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박아현 씨가 주장하고 싶어 하는, 뭔가 대표부에서 엄청 신경 써줬다는 식으로 포장하고 싶은가 본데...”
“제가 관련 자료를 살펴보니까 검찰서에도 저희가 계속 연락을 했구요.”
“아니요. 사건 담당하는 행정직원인 강진성 씨가 나에게 보낸 메일이 10월에 보낸 메일이 마지막인데요. 한국에 보도가 나온 게 10월 19일이에요. 10월 20일 이 메일 내용에 그 직원이 뭐라고 썼는지 알아요? 검찰에 잘 처리해달라고 유선 연락을 넣었기 때문에 신속하게 진행될 거라고 썼어요.”
“네? 그게....”
“내가 다시 설명해 줄 테니까 잘 들어요. 19일에 이미 대만 언론에 기소가 되었다고 보도가 되고 난리가 났는데 현지 공관의 실무자가 하루가 지난 20일에 그런 메일을 보내는 게 맞는 건가요? 제대로 사안을 파악하고 있는 게 맞아요? 19일에 당연히 먼저 사건이 이렇게 악화된 것을 파악하고 얘기했어야지요.”
“저희가 일일이 언론을 보고 당사자에게 연락을 드릴 수가 없잖아요.”
“한참 전에 이 건으로 국민신문고에 항의를 했더니 외교부에서 오늘 국민신문고 답변을 달아서 뭐라고 했는지 알아요? ‘대만의 대표부를 통해서 교수님의 사건을 예의 주시하면서 계속 도움을 드리고자 하고 있습니다.’라고 적었더라구요.”
“대만에 온 이상 대만의 사법절차에 따라야 하는데요. 저희가 이 나라의 사법제도에 터치할 수는 없잖아요.”
“왜 내가 그 말이 말도 안 되는 건지 설명할게요. 나는 지금 대만의 검찰을 혼내주거나 왜 불기소를 막지 못했느냐라고 따지는 게 아니에요. 내가 영사국장에서부터 전임 재외국민 보호과장, 현재 재외국민 보호과장까지 한 사람당 2시간이 넘게 통화를 했어요. 내가 원했던 건 단 하나였어요. 이 나라의 규정에 따라서 총장에게 내가 정리한 문건을 전달해서 재조사를 적법한 절차에 의해서 진행해달라고 하는 거였어요. 그게 어떻게 나비효과로 날아왔느냐 하면요. 내가 지금 고용한 변호사도 이 나라의 검사 출신이에요. 이 사람이 알아봤더니 우리나라 외교부에서 조속히 처리해달라는 공문 한 장만 형식적으로 검찰 창구에 전달되었대요. 그런 건 영향을 받지도 않는 축에 속한 대요. 그런데 처리할 건이 엄청나게 많은 검사가 그나마 그런 게 오니까 짜증이 났대요. 그래서 제대로 된 수사과정도 생략해버리고 기소를 해버리게 되었대요. 가장 중요한, 내가 잘못되었다고 다시 조사해달라고 했던 그 조사보고서잖아요. 공소장에 뭐라고 적혀 있느냐 하면요. 학교의 조사보고서를 그대로 원용한다고 되어 있어요. 이에 왜 나비효과라고 내가 설명하는지 알겠어요? 검찰 측의 말이 한 달에 100건도 넘는데 그렇게 많은 일 중에 이 대단하지도 않은 사건에 대해 한국 정부 외교부에서 조속히 처리해달라는 공문을 받고 나서 먼저 싸지른 국회의원은 이 건이 뒤집히면 곤란하고 조사보고서를 조작해서 심각한 성희롱이 성립한다고 했던 대학에서 불기소가 나와버리면 개망신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었던 거라구요. 검사가 왜 그렇게 기습 기소를 했는지 이해를 하겠어요, 이제?”
“교육부의 이의절차 사항에 대해서도 저희가 안내해드린 걸로 알고 있는데요.”
“네. 그것도 아주 잘 말했어요. 그거에 대해 한번 말해봅시다. 이미 대학에서는 나를 퇴출시키려는 교평회의라는 걸 진행하고 있어요. 이 사람들이 뭘 보고 내 퇴출여부를 결정하겠어요. 결국 그 문제의 ‘조사보고서’란 말이에요. 그 조사보고서의 결론에 뭐라고 적혀 있냐 하면요. 조사위원 세 사람의 결론은, 이 사람의 해임을 추천한다고, 심각한 성희롱이 성립한다고 적혀 있어요. 학교 성희롱 관련 규정에도 심각한 절차상의 하자나 중요 증인을 조사하지 않았을 경우에는...”
“학교 절차에 대해서 저희가 뭐 이렇다 저렇다 얘기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외교부 행정직원이 보내줬다는 자료는, 우리나라로 치면 이의신청 절차도를 보내줬어요. 결과가 모두 나온 다음에 하는 이의신청이에요. 내가 문의했던 것은 지금 잘못 진행되고 있는 과정에 대해 이의를 신청하는 거였지, 결과가 다 나오고 끝나 버린 다음에는 이의 신청하는 절차를 안내해주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요? 실제로 내가 잘못된 그 과정 중에 할 수 있다는 ‘션수(申訴)’라는 걸 하겠다고 했던 거였는데 교육부에서 안 된대요. 나는 국립대학교 교수 신분의 편제에 들어가 있지 않대요.”
“교사나 교수가 자신의 인권을 침해당했다고 여겼을 때 이의제기를 언제든 할 수 있는 게 ‘션수(申訴)’라고 해서 어렵게 내가 직접 조사하고 알아내서 하려고 했더니 나는 그걸 낼 수 있는 신분이 아니래요. 국립대 전임 교수가 그 대학의 편제에 속해되어 있지 않다고 학교에서 우겨버리면, 내 교수의 인권은 어떻게 보장받느냐고 내 변호사가 항의를 했어요. 내가 외교부에 항의를 하고 문의를 했는데도 외교부도 학교에서 그렇게 우기면 자기네가 별도리가 없대요. 나는 제대로 인권조차 보장받지 못했다고요. 받아주지를 않아요. 학교에서 계속 무시를 한다구요.”
“그러니까 변호사를 통해서 그런 제도에 대해서는 설명을 들으신 거네요?”
계속해서 겉도는 영사의 딴지가 거슬리기는 했지만 어쨌거나 중요한 것은 의사전달이라고 박 교수는 믿었다.
“그런 제도가 있는 건 들었는데, 결국 학교에서 받아주질 않는다구요. 변호사는 법적으로 잘못되었다고 분명히 그렇게 알려주고 내 상식에도 말이 안 되니까 나는 항의를 한 거예요. 결국 지금 진행 중인 과정에서 내 권리를 침해받고 있다는 건데 그렇게 문의하고 항의했더니 외교부의 행정 직원이 결과가 다 끝난 다음에 하는 이의신청 절차를 아주 친절하고 꺼벙하게 알려준 거예요.”
“그러면 저희가 그 중간에 어떤 절차에 대해서 다시 한번 알아볼게요.”
“나는 내가 문건도 모두 작성해 가서, 이런 민원이 있는데 이런 내용의 문건으로 그 의사를 전달해달라고 했을 뿐인데, 그게 내정간섭입니까?”
“저희가 그런 전례가 없어요.”
“외교부의 영사국장이 그럴 수 있다고 했고, 직접 문건을 건네받은 부대표가, ‘예 교수님이 주신 문건 전달하도록 하겠습니다.’라고 한 게 녹음이 되어 있어요. 내 세금으로 월급 받는 공무원이 나에게 약속한 상황을...”
“제가 우선은 내용을 알아봐야 할 것 같구요. 그걸 알아보고 다시 연락드릴게요.”
“팩트만 얘기합시다. 일단 내가 요청한 조사보고서가 잘못되었다고 진실이 밝혀지게 되면 큰일 나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니에요. 혹시 아는지 모르겠는데, 박아현 씨가 부임해 오고 나서 큰 사건 하나 터졌어요. 타이완 무전취식녀 사건. 이 기사를 다룬 MBS 기자가 내 기사도 다루겠다고 연락이 왔어요. 내 녹취된 내용과 무전취식녀에게 외교부가 반응한 것이 정말로 똑같았어요. ‘당신이 직접 방송국에 연락하던가 직접 변호사를 고용해서 대응하라’고 외교부 매뉴얼에 나와 있다고 방송에도 그렇게 나오더라구요. 나는 이제까지 모든 증거를 모아뒀어요. 한국 외교부는 내 증거로부터 자유롭습니까? 외교부에서 아무 일도 안 했는데요?”
“외교부에서 얼마나 최선을 다했는데요. 저희는 할 수 있는 도움을 모두 드렸습니다.”
“함부로 그런 식으로 대강 말하지 말아요.”
“제가 관련 자료 다 확인했습니다.”
“그러면 고위 공무원이 민원인에게 공식적인 면담을 통해서 약속하고 그것을 어긴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아요?”
“저희는 검찰서에도 연락을 해서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학교 측에도 많이 연락을 취하는 등 많은 노력을 했구요.”
“그래요? 학교 측에 어떤 노력을 했는지 하나만이라도 나에게 얘기해보겠습니까? 통상 이런 사건이 터지면, 한국이라면 당사자에게 학과장이든 다른 교수든 나에게 연락이 와서 도대체 무슨 일이 생긴 거냐고 하는 게 정상인데요. 그 연락이 없는 것도 이상했는데, 박준기 부대표가 나중에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한다는 말이 총장은 아니고 학과장을 통해서 연락을 취했대요.”
“저희는 학교 측에 뭔가 개입하고 간섭할 수가 없어요. 이의 절차에 대한 자료도 교수님께 송부해드리고, 총장 면담도 원한다고 하셔서 전달을 했고요.”
“그런데 왜 아무런 연락이 없지요?”
“총장이 그 연락을 받고 교수님을 만나지 않겠다고 하는 걸 우리가 어떻게 만나라고 우길 수는 없잖아요? 게다가 그런 자료들도 직접 발송하시면 증거가 남는 건데 왜 저희에게 발송해달라고 하셨는지 저희는 도저히 모르겠네요.”
“그러면 왜 약속을 해놓고 지키지 않았을까요?”
“그거는 어, 제가 다시 한번 확인을 하고, 내일 다시 연락을 드릴게요.”
“언제 연락을 줄래요?”
“지금 벌써 퇴근 시간이 지나서 오전에 제가 내일 중으로 확인하고 오후에 연락을 드릴게요.”
“대충이라도 약속을 잡을까요?”
“오후에 제가 일이 있어서 나가야 하거든요.”
“언제든 통화하는 게 어렵나요? 지금 나한테, ‘녹취내용 보내주세요, 들어볼게요.’라고 해도 되지 않나요?”
“아니요. 제가 지금 또 나가봐야 해서요.”
“그러면 내가 내일 오전에 통화내용을 들려줘요?”
“아니요. 오후에 일정이 있는데 그걸 위해서 오전에 또 준비를 해야 되어서요.”
“그래요 그럼 몇 시에 통화를 하겠다는 거죠?”
“다녀와서 제가 전화를 드리려고 해요. 그래서 제가 5시 전에 돌아오면 5시에 전화드릴게요. 혹시 제가 5시 전에 못 돌아올까 봐 걱정이 되는데...”
“그러면 5시나 6시나 전화를 주긴 하는 건가요?”
“제가 6시 전에는 돌아올 것 같아요. 제가 전화를 드릴게요.”
그렇게 부임한 지 3개월 만에 어렵사리 통화가 연결된 영사와의 통화는 끝이 났다. 24시간이나 되는 시간을 기다리는 것이 박 교수에게는 24년처럼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