 

중국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중국의 명차 우롱차의 원산지는 푸젠성(福建省)이다. 문헌에 의하면, 이곳에서 재배되었던 모든 차나무는 본래가 전혀 인공재배 과정을 거치지 않은 야생하는 것이었으며, 이들의 품종 또한 한 가지 품종이 아닌 다양한 종류들의 품종이 골고루 뒤섞여 있었다고 알려져 있다.

푸젠 성에서 생산되는 차는 대략 탕색(湯色)으로 구분하면 홍차(紅茶), 녹차(綠茶), 청차(靑茶), 백차(白茶)의 네 종류로 볼 수가 있다. 그중에서도 청차(靑茶)와 백차(白茶)가 가장 특색이 있다고 하겠다. 송나라 때까지만 하더라도 백차(白茶)가 매우 높은 평가를 받았으나, 현재는 청차(靑茶)가 백차(白茶)보다 품질면에서 한 수 위라는 평가와 인정을 받고 있다. 푸젠 성의 청차류(우롱차 계열) 중에서도 가장 유명하고 우롱차를 대표하는 차가, 바로 오늘 다루게 될 ‘무이암차(武夷岩茶)’이다.

 

무이산은 기암 절경이 뛰어난 중국 동남부에 위치한 명산 중의 명산이다. 그 산수절경이 기이할 뿐만 아니라 기이한 차의 명산지로도 유명한 산이다. 무이암차는 무이산의 기암절벽을 뚫고 자라나는데, 무이산은 현재 푸젠 성 무이산시(武夷山市)의 관내에 위치하며, 위도 상으로는 북위 27˚ 15´, 동경 118˚ 01´이며 평균 해발 650m이다. 실제로는, 거의 해발 700m가 넘는 지역이 많고, 사시사철 따뜻한 기온과 높은 습도를 유지하여 그 자연환경이 차 재배에 적당하다. 연평균 기온 17.5℃, 연평균 강우량 2,000mm 이상이다.


골짜기에는 안개가 자욱하게 끼어, 일반적으로 습도 80%를 유지한다. 연평균 일조시간은 1,900시간 정도로 매우 짧아, 찻잎이 부드러워 우수한 품질의 차 성장에 매우 적합한 자연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다. 무이산의 토양은 붉은색의 사암(沙岩)으로 이런 바위들이 늘어서 있는 곳은 차나무가 무성하게 자랄 수 있는 토양을 제공하기 때문에, ‘암차(岩茶)’라고 부르게 되었다.

수확은 봄과 여름의 두 철에 이루어지는데, 봄에 따는 차가 전체의 80%를 차지하며, 품질도 훨씬 우수하다. 봄차는 입하를 전후하여 찻잎을 따기 시작하여 20일 동안 찻잎을 딴다. 어린 차 싹을 따는 녹차와는 달리 무이암차는 다 펼쳐진 찻잎을 딴다. 그래서 무이암차만의 독특한 향기와 맛이 나타난다.

 

무이산에는 서른여섯 개의 봉우리가 서로 연결되어 있고, 아흔아홉 개의 기암이 장관을 이룬다. 그중 최고봉은 삼인봉(三仁峰)으로서 높이가 해발 700여 m에 이른다. 구곡계(九曲溪)가 산골짜기마다 휘감고 흐르고 있어 기암절벽들이 서로 앞을 다퉈 얼굴을 비추니 그 풍경이 그야말로 장관을 이루고 있다.

현지에 구곡계를 돌 때는 뗏목을 타고 유람한다

차의 생산이 가장 번성하던 시기엔 매 봉우리와 매 기암마다 모두 차를 만드는 공장인 ‘차창(茶廠)’이 있었다고 전한다. 무이산에서 생산되는 차는 그 종류가 다양한 만큼 그 맛의 수준도 품질에 따라 현저하게 차이를 보이고 있다.

 

무이암차는 먼저 찻잎이 자라나는 장소에 따라 분류하면 대체로 세 종류로 나눌 수가 있다.


첫째, 산봉우리의 암벽에서 채취하여 만든 차를 ‘암차(岩茶)’라고 하는데, 특히, 3갱(혜원갱(慧苑坑), 우란갱(牛欄坑), 대갱구(大坑口))과 2간(유향간(留香澗), 오원간(悟源澗))에서 생산되는 차를 ‘정암차(正岩茶)’라고 부른다. 이 품종은 맛과 향이 가장 뛰어나기 때문에 ‘기종(奇種)’이라고도 한다.


둘째, 계곡 주변에서 채취한 차를 ‘주차(洲茶)’라고 하는데, 그 맛과 향이 우수하나 암차보다 약간 뒤떨어진다 하여 ‘명종(名種)’이라고 한다.


셋째, 산과 계곡 주변 사이에서 채취한 것을 ‘반암차(半岩茶)’라고 한다.

그다음으로 품종에 따라 기종(寄種), 단총기종(單總奇種), 명총기종(名總奇種)으로 나뉜다. 품질은 정암차가 가장 좋고, 정암차 중 우량의 차나무를 선정해 단독으로 무성 번식한 품종을 무이단총이라 하는데, 무이단총 중 최상품을 무이명총이라 한다. 흔히 4대 무이명총은 대홍포(大紅袍), 철라한(鐵羅漢), 백계관(白鷄冠), 수금귀(水金龜)를 일컫는다. 대홍포는 무이명총 가운데 으뜸으로, ‘무이암차의 왕’이라 한다.


여기서 주의할 점 한 가지. 명총기종(名欉奇種)은 줄여서 그냥 ‘명총(名欉)’이라도 부르는데, 최고의 ‘명총’과 일반 등급 이하를 통칭하는 ‘명종(名種)’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간혹 중국에서 차를 사 왔다는 초심자들을 보면, 이 말에 속아 하등 품질을 상등의 가격으로 속아 사 오는 경우가 많이 있어, 진품 여부를 묻는 그들에게 뭐라 사실을 말해주기가 곤란한 경우가 많이 있다.

무이산 구곡계(九曲溪) 풍광

 그렇다면 이제 무이암차 중에서도 ‘암차(岩茶)의 왕’이란 별칭을 갖고 있는 명총차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살펴보기로 하자. 명종차들은 차나무의 형상이 아주 기이하거나 또는 차가 재배되는 지역의 기이한 특성들로 인해 저마다 특이한 명칭들을 따로 가지고 있다.


명총은 다시 대홍포(大紅袍), 철나한(鐵羅漢), 백계관(白鷄冠), 수금귀(手金龜)의 4가지로 분류되는데 세부적으로 그 4종류를 살펴보면 무이암차에 대해서는 모두 공부하는 것이 되겠다.

 

① 대홍포(大紅袍)

무이명총 중에서도 대홍포의 명성은 중국 현지는 물론이고 우롱차를 즐기는 마니아들사이에서는 단연 으뜸이다. 때문에 대홍포는 우롱차 중에서도 ‘차중지성(茶中之聖)’이란 최고의 명예로운 이름을 가지고 있을 정도이다.


그 명성에 걸맞게 전해지는 전설도 많은데, 들었던 우롱포에 대한 전설 중 가장 재미있었던 것은, 차가 워낙 깎아지른 절벽에 야생하여 도저히 사람이 올라가 채취할 수 없었기 때문에 어느 절의 스님이 매년 차를 따는 계절마다 산에 있는 원숭이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 길들여, 절벽에 야생하는 찻잎을 따오게 했다는 이야기였다.


또 다른 유래를 다룬 이야기에서는 “차나무의 높이가 무려 33m나 되고, 찻잎의 크기가 사람의 손바닥만 하다. 이 차는 좁은 절벽 벼랑 사이에서만 야생하는데, 도저히 사람이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좁고 험해 인근 절의 스님이 겨우 강한 바람에 떨어지는 찻잎만을 주워서 차를 만들었는데 그 차를 마시면 모든 병을 치료할 수 있었다.”고도 전한다.

차의 이름이 어째서 대홍포가 되었는지에 대한 유래를 짐작케 해주는 이야기도 있다.

“어떤 선비가 시험을 보기 위해 무이산 천심묘(天心廟)를 지나갈 때 갑자기 배가 아프기 시작했다. 천심사의 스님이 사원의 차를 끓여 대접하자 그것을 마신 선비의 병은 씻은듯이 나았다. 선비는 무사히 늦지 않고 시험장에 도착하여 장원급제의 영광을 안게 되었다. 그래서 돌아가는 길에 천심사에 들려 감사의 의미로 차나무에게 절을 하고 장원급제한 홍포(紅袍)를 덮어주었다.”

절벽 위의 대홍포 모수(母樹). 약 350년 동안 절벽 위에서 자라고 있으며 왼쪽 돌벽에 '大紅袍'라고 쓰인 붉은 글씨가 보인다.

대홍포의 모수(母樹)는 약 350년 동안 천심암(天心岩) 구룡과(九龍窠)의 절벽 위에서 자라고 있으며 총 6그루, 3개의 품종으로 이루어져 있다. 왼쪽 돌벽에는 붉은 글씨로 ‘大紅袍’ 3글자가 쓰여 있다. 중화인민공화국이 설립된 후 중국 정부는, 이 6그루의 모수를 가져다 무이산 전역에 무성번식을 성공시켜 현재의 무이산 차밭을 형성하게 된다.


중국 정부는 모수를 보호하기 위해서 2007년 20g의 차를 만들어 중국 국가 박물관에 기증한 것을 끝으로 더 이상은 모수의 잎으로 차를 만들지 않는다.

대홍포는 녹차와 홍차의 특징을 두루 갖춘 우롱차로, 반드시 마셔보고 선택하는 것이 좋다.

대홍포는 반발효차인 우롱차로, 녹차의 청향(淸香)과 홍차의 단맛을 모두 가지고 있다. 홍배(烘焙: 차를 바구니에 넣고 숯을 이용해 불을 쪼여 건조하는 방법)의 정도에 따라 홍배를 충분히 한 차는 과일향기 및 크림과 같이 부드러운 맛이 느껴지는 것이 최상품이고, 가볍게 홍배한 차는 꽃향과 복숭아와 같은 과일향이 느껴지는 것이 최상품이다.


목 넘김이 부드럽고 입안이 깔끔한 것이 좋고, 쓰고 떫고 시큼한 것은 품질이 떨어지는 것이다. 간혹 구수한 맛을 좋아하는 한국인 초심자들의 경우, 홍배가 지나쳐 생긴 불맛이 느껴지는 것을 구수하다며 좋다고 느낀다고 하는 이들이 제법 있는데, 이는 차가 원래 가지고 있는 모든 특징들이 화기(火氣)에 묻혀버려 결코 좋은 차라 할 수 없다.

모수의 3가지 품종 중 하나의 품종으로 무성 번식한 차나무의 잎으로 만든 차를 ‘순종(純種)대홍포’, 두 개 이상의 품종을 섞어 만든 차를 ‘상품(商品) 대홍포’로 분류하기도 한다. 현재 상품 대홍포는 무이산에서 자라나는 5~10개의 품종을 각 농가의 비법으로 섞어서 만들고 있기 때문에 넓은 의미의 상품대홍포는 무이산에서 자란 대홍포 품종을 포함하여 만든 우롱차를 말하며, 시중에서 마시는 대부분의 대홍포가 바로 이것이다.

 

많은 전설들 중에서도 현지의 차농에게서 들은 중국스럽게 신격화된 이야기도 전하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대홍포는 ‘바위의 신[岩神]’이 소유하고 있는 신물(神物)이라 아무나 차를 딸 수가 없다. 단지 사원의 스님들이 매년 정월 초하루에 분향 예배한 뒤, 약간의 차를 부처님께 공양하는 것만 허락된다. 이 차는 스스로를 지킬 줄 알기 때문에 사람의 관리 따위는 필요치 않다. 만약에 누가 몰래 바위 신의 허락도 없이 차를 딸 경우에는 그 차를 마신 자가 당장 복통을 일으키며, 몰래 딴 찻잎을 모두 버리지 않으면 절대 그 병이 낫지 않는다. 이 차는 신이 재배한 것이기 때문에 절대 사람이 먼저 맛볼 수가 없다.”

 

이야기를 들려준 이의 말에 의하면, 아마도 무이암차의 명성이 사방에 널리 전해지자 암차를 도둑질하려는 무리가 많이 생겨나는 바람에, 당시 도둑들의 무분별한 절도를 방지하기 위해 무지하여 귀신을 가장 두려워하는 중국인들의 특성을 감안하여 현지 차농들이 궁여지책으로 만들어 퍼트렸던 이야기일 것이라고 한다.

대홍포는 천심암(天心岩) 구룡과(九龍窠)의 고암(高岩) 절벽 위에서 자란다. 양쪽의 절벽은 하늘 높이 치솟아 마주하고 있어 일조시간이 길지가 않고, 기온의 변동이 그리 크지 않다. 게다가 공교롭게도 바위 위에서는 일 년 내내 아주 가늘고 작은 샘물이 바위틈 사이로 끊임없이 흘러내려 차의 야생지가 결코 마르지 않게 적셔주고 있다. 더군다나 이 작은 마르지 않는 샘물이 이끼류 등의 풍부한 유기물 등이 땅을 더욱 비옥하게 해 주고 있다는 것이다.


다른 차 산지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아주 특이한 이곳의 차 생장 조건이 대홍포를 더욱더 독특하고 세상에서 유일무이한 기이한 차로 그 명성을 드날리게 만든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하는데 부족함이 없다.

 

전설 때문인지는 몰라도, 옛날에는 대홍포를 채적할 때 반드시 단(壇)을 세우고 분향 예배를 하고 독경(讀經)한 뒤 특수한 제다기(製茶機)를 사용하여 고도로 훈련된 사부(師父)가 제다를 맡아서 진행했다고 한다.


차 따기와 차 만들기에 관해 기록한 자료를 살펴보면, 오전 8시 반쯤 채다하여 1시간 뒤에 햇볕에 말려 쇄청(曬靑)을 하고, 다시 1시간이 지난 뒤 한 차례 비벼 뒤집고 10시 반에 시작하여 15분간을 식힌다. 10시 45분에 위조실(萎凋室:차를 시들게 하는 방)로 옮겨 하루를 재운 뒤, 다음날 1시 45분에 덖는다.

찻잎 흔들기 과정인 요청(搖靑: 커다란 원형의 통에 찻잎을 넣고 돌리는 과정)을 하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그 안에서 찻잎이 서로 부딪치며 찻잎의 섬유조직이 파괴되면서 찻잎에서 나오는 액즙에 의해 발효가 진행된다. 이때 사용하는 원형의 통을 ‘요청기(搖靑機)’라고 하는데, 현재는 전 자동으로 설비가 갖추어져 있다.


그렇게 14시간 40분간에 걸쳐 7차례나 진행된다. ‘요청’과정이 끝나면 두 번 덖는 초초(初炒)와 재초(再炒)를 거쳐 다시 두 차례 불에 쬐는 초홍(初烘)과 복홍(復烘)의 순서로 마무리 짓는다. 이렇게 만들어진 대홍포는 다른 명총과 확연한 차이를 만들어내는데, 다른 명총이 7번까지 우리게 되면 그 맛이 옅어지는 것에 비해, 대홍포는 9번까지 우려도 여전히 처음의 맛이 그대로 유지됨은 물론, 계화향(桂花香)까지 뿜어낸다는 것이 큰 특징이다.

 

② 철나한(鐵羅漢)

청나라 때 곽백창(郭柏蒼)이 저술한 『민산록이(閩産錄異)』에 의하면 ‘철나한’은 무이암차 중에서도 ‘최초의 명총(名欉)’이라 불리는 품종이다. 아마도 이것이 대홍포의 전신에 해당하여 이것이 발전하면서 대홍포가 되지 않았는가 조심스레 짐작해본다.


여러 기록에 의하면, 19세기 중엽 혜안현(惠安縣) ‘시집천(施集泉)’이란 다점(茶店)에서 무이암차를 경영하였는데, 당시 유행했던 열병(熱病)의 치료에 뛰어난 효능을 보여준다는 소문이 나면서 철나한이 가장 귀한 대접을 받았다고 한다.

실제로 1890년에서 1931년 사이에 혜안현에서 큰 질병이 두 차례나 유행한 적이 있었는데, ‘시집천’에서 판매하는 ‘철나한’을 사서 우려 마신 일부분의 환자들은 병이 말끔히 나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집집마다 시집천의 철나한을 상비약으로 구비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먼 길을 가거나 바다로 출항을 할 경우엔 반드시 지니고 나갔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다.

 

③ 백계관(白鷄冠)

‘백계관’의 원산지는 혜원암(慧苑岩) 화염봉(火焰峯) 아래에 있는 외귀동(外鬼洞)이란 곳이라고 기록에 전한다. 그러나 근래에 무이궁(武夷宮) 뒷산에서도 해당 차나무가 발견됨에 따라 백계관의 원산지가 무이궁쪽이었다는 주장도 있다.

 

백계관은 대홍포보다도 훨씬 이른 명대(明代) 때부터 그 명성이 널리 알려졌는데 거기에는 이런 전설이 전한다.

 

당시 어느 한 지부(知府: 지방관리벼슬)가 가족들을 데리고 무이산을 지나가다가 무이궁(武夷宮)에서 묵게 되었는데, 그때 그의 아들이 갑자기 몹쓸 병에 전염되어, 배가 마치 소처럼 부풀었다고 한다. 온갖 약을 써서 치료해보았으나 백약이 무효하였다. 그 때 한 스님이 조그마한 찻잔에 차를 한 잔 가지고 와서 주었는데, 지부(知府)가 마셔보니 그 맛이 아주 특이하게 좋았다고 한다. 마시다 남은 차를 병든 아들에게 먹였더니 병이 씻은 듯이 나았다. 그래서 스님에게 무슨 차냐고 물었더니, 스님이 “백계관(白鷄冠)입니다”라고 하였고 한다. 이제 지부가 ‘백계관’을 받아 바로 황제에게 진상하였더니, 황제가 이를 맛보고는 크게 기뻐하며 곧 칙령을 내리어 그 절의 스님에게 그 차나무를 잘 지키도록 명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매년 은(銀) 100냥과 곡식 40석을 하사하였다. 아울러 매년 이 차를 만들어 진공하여 ‘어차(御茶: 각 지방에서 나는 최고의 명차들을 황제에게 바치는 차.)’로 삼았다고 한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백계관(白鷄冠)’은 외귀동(外鬼洞)과 무이궁 뒷산의 2가지 원산지설을 가지고 있으나 실제 두 곳에서 생장하는 차나무의 형태가 거의 흡사하여 같은 종임을 확인할 수 있다. 높이가 1.75미터이고 한 나무에서 갈라지는 가지가 꽤 많다. 찻잎이 길쭉하고 원형이며 그 잎의 색은 짙은 녹색과 광택을 띠며, 잎이 여리고 얇고 부드러운 것이 특징이다. 백계관의 찻잎 색은 연두색에 약간의 황색을 띤 것과 짙은 녹색의 늙은 잎이 선명하게 양색의 층으로 대조를 이루고 있어 이에 ‘백계관’이란 명칭이 유래되었다.

 

④ 수금귀(手金龜)

‘수금귀’의 원산지는 무이산의 우난갱(牛欄坑), 두갈봉(杜葛峰) 아래의 절벽에 반쯤의 절벽 위에 있는 난곡암(蘭谷岩)이다. 기록에 의하면 “수금귀는 무이산의 천심사(天心寺)에 속하는 차로 ‘두갈봉’이 아니라 ‘두갈채’ 아래에 심었다.”라고 전하는데 그 전설은 다음과 같다.

 

“하루는 큰비가 계속해서 내려 봉우리 정상의 차밭 양쪽 언덕이 무너져 내리는 바람에 차나무가 뽑혀 빗물에 떠내려가다가 ‘우난갱’의 반암(半岩) 움푹 패인 곳에 이르러 멈추었고, 후에 물이 흘러내려 차나무 곁으로 고랑을 이루고 흘러내리게 되자 난곡산(蘭谷山)의 산주인이 이곳에 돌을 뚫고 다듬어 계단을 만들고, 그 주위를 돌로 쌓아 올린 뒤, 그곳에다 흙을 실어다 붓고 배토하여 차나무를 잘 살 수 있도록 하였다.”

수금귀는 다른 명종과는 달리, 원산지 소유권 문제가 많이 논쟁거리가 되었던 차이다. 실제 1919년에서 1920년 사이엔 ‘수금귀’의 원산지의 소유권 분쟁 문제로 인해 뇌석사(磊石寺)와 천심사(天心寺)의 업주끼리 법적 다툼까지 있었다고 한다. 당시 법원에서는 “수금귀의 원산지는 천연적으로 조성된 것이므로 ‘난곡(蘭谷)의 소유’로 해야 마땅하다.”라고 판결을 내려 이 논란을 종식하였다고 전한다. 얼마나 상등의 고급 상품이고 가치가 있었기에 원산지 논쟁까지 법정에 끌고 갔는지 알만한 대목이다.


무이암차에서 시작된 우롱차의 역사는, 정작 의외의 개발로 서구를 비롯한 전 세계 일반인들에게까지 익숙한 이름으로 퍼지게 되는 계기를 맞게 된다. 사실 푸젠성이 원산임에도 불구하고 현재 우롱차를 더 많이 알려 팔아먹는 어부지리(漁父之利)를 누리는 이들이 있다. 바로 대만이다.


실제로 우롱차가 푸젠성에서 대만으로 전래된 시기는 청나라 가경(嘉慶) 연간(年間:1976~1820년)인데, 도광(道光) 연간(年間:1820~1850년)에 이르러 대만에서는 우롱차를 제작 생산하기 시작하는데 이것이 대만에서 우롱차의 시작이다. 그 후, 대만에서 조제(粗製)된 우롱차는 다시 푸젠 성 복주(福州)로 운반되어 재가공과 정제(精製) 과정을 거친 후 시판되는 아이러니한 구조로 유통되기 시작하였다. 일종의 남단 유배지이고, 값싼 노동력인 원주민들을 부릴 수 있었고, 무엇보다 서구 열강이 멋대로 침입하여 자리를 잡으면서 대만 우롱차의 유통로는 그 판매 활로를 넓히게 된다.


동치(同治) 4년(1865)에 이르자 단수이(淡水:타이뻬이시의 남단을 돌아 대만 북서쪽 바다로 흐르는 강)에서는 이미 외국 서방세계와의 무역 왕래가 시작되었는데, 무려 우롱차 8만 2천22근이 수출되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어 동치 8년(1869)에는 영국 상인이 대만에서 직접 정제한 우롱차 12만 7천800근을 미국으로 직접 수출하였는데, 미국 시장에서 크게 환영을 받았다. 청나라 광서(光緖) 7년(1880)에는 무려 542만 8천553근이나 수출하였다. 이는 당시 최고의 수출량을 기록하였는데, 당시의 우롱차 생산이 얼마나 흥성했는지를 잘 엿볼 수 있는 한 단면이라 하겠다.

현대 대만 차 브랜드의 계보

대만의 차종(茶種)은 대부분 우롱이 주종을 이루고 있으며, 비교적 유명한 청차의 대부분은 품종이 좋은 ‘청심오룡(靑心烏龍)’으로 제다하고 있다. 대만의 우롱차는 발효 정도가 5~10% 정도의 ‘경발효차’로부터 70% 이상에 이르는 중발효차(重醱酵茶)에까지 다양하다. 요즘은 젊은 층을 겨냥하여 만들어진 향기 위주의 경발효차가 많이 생산되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역시 대만의 우롱차의 주종은, 70% 이상의 중발효차가 아직까지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그래서 그 맛과 향은 중후하면서도 회감(回甘)이 빠르고, 그 향이 오래가는 것이 특징이다.

대만 핑린에서 만난 문산포종

현재 대만에서는 아직도 고대의 제다법을 이용하여 우롱차를 많이 생산하고 있어, 현대화되어 발전된 맛을 추구하는 중국 본토보다 오히려 전통 방식과 맛에 더 가깝다는 평가를 받는다. 고급 우롱차는 ‘일엽일심(一葉一心:맨 끝 싹과 그 싹 밑에 달린 첫 잎으로써, 싹은 창과 같고, 그 잎은 창에 달린 깃발 같다고 하여, 일명‘일창일기(一槍一旗)’라고도 한다)’으로 제작된 차를 최고로 치는데, 찻잎의 외관은 황갈색(黃褐色)을 띤다. 그리고 찻잎이 부드러울 뿐만 아니라, 그 뒷면에는 흰 털이 솜털처럼 남아있다.


대만 사람들이 속칭 ‘팽풍차(膨風茶)’라고도 하는데, 영국인들이나 미국인들은 이를 가리켜 ‘동방미인차(東方美人茶)’라고 하면서 대만 우롱차를 대표하는 차 이름이 되었는데, 사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백호오룡차(白毫烏龍茶)’이다.

일반인들에게도 유명한 동방미인차

여덟 번째 차 이야기는 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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