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말에 승진하셔서 과장으로 발령받으신 것 먼저 축하 드리구요. 제가 연락드린 지 일주일이 넘었다는 건 아시죠?”“
“뭐, 그렇까지는 안 된 것으로 아는데요.”
“그건 나중에 확인하시면 아실거구요. 제가 뭐 시비를 걸려고 말씀드린 건 아니구요. 제가 대만의 국립대 교수로 부임했는데요. 아주 안 좋은 일을 당했어요.”
“네. 그 건에 대해서는 알고 있구요. 보내주신 국민신문고에 제기해주신 문제들도 제가 읽어 봤습니다.”
“아, 보셨어요? 그럼 거기 달린 답변도 보셨나요? 김승남 경감이라는 친구가 단 답변을 보셨나요?”
“아니요. 그건 못 봤구요.”
“아, 못 보셨군요. 어떻게 내용을 읽어보셨다고 하니 제가 긴 설명할 필요는 없겠네요. 거두절미하고 여쭤 볼게요. 이 건이 제가 외교부에 도움을 청할만한 상황이 아닌 건가요?”
“어떤 도움이요? 그러니까 보내주신 내용이... 근데 지금 저희가 타이베이 대표부 공문을 받아보니까 요청하신 내용에 대해서...”
“누가 누구한테 보낸 공문이요?”
“아니, 타이베이에서 교수님께서 대표부에 뭘 요청을 하셨잖아요?”
“네. 정확히 말씀드릴게요. 대표와 면담을 요청했는데 부대표가 나왔구요. 면담 내용을 녹취를 했어요. 6월 22일에 박준기 부대표와 면담을 처음 했구요. ‘이 나라 국회의원이 근거도 없이 수사도 하기 전에 기자회견을 열어 한국 국민을 공격하고 매도한다.’알리고 도움을 청했구요. 제가 가기 전에 두 가지 부탁을 구체적으로 문건을 준비해서 갔는데요. 면담 대화도 다 녹취했구요. 첫 번째 요구했던 게, 제 실명하고 사진을 올린 주동인물이 있는데 친한파를 가장한 친일파인데, 제가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했는데 경찰에 공정한 수사를 조속히 해달라고 요청해달라. 두 번째는, 학교 조사에서 제가 수많은 증거를 냈는데도 증거를 무시하고 핵심 증인까지 부르지 않고 해서, 학교 조사 과정을 녹취한 증거자료를 분석을 해서, 그들의 조사가 조작되었고 편파적이라는 내용을 정리해서, ‘조사가 부당하니 재조사를 요청했으면 좋겠다.’라는 것을 전달해달라고 3페이지짜리 문건을 가지고 갔습니다. 그걸 총장에게 공식적인 공문의 형태로 전달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랬더니 부대표가, ‘네. 알겠습니다.’라고 했구요. 나중에 전화까지 해서 다시 확인했더니 분명히 공문을 보냈답니다. 그런데 학교 측에서 아무런 반응이 없길래, 총장 비서실을 찾아가서 따졌더니, 너희 나라에서 종이 쪼가리 하나 온 거 없대요. 그래서 나중에 화가 나서 전화를 해서 따졌더니 자기가 실토하기를, 총장에게 보내지 않고 알고 지내던 한국어학과 학과장에게 보냈다고 합니다.”
“교수님 제가 전화를 길게 할 수가 없어서요. 핵심만 정리해주시겠어요?”
아주 건조한 목소리로 과장이 교수의 맥을 뺐다.
“만약 재조사 공문이 전달이 되었고, 재조사가 제대로 이루어졌다면 이 조작된 조사보고서로 기소까지 되지 않았을 텐데, 저는 그러는 사이에 그 거짓말에 의거해서 학교 조사보고서를 원용한다면서 검찰에 기소까지 되었단 말입니다. 한국에서 들으면 황당할 수 있는데, ‘무슨 검사가 바보냐? 수사도 안 하고 학교에서 작성된 조사보고서를 근거로 기소한다는 게 말이 되냐?’ 할 텐데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졌습니다. 기소장, 한국에서는 ‘공소장’이라고 한다고 하던데 그 내용에 그렇게 학교의 조사보고서를 원용하여 기소한다는 내용만이 유일한 기소의 근거랍시고 들어가 있습니다.”
“네. 그래서...”
구구절절이 자신의 사연을 속사포처럼 정확한 발음으로 딱딱 끊어가며 말하는 교수의 설명이 과장을 짜증 나게 만들었다. 과장은 이곳은 민원처리 부서가 아니라고 교수에게 단호하게 얘기하고 해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의 마음의 소리가 들렸던 것일까? 훅 하고 교수가 정면으로 치고 들어왔다.
“근데 지금 내가 전화한 곳은, 재외국민 보호과가 아니라 감사관실이잖아요. 용무를 정확하게 분장해야지요. 저는 지금 하소연하고 저를 도와달라고 연락한 게 아니라구요.”
“예.”
“개인 박준기가 아니라 주타이베이 대표부의 부 대표에게 제가 요청을 했고, 그 요청한 문제의 문건을 공문으로 학교의 총장에게 전달했다고 그는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했다고 했고 그렇게 대화를 나눈 녹취자료는 저에게 있습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거짓말을 했거나 일처리를 잘못한 거잖아요? 그런데 그게 그냥 실수로 끝난 게 아니라 일이 커져서 재외국민이 그 건으로 억울하게 기소까지 되었고 심지어 출국금지까지 당했단 말입니다.”
“네.”
어쭙잖은 하소연의 흐름으로 흐른다고 여기고 그만하라고 제지할 타이밍에 그가 핵심을 짚으며 감사관실의 본질을 언급하자 과장은 긴장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거는 어쭙잖게 덮고 넘어갈 문제가 아닌 게, 저도 국립대 교수이고, 과장님도 공무원이시니 다들 행실이 조심스럽지 않습니까? 지금 MBS기자가 취재 중이고 8월에 대만의 무전취식녀 기사 다뤘던 기자가 취재 중이라고까지 대표부에 밝혔습니다. 그랬더니 상관없답니다. 개의치 않겠답니다. 그리고 자기 건에 대해서 고발을 하던 감사실에 자료를 넘기든 알아서 하라고 부대표가 그럽니다. 그러면 자기가 그거에 맞게 답변하고 응대처리하겠다구요. 맘대로 해보시래요. 그런데 같은 시기에 외교부 본부에서 이쪽 영사로 나온 박아현 영사가 있습니다. 제가 계속 전화를 해도 전화를 안 받다가 8월 말에 와서 정신이 없었다면서 11월이 되어서야 연락이 왔어요. 이틀 전에 통화를 하고 전화를 바로 준다더니 여태 연락이 안 와요.”
“예. 교수님. 저희 감사 담당관실에 정확하게 요청하시는 사안이 어떤 것인가요? 저희도 공무원의 비리 사실이 있으면 그거에 대해 조사를 하는데, 여기 재외국민 보호에 관련된 사안은 재외국민 보호과라는 곳에서 총괄해서 처리하거든요? 거기에서 어떠한 내용의 저의 협조를 요청받은 사안이 없어요. 지금 거기서 뭔가 프로세스가 진행 중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귀찮은 민원을 털어내는 가장 첫 번째 방법은, 업무분장을 거들먹거리며 창구를 잘 못 찾았다고 밀어내는 것이다. 그도 감사관실의 팀장으로 오기까지 거저 외교부 밥을 먹은 건 아니었다.
“김중완 영사국장 아시죠? 국장과 40분에 걸쳐 통화를 했고, 이 상황에 대해 충분히 얘기를 나눴고, 충분히 이메일도 두 번이나 오고 갔어요. 그래서, ‘내가 너무 어려운 상황에 걸려 있다. 어떻게 나를 도와주겠느냐?’라고 했더니 이후에 연락이 한 통 없구요. 지금 LA총영사로 간 전임 재외국민 보호과장인 사람도 2시간이나 넘게 전화하더니 아무런 연락이 없구요. 새로 부임한 재외국민 보호과장은 1시간이 넘게 통화하다가 언론사에서 취재 들어갔다고 했더니 중간에 전화를 끊어버렸어요. 자, 정리할게요. 제가 감사관실에 바라는 용건은 하나입니다. 저와 얘기를 한 사람들이 뭘 하겠다고 하고 하지 않은 부분에 대해 감사를 진행해주세요. 정확히 말하자면 업무태만일 수 있구요. 본의든 본의가 아니든 박준기 부대표의 경우는 자기가 거짓말을 하고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않아서 제가 안 좋은 상황에 빠져 버렸으면 사과를 하던가 뭔가 조치를 취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아직까지도, ‘저희는 충분히 노력해왔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따위의 답변을 부하직원을 시켜 달라고 해요. 그래서 이 사태에 대해서 도대체 왜 약속을 하고 안 지킨 건지 정말 그런 일이 있는지 김중완 국장도 처음엔, ‘내정간섭을 어떻게 합니까?’ 하더니 ‘전달을 해달라는 정도는 해드릴 수도 있을 텐데 왜 안 했지?’라고 한 녹취내용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재외동포국의 국장부터 재외국민 보호과장 전임과 현임, 그리고 타이베이 대표부의 부대표에 이르기까지 모두 저와 어떻게 해주겠다고 약속을 해놓고는 거짓말을 하고 안 하거나 그랬단 말입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 감사를 진행해주세요. 혹 필요하다면 녹취 근거자료는 제가 제출하도록 하겠습니다.”
“저희가 사실 교수님이 말씀하신 부분에 대해서는, 저희 감사 담당관실에서는요. 명확한 어떤 재외국민 보호라는 특성이 있기 때문에 정말 뭐가 잘못된 것인가에 대해서는 재외동포 영사국에서 판단을 한 다음에, 그다음에 저희가 개입을 하는 것이지 저희가 처음부터 1차적으로 할 수가 없어요.”
두 번째 민원인을 털어내는 방법은, 내부 사정이나 시스템을 잘 모르는 민원인에게 특수한 외교부 내의 사정을 언급하며 규정이나 관례상 도움을 줄 수 없다고 완곡하지만 강력하게 거절하는 것이다.
“뭔가 오해를 하셨나 본데요. 감사는 내부 요청도 있지만 외부로부터 신고와 요청도 있을 수 있잖아요? 에티오피아의 케이스도 외부에서 신고에 의해서도 할 수 있는 거 아닌가요?”
하지만 박 교수처럼 구체적으로 외교부의 세세한 사건까지 기억하고 근거로 들이미는 사람에게는 안 통할 수도 있다.
“그건 맞습니다만, 지금 말씀하시는 건 저희가 당장에 확인하고 도와드릴 수는 없구요.”
“그럼 어떻게 하면 확인하실 수가 있나요?”
“일단 사안을 정리하셔서 국민신문고에다가...”
“제가 지금 이미 국민신문고에 올린 글이 부족한가요? 일반 농사꾼처럼 글을 제대로 쓰지 못해서 전달이 안 된 것도 아니고 자료 정리 다 해서 보냈는데요. 녹취자료까지 다 첨부해서요.”
“하아, 일단은 그걸 보고 담당자가 답변을 드리던가... 지금 녹취자료는 보내주셨나요?”
“보내달라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습니다. 국민신문고에 글을 올릴 때, 분명히 필요하시다면 녹취자료를 제공하겠다고 적었는데도 답변을 다는 사람 중에서 어떤 사람도 녹취자료를 증거자료로 보내달라는 말을 하지 않네요. 어느 누구도 요구하지 않고, 심지어 보셨다는 그 문건을 제가 처음에 7월에 민원으로 제기했을 때는 타이베이 대표부의 행정직원이 답변을 직접 달았구요. 이번에 다시 국민신문고에 글을 올리니 재외국민 보호과 소속이라며 경찰청에서 파견 나온 경감이 자세한 사안도 모르면서, ‘주 타이베이 대표부에서는 다방면으로 노력했습니다. 앞으로도 노력할 것입니다.’라고 대표부에서 시키는 대로 받아쓰기한 어이없는 답변을 달았어요. 그래서 화가 나서 국제전화를 걸어 따졌더니, 중간에 전화가 끊기면 전화를 부탁한다고 하니 알겠다고 하고서는 전화가 끊기고 나서는 연락도 한 번 안 줍니다. 그러니 제가 감사관실에 연락을 안 합니까?”
“저희도 처음부터 이 사안에 관련한 것이 아니라서요.”
“지금이 처음이지 언제부터 관련했어야만 하는 겁니까? 사건이 발생했을 때부터 외교통상위원장실 심권재 의원실의 비서들이 외교부에 몇 번이나 항의하고 전화하고 직접 찾아가고 난리를 부렸다고 했어요. 그랬는데도 이 모양이란 말입니다. 부대표가 연락드린다고 합니다. 이후 한 달이 넘도록 연락이 안 왔어요.”
“그거는 1차적으로 재외국민 보호과를 통해서 항의를 하셔야 할 부분인 것 같습니다.”
“아니 잠시만요. 제가 지금 이 사람들이 일안해서 컴플레인을 하는 게 아니구요. 저는 일이 이제 완전히 잘못되어서 재판정에서 싸워야 할 판입니다. 외교부에서 법정 사안을 도와줄 수 있는 게 없잖아요. 그래서 저는 이렇게 만든 일을 잘못한 사람을 징계해달라고 전화를 한 겁니다.”
“저희는 이제 타이베이 대표부가 처음 응대를 한 것이고, 그것에 대한 컨트롤 타워는 명백하게 재외국민 보호과로 되어 있어요.”
“네, 그런데요?”
“그런데 거기서 내부에서 문제가 생겼다고 요청이 있었을 때, 저희가 이제 관련해서 들어가는 거지, 이렇게 외부에서 다짜고짜 감사를 해달라고 요청하는 경우가 없어요.”
“아니요. 과장님, 과장님. 제가 한국 외교부 일하는 거 어떤 지에 대해서는 얘기를 많이 들었지만... 과장님. 이제 8월 말에 부임하셔서 감사관실에서 일한 지도 몇 달 안되셨잖아요? 이렇게 일처리 하시면 안 되는 거잖아요? 정식으로 문제가 있다는 걸 확인하고, 그걸 입증할 수 있는 증거가 있다잖아요? 이 사람이 공무원으로서 문제가 있고, 제가 그 입증할 수 있는 증거자료를 제출하면서 정식으로 감사를 요청하는 게 절차상 문제가 된다는 건가요? 그런데 내부적으로 일을 처리하는 업무분장에 대해 말씀하시면, 내부에서, 경찰 식으로 말하자면 인지수사만 가능하다고 말씀하시는거구요. 이번 경우는 외부에서 외부자가 이 사람의 비리 사실에 대해 증거까지 있으니 그 부분을 수사해달라고 신고하는 거 아닙니까?”
“그러면 녹취 부분까지 국민신문고에 다 넣어서 다시 한번 민원을 넣어주시면 저희가 검토하고 답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니까 감사관실에 전화하지 말고 국민신문고에 올리면 그에 맞는 답을 주신다고 이해하면 맞나요?”
“네.”
“하아! 제가 지금까지 알고 있던 상식과 기대했던 반응과는 너무 많이 달라서 제가 좀 당혹스럽거든요?”
“아니, 제가 그 녹취록이 있다고 하셨으니까...”
“아니, 그건 당연히 그런데. ‘저희가 감사를 진행하겠습니다. 사실관계를 파악한 다음에 당사자가 부인할 경우에는 저희에게 자료를 제공해주시겠습니까?’ 아니면, 처음부터 ‘제보해주신 사실이 정말이라면 감사의 대상이 됩니다. 자료를 보내주십시오.’라고 요청을 바로 해야 하는 게 맞는 거 아닌가요? 다시 국민신문고에 보내라구요?”
“저희는 지금 그게 감사의 대상인지 아닌지를 파악할 수가 없습니다.”
“아직 들어보지도 않고, 자료도 요청하지 않으시구요?”
“예. 저희가 정확한 사실 관계를 파악한 이후에 감사에 착수할 수 있는 거지. 저희가 어떻게 ‘먼저 감사에 착수하도록 하겠습니다.’라고 말씀을 드릴 수가 있습니까?”
“맞습니다. 그래서 신고자이자 제보자인 저에게 처음 들으신 사실이니까 ‘그럼 저희가 교수님의 한쪽 말씀만 듣고 처리할 수 없으니 이제 타이베이 대표부의 박준기 부대표에게도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난 뒤에 다시 연락을 드리던가 하겠습니다.’ 혹은, ‘그쪽이 사실관계에 대해 부인을 하면 다시 자료 요청을 위해 연락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하던가 그게 맞지 않나요?”
“그러니까 국민신문고에 올라온 글에 답변을 달아드리면 되는 거죠? 그 사안을 파악을 하고...”
“근데 아까 말했잖아요! 이미 두 번이나 엄한 답변이 달려서 올라 왔다구요. 재외국민 보호관 담당이라는 경감이 열심히 달았다구요!”
“저희가 다시 사안을 파악해가지구요. 선생님께 다시 연락을 드리던가 할게요. 한번 그렇게 노력해보겠습니다.”
“그럼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여쭤 볼게요.”
“네.”
“약속에 대한 부분이잖아요. ‘공문을 대학 총장에게 보냈습니다.’ 그런데 사실이 아니었어요. ‘내일 반드시 연락드리겠습니다.’ 이래 놓고 또 연락을 안 줘요. 그리고 내가 연락하면 연락을 안 받고 피하고 그래요. 그거는 해외공관에서 다반사인 거죠? 감사의 대상 축에도 못 끼는 거죠?”
“그거는 저희가 어떤 사실 관계를 파악하지 못해서요.”
“어제 전화를 주겠다고 하던 사람은, 타이베이에 파견되기 직전에 감사관실에서 근무하던 박아현 씨는 현재 타이베이 대표부의 영사로 근무를 하는데도 똑같이 연락을 안 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