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0월 19일, 대만의 언론을 통해 먼저 접하게 된 검찰의 기습 기소 소식으로 박 교수는 크나큰 상실감에 일주일이 넘도록 제대로 잘 수도, 먹을 수도, 아이들의 앞에서 그런 모습을 티 낼 수도 없었다.
스승 발검 무적에게 도움을 청하고 스승이 만들어준 카페에 모든 그간의 기록들을 정리하여 문건을 만드는 데에만 삼일 밤낮을 세웠다. 그간의 대화와 통화 녹취파일도 모두 업로드했고, 관련 자료들에 대해서 정리하면서 다시 스승에게서 피드백이 왔다.
- 관건은 일단 현재 자네를 백업해주는 세력이 전혀 없다는 점이다. 썩어빠진 것들이라 가망은 없지만 지금 가장 먼저 조져야 할 곳은 한국 외교부이다. 그리고 자네가 올린 자료에 의하면, 이미 그 박 부대표라는 자는 큰 약점을 잡혔다. 당장 이것을 언론에 터트리고 그를 낙마시킬 수도 있겠지만, 외교부 마피아들이 전 세계에 퍼져 이런 짓을 자행하고도 덮는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것은 나는 십수 년간 해외 각지에서 봐왔다. 그러하니, 이 자료는 최후의 폭탄으로 남겨두고, 그 현지 공관에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특히, 한국에 경제 수준이 역전되고, 연년 전 방송된 ‘꽃보다 대만’인가 하는 예능을 통해 대만을 찾는 한국 서민들을 폭발적으로 많아지면서 그들의 관광수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한국이 1위로 돌아선 지 3년도 채 안되었다. 그 말인즉은, 한국에서 정부차원의 대처를 하게 될 경우, 대만은 을에 해당된다는 점이다. 이미 자네가 움직이고 대화한 내용을 살펴보면 자네도 그 점에 대해 이미 감각적으로 인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불법적 요소가 가득한 편법 기소까지 이루어졌으니 적극적이고 지속적인 항의가 필요하다.
스승의 조언대로 다시 타이베이 대표부에 집중하기로 박 교수는 마음먹었다.
2017년 8월 25일을 기점으로 한국 외교부는 정기 인사이동을 결정했다. 그 결과 주타이베이 대표부의 영사를 맡고 있던 노현정 과장의 후임으로 박아현 영사가 부임했다. 새롭게 영사가 왔다는 것을 일일이 체크할 정신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부단히 도움을 요청하는 가운데, 박준기 부대표가 계속해서 박 교수의 연락을 피하면서 행정직원들을 통해 그 소식을 전해 들었다. 그나마 사건을 담당하는 실무 책임자라고 영사에게 계속해서 연락을 달라고 요청한 지 두 달만인 11월 1일에 그녀에게서 연락이 왔다.
“죄송합니다. 제가 부임한 이후로 정신이 없어서요. 여기가 이렇게 사건 사고가 많은 곳인지 저도 상상도 못 하고 있다가 정신이 없어 연락이 좀 늦었습니다.”
‘좀 늦어?’
생각 같아서는 욕지거리부터 날리고 싶었지만 터져 나오는 화를 꿀꺽 삼키고 박 교수는 가만히 응대했다.
“뭐 워낙 일이 많으니 그럴만한 사정이 있으셨겠지요.”
“그런데, 우리 자문 변호사와 통화는 하신 거지요?”
겨우 화를 억누르며 그녀의 첫마디를 듣고 난 박 교수는 첫 질문부터 어이가 없었다. 전임 재외국민 보호과장과 통화하고 나서 한 달이 지난 후 이루어진 신임 재외국민 보호과장과 통화할 때의 데자뷔가 일어나 머리가 어찔했다.
“했을 리가 있나요? 그런데 외교부에서 직급이 어떻게 되십니까?”
“아, 저는 외무 사무관입니다.”
갑작스러운 관등성명 제시 요구에 당혹스러웠는지 그녀가 경계태세에 들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박준기 씨가 후쿠오카 총영사관에서 근무하기 전에 외교부 본부에서 재외국민 보호과장을 역임한 사람이라는 말이에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 사람이 거짓말을 하고 말을 바꾸기 시작하면서 ‘내가 언제 그렇게 얘기를 했어요?’라고 할 때부터 외교부 직원들과의 통화는 모두 녹음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박 교수가 엉뚱한 이야기로 자신을 흔들려고 느낀 박아현은 다시 질문을 환기시켰다.
“자문 변호사의 자문은 못 받으신 거예요?”
“전화를 했는데 20분 정도의 통화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그쪽 변호사가 먼저 고사를 해서 아예 진행도 못했어요.”
“못하신 거네요, 그러면.”
‘쉽게 안 했다고 하면 될 것을 쓸데없이 부대표의 이전 경력까지 언급할 필요는 없잖아!’
그녀 역시 호락호락하게 ‘이 사람이 S대 출신 교수라고 해서 기죽거나 휘둘리지 말아야지’라고 스스로를 다잡았다.
“나는 대한민국 국민이고 그나마 그냥 관광객도 아니고 S대 출신의 국립대 교수인데도 이런 꼴을 당했어요. 그래서 노정현 과장 통해서 먼저 전화해서 대표랑 면담을 요청했더니 재외국민 보호과장이라면서 박준기 씨가 부대표 신분이라면서 면담에 응했던 거예요. 그런데 증거도 없이 여자 국회의원이 떠들어댄 거예요.”
“제가 아는 거랑은 얘기가 좀 다른데요? 성희롱 피해 여학생들이 열몇 명이 있다고 파악했는데요?”
“예. 얘기 잘했어요. 내가 미치겠는 게 그 기자회견의 기사가 피해자가 7-8명이라고 나왔어요. 지금 검찰의 기소까지 되었으니 문서가 거짓말을 하지 않겠지요? 2명입니다. 대만 언론에서는 아니면 말고 식으로 터트리고 본다고 하네요. 그런데 무엇보다 뉴스 보도 사실은 제대로 확인했나요?”
“아! 뉴스가 나온 것만 알고 제가 자세한 파악은...”
“그렇죠. 다들 그래요. 두 사람뿐이라고요, 결론적으로. 그런데 뉴스에서는 8명이라고 나오니까 나이 든 교수들이나 내 주변의 교수들도 그러는 거예요. 8명이나 피해자가 되는데 그게 거짓말이겠냐고. 타이완은 반한감정을 이용하는 경우가 워낙 많아서 이상한 라인 대화나 느끼한 대화 녹음 같은 게 있으면 벌써부터 신문 방송에서 터트리고 그 한국인 죽이라고 난리가 날 거랍니다. 그런데 타이완의 기자들도 이상하답니다. 증거라고는 나오는 게 아무것도 없다고. 이 나라의 국회의원이 증거도 없이 대한민국 국민을 공격하는 기자회견을 하는 것에 대해 외교부의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잘못된 일인가요?”
“하! 그거는 국회의원이든 뭐든 개인의 사안이지 국가적 사안은 아니지요.”
“나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건이라고요.”
“그러면 명예훼손으로 그 국회의원을 고소하신 건가요?”
“안된다고 아까 설명했잖아요. 그런데 아까 말했던 ‘주영희’라는 놈이 페이스북에 내 실명이랑 사진이랑 학교 이름부터 개인 정보까지 모두 올리고 욕하고 난리가 났어요. 나는 SNS도 하고 있지 않아서 전혀 몰랐어요. 그런데 학생들이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알려줘서 나중에서야 알았어요.”
“네. 그 건으로 저희가 검찰서에 여러 번 전화를 했고...”
“그것 때문에 나한테 아주 안 좋은 영향을 줬죠.”
“네?”
“내가 박준기 씨와 면담을 가진 게 학교의 조사가 모두 끝난 다음이었어요. 박아현 씨가 8월 말에 온 다음에 9월 초에 대만에서 아주 큰 성희롱 무고 사건이 있었어요. ‘마요흥’이라는 연예인의 사건이었는데 여자 배우가 이 남자 배우에게 성희롱을 당했다고 어쩌고 해서 터진 사건이었어요. 나도 내 일이 터져서 정신이 없는 상황에서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이 사람이 결백을 밝히고 무죄가 되어 불기소가 된 가장 결정적인 근거가 뭐였냐 하면 한국의 카톡처럼 여기는 라인을 많이 쓰는데 라인 대화 기록을 검찰에 증거로 낸 거예요. 성폭행을 당했다고 하는 그날 이후에 두 사람의 라인 대화를 보니 너무 정상적인 대화를 나눈 것이 비정상적이라는 부분이 인정되어서 불기소 처분이 되고 반대로 여자가 무고로 처벌을 받게 된 사건이었어요. 그런데 나한테 똑같은 증거가 있어요. 그 증거를 학교 측에 먼저 냈어요. 그런데도 집 사람은 불안해하면서, ‘우리가 먼저 고소를 해서 형사조사를 받아야 공정하게 되지 않겠나?’라고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조사위원회라고 갔더니 세 사람 중에 여권운동가, 페미니즘 강사 하는 여자가 와서 앉아서 다짜고짜 조사는 안 하고 나를 공격을 하고 하는 거예요.”
“네.”
“이 조사는 짜고 치는 고스톱이다. 그 조사과정을 학교에서도 녹취하고 녹취록까지 만들고 나 역시 그들을 믿지 못해서 녹취를 했어요. 그래서 그 녹취내용을 분석해서 조사의 부당성을 13가지 정도로 정리해서 문건을 제출했어요, 부대표와의 면담할 때 부대표에게 직접 낸 거예요. 내가 학교 성희롱 관련 규정이 있길래 좀 살펴봤어요. 26조에 보면, 학교 조사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할 경우에 재조사를 해야만 한다는 규정이 있어요. 조사 당시에 그 규정에 근거해서 항의했거든요. 그랬더니 무시를 당했어요. 말도 안 된다고. 그래서 그 자료를 가지고 정식으로 총장에게 내가 정리한 문건 자료를 정식 공문의 형태로 총장에게 제출해달라고 부대표에게 부탁을 한 거였어요.”
“그건 안 돼요.”
뜬금없는 영사의 감정몰입에 박 교수가 이미 예상한 듯 바로 역공을 찔렀다.
“김완중 국장, 알지요?”
“개인적으로는 몰라요.”
“아니, 외교부 재외국민 영사국장을 몰라요? 그래요, 그럼 이름은 알죠?”
“네. 알죠.”
“그 사람이 10월 13일에 통화하면서 나에게 뭐라고 설명했느냐 하면, ‘교수님이 이런 서류를 내려고 하는데 묵살한다. 이 서류를 꼭 전달해달라고 한다. 정도는 전달해주는 것은 해줄 수 있다.’라고 했어요. 게다가 박준기 부대표도 면담 당시에, 지금 박아현 씨처럼 안된다고 팔딱 뛴 게 아니라 ‘예. 알겠습니다.’라고 약속한 게 녹음이 되어 있고요.”
“네.”
까마득한 상관들에 대한 언급이 인용되자 그녀가 다시 온순해졌다.
“그런데 정작 그 서류를 받았을 학교에서 아무런 반응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총장실에 쳐들어가서 따졌어요. 그랬더니, ‘너희 나라에서 종이 쪼가리 한 장도 날아온 거 없다.’라면서 비아냥거리더라고요. 그래서 결국 그게 어떻게 나비효과가 되어서 날아왔느냐 하면, 학교에서 행정절차가 진행 중이었고 내가 먼저 주영희를 고소했잖아요. 그런데 이 놈이 나를 무고죄로 고소를 했어요. 여학생 두 명을 선동해서 자기 변호사를 쓰면서 성희롱 관련으로 고소까지 했어요. 그런데 내가 분명한 건 내가 먼저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했지요. 그런데 순서가 내 사건을 먼저 해야 하는데 뭔가 역전되어서 검찰에서 여학생들의 사건을 집중해서 먼저 다루고 있다는 얘기를 듣게 된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