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발검무적 Oct 26. 2021

대만에 사는 악녀 - 39

영사와의 마지막 통화 1

지난 이야기.

https://brunch.co.kr/@ahura/390


                   영사와의 마지막 통화

                                       2017년 11월 3일 오후 6시

 

결국 약속했던 24시간이 지나도 8월에 새로 부임한 여자 영사에게서 연락은 오지 않았다. 이제까지 약속 시간을 지키거나 자신이 한 말을 지킨 외교부 직원이 없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그리 이상할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너무 당당한 척하는 E대 출신만이 보이는 특징을 내뿜는 그녀를 박 교수는 마지막으로 한 번이라도 믿어보고 싶었다. 어느 곳이든 선량한 양심과 책임감을 가지고 정의를 실현하는 이는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서였다. 그리고 버릇처럼 그녀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고 나서 그 기대는 더 컸다. 그녀는 부임 직전까지 외교부 본부의 감사관실에서 근무를 했고, 정의감에 북한 인권 관련한 책을 번역하여 자기 이름으로 출간까지 했으며, 아버지가 외교공관의 무관 출신인 인물이었기 때문이었다.

박 교수는 그녀에 대한 자료 검색을 하면서 그래도 실무자인 영사가 이 정도의 이력을 가지고 있다면 그래도 믿어볼 만하다고, 오히려 그 전날의 통화를 들으며 기대가 컸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 그래서 그는 다시 대표부에 전화를 걸었다. 늘 그렇듯 부대표의 직통전화는 전혀 연결이 되지 않았고 그나마 사건 신고 전화도 3번이나 걸은 뒤에서야 겨우 연결이 됐다.

“여보세요. 나 외교대의 박 교수라고 하는데요.”

“아, 네.”

목소리도 듣자 하니 문제의 그 남자 행정 직원이었다. 서로가 서로에 대해 이미 잘 안다는 것을 제외하고 건조한 대화가 오갔다.

“어제 나한테 늦게 자리에 돌아오더라도 반드시 전화를 하겠다는 여자가 전화를 안 했어요.”

“네?”

“박 아현 영사가 나에게 그렇게 말하고는 전화를 안 했다구요. 지금 어디 있습니까?”

“그건 모르구요. 전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지금 어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는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이미 한두 번 겪은 일도 아니었다.

박 교수가 의도했던 것은 아니었겠으나 ‘여자’라는 일반적인 표현이 마치 욕설처럼 그녀의 자존심을 발끈하게 만들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는데 씩씩거리는 영사의 전화가 오후 6시가 다 되어서야 울렸다.

“여보세요. 박 교수님 휴대폰이지요?”

“네. 박아현 씨. 원래 우리 전화를 하기로 한 게 오늘이었나요?”

박 교수는 부러 한껏 비꼬아서 그녀의 말을 되받았다.

“어떻게, 아참! 어떻게 ‘늦어도 무조건 연락드리겠다고 한 여자가 전화를 하지 않았다.’라고 하는 표현을 쓰십니까? 최소한의 예의를 지켜주세요.”

“네? 내가 무슨 욕설이라도 했다는 건가요?”

“됐구요. 솔직히 이제 교수님과 전화 상담을 하는 것 자체가, 제 말을 어떻게 왜곡하실지가 너무 두렵습니다. 그래서 저는 저희 대표부에 요청하실 사항이 있으시면 앞으로는 메일이나 국민신문고를 통해서 연락드리면 최대한 답변을 드릴 겁니다. 그러니까 필요하신 사항은 메일이나 국민신문고를 통해서 연락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네?”

어이가 없었다. 칼자루는 자기가 쥐고 있고, 이런 식으로 자신의 심기를 건드리면 제대로 도와줄 리 없다는 협박에 다름없는 언행이었다.

“그리고 제가 어제 행사가 너무 늦게 끝나서 연락을 못 드렸습니다.”

“그건 그렇다치구요. 나랑 어제 통화 연결해서 하기로 한 얘기 있었잖아요.”

길게 얘기해봐야 감정적으로만 응대하려는 젊은 여자에게 득 될 것이 없다는 것을 박 교수는 직감했다.

“어떻게 저에게 ‘여자가’라는 표현까지 쓰시고... 너무 하셨습니다.”

“이봐요. 내가 E대 출신 친구들과 얘기하면서 늘 느꼈던 건데, 전화 연결돼서 지금 5분이 넘도록 당신이 화를 내는 건 내가 ‘여자’라는 표현을 썼다고 불쾌했다고 항의하는 것 말고 전혀 없잖아요. 어제 원래 통화해서 이야기하기로 한 내용은, 부대표가 도대체 뭐라고 얘기했는지 사실관계를 확인하자는 거니까 그 얘기를 먼저 해야 맞지 않나요?”

“제가 늦어도 반드시 연락하겠다 했는지 그 부분을 확인하게 해 주세요. 그리고 사실관계를 확인을 했는데 부대표님은 그런 말씀을 하신 적이 없다고 하셨어요.”

“그게 말이 됩니까? 정 그러면 두 사람의 주장이 다르니, 나에게 한 가지만 요청하면 되는 거잖아요. ‘대화를 녹취하셨다고 하니 그 대화 녹취내용을 보내주시면 확인하도록 하겠습니다.’라고 증거를 확인하면 되는 거잖아요?”

“제가 지금 부대표님이 말한 녹취내용을 확인한 다음에 잘잘못을 따질 수 있는 그런 위치도 아니구요. 제가 어제 반드시 전화한다고 얘기한 것 정도는 녹취 보내주시면 확인할 수 있다는 겁니다.”

“잠깐! 한 가지만 확인합시다. 어차피, ‘부대표님이 그런 말 한 적 없다고 하십니다.’라고 하고는 내가 녹취내용을 제공하겠다니까, ‘어차피 그걸 들어도 시시비비를 따질 수 있는 위치가 아닌 저는 부하직원입니다.’라고 할 꺼면 이틀 전에 뭐하러 사실관계를 확인해보겠다고 한 거예요?”

“어제 제가 했던 말도 왜곡을 하시는데... 부대표님께서 그런 말씀 한 적이 없다고 하시는데 교수님을 제가 어떻게 믿습니까?”

“만약 그런 증거가 나오면 어쩌겠다는 거죠?”

“부대표님에 대한 사안은 제가 잘 모르겠구요. 제가 그런 말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확인하고 싶습니다. 부대표님 말씀 듣자 하니 교수님이 어제인가 그저께인가 그 자료를 감사관실에 보냈다고 하니까 감사관실에서 판단할 사항이니까 저에게 이러지 마세요.”

“내가 새로 온 영사와 전화 통화하면서 자기가 상황을 파악하고 처리를 도와주겠다고 해서 그간의 사안 다 설명하고 뭐가 가장 큰 문제였는지 말하고, 부대표라는 사람이 이런 거짓말을 해서 지금 곤란한 상황에 빠졌다고 하니까 그러면 그 사실관계를 파악하고 나서 연락을 주겠다고 했어요. 그래서 확인을 했대요. 그런 말을 한 사실이 없다고 부대표가 잡아뗀대요. ‘그러면 저한테 증거가 있으니 제가 보내드리지요.’라고 했더니, ‘어차피 제 윗분이기 때문에 그걸 보내주셔서 사실 확인을 한다 하더라도 제가 어떻게 할 수 없습니다.’래요. 그러면 도대체 무엇 때문에 사실관계를 확인하겠다고 한 거냐구요?”

“원래 양측 모두의 얘기를 들어봐야 합니다. 제가 교수님 말씀만 듣고 그 자리에서 뭐라고 얘기를 할 수는 없기 때문에 사실관계를 파악하겠다고 한 거지요.”

“아니 다 맞는데 어떻게 하겠다는 거였냐구요? 양쪽 다 들어보고 난 후에 말이 다르면?”

“일단 양쪽의 말을 모두 들어봤고 그다음에 교수님이 제 말도 왜곡하는 걸 확인했잖아요, 지금. 저도 경험을 한 거잖아요. 그러니까 교수님이 부대표님에 대해서 그렇게 말씀하신 걸 사실이라고 믿기는 좀 어렵고, 그러나 그거는 제가 판단할 위치에 있지도 않고 그거는 감사관실에 보내셨다고 하니까 그쪽에서 판단을 할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박아현씨 혹시 오자마자 8월에 터진 무전취식녀 사건 본인이 담당했나요?”

“네. 제가 담당했습니다.”

“혹시 MBS 김 기자 압니까?”

“모릅니다.”

“그 취재 나왔던 게 유일하게 MBS였는데도, 담당기자를 몰라요?

“한국 뉴스에 나온 건 알고 있었는데, 담당했던 기자가 누구인지는 모릅니다. 연락을 취한 적이 없습니다.”

“그래요? 곧 연락이 갈 거예요. 내가 부탁을 했어요. 박아현 영사가 일을 열심히 하는 친구이니까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거다. 나도 그렇게 ‘여자’라는 말을 어떻게 잘못 들으면 화가 날 것 같기도 해요. 화가 날 수가 있죠. 그런데 전에도 말했지만 내가 외교부 직원들이나 여기 대학 사람들이나 너무 여러 사람들이 거짓말을 하니까 녹취하기 시작했다고 했어요. 그래서 녹음했다고 하니까 그다음부터 박준기 부대표가 내 연락을 받지 않고 피해요. 그런데 내가 지금 박아현 씨한테도 똑같은 말을 듣네요.”

“무슨 똑같은 말이죠?”

“결국 문제가 되니까 이제 통화는 안 하겠다고 하고 이 메일로만 연락하라고 하고...”

“제 말을 왜곡하시는 것을 제가 경험했으니까요.”

“내가 이전에 대표부와 이 사안으로 항의 메일이 오고 간 건 김완중 영사국장에게도 모두 CC로 첨부가 되어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또 부대표나 영사는 다른 말을 해요. 박아현 씨가 8월 말에 왔다고 하는데, 나한테 연락 온 게 11월에 처음 연락이 되었어요. 대표부에 전화해서 사건 담당 15번을 누르면 연결되는 경우가 거의 없어요. 그건 심각한 문제라구요.”

“저는 지금 이 나라에 오기 전까지도 몰랐었는데, 여기 이렇게 사건 사고가 많은 곳인지 몰랐구요.”

“네.”

“하아! 제가 지금 민원인이, 교수님 뿐만 아니라 지금 하고 있는 사건이 여러 개가 있습니다.”

“나도 2월 말에 처음 부임해서 왔는데 여기 굉장히 시끄럽고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곳이더라구요. 마지막에 박아현 영사가 근무했던 해외공관이 카타르더라구요. 거기 대사로 있던 분과 친분이 좀 있어서 얘기를 들었어요. 내 나름대로 박아현씨에 대한 얘기를 들으면서, ‘내 입장을 잘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이 새로 영사로 와서 다행이다.’라고 생각하고 기대했어요.MBS의 김 기자도 그렇게 말을 해요. ‘대만이라는 곳이 왜 이러는 거냐고, 왜 그 지경이냐고?’ 그러니 현장에서 뛰는 박아현 씨는 오죽하겠어요?”

“절박하신 건 저희도 충분히 이해를 하고, 저희 대표부에서 최대한의 도움을 드려왔어요.”

“아니, 지금 상황을 봅시다. 감사관실의 이일현 과장이 그래요. 자기가 감사 담당관인데 이미 그쪽에서 기소가 되어 버렸으면 법원에 가서 시비를 가리셔야지. 어쩌고 하길래 내가 소리 지르고 막 뭐라 했어요. 그러기 전에 막을 수 있고 잘못된 거 고칠 수 있었는데 그러지 못한 게 다 대표부 탓이라고. 내가 어제 박아현 씨 전화를 기다리다 타이완 교육부에 항의 전화를 했더니요, 자기는 처음 이런 문제를 알게 되었고, 외교대에서 이런 보고를 일일이 하지 않았대요. 자기네가 절차를 어긴 것에 대해서는 외교대에 경고를 하고 처리를 하겠대요.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이라고 일 다 터지고 그 조작된 조사보고서를 원용해서 나는 검찰에 기소까지 당했어요. 근데 모르겠어요. 여름서부터 그래도 3개월이면 사건 담당 영사면 이 나라가 얼마나 개차반이고 동남아 이하의 수준으로 추락했는지에 대해서 충분히 피부로 느꼈을 것 같아요. 우리가 한국에서 이곳에 오기 전에 막연하게 그래도 대만이 괜찮은 나라 아닐까라고 생각했던 기대가 여기 와서 다 무너져버렸어요. 박아현 씨도 그 정도의 스마트한 머리와 판단력을 가지고 있다는 걸 내가 믿어요. 그러면 서로 가지고 있는 스키마 위에서 한번 다시 보자구요. 이 전에 재조사를 했더라면, 그 공문을 보내서 제대로 나를 도와줬더라면 기소까지 가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하는 게 내 피해망상이라고 정말 생각합니까? 정말로 대표부에서는 끊임없는 노력과 그런 것들을 다 해줬는데 얘네가 잘못해서 일이 이 꼴이 되었다고 생각하세요?”

“그런데 저한테 자꾸 질문을 하시는데 제가 거기에 네, 아니오.로 답변을 드릴 수 있는 입장이 못돼요. 그럴만한 위치에 있지도 않아요.”

“답을 들으려고 하는 게 아니라 너무 답답해서 하는 내 자문(自問)이에요. 경험치가! 이 나라에서 벌어지는 엄청나게 많은 사건에 대해서 경험한 두 사람이 사건 담당자 입장에서 경험치가 있지 않을 겁니까? 저 고민 고민하다가 MBS 취재를 받아들이기로 한 거예요. 어떤 식으로든 언론에 나가면 내가 개피 보는 거지 어떤 식으로든 나는 언론에 나가는 순간 매장이에요. 그런데 나는 이제 더 이상 방법이 없구나. 이렇게 해서라도 외교부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도저히 안 되는구나 싶은 거예요. 한국의 뉴스가 크게 터져서 한국에 있는 주한 타이베이 대표부에서 총통에게 보고가 들어가서라도 도움을 받아야 하겠구나까지 생각한 거예요. 나 외교대 총장실에 쳐들어가서 온 몸이 가솔린 들이붓고 분신이라도 하겠다고 작은 가솔린 한 통 사다 뒀어요. 집 사람이 불안하다고 내가 무슨 짓이라도 할까 봐 새벽에 일어나서 화장실 가는데도 불안하다고 따라와서 지켜봐요.”

“그러시면 안 되지요. 정말!”

“오죽하면, 내가 오죽하면...”

“아무리 그래도 휘발유를 가지고 분신을 생각하시다니요. 그건 정말 잘못하시는 거예요.”

“자살의 형태가 생각보다 많아요. 사람이 어떤 경우에 분신자살의 형태를 택하는지 알아요?”

기운 빠진 목소리로 박 교수가 자조적으로 물었다.

“아니요. 저는 그런 것에 대해서는 알고 싶지도 않습니다.”

“자기가 자기 힘으로 도저히 어떻게 이 상황을 알리고 해결할 수 없을 때 , 권력이나 힘에 억눌려 자기가 도저히 어떻게 할 수 없을 때 하는 게 분신자살입니다.”

 


덧. 타이완 무전취식녀 사건에 대한 뉴스 보도.


http://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4352122&plink=ORI&cooper=NAVER


다음 편은 여기에...

https://brunch.co.kr/@ahura/397


매거진의 이전글 대만에 사는 악녀 - 38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