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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검무적 Nov 09. 2021

아버지의 무식과 정부의 무책임으로 성을 바꾸고 살았지만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 홀로 눈을 부릅뜨고 부조리를 고발하다.

1922년 포르투갈 리바테주 지구에 있는 아지냐가 마을의 가난한 농가의 아들로 태어났다. 문자를 쓰는 것이 능숙하지 못해 아들의 출생신고도 제대로 못 하는 시골의 가난한 농부 아들이었기에 먹고 살 돈도 없는 가정형편을 도와야만 했다.

그래서, 고등학교를 제대로 졸업도 하지 못하고 중퇴한 후, 단기 직업학교만 마치고서 용접공, 제철공, 막노동 등 밑바닥 노동자로 먹고살기 위한 수많은 직업을 전전했다.

 

공장에서 일을 하면서도 밤에는 도서관에 앉아 혼자 독서를 통해 글을 쓰겠다고 마음 먹고 글쓰기를 시작해 문학잡지와 일간신문의 평기자나 번역가로 일하다가 출판사의 편집자로 들어갔으나 자신의 글이라고는 거의 쓰지 못했다. 1969년, 안토니우 데 올리베이라 살라자르 독재 치하의 억압적인 문화적 분위기를 참을 수 없어 공산당에 입당하기도 했다.

52살이 되던 해인, 1974년에 터진 4월 혁명으로 우익 독재정권이 무너지자 공산당의 추천으로 소규모 일간신문사의 부주간으로 취임한 것이 그의 생애 최초, 버젓한 정규직 일자리였다.


그러나 4월 혁명 이후 역공에 나선 반공 세력에게 떠밀려 신문사 내부의 좌우익의 갈등 끝에, 얼마 월급을 받아보지도 못하고 해직된 뒤 생계를 위해 본격적인 소설 창작을 하기 시작한다.


1977년 그는 첫 장편소설 《회화와 서예의 안내서(Manual de pintura e caligrafiea)》를 출간했다. 이 작품은 어느 이상주의적인 초상화가가 화가이자 비평가로서의 자신의 내적 통합성을 지키기 위해 갖은 희생을 치른다는 다분히 자신의 자전적인 삶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노벨 문학상 수상 당시

1949년 노벨 생리학·의학상을 받은 신경학자 안토니우스 에가스 무니스에 이어 포르투갈 사람으로서 역대 2번째의 노벨상 수상을 안겨준, 1998년 20세기 마지막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 주제 드소자 사라마구(José de Sousa Saramago)의 이야기이다.

 

그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포르투갈의 언어와 문화가 낳은 큰 성과였다. 일부 비평가들은 그가 1998년 노벨 문학상을 받은 데 대해 뒤늦은 감이 있다고 평할 정도였다. 사라마구는 예순이 넘은, 1980년에 접어들어서야 인간의 운명과 약점을 깊이 있게 다룬 독창적이고 다층적인 작품들로 작가로서 성년기를 맞았다. 흔히, 우화적이라고 표현되는 그의 소설은 정치적 회의주의와 역사적 지식을 기반으로 여기에 마술적 사실주의의 경쾌함, 실험적 문장, 등장인물들에 대한 애정을 가미한 작품들이 주를 이룬다.

 

포르투갈 문학이 워낙 생소한 터이고, 그가 유명 작가가 아니라는 이유로 표면적인 작가 프로필만 본 문화부 기자라는 이들이, 그가 1969년 공산주의 불법 정당에 가입하여 활동하다가 1975년 국외로 강제 추방된 사실만을 보고, 그가 우리가 생각하는 빨갱이(공산주의자)정도 되는 좌익인사인 듯 작성된 글도 있는데 그것은 전혀 실체적 진실과 다르게 왜곡된 것이다.

 

그의 공식적인 데뷔는, 1947년 첫 소설 《죄의 땅》이라고 나오지만, 정작, 그가 본격적인 전업작가로 활동하기 시작한 것은, 첫 장편소설이 나온 지 2년 뒤인 1979년부터였다. 1982년 포르투갈을 배경으로 한 환상적 역사소설 《수도원 회고록(Memorial do convento)》를 발표하여 명성을 얻었다. 그는 환상과 현실을 넘나드는 상상력과 인간애, 풍자에 근거한 새로운 소설의 영역을 개척했다고 평가되고 있다.


주요 작품으로는 《카인》, 《이 책으로 무엇을 할까요》, 《돌뗏목》, 《리스본 포위의 역사》, 《지저스 크라이스트의 가스펠송》, 《무지에 관한 에세이》, 《눈뜬 자들의 도시》, 《이름 없는 자들의 도시》, 《눈먼 자들의 도시》 등이 있다.

 



그는 10편의 베스트셀러 소설 이외에도 시·희곡·단편·수필 등을 썼다. 사라마구는 정작 전업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한 지 한참이 지난, 60세의 나이에 장편소설 《수도원 회고록(Memorial do convento)》(1982)으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기 시작하기 전까지 아주 가난한 생활을 영위하며 듣보잡의 무명(無名)으로 살았다.

《수도원 회고록(Memorial do convento)》의 원작 소설

18세기 초반의 종교재판을 무대로 한 이 히트작은, 노련한 전사 발타사르와 비상한 힘을 지닌 여인 블리문다의 사랑을 다룬 복잡한 환상소설이다. 이들 두 주인공은 모험심이 많은 어느 성직자의 도움으로 인간의 의지를 동력으로 하여 움직이는 비행기를 만든다. 이야기를 끌어나가는 사라마구의 솜씨는 리스본 외곽의 마트라 수도원에 대한 서사적인 묘사에서 절정에 이른다. 사라마구는 이 작품을 오페라용 대본으로 각색하기도 했다.

 

여기에 이탈리아 작곡가 아치오 코르기가 곡을 붙여 오페라 《블리문다(Blimunda)》(1990)가 탄생했다. 이 작품이 지닌 풍자적 가치는 특히 가진 자와 그렇지 못한 자 간의 계급적 차이를 다룬 다음과 같은 부분에서 돋보인다.

 

“참을 수 없는 더위에 관객들은 레모네이드와 물을 1잔 더 마시거나 수박 1조각을 먹었다. 어차피 곧 죽을 사형수 때문에 사람들이 더위를 참아야 할 필요는 없었으므로 허기를 느꼈다면 호두나 밤, 치즈나 대추야자도 기꺼이 먹었으리라. 화형이 끝나자마자 왕은 왕자들과 공주들을 거느리고 종교재판소의 본부에서 식사를 할 것이다. 이 불쾌한 일을 끝내고 나면 왕은 종교재판소장과 함께 호화로운 연회를 즐길 터이다.”

 

앞서 잠시 언급했던 바와 같이, 포르투갈어도 제대로 알지 못해서 그에 대해 조사도 하지 않고 그저 프로필만 보고서 사라마구를 공산주의자라고 말하는 무식한 이들이 쓴 글을 몇 번이나 본 적이 있다.


그가 47살의 늦은 나이가 되어서야 포르투갈 공산당에 가입한 것은 사실이나, 그 공산당은 우리가 알고 있는 그 빨갱이 공산당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나는 그의 모든 작품을 어떤 의미에서도 그런 빨갱이스러운 공산당의 프로파간다(선전물) 비슷한 것도 읽어본 적이 없다.


인간을 억압하는 모든 우상의 권위에 대항하는 개인의 외로운 싸움, 부당한 권력에 맞서서 자유를 추구하는 그의 작품은, 조지 오웰의 《1984》, 프란츠 카프카의 《심판》,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와 같은 선상에 있는, 그야말로 부정한 권력에 항거하는 작품이다. 1998년 그의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한국에 번역된 《눈먼 자들의 도시》를 비롯한 그의 모든 작품은 국가, 교회, 사유재산이 아니라 수평적 연대를 통한 직접 민주주의, 공동 소유와 생산 및 소비의 자주적 협의에 대한 그의 생각을 일관되게 풀어내고 있을 뿐이다.

한국 번역판의 표지

소설 제목인 《눈먼 자들의 도시라는 원작의 제목도 한국 출판사에서 어디서 들어본 영화 제목같이 지은 것일 뿐, 원제는 ‘맹목(盲目;Ensaio sobre a cegueira)’이라는 명료한 제목이다.

사람들의 눈이 멀어지는 전염병이 휩쓸어 모든 것이 파괴된 세상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인간들의 무지를 비판한 그 소설에서, 다행히도 한 여인만은 눈을 뜨고 세상을 바라보아 마지막 희망을 주는 듯 하지만, 소설 자체가 어둡고 무겁기 그지없다. 삶이 비참해지면 인간은 이성을 잃게 되고, 권력자들은 인간의 존엄성을 철저히 짓밟으며, 소수의 거짓말이 다수의 진실을 대신한다는 고발의 목소리가 그 어둠을 가르며 려온다.

2008년 영화화되기까지 했다.

그에 대한 잘못된 편견 기가 나온 김에 가지만 더 짚고 가자. 실제로 그가 포르투갈의 극우 보수 독재 정권에게 찍혀 1975년 국외 추방을 당하고 나서, 그는 자신의 조국에게 쫓겨나 작가 생활을 영위하기 시작했다. 이후 70살의 나이에 출판한 《예수복음(O evangelho segundo Jesus Cristo)》에서 예수와 신을 타락하고 잔인한 인간으로 그렸다는 이유로 가톨릭 교회와 보수 정권의 탄압을 받아 스페인령의 뜨거운 모래섬으로 망명을 해야 했다. 정작, 《예수복음》은 신들과 축복받은 자들의 전설이 아니라, 치열하게 싸웠지만 이길 수 없는 절대 권력에 어쩔 수 없이 굴복해야 했던 인간들의 이야기이다.

그 6년 뒤인 1998년에 스웨덴 아카데미에서 그에게 ‘상상력, 연민, 그리고 아이러니로 뒷받침된 비유’와 공식적 진실에 대한 ‘현대적 회의론’에 탁월한 평가를 부여하며 노벨문학상을 수여하기로 결정하자 바티칸 당국에서 《예수복음》에 의문을 제기하며 반대의사를 표명했지만, 사라마구는 “그들은 기도에 집중하고 사람들을 평화롭게 해야 한다. 나는 신자들을 존중하지만 그 기관을 존중하지는 않는다”라고 당찬 소감을 발표했다.

노벨문학상 수여식 당시

또, 사라마구는 2006년에 <옵서버>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예술가는 예술가로서가 아니라 시민이기 때문에 모두에게 영향을 미친다. 시민으로서 우리 모두는 개입하고 참여해야 할 의무가 있다. 사물을 바꾸는 것은 시민이다. 나는 사회적 또는 정치적 참여 외에는 나 자신을 상상할 수 없다”

 

사라마구는 쉼표와 마침표 이외의 문장부호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 문체로 유명하다. 포르투갈어판 원문의 경우 쉼표와 마침표의 사용 비중이 페이지 당 20:1 가량이나 된다. 또한 대화와 대화 사이, 대화와 독백 사이, 대화와 해설 사이 등에서 줄 바꿈을 하지 않아 주제 사라마구의 작품을 처음 접하는 독자는 당황하는 경우가 있다.

 

뭐든 좋은 생각 있으면 말해봐요. 무슨 좋은 생각. 재미있고 볼 만한 영화가 뭔지 말해보라고요. 그런 영화야 쌔고 쌨지, 그냥 가게에 가서 한 번 둘러보고 하나 골라. 그래도 선생님이 뭔가 권해줄 수는 있잖아요. 수학교사는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다가 이렇게 말했다, <경주는 빠른 자에게>.

                                           《도플갱어》 15쪽 중에서.

 

사람 간의 대화를 큰따옴표나 줄 바꿈으로 구분하지 않는 것이 아주 독특하다. 동시에 문장과 대화가 매우 간결한 문체로 써져 있어서 도리어 시적인 느낌을 주기도 한다.


그의 글을 읽다 보면, ‘일색 바둑’ 떠오른다. ‘일색 바둑’이란, 흑백의 바둑돌을 구분하지 않고 한 가지 색의 바둑돌로 바둑을 두어, 자신과 다른 사람의 돌이 구분이 가지 않기 때문에 오로지 집중력과 기억력만으로 자신의 돌과 상대의 돌을 기억해야 하는 바둑을 말하는 것으로, 아마추어 바둑 5단 정도(기원 1단)의 아저씨들은 고사하고 웬만한 프로들도 흉내내기 어려운 바둑이다.


실제로 그의 소설은 이런 식으로 친절하게 문장부호로 구분하여 안내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책을 읽다가 잠깐 한눈을 팔거나 하게 되면 책의 흐름을 놓치기 쉽기 때문에 다른 소설에 비해 더 집중해서 보게 되는 역효과(?)가 있다.


이와 같은 문체에 매료된 독자들은 독특하다고 좋아하고, 적응하지 못한 독자들은 책 보기를 포기하는 경우가 있는 호불호가 좀 갈리는 작가이기도 하다.

이러한 서술 방법 때문에 주제 사라마구의 책을 펼쳐 보면 아주 기가 질릴 정도로 빽빽하게 글자가 들어차 있어, 페이지 수가 비슷한 타 소설에 비해 분량면에서 상당하여, 읽는 데 굉장히 오래 걸리는 편으로 유명하다.


앞서 설명했지만, 사라마구는 그의 이름에서부터 포르투갈 사회의 역사적 불공평과 서민들의 힘겨운 삶을 오롯이 보여준다. ‘사라마구’라는 그의 성은 아버지의 성이 아니라 일종의 별명으로, 식량이 부족할 때 빈민들이 대용식으로 먹던 ‘야생무’를 일컫는 포르투갈 말이었는데, 아버지가 그의 출생신고를 할 때 실수로 잘못 쓴 것이었다.


그것을 그대로 둔 부모나 관료, 게다가 그것을 바꾸지 않고 평생 그것을 성으로 삼은 사라마구는, 자신의 글쓰기를 통해 삶에 대한 ‘당당한 겸손함’을 결코 잃지 않았다.

 

그는 1974년에는 포르투갈 독재정치에 대한 항거 시위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1975년 국외로 강제 추방되었고, 1992년 《예수복음》을 둘러싸고 포르투갈 보수정부와 갈등을 빚은 후 스페인 영토인 카나리아 제도로 이주해 살면서 작품 집필에 전념해오다 결국 망명지인 그곳에서 2010년 호흡기 질환이 악화되어 다발성 장기 부전으로 향년 87세로 타계했다.

말년에 찍은 인터뷰 사진

그는, 아들의 출생신고도 제대로 못 하는 포르투갈 시골의 가난한 농부 아들로 태어나 학업도 제대로 마치지 못하고 밑바닥 노동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해 평생을 가난한 글쟁이로 살았다는 이야기를 시작으로 노벨문학상 수상에 대한 소감의 운을 뗐다.

 

당신이라면, 당신의 이름이 글도 제대로 쓰지 못하는 아버지의 실수로 지어졌다면 그것을 그대로 참고 오히려 그것을 상징으로 삼으며 글쓰기로 그 사회의 부조리를, 그 불평등했던 시대의 아픔을 표현할 수 있었겠는가?


말이 글쟁이지, 제대로 된 글쓰기를 배운 적도, 제대로 된 스승이나 영향을 줄만한 문인 선배도 없이 그저 독학으로 글쓰기를 계속해왔고, 60이 넘어서야 전업작가로서 알려지기까지 전업작가라면서 글을 계속 써나갈 수 있겠는가?

 

내가 한동안 이 시리즈들에, 어설픈 일기도 아니고 낙서 수준의 글을 쓰는 브런치의 ‘작가’라고 불리는 것에 만족하는 이들에 대해 그래서는 안된다는 취지로 잔소리를 좀 썼더니, 그러다가 돌팔매 맞는다며 걱정해주던 이들이 하도 많아서 여기서 새삼 다시 그들에게 회초리를 들진 않겠다. 굳이 매를 들지 않아도 가슴이 뜨끔한 이들이 있다면 알아서 반성하고 자신의 글쓰기를 돌아보고, 보다 나은 글을 쓰게 되길 바란다.

 

내가 오늘 글솜씨가  다른 노벨문학상 수상들에 비해 딱히 수려하지도 않고, 그것도 잘 알려지지도 않은, 문학의 변방에 있던 포르투갈 소설가를 당신에게 오늘 소개하는 것은 그가 글쓰기에 담고자 했던 의지가 얼마나 명확하였는지를 직접 보여주기 위함이다.

다양한 글쓰기는 존재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을 배재한 글쓰기란 결코 존재할 수 없다. 심지어 그의 이름을 알리게 된 작품은 환상소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60년 세월에 갈고닦은 서슬이 퍼런 그 글들은 어떤 식으로든 주머니를 찢고 나와 부정한 자들의 가슴과 양심을 후벼 파기에 충분했고, 같은 심정을 가진 이들의 마음을 울리기에 충분했다.

 

당신의 글쓰기가 정확하게 어떤 목적하는 바가 있는지, 당신이 어떤 이유로 어떤 마음으로 글을 쓰는지 나는 잘 알지 못한다. 당신의 글쓰기가 그저 개인적 심미 목적으로 쓰일 수도 있고, 정신과에서 말하는 자신의 안에 있는 묵은 감정들의 찌꺼기를 배설하는 용도로 쓰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글쓰기가 향하는 바의 가장 중요한 것은 진솔함이고, 그 진솔함은 어떤 식으로든 현실과 맞닿아있을 수밖에 없으며, 그것은 결국 현실에 대한 당신의 가치관과 생각을 드러낼 수밖에 없다. 제대로 배우지도 못했다고 하지만, 사라마구의 글에는 그가 혼자서 익혔을 그 깊이가 오롯이 독자에게 전달된다. 그가 정규 교육의 졸업장은 없을지언정 결코 배우지 못한 자가 아니라는 뜻이다.

당신이 경성제대 국어국문학과 출신이 아니어서, 글이 아닌 것도 아니고, 당신이 이미 나이가 먹어, 마흔이 훨씬 넘어, 글이라는 것을 써보겠다고 펜을 들어, 어려서부터 다져지지 않아서 그런 것도 아니다. 그보다 더한  장애물을 딛고서도 당당히 노벨문학상을 받은 이도 있다.


당신이 정말로 제대로 된 글쓰기를 하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는 누구보다 당신이 더 잘 알 것이다.


다만, 제대로 노력하지 않고, 공부하지 않고, 글이 안 써지네, 자기 검열 때문에 글을 쓸 엄두가 안 나네 따위의 같잖은 소리 하지 말란 말이다.


먼저 그 텅 빈 머릿속의 우동사리를 모두 꺼내어 깨끗이 비운 후, 다시 그 안을 제대로 된 공부들로 꽉 채우고 나서 그것이 농축되어 흘러넘쳐 당신의 가슴을 채우기 시작하여 다 차서 그것이 흘러넘쳐 어쩌지 못할 때 당신의 감성과 이성이 그것들을 꺼내놓지 못하고서는 견딜 수 없다고 소리칠 때, 그것들을 잉크 삼아 한 땀 한 땀 찍어 만년필에 채워 비로소 펜을 드는 것이다.

대나무뿌리 죽비

당신이 하도 글쓰기가 별 대단한 것도 아닌 듯 여겨, 필사 어쩌고 하면서 받아쓰기 하듯 써되면 되는 줄 알고 있었다면, 그것이 결코 문학이 아니고, 글쓰기가 아니며, 그 무엇도 아님을 사라마구의 삶을 다시 한번 조용히 들여다보며 다시한번 생각해보길 권한다.

그리하여 당신이 그 과정을 통해 뭔가 느낄 수 있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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