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발검무적 Oct 21. 2021

대만에 사는 악녀 - 34

기습적으로 기소를 당하다.

지난 이야기.

https://brunch.co.kr/@ahura/373


            기습적으로 기소를 당하다.


                                  2017년 10월 21일 오전 10시

 

박 교수는 정신적으로 무너지지 않기 위해, 사건이 터지고 한 달이 지나지 않아 외교대 정문 건너편에 있는 의료센터의 4층을 찾았다. 워낙 심약하고 똘아이들이 많은 땅이라 대학에서 아예 대놓고 정신과 상담 센터를 부설로 차려놓고 학생과 교직원들의 정신과 상담을 권장하는 곳이었다. 성희롱을 폭로하는 국회의원의 기자회견이 지나지 않았음에도 박 교수의 담당으로 지정된 주임은,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우리나라는 워낙 그런 일이 많고, 워낙 믿을 수 없는 뉴스들이 마치 진짜인 것처럼 터지기 때문에 사람들이 뉴스를 믿지 않아요. 9시 메인 뉴스의 첫 뉴스가 항공사 여직원들의 유니폼이 더 섹시한 스타일로 바뀌었는지를 보도하는 나라이니까요.”

농담으로 그런 말을 한 것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웃기지도 않고 내내 심각해있는 박 교수의 안색을 살피는 그녀 역시 농담으로 그런 말을 할 사람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6월 마지막 주에 시작된 상담은 정규 상담으로 매주 금요일 오전 11시에 잡혀 있었다.

7월과 8월을 보내고 9월 마지막 주 있었던 그 황당한 무짜 예배당의 가족 사건을 말하면서 박 교수는 담담하게 자신의 감정을 뱉어냈다.

“당신도 기독교인이라고 하지 않았나요? 한국에서는 기독교인들이 표리부동한 존재로 오히려 많은 지탄과 욕을 먹는데, 대만은 그렇지 않다고 들었고, 이제까지 내 곁을 지켜줬던 학생들도 크리스천이라는 공통점이 있었는데, 역시 다 그렇지는 않은가 봐요?”

이야기를 다 듣던 주임은 할 말이 없는 듯 가만히 바라보며 되물었다.

“그래서 많이 안 좋으셨나요?”

“나도 그렇지만 우리 막내아들에게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몰라서 한참 망설였어요.”

“에휴, 왜 그 사람은 그런 행동을 보여서...”

“그 사람 타이완 사람이잖아요.”

박 교수가 자조적으로 툭 내뱉듯 대답했다.

“네?”

“타이완 사람의 특성인 거잖아요. 지금 이 센터도 대학 부설로 이루어지고 있잖아요. 오히려 내가 어떻게 나올지에 대해 감시하고 알아보고 떠보고 그러는 거 아닌가요?”

“기본적으로 정신과 상담은 비밀을 기본원칙으로 하구요.”

“미안해요. 내가 너무 날카로왔나 보네요.”

“지난번 말씀하신 검찰에서는 아직도 연락이 없나요?”

“도대체 무슨 꿍꿍이인 건지, 이 나라에서는 어떻게 사건을 처리하는 건지 도저히 알 수가 없네요. 내 변호사도 그저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고, 검찰관이 맡은 사건이 많아서 그렇게 빨리 부르지 않을 거라고는 하는데...”

“네.”

“아참! 한 가지 물어볼게요.”

“네.”

“내가 성평회 조사를 하면서 서류 검토할 때 본의 아니게 랴오츠리엔이 성평회에 제출했다는 내용을 본 적이 있어요. 그런데 이번에 조사보고서라는 서류를 봤는데, 아예 대놓고 정신적으로 충격이 너무 크다 어쩌고 되어 있는 내용을 봤어요.”

“네. 그런데요?”

“통상 학교에서 그런 문제가 생기면 정신적인 문제를 이곳에서 체크한다고 지난번 상담 때 나한테 말했었잖아요? 그 여학생이 이곳을 왔었나요?”

“그건 개인적인 부분이라 알려드릴 수가...”

“내용을 알려달라는 게 아니구요. 그 여학생이 여기 상담을 받고 있다면 나와 마주칠 확률도 배재할 수 없잖아요. 성평회에서 결론을 내린 게 사실이라면 나를 연구실에도 못 나오게 해야 하고 서로 마주칠 수 있는 공간을 최소화해야 하는데, 나는 지난번에도 천 위지에도 봤고, 식당에 갔다가 버젓이 음악 들으며 룰루랄라 하는 랴오 츠리엔도 봤어요. 이제 그 일이 터지고 형사고소까지 이루어졌는데, 그 여학생의 주장이 먹혀들어간 것처럼 성평회 조사보고서의 내용이 사실이라면 그 여학생은 정상적인 수업을 듣거나 학교에 나오지 못할 정도로 정신적으로 피폐해있어야 하는 거잖아요. 여기 나오고 있나요?”

“아, 그게...”

“상담 내용을 말해달라는 게 아니잖아요.”

“그렇지 않아도 우리 이미 상담 시작한 지 석 달이 넘어가고 있어요. 그래서 저도 조금 알아봤는데요. 제가 담당이 아닐 수도 있어서 시스템에 그날 이후에 그런 이름의 학생이 등록한 상담이 있는지를 찾다가 이상한 걸 발견했어요.”

“이상한 거요?”

“네. 그 학생이 이곳 센터를 분명히 찾아왔었어요. 단 한번.”

“그래요? 그러면 상담을 받고 있지는 않은 건가요?”

“상담이 아니라, 학교 성평회에서 여학생의 정신상태가 피폐하다면서 한참 뒤에 이쪽으로 보낸 거예요. 그런데 그 여학생이 그때는 누군지 몰랐었는데 제가 접수를 했었던 학생이더라구요.”

“그래서요?”

“그 여학생은 성평회에서 보내서 왔다면서 전혀 정신적으로 데미지가 없으니 자기는 상담같은 도움을 받지 않아도 된다면서 저와 기초적인 서류만 작성하고 사인을 하고 갔어요.”

“거 봐요. 내가 그랬잖아요. 걔는 누명을 씌우려고 그렇게 뒤에서 조종하고 자기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렇게 버젓이 키득거리며 이 상황을 즐기는 악녀라고!”

“흥분하지 마시구요. 가지고 온 차라도 조금 마시세요. 상담을 진행하지 않아서 뭐라고 말씀드릴 것은 없지만, 그 학생이 자기가 서류를 작성하면서 자기는 정신적으로 상담을 필요로 할 정도의 데미지를 입지도 않았고 도움이 필요하지 않다는 서명을 하필이면 저한테 하고 갔어요.”

“후우. 자아, 봐요. 여기가 일반 정신과라고 해도 이건 형사사건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만약 범죄와 관련된 기미가 있으면 신고나 정보 공유를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나는. 그런데 외부의 정신과도 아니고, 학교 부설 정신과 상담 센터잖아요. 그러면 성평회측이나 학교 측에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을 알려서 진실을 바로 잡아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게, 원래 기본적으로 상담내용이나 그런 건 다 비밀로 하고 있고...”

“아니, 걔는 상담을 받은 것도 아니라면서요! 나는 지금 하루하루가 죽을 것 같은 마음으로 온몸에 기름 붓고 총장실에 쳐들어갈 판인데 뭐가 어쩌고 어째요?”

“자꾸 이렇게 흥분하시면 본인에게도 안 좋아요. 너무 흥분하신 것 같아요. 오늘은 이만하기로 하죠.”

“아니요. 왜 대학 본부 측에 안 알린 거죠?”

자리를 피하듯 일어서려는 뚱뚱한 여자 주임의 앞을 가로막듯이 박 교수가 절박한 눈으로 그녀를 응시했다. 석 달 여를 상담하며 박 교수의 심리가 어떤 상태인지 체크했던 그녀였기 때문에 박 교수가 그런 일을 벌이지 않았음을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녀가 어떻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다른 건 모르겠고, 저는 과장님께 보고 드렸어요. 그리고 제가 경고를 받았구요, 더 이상 환자 상담 이외의 건으로 아는 척하지 말라는 경고요.”

그녀의 대답을 듣고 맥이 탁 풀려 망연자실 그 자리에 선 박 교수를 걷어내듯 그녀가 미안한 표정으로 상담실을 나가버렸다.

 

새벽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가 아침에 겨우 소파에서 잠들어 있던 박 교수의 아내가 황급하게 깨웠다.

“여보. 한국에서 전화가 왔는데, 이번 사건에 대해서 뉴스에 기사가 나왔대요. 어쩜 좋아!”

“으응?”

박 교수는 뭔가 잘못 들은 건가 싶었다.

‘이미 기자회견까지 하고 몇 번이나 그 난리를 치고 대만 언론에 나온 것이 뭐가 대단하다고 그러는 거지?’

아내가 가지고 얼굴 앞에 들이민 아이패드의 화면에는 24시간 뉴스를 해대는 한국 케이블 tv의 뉴스 화면이 보였다.

 

한국인 교수 타이완에서 성희롱으로 기소

 

잠이 확 깨며 정수리서부터 찌릿한 전기가 온몸을 타고 흘렀다.

“이게 뭐야?”

“운섭이한테서 전화가 왔어요. 오늘 짧은 해외 단신이긴 하지만, 이렇게 나왔다구.”

“내 전화기 줘봐.”

어이가 없었다. 바로 장 변호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받지를 않았다. 급한 대로 단체 라인방에 문자를 날렸다.

- 지금 한국 뉴스에 내가 기소되었다는 뉴스가 나왔답니다.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그는 문자를 읽지 않았다.

10월 21일 토요일, 그러고 보니 그가 주말에는 전혀 일을 하지 않는다고 긴급한 연락이 있어도 주말에는 연결이 안 될 수 있으니 잊지 말라고 말했던 것이 기억났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장 변호사의 지난번 설명도 함께 떠올랐다.

전에 변호사 수임을 결정하기 전에 수임할지 말지를 밀당하면서 장 변호사가 박 교수에게 설명한 랴오츠리엔이 왜 자신이 아니고 남학생을 이용해서 그것도 페이스북을 통해 토요일 저녁에 그런 일을 벌였는지에 대해 설명한 사실이 떠오른 것이다.

타이완은 가십 언론이 이미 파벌을 나누고 서로를 공격하는 기관지 역할 이외의 것을 하지 않으며 오로지 시청률과 클릭수로 먹고 살기 때문에 사실이든 아니든 일단 자극적인 뉴스가 있으면 재래식 화장실에 똥파리가 끓어오르듯 난리를 부린다고 했다.

그런데, 워낙 그런 기레기들이 판을 치기 때문에 평일에 사건사고가 올라오는 것은 묻힐 확률이 크다고 했다. 마치 복지부동하는 공무원들처럼 주말에는 일을 하지 않고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만 일을 하듯 일을 벌이는 것도 평일에 한정된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반대로 생각하면 월요일에 뉴스거리가 가장 없다는 것이었다. 때문에 토요일 저녁에 기레기들이 혹할만한 이슈를 타이완의 메일 소통기구인 페이스북을 통해 터트리면 100% 국회의원이든 언론이든 관심을 보일 거라는 것이었다. 이것은, 장 변호사가 특수부에서 수사를 할 때 경험상 얻게 된 사실로, 부정부패와 비리로 물러던 전임 총리나 정치인들이 자신들의 이슈를 부각시키거나 반대로 그것을 묻으려고 다른 더 큰 것을 터트릴 때 월요일에 바로 기자회견을 하게 마련해놓고 이슈몰이를 주말에 하는 것은, 검찰에서 말하는 흔히 그림을 그리는 수법의 일종이라고 했다. 그래서 장 변호사는 누가 배후에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랴오츠리엔이 겨우 24살에 그런 기획을 했다면 정말 소름 끼칠 정도로 무서운 아이니 자신같이 그런 타이완 여자애들을 잘 아는 전문가가 사건을 맡아야 한다는 설명이었다.

어찌 되었든, 반대로 한국에서 토요일에 이 일이 터졌다는 것은 타이완 언론에서 가만히 있었을 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바로 아이패드를 들고 타이완의 뉴스를 검색했다. 토요일 아침임에도 이미 대서특필부터해서 난리가 난 듯 도배를 했다. 그런데 여당의 기관지라고 하는 곳에서만 도배가 되어있고, 야당의 기관지 역할을 하는 언론에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어떻게 된 거지?’

오후가 되어서야 장 변호사에게 전화도 아니고 문자가 하나 들어왔다.


- 주말이라 검찰청도 어디도 확인할 수 없습니다. 월요일에 출근해서 확인하고 연락할게요.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이렇게 느긋하게 주말을 보낼 수가 없었다. 이제까지의 날들이 그랬지만 이 주말만큼 그에게 지옥은 없었다. 이제 한국에서도 이 사건에 대해 알게 된 것이 문제가 아니라, 정말로 타이완의 검찰에서 기소를 한 것이다. 연구실로 달려가 관련 자료를 한 글자 한 글자 분석하면서 박 교수는 피가 거꾸로 쏟는 것 같은 느낌에 죽을 것만 같았다.

언론에는 하나같이 이전에 여자 국회의원이 기자회견을 한 것과 함께 마치 홍보 브로셔처럼 되어 있었다. 그 말인즉은 언론에 이렇게 대서특필한 것도 여전히 그 여자 국회의원의 지원사격이 있었다는 설명에 다름 아니었다. 가장 기가 막혔던 것은 기소의 결정적인 사유가 외교대 성평회에서 결론지은 조사보고서가 결정적인 증거로 활용되었다는 마지막 문구였다.

자신은 제대로 받아보지도 못했던 그 문건이, 학과 회의에서 다들 손에 쥐고 바이블처럼 희끗희끗 바라보며 키득거리던 그들의 모멸감 담은 시선이 다시 스멀거리며 기억에 떠올랐다.

‘시너를 한 통 사서 유서를 뿌리고 총장실에 가서 담판을 보자.’

그렇게 결심하고 연구실을 나서려는데 아이들을 앞세우고 아내가 들어왔다.

“어디 가요! 안돼요. 아무 생각하지 말고 월요일에 그 대만 변호사한테 연락 오는 것만 기다려요. 당신이 다른 생각하면 우리 가족은 여기서 뭐가 돼요. 그러지 마요.”

박 교수의 아내는 이미 그가 어떤 생각으로 어떤 일을 벌일 것인지 예상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그래서 아이들을 일부러 연구실까지 데리고 주말 나들이를 가자고 온 것이었다.

외교대에서 걸어서 얼마 걸리지 않는 마오콩의 케이블카를 타러 간 박 교수는 신이 나서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보며 다시 마음을 다잡아야 했다. 그렇게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 아침, 10시가 한참 지나서야 전화벨이 울렸다.

“네. 장 변호사님. 어떻게 되었는지 알아봤습니까?”

“네. 검찰관이 그냥 기습적으로 기소를 금요일에 결정했다고 합니다.”

“장 변호사가 그랬잖아요. 재판처럼 우리를 부르고 서로의 변호를 다 들어보고 결정할 거라고.”

“원칙은 그래야 하는 거죠.”

“네? 원칙은, 이라니요? 그러면 이렇게 기습적으로 기소를 해도 우리가 어쩔 수 없다는 겁니까? 내가 당신을 고용한 이유가....”

“나도 화가 납니다. 내가 옷 벗고 나온 지 3년이 넘었다고는 하지만 아무도 안에서 나한테 이 얘기를 해주지 않았어요. 게다가 기소를 결정한 검찰관이라는 자가 내 연락 자체를 받지 않고 피하고 있어요. 우리한테 공소장이 오면 도대체 무슨 근거에서 이런 기습 기소를 했는지 알 수 있겠지만, 공소장이 오려면 일주일은 더 걸릴 거예요.”

“그러면 또 그냥 기다릴 수밖에 없다는 건가요?”

“박 교수님. 내가 말했지만, 원래 기소되기 전까지의 법률 수임 계약이긴 했지만 1심에 대해서는 내가 변호를 맡도록 하지요.”

“그게 지금 인심 쓰듯이 할 말이...”

“이미 기소가 결정되었어요. 그러면 재판에서 싸워서 이기는 수밖에 없는 겁니다.”

“후우.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데요?”

“공소사실이 기재된 공소장이 우편으로 도착할 겁니다. 그게 오면 그 내용을 보고 얘기하도록 하죠. 그리고 이 말을 하려고 전화한 건데...”

“네.”

“아마 공소장과 함께 출국금지 통지가 같이 올 겁니다.”

“네?”

“제 생각엔, 아니 이건 확실한 거예요. 지난번에 내가 설명한 거 기억하시죠? 그 여자 국회의원이 오늘 기자회견을 또 했대요. 이런 쓰레기 같은 한국인이 그냥 한국으로 도망가게 둬서는 안 되기 때문에 출국금지부터 해서 발을 묶어둬야 한다고.”

“내가 한국으로 그냥 도망갈 생각이었으면 여태 이 꼴을 당하면서 있었겠습니까?”

“그러니까요. 어차피 여기서 싸울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까 출국금지 때문에 더 기분 나빠하거나 그럴 필요 없습니다. 그러면 내가 아직 수임계를 내지도 못했으니까 오늘 서류 처리해서 그 서류가 우리 사무실 쪽으로 오도록 조치를 할게요.”

“아직 수임도 안....”

“뚜뚜뚜...”

박 교수는 장 변호사의 반응에 어이가 없었다.

‘출국금지? 재판?’

이제 믿고 의지할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생각했다. 멍하니 연구실이 어두워질 때까지 앉아 있던 박 교수는 아무런 말도 없이 그렇게 사택으로 돌아왔다. 아이들을 재우고 새벽에 가만히 다시 침실을 빠져나온 박 교수가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렸다.

“또 안 자고 뭐해요?”

“잠이 안 오네.”

“그래도 사람이 억지로라도 자야죠. 그래야 힘을 내고 정신도 맑은 상태를 유지하지.”

“아무래도 선생님한테 연락을 드려봐야 할 것 같애.”

“선생님? 그분?”

“응. 당신 누구 얘기하는지 알아?”

“당신이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사람 ‘그분’ 말고 없잖아요. 그런데 ‘그분’ 한국에 안 계시다고 하지 않았어요?”

“응. 지금 유럽에 있는 대학에 가 계시다고 들은 게 마지막이었는데, 아마 그쪽 대학에 계실 거야.”

“그분이라면 지금 당신한테 제대로 된 상의 상대가 되어주실 거예요.”

“좋은 일도 아니고 인사드리고 나온 것도 아니고....”

“당신이 지금 그런 거 생각할 때가 아니잖아요. 어쨌거나 법조계도 계셨고 정신과에도 계셨으니까 지금 당신한테는 절대적으로 도움이 필요한 분이에요. 그분도 당신을 많이 아끼셨잖아요.”

“후우.”

“어차피 연락이 될지 말지도 모르는 거잖아요. 한번 편하게 연락드리고 도움을 청해봐요. 내가 그 정도 능력이 되면 당신한테 도움이 되겠지만... 그분이라면 분명히 뭔가 방향을 제시해주실 수 있을 거예요.”

아내의 말을 듣고 몇 번을 망설이다, 카카오톡의 화면을 열었다. 알록달록 드롭캔디 사진이 가득차 있는, ‘발검 무적’이라고 적혀 있는 아이디에 그의 손가락이 멈췄다.


- 선생님. 접니다. 오랜만에 인사 여쭙습니다.


그쪽 현지시간을 체크한 것도 아니고 그저 속에 울컥 뭔가 올라오듯 인사를 치고 났는데, 다시 삭제할까 하려는데, 앞에 있던 노란 ‘1’이라는 숫자가 바로 없어졌다.


- 박군, 괜찮나?


바로 '발검 무적'이라는 아이디에서 답변이 돌아왔다.

조금 맥락 없어 보이는 ‘괜찮나’라는 단어에 박 교수가 자신도 모르게 자고 있던 아이들이 깰까 싶어 흐느끼듯 오열하기 시작했다.


- 자네 지금 괜찮은 건가?

 

다음 이야기는 여기에...

https://brunch.co.kr/@ahura/381


매거진의 이전글 대만에 사는 악녀 - 33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