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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검무적 Oct 27. 2021

대만에 사는 악녀 - 40

영사와의 마지막 통화 2

지난 이야기.

https://brunch.co.kr/@ahura/393


“자살하면 그거 큰일 납니다.”

“모르겠어요. 이일현 과장 말로는 내가 자살하게 되면 대표가 갈릴 거라고는 하더군요.”

“자살하면 지옥 갑니다.”

“천주교인이에요?”

“성경에 그렇게 나와 있어요. 자살하면 지옥 갑니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하루하루 이곳이 지옥입니다.”

“그게 어떻게 지옥입니까? 변호사도 선임하시고 하면 되는데...”

“강의가 없으면 연구실에 나오지 않는 일반 대만 교수들과 다르게 아이들 초등학교에 아침 7시에 데려다주고 7시 반부터 밤 9시 반까지 강의 시간 이외에 이제 초등학교 애들 집에도 안 보내고 연구실에 데리고 있으면서 학생들에게 내 아내와 아이들이 중국어를 못할 때, ‘너희들이 언어 연습 대상으로 연습하고 모르는 게 있으면 언제든 내 연구실에 와서 물어라,’라고 연구실을 개방하고 노력하고 지냈습니다. 아직 어린 내 애들, 조는데 밤까지 연구실을 지키라고 했어요. 김 기자가 문건 자료들 다 보내줬더니 자기 상식으로는 자기가 알고 있던 대만과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된 답니다. 아니 이게 지금 다른 거는 차치하고 이일현 과장도 이 얘기를 해요. 국민신문고 민원도 봤습니다. 그 나라의 국회의원이 저를 공격하고 근거도 없이 그렇게 했는데 어떻게 외교부에서 한 마디의 항의도 해줄 수 없다고 할 수가 있습니까?”

“이건 기본적으로 개인의 성추행 문제예요. 그렇잖아요? 성추행 문제잖아요.”

“잠깐만요. 왜 그러냐구요?”

“변호사를 통해서 법정다툼을 통해서 결백을 증명하시면 되는 거예요.”

“내가 외국인 신분이라 대학과의 계약을 내년 1월까지만 1년 단위로 했어요. 한국 같으면 내가 내 직업을 가지고 내 생활하면서 그냥 그때그때 법정에 나가면 돼요. 그런데 내 교수 비자가 내년 1월까지 만으로 되어 있다구요. 나는 지금 학교의 교수 사택에서 살고 있구요. 걔네들에게는 눈엣가시겠지만 연구실에 매일같이 출근하고 있어요. 근데 1월 말이 되면요. 그 근거가 없어져요. 심지어는 지금도 비자 취소하고 내쫓겠다고 규정을 어겨가면서 얘들이 회의를 하고 있어요. 근데 그건 변호사가 어떻게 해줄 수가 없대요. 근데 맞는 말인 게 변호사가 내 신분을 어떻게 해줄 수가 없잖아요?”

“저희도 대학 측에 그걸 내달라고 해줄 수는 없잖아요?”

“그런데 외교부에서 앞으로 향후 내 신분에 대해서 뭔가 설명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거예요. 1월 말이면 종료된다는데 그걸 물어봐주거나 아니면 어, 외교부에서 정말로 누군가가 하다못해 이전에 박준기 부대표를 따라다니던 여자 행정직원이라도 어, ‘이후의 과정은 어떻게 돼요? 이후의 과정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요?’라고 단 한 번도 대표부에서 먼저 나에게 내 상황을 묻겠다고 전화를 해준 적이 없어요.”

“먼저 말씀을 해주셔야 되고, 저희는 먼저 요청이 들어오면 저희가 그거에 대해서 해드리는 거지...”

“아니요. 아니요.”

“저희가 선례적으로 하면야 좋겠지만....”

“처음에 사건이 터지기 전에는 알리지 않으면 무슨 사고가 어떻게 터졌는지 어떻게 알고 응대를 해주겠어요. 하지만 내가 전화를 해서 이런 사건이 터졌다고 도움을 요청했단 말이에요. 이미 대만 언론에 난리가 난 사건이란 말입니다. 그다음에 노정현 과장의 뻔뻔한 멘트처럼 ‘저희가 이 사건에 대해서 계속해서 주시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잖아요. 박준기 부대표의 말처럼, ‘저희가 이 사건에 얼마나 신경을 쓰고 있는지 알고 계십니까?’라고 얘기를 하면 최소한 기소가 된 직후라던가 이후에 법정이 언제 열린 다던가 인포메이션을 제공해달라는 것도 아니고, 하다못해 ‘지금 어떻게 대처하시기로 하셨습니까?’ 라던가 그런 일언반구 말이 없어요.”

“그런 거는 변호사와 준비를 하시는 거지, 저희가 뭐 어떻게 준비를 하고 계시는지 미리 뭐 그러기도 뭐하고, 또 기소가 된 사실을 확인을 하고 또 전화를 드리고 물어봐드리는 건 사실 도덕적인 부분인 거지요. 도덕적인 차원에서 그렇게 따뜻하게 해 드리면 좋겠지만...”

“아니, 내가 부탁한 것조차도 안 해주잖아요?”

“저희가 왜 안 해드려요? 검찰서에도 연락하고 학교 측에도 공문 보내고 했는데 물론 교수님께서 말씀하신 그 건은 아니지만 저희는 공문도 검찰에 보냈어요.”

“검찰에 공문 보낸 거에 대해 내가 뭐라고 한 적이 한 번도 없어요. 근데 계속 그 말을 하는 이유가 뭔가요?”

“저희가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 것처럼 말씀하시니까...”

“오해가 있었네요. 아무것도 해주지 않은 게 아니구요. 이것만 꼭 해달라고 정말 중요한 거니까 이것만은 꼭 해달라고 검찰은 중요하지 않으니까 됐고, 이것만 꼭 해달라고 하는 그게 있잖아요. 내가 밤잠을 못 자고 그간의 녹취내용을 수시로 들어요. 내가 제정신이 아니에요, 요즘. 그래서 내가 그전에 대화한 거 녹취한 거를 계속해서 들어요. 도대체 내가 뭐라고 얘기를 했길래, 무슨 실수를 어디서 했길래, 이렇게까지 되었나 하구요. ‘내가 뭐 말에 실수를 했나?’하고...”

“그것이 지금 이 법리 싸움에서 이기셔야 하는데 과거의 것을 돌려보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그거는 나이브한 이쪽 대만 변호사가 나한테 얘기하는 거구요. 나는 이후 전략을 어떻게 생각했냐 하면요. 내가 이제까지의 대화 내용을 밤새 잠 못 자면서 들은 결과로 내린 결론은요. 이들이 인용하고 있는 그 학교의 조작된 조사보고서! 내가 처음부터 그렇게 박준기 씨에게 요구했던 학교 보고서에 대한 문제를 밝혀내고 재조사를 통해서 잘못되었다는 것을 밝히게 되면 그걸 원용해서 기소했던 검찰은 체면이고 뭐고 다 무너지고 기소가 성립하지 않게 되는 거구요. 학교에서 해임 회의를 하는 것도 근거가 무너지니 모두 무너지게 되는 거예요. 교육부에서 어제 연락했더니 이제사 교육부에서 인정한대요. 그건 문제가 있고 잘못된 거래요. 어제 우리 통화할 때 박아현 씨랑 이 얘기도 했잖아요?. 강준성 씨가 보낸 절차에 대해서도 얼토당토않으니까 그거에 대해서 살펴보자고 했어요. 기억합니까?”

“그래서, 교수님이 말씀하신 결과가 다 끝나고 나서가 아니라 그전에 뭔가 브레이크를 걸 수 있는 과정을 하겠다는 거잖아요? 그래서 저희가 교육부에 이 제도에 대해서 알아봐 드리기를 원하시는 거예요?”

“아니요. 딱 하나예요. 굉장히 논리적인 친구군요, 박아현 씨는. 박아현 씨는 내가 왜 법원의 과정을 기다리지 않고 그 조사보고서를 부수려고 하는지 이해했나요? 그게 위조고 날조라는 것을 터트려서 증명하게 되면 법원까지 가지 않아도 된대요. 그렇게 되면 이 나라에서는 기소까지 당한 사건이기 때문에 검사가 경질되는 일까지 생긴데요. 우리나라랑 많이 다르지요. 그래서 내가 그거에 주력하고자 마음을 정한 거예요. 박아현 씨 듣기에는 어때요? 핵심이 그들이 유일하게 이용하는 증거가 조사보고서예요. 결론이 심각한 성희롱이 성립된다라는 그 결론. 그게 다 무너져 버린다구요. 그게 가장 효과적인 싸움 아닐까요? 변호사가 걱정하는 부분이 이거예요. ‘최악의 경우 벌금이 100만 원 정도예요. 왜 자살을 생각하십니까? 그냥 100만 원 주고 가도 되는 거면 나는 처음부터 그렇게 했을 거예요.’ 오늘 기자랑 얘기하면서 나눈 내용이 그거예요. 아니, 페이스북에 내 사진을 게재하고 실명을 게재하고 욕하고 그걸 한국에 다시 퍼 나르기까지 했어요. 그렇게 증거가 명백한데도 내가 고소를 했더니 그놈이 나를 무고로 고소를 해서는 검사가 나를 불러서는 물어봐요. 당신은 이게 무고가 아니라고 생각하냐네요? 이것도 외교부의 도움을 받을 수 없다는 거지요? 내가 왜 <로버트 박을 읽고>를 찾아서 읽어보게 됐냐 하면서요...”

“그런 제 개인적인 사항은 말씀하시지 마시구요.”

“그래요. 그럼 내정간섭의 선이 어디까지인지를 생각해 보자구요. 여기가 공산국가도 아닌데 지금 하는 짓은 대한민국 국민이 외국에 와서 증거도 없이 국회의원에게 공식석상에서 공격을 받았어요. 그런데 증거를 준비해서 제출했더니 학교에서는 인정을 안 해요. 검찰에서는 아예 받아주지도 않았어요. 그런데 외교부에 도움을 요청을 했더니 변호사를 선임해서 잘 대처하래요. 왜 그런 식으로 대처하냐고 물어봤더니 외교부 대응 매뉴얼에 그렇게 명시되어 있대요. 아니, 북한에 웜 비어나 중국이 공산 체계를 옹고히 유지할 때 미국이나 한국에서는 왜 그 나라의 체계를 존중하고 내정간섭을 하면 안 되는데 왜 거기 들어간 사람들이 무고하다면서 우기고 빼내려고 했던 거지요? 불합리한 일을 당하고 있다고 판단이 들면 자국민을 보호하거나 구제하려고 노력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그 일하고 어떻게 이걸 비교를 합니까? 어떻게 북한의 일을 본인의 일이랑 비교를 합니까?”

그녀가 마치 자신의 아킬레스 건을 건드린 것처럼 발끈하고 까랑까랑한 발톱을 세웠다.

“그럼 내가 뭐가 비슷한 일인지 설명을 하면 되나요?”

“웜 비어는 돌아와서 죽었잖아요.”

“내가 죽어야 비슷해지는 거군요.”

“아니, 비교를 어떻게 그렇게 심각한 것과... 아까 말씀하셨어요. 최고 안 좋은 결과가 나와봐야 벌금이 100만 원 정도라구. 근데 100만원 벌금 나오는 사안하고...”

“이것 봐요. 웜 비어는 북한에서 금하는 중범죄를 저지르는 장면이 cctv 증거로 공개까지 되었어요. 만약 박아현 씨의 말이 맞다면 현행범임에도 불구하고 그건 구제해야 하는 거군요.”

“그 사람은 재판을 받은 게 아니라 정말 끔찍한 고문을 받고 그러는 곳인데 어떻게 북한의 상황을 본인의 상황에 대입하실 수가 있어요?”

“어떻게 대입을 했냐 하면요. 그 사람은 현행범이었어요. 그러고 잡혔어요. 그런데 말했던 것처럼 고문을 왜 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밝혀내지 못했을 뿐이구요.”

“그러면 박 교수님이 고문을 당하셨어요? 아니, 저는 이 문제는 얘기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왜냐면 저는 북한 인권문제가 저에게는 너무 심각한 사안이고...”

“그래요. 그럼 북한은 논외로 합시다. 이 나라에 실제로 나와 유사한 일이 있었대요. 독일의 교수가 나와 똑같은 일을 당한 적이 있었대요. 독일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응대를 했대요. 대만에서 있었던 일이에요. 혹시 아는지 모르겠지만 최근 대만의 여자들이 외국인 남자를 대상으로 무조건 성희롱을 당했다고 무고를 해가지고 전화통화로 다짜고짜 증거를 만들어서, ‘왜 어저께 내 가슴을 만졌어요?’라고 질문을 하고, 남자가 황당해하면서 ‘뭐라구요?’ 그러면 흑흑 울면서, 그냥 끊은 다음에 증거라고 제출하고 그렇게 해서 돈을 뜯어내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는 말을 변호사에게 들었어요. 독일인 교수가 그런 일을 당했는데 정부에서 대처해서 벗어난 사례가 있구요. 심지어 내가 있는 외교대학에서는 여자 교수가 동성애 관계에 있던 여학생과 연구실에서 유사 성관계를 한 일이 있었는데도 경징계를 받고 무마된 일도 있었고요.”

“교수님. 그러면 교수님은 지금 학교에서 조사된 조사보고서가 잘못되었다고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고, 이거를 바로잡고 싶으신 거잖아요?”

“네.”

“저희들한테 어떤 도움을 원하시는지 저희에게 메일로 주세요. 제가 조금 있다가 또 나가봐야 하거든요. 그래서 보내주시면 최대한 빨리 검토해서 제가 연락드릴게요.”

“그러면 주말에는 근무 안 하잖아요 그러면 내가 주말에 메일을 보내 놓으면 늦어도 수요일 전에..., 수요일에 나를 내쫓겠다는 최종회의를 학교에서 열거든요.”

“네.”

“그전에 답변을 들을 수 있을까요?”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하아!”

그녀의 유보적인 대답에 박 교수가 탄식하자 바로 그녀가 이틀 전의 일에 대해 변명하듯 말을 이었다.

“제가 이렇게 말씀드리는 거는 안 하겠다고 말씀드리는 게 아니라 혹시라도 정말 무슨 일이 생길까 봐 그러는 거구요. 저는 이렇게 말씀드릴 때는 거의 다 해드려요.”

“내가 왜 이러냐 하면은요. 내가 국민신문고에 글을 올렸더니 심지어 외교부 본부의 공무원들이 다 답변 쓰기 싫다고 경찰청에서 파견 나온 김승남 경감이라는 친구가 뭐라고 썼느냐하면요. ‘주타이베이 대표부에서 갖은 노력을 다 하고 있으니 조금 기다려주시기 바랍니다.’라고 썼어요. 그래서 내가 답변에 대한 평가에 달았어요. ‘당신이 말하는 갖은 노력이 도대체 뭐냐고 구체적으로 열거해서 예를 들어달라’고. 나는 항상 구체적으로 요구사항을 얘기하는데 당신들은 항상 이 사건에 대해 직접적으로 알지도 못하는 경찰청에서 파견 나온 애들 시켜가지고 이따위의 답변을 다냐고.”

“네. 일단 메일이나 국민신문고든 편하신 데로 주말에 보내주시면 월요일에 보고 수요일 전에 답변을 드리려고 최대한 노력하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제가 이 말할 때 안 하려고 이 말 하는 거 절대 아닙니다.”

“그럼 전화 끊기 전에 마지막으로 하나 물어볼게요.”

“네.”

“이틀 전에 나랑 얘기하고 확인하고 어떻게 도움드릴 수 있는지 하겠습니다. 했잖아요. 교육부에는 연락해봤나요?”

“교육부에 연락하지 말라고 하셨잖아요? ‘교육부에 그거 알아봐 드릴까요?’ 했더니 됐다고 하셨잖아요.”

“무슨 과정 따위 말고 뭔가 이 상황에서 제대로 할 수 있는 걸 알아봤냐는 말이에요. 좋아요. 그러면 나한테 어제 통화하려고 했었잖아요. 우린 통화해서 무슨 얘기를 나눌 수 있었죠? 일단 부대표님께 여쭤봤는데 부대표님은 그런 말씀을 하신 적이 없다고 하신다. 이건가요? “

“사실 우리 대화가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것 때문에 대화가 진행되지 못했던 거고, 대화가 다 안 끝났던 거잖아요. 교수님의 말씀을 계속 들으려고 한 거죠.”

“하아.... 내가 모르겠어요. 너무 여유 있다고 느끼는 게 나만 오해하는 건가요?”

“여유라니요?”

“일처리 하려는 템포가 나만 급하고, 박아현 씨는, ‘저는 중간에 끊으면서 더 좀 자세히 듣고 뭘 하려고 그러는 건데’라고 하면서 들으려고 했던 거지요. 나는 급해서 뛰어가려고 하는데 ‘좀 있어보세요. 좀 듣고 진행합시다’ 뭐 이러는 것 같은데, 맞나요? 내가 오해하는 건가요?”

“네. 오해이신 것 같습니다.”

“그럼 박아현 씨에게 한번 물어봅시다. 지금 단계에서 외교부가 나를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이 아무것도 없다고 판단하신 건가요? 지금 이 단계에서?”

“그러니까 사법절차에 있어서는...”

“아니! 사법절차 말구요. 내가 지금 내 사안의 포커스가 뭔지 이미 얘기를 했잖아요!”

“제가 이해한 거로는요. 교수님이 저희 대표부에 재판에 뭔가 참견을 해달라거나 재판에 뭔가를 해달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이해를 했구요. 사실 이 부분에 대해서도 저는 사실 구체적으로 학교 부분은 들여다보질 않았어요. 왜냐하면 학교라는 기관에 대해서도 저희가 개입을 하거나 그럴 수 없는 거니까요. 부대표님에게 물어봤을 때도 하여튼 복잡하다고만 하시고 제가 구체적인 설명을 못 들었구요.”

“누가 이 사건에 대해 복잡하다고 해서 얘기를 못 들었다구요?”

“하여간 교수님께서 메일을 주시면 제가 메일을 일단 보고 학교 관련한 자료도 찾아보고 그러면 저희가 어떤 걸 도와드릴 수 있을지 답이 나오겠지요.”

“지금 MBS 기자가 자료를 다 보내달라고 해서 다 보내줬어요. ‘학생들이랑 라인의 대화까지 모든 자료를 다 보내주세요.’라고 했거든요. 그런데 맞는 얘기잖아요. 그런데 왜 대표부는 그건 변호사랑 상의하고 다투시고 왜 제가 아까 불편하다는 북한 얘기를 했냐 하면요. 대체적으로 누군가 도움을 주기 전에는 이 사람이 정말로 원죄(怨罪;억울한 누명)를 뒤집어썼는지 확인을 해야 하기 때문에, ‘당신이 정말 결백하다는 증거가 있다면 보여주십시오. 정말 여기 시스템이 잘못되어서 당신이 결백한데도 당신을 공격하는 것이 확인된다면 우리가 당신을 돕겠습니다.’ 이런 방식이 게 유럽의 국가들이 취했던 시스템이라고 합니다.”

“네.”

“그런데 왜 우리 대표부에서는 설명 모두 다 하고 자료 면담에서 다 주고 조사가 뭐가 엉터리였는지 문건을 박준기 씨에게 줬다고 했잖아요. 그 문건은 봤습니까?”

“어떤 문건을...”

“내가 3장짜리 문건을 만들어서, ‘이건 불공정하고 조작된 조사입니다.’라는 내용을 정리해서 면담 자리에서 직접 내밀면서 이걸 총장에게 외교부 명의로 그대로 보내달라고 요구했단 말입니다. 그 문건이요.”

“그 문건은, 제가 못 봤습니다.”

“그 문건이 핵심이라고 내가 몇 번을 얘기합니까?”

“이번에 이 메일로 함께 첨부해 보내주시면 제가 참고할게요.”

“그러면 이 자료라도 봐라라고 하면서 부대표가 제공해주시도 않았다는 거잖아요?”

“제가 엄청나게 바빴습니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거 보니, 파일이 어딘가 있기는 할 텐데, 제가 볼 시간이 없었습니다.”

“그러면 그걸 보고 다시 얘기하도록 하지요.”

“마지막으로 내가 ‘여자’라고 표현했던 말이 오해를 불러일으켰다면 오해 풀기 바랍니다.”

“네. 알겠습니다.”

“그래요. 주말 즐겁게 보내요.”

최대한 나이스 하게, 다른 오해가 없게, 그래서 조금이라도 도움을 받을 수 있게 하는 것이 박 교수의 바람이고 희망이었다.


하지만 일주일이 지나지 않아 다시 전화를 걸어서 박아현 영사가 돌려준 대답은 절망이었다.

“부대표님께 확인을 했구요. 그런 말씀을 하신 적이 없다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아니, 녹취가 있다니까요? 보내줄 테니까 들어보고 증거로 제시하면 되잖아요?”

“아니요. 받지 않겠습니다. 제가 부대표님을 감사하거나 조사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도 않고 저는 부대표님의 명령을 받는 영사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지난번 일도 있고 저는 이제 교수님과의 유선통화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자꾸 오해가 생기고 하기 때문에 앞으로 필요한 부분이 있으시면 이메일로 모두 소통해주세요.”

“지난번 통화 내용하고 상당히 태도가 다르네요? 무슨 얘기를 어떻게 들은 겁니까? 부대표가 일정 나에 대해서 접촉하지도 말고 믿지도 말라고 하던가요?”

“이런 대화, 굉장히 불쾌합니다. 제가 바쁘고 일이 많아서요. 일단 끊겠습니다.”

그렇게 일방적으로 끊긴 전화 이후, 8개월 후 그녀가 도망이든 본부의 의도적 보호조치로 인한 전출이든 어떤 이유에서든 타이베이를 떠날 때까지 박교수는 영사라는 E대 출신 ‘그 여자’에게서 어떤 유선 연락도 받을 수 없었다.


다음 편은 여기에...

https://brunch.co.kr/@ahura/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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