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발검무적 Oct 22. 2021

대만에 사는 악녀 - 35

스승에게 조언을 구하다.

지난 이야기.

https://brunch.co.kr/@ahura/377


                   스승에게 조언을 구하다.


- 자네 지금 괜찮은 건가?

 

울컥한 탓에 흐느낌을 가누지 못하던 박 교수가 잠시 화장실에 세수를 하러 간 사이 박 교수의 핸드폰 안에서 두 번의 진동이 다시 울렸다.

 

- 지금 잠시 통화 괜찮은가?

- 괜찮다면 보이스톡으로 전화 주겠는가?

 

찬물에 얼굴을 씻고 나온 박 교수가 숨을 고르고 보이스톡 버튼을 눌렀다.

“그래. 박 선생. 괜찮은 건가?”

“흡. 면목이 없습니다. 선생님.”

한참 찬물에 세수를 하고 호흡을 고르며 전화를 걸었음에도 다시 저쪽의 익숙한 목소리를 듣자 울컥하고 아까보다 더 큰 오열이 북받쳐 올라왔다.

“참지 말고, 울어도 된다. 자네가 오죽 그간 참고 억눌러왔으면 제대로 얘기도 하기 전에 이러겠나. 괜찮으니 내게는 그래도 된다. 울어라. 울어서 다 씻어내라.”

박 교수는 제대로 뭐라 말도 하지 못하고 봇물 터지듯 터져 나온 오열에 행여 아내나 아이들이 들을까 싶어 주방의 좁은 베란다 쪽으로 전화기를 들고 뛰어나갔다. 그렇게 아이처럼 억억 거리며 서럽디 서럽게 오열하며 박 교수는 눈물 콧물 다 흘렸다. 전화를 끊고서 그랬어야 했는데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는 이미 건너편에서 그의 목소리가 다시 흘러나왔다.

“그간 얼마나 힘들었을지 말 안 해도 안다. 그 거지 같은 나라 같지도 않은 곳에서 얼마나 속이 타고 억울하고 속상했을지 내가 잘 안다.”

“흑. 선생님께 이런 모습 보여드리려고 한 게 아니었는데...”

“쓸데없는 소리. 내가 자네를 모르나? 박 선생만큼 제대로 공부하고 나를 따랐던 제자없었다. 자네가 오죽했으면 그런 꼴을 당했겠나.”

“죄송합니다. 제가 좀 씻고 다시 전화 올리겠습니다.”

화장실에 들어가 찬물로 한참 얼굴을 씻어 내리고 머리까지 적시고 난 후, 심호흡을 하고 퉁퉁 부은 얼굴로 다시 전화기를 들고 조용히 거실의 소파로 앉았다.

“그래. 이제 좀 괜찮아졌나?”

“예. 죄송합니다.”

“이제 그 말은 마지막으로 하자, 듣기 거북하구나.”

“뭐라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어디서부터 말씀드려야 할지... 그런데 어떻게 알고 계셨습니까?”

“며칠 전에, 박 선생 내자 되는 사람이 선생 이메일로 내게 연락을 취해왔었다. 비밀로 해달라고 했었는데, 내가 이리 먼저 말하는 것은 자네가 먼저 내게 연락을 했어야 하는데 아내가 내게 연락할 때까지 연락하지 않은 것을 꾸짖기 위함이 첫 번째 이유다.”

“죄송합니다.”

“이 사람아. 그 거지 같은 나라 같지도 않은 것들에 대한 사전 지식도 없이 그렇게 속 좋은 사람처럼 자기 온몸 던지는 것도 부족해서 내자에, 아이들까지 다 동원해서 내준다고 그런 기본도 안된 족속들이 고마워할 거라고 생각했나?”

“후우. 뭐라 제가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쓸데없는 긴 얘기는 거기 시간이 늦었을 테니 천천히 하기로 하고, 문제부터 정리하자. 일단 관련 인터넷 뉴스를 통해 정리를 내가 하기는 했는데, 아무래도 자네가 가지고 있는 직접적인 정보와는 차이가 있을 듯하여, 내가 네이버에 카페를 하나 개설해두었네. 내가 지금 링크를 보내줄 테니 시간을 두고 그간 관련된 자료들을 최대한 정리하여 업로드하도록 하라. 일단 내가 무엇을 어떻게 도울지는 모르겠으나 최대한 상황에 대한 정보와 어떤 이들이 이 일에 관련되어 있는지 등을 면밀히 조사부터 해야겠다.”

“선생님도 연구하고 강의하시고 집필도 꾸준히 하시는 걸로 알고 있는데.”

“다른 쓸데없는 말은 할 거 없다. 내 제자가 한국에서도 아니고 나라 같지도 않은 남의 땅에서 혈혈단신 가족과 그 고초를 겪고 있는데 그걸 알고 어떻게 스승이라는 자가 자기 바쁘다고 그걸 외면하나? 내가 자네에게 그리 가르쳤던가?”

“그래도...”

“그래 1동에 있는 그 잡것들은 그렇게 굴 수도 있겠구나. 자네가 1동에 너무 오래 있어서 내가 그것들과 비슷하게 여겨졌나 보다.”

“그럴 리가요. 국문과쪽에는 아직 알릴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럴 필요 없다. 자네도 알지 않나? 그런 험한 꼴을 당하고서도 그것들을 모르나? 그것들이 그 같잖은 놈들이 호시탐탐 자네에게 얼마나 모진 말을 하고 누명을 뒤집어씌우지 못해 안달인지 내가 모르나? 자네가 왜 타이완까지 부러 가게 되었는지 생각하면 지금도 그것들을 내가 직접 뒤집어엎어주질 못한 것이 안타까울 정도다.”

“그 일은 그냥 잊기로 했습니다. 그들에게 제가 무슨 기대를 더 하겠습니까?”

“기대는 무슨, 그것들이 이 일을 알게 되면 지난번 그 사건 때보다 더 신나서 자네를 그 안에서 파버리겠다고 난리굿을 한번 더 칠 것이다. 내가 이번엔 그 꼴을 그냥 보진 않을 것이다. 허접한 것들같으니라구. 그것도 교수들이랍시고....”

“아닙니다. 선생님.”

“참! 혹시 그 문제를 일으킨 여학생 말인데, 남학생을 시켜서 페이스북에 올린 건 하도 인터넷에 도배가 되어 있어 전문을 다운로드해서 내가 하나하나 다 확인해봤다. 자네와 다시 크로스체크를 해보긴 해봐야겠지만, 그냥 내가 보더라도 억지로 말을 만들어내려고 한 티가 너무 나더구나. 심지어 그 고발 내용 중에서도 사실관계가 모순되어 겹치는 부분이 있을 정도 더는구먼.”

“그렇습니까? 제가 일일이 그 자료를 보지는 않았습니다. 선생님이 그렇게까지 찾아보셨을 줄은 몰랐습니다.”

“자료도 자료지만, 그 문제의 여학생과 연구실에 있을 때 자네가 혹여 녹취를 해두었더라면 가장 좋았을 텐데 그런 일을 예상하고 자네가 녹취를 했을 리는 없을 테고...”

“그렇습니다. 저도 이렇게까지 일을 크게 그 여자애가 벌일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혹시 관련자들과의 대화나 회의 관련 자료들은 앞으로 모두 녹취를 해두고 그 자료를 카페에 업로드하도록 해라. 내가 모두 듣고 필요한 코멘트는 댓글로 달아두도록 하겠다.”

“예. 그렇지 않아도 그 일이 벌어지고 난 뒤에 학교에서 열기 시작한 회의들이나 관련자들과의 통화나 대화는 모두 녹취하고 있습니다.”

“잘했다. 그렇게 자료를 확보하고 분석하지 않으면 놓칠 수 있는 것들이 너무 많다. 그리고 변호사를 고용했다 들었는데... 괜찮은 친구를 고용한 건지 모르겠구나.”

“일단 특수부 출신에 머리는 잘 돌아가는 것 같은데 아무래도 자기가 직접 뛰면서 뭔가 검찰의 기소 전에 결판을 지어 보려고 했는데, 그것 자체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다른 건 모르겠고, 내가 공부하던 시절에는, 그러니까 중국이 개방을 하기 전이라 대부분의 중국문학이나 철학을 한다고 유학 가겠다는 이들이 대개 타이완으로 유학을 갔었다. 문화 대혁명 시기 이후 대부분의 명철한 학자들이 타이완으로 장개석과 함께 내려갔기 때문이기도 했지. 그런데, 그 80년대 즈음에는 그들이 한국보다 훨씬 더 잘 나갔었다. 그런데 노무현 정부에 들어서면서 그들과 한국의 입장이 완전히 역전되고 한국이 급성장을 하기 시작했고 타이완은 전형적인 후진국 모델로 접어들면서 오랜 정체기에 접어들었다.”

“예.”

박 교수는 스승이 무슨 얘기를 꺼내려고 하는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그런데 내가 십수 년 전에 영춘권 정통 계승자가 사범으로 있다는 소식을 듣고 사사하려고 그곳에 잠시 머물렀던 적이 있다.”

“아, 타이완에 와보셨군요.”

“그런데 그때 지금 자네가 겪은 일보다 더 황당한 일을 직접 목도하는 일이 생겼었다.”

“예?”

“타이완의 것들이 기본이 안되어 있는 것은 자네도 이제 충분히 경험했을 거라 생각한다. 일본 위안부 피해자가 버젓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은혜를 베풀었다고 감사하다고 여기는 족속들이니 과거를 잊은 자들에게 무슨 역사의식이니 인간으로서의 기본을 논하겠는가마는. 당시에 타이완 여자와 결혼했던 한국 남자가 자기 부인에게 식칼로 난도질당해서 살해당하는 엽기적인 살인 사건이 일어났었다.”

“네. 저는 처음 듣습니다.”

“워낙 잔인하고 기괴한 살인 사건도 많고, 워낙 마약이 일반화되어 있는 곳이라 아마 내가 지냈던 십수 년 전보다 지금은 훨씬 더 심해졌다고 들었네만. 어찌 되었든 그 여자가 현장에서 피칠갑을 하고 도망을 치지도 않고 현장에서 체포되었다. 긴 얘기를 할 건 아니었는데 이야기가 길어졌구나. 결론만 말하자. 그 여자가 어찌 되었을 것 같은가?”

“당연히 처벌을 받았겠지요. 그런데 왜 죽인 겁니까? 혹시 한국 남자의 가정폭력이나 정당방위에 해당하는 일이라도 있었던 겁니까?”

“아니. 남자가 다른 여자를 만나려고 했다는 여자의 변명이 있었다. 바람을 피운 것도 아니고, 다른 여자를 만나려고 하는 것 같아서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죽였다고 했다.”

“그러면 당연히 처벌을 받았겠군요.”

“자네가 그 나이 먹도록 공부만 하고 학생들하고만 있어서 세상을 너무 모른다고 내가 늘 걱정하지 않던가. 어찌 그리 순박하기만 한가, 이 사람아. 자네만 탓할 것이 아니긴 하지만.”

“면목 없습니다.”

“자네에게 뭐라 하는 말이 아니네. 결론적으로 그 여자는 무죄로 방면되었다. 내가 아는 어떤 대만 형법이나 국제법에도 살인범에 대해 무죄로 방면해줄 만한 법적 사유가 없었음에도 방면해주었다.”

“예? 아니, 어떻게”

“살해당한 자가 한국인이라는 이유가 가장 큰 이유였다. 죽여도 될 놈이라고 기사를 쓴 정신 나간 혐한 기자들도 있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요?”

“내가 지금 이 얘기를 자네에게 해주는 것은 다른 이유가 아니다. 아까도 말했지만 십수 년 전보다 그 나라는 더 퇴보했고 혐한 인식에 대해서는 더 골이 깊어지면 깊어졌지 결코 나아지지 않았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내가 자네에게 이 이야기를 해주는 가장 큰 이유는, 이제부터 자네가 싸워나가야 할 대상들이 어떤 정신머리를 가지고 있는지 자네가 아직도 명확하게 인지하지 못하고 교과서적으로, 상식적으로만 대하려고 해서는 안된다는 마음가짐을 일러주기 위해 하는 말이다.”

“알겠습니다.”

“일단은 최대한 정보를 정리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자. 너무 급하게 할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너무 시간을 들일 수도 없으니 최대한 이 사건에 모든 에너지를 집약시키도록 하라. 그리고 절대 멍하니 감정적으로 소모적인 행동을 하지 말고 우울한 생각이 들 겨를 없이 내게서 공부할 때 과제를 했던 느낌으로 그간 관련된 자료들을 최대한 많이 자세히 업로드를 하는데 에너지를 집중하도록 해라. 당분간 아무런 생각도 하지 말고 최대한의 자료를 모으고, 그래도 힘들면, 언제든 상관없으니 내게 연락하거라. 지금 자네가 누굴 의지하고 누굴 믿겠나! 자네도 알다시피 내가 몇 시간 자지 않으니 언제고 상관없다. 뭔가 속에 담아두지 말고 언제든 다 끄집어내도록 해라.”

“무슨 말씀이신지 알아듣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그리고 마지막으로, 필요한 부분들은 실시간으로 24시간 카페를 통해 소통하겠지만, 혹여 만일의 문제도 있으니 자네와 나만의 비공개 카페로 돌리겠다. 그리고 한국 외교부와 아마 소통이 있었을 텐데 그 여자 통역관 출신을 장관으로 앉혀놓았을 뿐, 그 안에 있는 것들이 썩어 있는 것은 자네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내 잘 안다. 그러니 내가 아는 라인을 통해 일단 타이완 형법에 대해 관련 자료도 요청해두긴 하였다. 그러니 자네가 읽고 숙지해야 할 자료들도 내가 업로드할 테니 자네도 좀 공부하면서 이 사태를 좀 능동적으로 대처하도록 하자.”

“감사드린다는 말씀 말고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내가 키운 제자다. 내가 자네를 챙기지 않으면 누가 챙긴단 말인가? 부모님께 내색하지 말고 혹여 아시게 되더라도 놀라시지 않게 넌지시 운만 띄워드리도록 해라. 마음 약하게 먹지 말고 자네 뒤에는 내가 있으니 절대 위축된 모습 보일 필요 없다. 자료 준비하고 내가 업로드한 자료 공부하다 보면, 지금까지는 숙면을 취하지 못했겠지만, 이젠 지쳐서라도 숙면을 취하게 될 게다. 내자와 아이들도 있으니 그저 정신력으로 버틴다는 생각 버리고 잘 먹고 잘 자고. 그래야 이길 수 있다. 긴 전투가 될지도 모른다. 마음 단단히 먹고 임하도록 해라.”

“알겠습니다.”

“그래. 오늘은 이만하고 쉬고 자료가 정리되는 대로 또 통화하기로 하자.”

박 교수는 그렇게 전화를 끊고 긴 한숨이 호흡으로 바뀌며 마음이 차분해지는 것을 느꼈다. 방 안쪽에서 그를 바라보고 전화 내용을 가만히 엿듣고 있던 그의 아내가 그림자 안쪽으로 살포시 사라지며 모습을 감췄다.

 

다음 편은 여기에...

https://brunch.co.kr/@ahura/384


매거진의 이전글 대만에 사는 악녀 - 34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