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발검무적 Nov 26. 2021

악마는 왜 계약이라는 조건에 민감한가?

악마의 정체와 사탄의 대화 녹취록

지난 이야기.

https://brunch.co.kr/@ahura/504


악마의 색깔은 대개 그리스도교의 전통과 거의 전 세계적인 상징성에 부합하는 검은색이다. 때로는 검은색과 비슷한 푸른색이나 보라색이기도 했다. 악마는 피부가 검거나 검은 짐승으로 나타나거나 검은 옷을 입은 모습으로 묘사된다.

이는 지옥이 어둡고 짙은 지하에 있다는 고대인들의 생각 때문이었다. 두 번째로 자주 나타나는 악마의 빛깔은 피와 지옥의 불꽃을 나타내는 붉은색이다. 이 때는 이글이글 타는 눈이나 연기를 내뿜는 입, 지옥에서 불타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이따금씩 악마는 사냥과의 관련성으로 초록색을 띠기도 한다. 영혼을 사냥하는 사냥꾼으로서의 악마 이미지는 중세 시대에 인기 있는 비유였으며, 전통적으로 사냥꾼들은 초록색 옷을 입었다.


악마는 특정 장소나 하루 중의 특정 시간과 관련된다고 여겨진다. 악마의 영역은 암흑과 가혹한 추위의 영역인 북쪽이다. 유서 깊은 성당에 들어가면, 북쪽은 항상 왼쪽이며, 사람들은 죽은 이들을 거기에 묻으려 하지 않았다.

왼쪽(Sinestro, 라틴어로, ‘사악하다’ 혹은 ‘불길하다’는 뜻으로, 영단어 Sinister의 어원)은 많은 문화에서 불길하고 위험한 것과 관련되었으며, 중세기에 북쪽은 지옥의 방향으로 여겨졌다.

 

그리고 악마는 정오와 자정을 좋아하지만, 해질 무렵도 좋아한다고 여겨졌다. 그래서 수탉이 우는 새벽이면 도망친다는 이야기도 제법 눈에 띈다. 유대교 전통에서 악령들은 공중이나 지하세계에서 살다가 인간을 괴롭힐 때마다 지상에 오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지옥은 대개 땅의 한가운데 위치하며, 소수 전설에 의하면 아이슬란드라고 말하는 것도 있는데, 아마도 극심한 추위와 빙하들 때문에 사람들이 고통의 장소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으로 보인다.

 

이슬람교의 경우에도 그리스도교와 비슷한 악마 개념은 있다. 물론 그리스도교와 마찬가지로 딱히 어떻게 생겼다 하면서 교리적으로 기록되지는 않았다.

악마들의 성경이라 불리는 <코덱스 기가스>

성경은 악마들에게 계급이 있다고 말한다. '마귀들의 두목'은 마태오 복음서 9장 34절에 언급되어 있으며 그리스도가 ‘악마와 그의 졸도들’(마태오 복음 25장 41절)이라고 말할 때도 이 계급이 거론된다. 게다가 악마들도 한때는 천사들이었으므로 천사의 계급과 관련이 있다는 것은 논리적인 추론이기도 하다.


계급이 높은 악마들은 사탄이니 바알 제불, 아스모데우스, 제불룬, 제부인, 메리디아노, 벨리알 같이 많은 이름을 가지고 있다. 구마 사제들의 증언에 따르면 천사들의 계급이 사랑에 기초하고 있는 반면 지옥에는 그러한 개념이 없다고 한다. 악마들은 자신의 옛 천사 계급을 유지하지만, 그들을 한데 묶어주는 것은 하느님과 인간들에 대한 증오이다.

계급이 낮은 악마들은 높은 악마들에게 복종한다. 그것은 순종이 아니라 두려움에서 오는 굴복 같은 것이라고 해석한다. 게다가 힘이 센 악마는 힘이 약한 악마보다 사제의 구마기도에 더 오래 버티고, 약한 악마는 절대로 내뱉지 못하는 예수나 마리아의 이름도 소리 내어 말할 수 있다. 약한 악마들은 이름을 말하지 못하고 그냥 ‘그가 날 죽이고 있어’라든가 ‘그녀가 나를 불사르고 있어.’라고 말한다고 한다.

 

한편 천사가 한 번 타락하여 타락 천사로 변해서 악마가 되면 인간과는 달리 회개하여 구원받아 다시 천사가 될 수 없다고 전해진다. 그 이유는 첫째, 악마들은 구원받기를 태생적으로 선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애초에 악마들 스스로가 조금도 회개하지 않기에 최초의 죄로 인해 실제로부터 멀어져 파멸을 향해 가는 돌이킬 수 없는 궤도로 들어섰기 때문이라는 해석이다.


둘째, 천사들은 그들의 고귀한 본성 속에는 하느님에게서 부여받은 비범한 저항력이 존재하기 때문에, 그들의 타락은 인간보다 훨씬 더 큰 죄가 된다. 셋째, 순수한 영적 존재인 천사들은 인간들처럼 육체의 나약함에 의해 유혹에 넘어갔다고 변명할 수 없다. 넷째, 인간은 이미 죄를 지은 사람에게 유혹을 당했다는 정상참작이 가능하지만, 악마는 다름 아닌 유혹자이며 죄의 창시자가 본인들이기 때문에 그러한 변명을 할 수가 없다. 그리하여 타락한 천사들에게 내려진 심판은 단호하고 최종적인 것이라는 것이다.

Devil과 달리 Demon은 원래 정령을 의미했다. 다이몬에서 나온 것인데 다이몬이라 함은 신과 인간 사이의 연결자 혹은 정령으로 쓴다. 반면 devil은 대적자(히브리어: 사탄; 희랍어: 디아볼로스)에서 온 것이다.

 

서브컬처 쪽에서는, Demon이 Devil보다 더 격이 높은 존재로 나오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엔 devil이 졸개로 나오고 그들을 통솔하는 존재가 Demon Lord라는 제법 무게 있는 호칭을 달고 나온다. 한국어판에선 아예 Devil을 악령으로, Demon을 악마로 번역했다.

악마에게 제일 중요한 개념 중에는 계약을 빼놓을 수 없다. 이것은 천사였을 당시의 습성이 남아 있다는 근거로도 해석되는데, 일단 뭐든 간에 약속을 했으면 무조건 지켜야 한다. 그래서 악마와 계약을 하면 악마는 무조건 그 소원을 들어주고, 대신 그 대가를 받아간다.


단, 악마가 멍청하거나 인간이 영리하다면 계약을 잘 이용해서 악마를 부려먹기도 한다. 인간은 악마를 잘 이용해 먹은 다음에 대가를 적게 바치거나 아예 안 바칠 고민을 하고, 악마는 인간을 야바위 쳐서 얼마나 많은 영혼과 대가를 뜯어먹을지 고민을 한다. 이런 계약을 하는 악마의 대표적인 에피소드가 그 유명한 ‘교차로의 악마’ 이야기의 주인공 되시겠다.

이쪽 계열의 종교와 종파에서는 인간을 파멸시키는 존재이지만, 어째 내려져오는 민간설화에서는 호구처럼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3년(전승에 따라 7년) 동안 자기 하인 노릇을 한 남자에게 무한정 돈이 나오는 옷을 주고, 옷을 가져간 후에도 남자가 자신에게 무릎을 꿇으면서 공손하게 대하며 극상의 예를 보이자 마음에 들어 하며 그의 얼굴을 미남으로 바꿔주고 그 옷을 노리던 두 딸만 지옥으로 데려가기도 한다.


또한 계약에 따라 인간의 영혼을 얻기 위해서 인간이 죽을 때까지 봉사하기도 한다. 물론 그다음은 계약에 따라 진행된다. 잭 오 랜턴이나 윌 오 더 위스프의 설화에서 천국에도 지옥에도 갈 수 없게 된 유령을 동정해서 등불이라도 주는 걸 보면 인간적인 부분이 상당 부분 반영되기도 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림 동화> 중에 악마가 퇴역 병사에게 내가 노리는 영혼이 따로 있는데, 그놈을 잡게 도와주면 보상을 해주겠다는 제안을 하는 이야기도 있는 걸 보면 의외로 아무나 괴롭히기보다는 목표물을 찍어놓기도 하는 인간적인(?) 면모를 보인다.

 

개신교에서는 귀신이라고도 하나, 당연히 저승에 가지 못한 사람의 영혼을 뜻하는 말로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한반도에 개신교가 전래된 구한말 무렵의 언어 습관이 종교 자체의 보수적 특성 탓에 쉽게 변동되지 않고 그대로 이어져 내려온 번역과 무지의 흔적이라고 추정된다.

<악마의 비-존재에 대하여>의 삽화

이렇듯 구체적인 존재로서 악마는 군림해오다가, 계몽주의가 싹이 트기 시작하면서 상상의 존재, 정신학적 존재로 은근슬쩍 자리 잡게 되는데, 대표적으로 1776년도에 베를린에서 무명의 저자가 쓴 <악마의 비-존재에 대하여>(Ueber die Non-Existenz des Teufels)라는 책을 예로 들 수 있는데, 이 책에서는 유래 없이 명쾌하게, 악마는 오로지 신학자들의 마음과 악마 같은 인간들의 마음속에만 존재한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이른바 ‘악마를 외부에서 찾지 마라. 악마를 성경에서 찾지 마라. 악마는 당신 마음속에 있다.’라는 확실한 메시지가 있는 것이다. 이 책의 발표 시점을 악마학에서 악마라는 존재가 외부에 있는 구체적인 존재에서 사람의 마음에 사는 정신 철학적(Psycho-philosophical) 원리로 변화한 중요한 지점으로 평가한다.

 

성서에서 사탄이 직접 등장하여 대화하는 장면에 대한 3번의 공식 기록.


<첫 번째의 대화>


(창세기 3:1-5)... 그런데 뱀은 여호와 하느님이 만드신 땅의 모든 들짐승 중에 가장 조심성이 있었다. 뱀이 여자에게 말하기 시작하였다. “너희는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어서는 안 된다고 하느님이 말씀하셨다는데 그것이 정말이냐?” 이에 여자가 뱀에게 말하였다. “동산 나무들의 열매를 우리가 먹어도 된다. 그러나 동산 가운데 있는 나무의 열매를 먹는 것에 관하여는, 하느님께서 ‘너희가 그것을 먹어서는 안 된다, 아니, 그것을 만져서도 안 된다. 그래야 너희가 죽지 않는다’라고 말씀하셨다.” 이에 뱀이 여자에게 말하였다. “너희는 절대로 죽지 않을 것이다. 너희가 그것을 먹는 바로 그날에 필시 너희 눈이 열리고, 너희가 필시 하느님처럼 되어서 선악을 알게 될 줄을 하느님이 알고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의 대화>


(욥 1:6-12) 하루는 참 하느님의 아들들이 들어와서 여호와 앞에 섰고, 사탄도 그들 가운데로 들어왔다.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어디에서 오는 길이냐?” 그러자 사탄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말하였다. “땅을 여기저기 두루 돌아다니다 왔습니다.”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네 마음을 내 종 욥에게 두어 보았느냐? 그와 같이 나무랄 데 없고 올바르며, 하느님을 두려워하고 악에서 떠나 있는 사람은 땅에 없다.” 그러자 사탄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말하였다. “욥이 이유 없이 하느님을 두려워하겠습니까? 당신이 친히 그와 그의 집과 그가 가진 모든 것 주위에 울타리를 두르지 않으셨습니까? 그의 손으로 하는 일을 축복하셔서, 그의 가축이 땅에 널리 퍼졌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부디 당신의 손을 뻗으시어 그가 가진 모든 것을 치시고, 그가 당신의 얼굴에 대고 당신을 저주하지 않나 보십시오.” 그러자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말씀하셨다. “보아라! 그가 가진 모든 것이 네 손안에 있다. 다만 그의 몸에는 네 손을 뻗지 말아라!” 그리하여 사탄은 여호와의 면전에서 떠나갔다.


(욥 2:1-5) 그 후에 하루는 참 하느님의 아들들이 들어와서 여호와 앞에 섰고, 사탄도 그들 가운데로 들어와서 여호와 앞에 섰다.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어디에서 오는 길이냐?” 그러자 사탄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말하였다. “땅을 여기저기 두루 돌아다니다 왔습니다.”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네 마음을 내 종 욥에게 두어 보았느냐? 그와 같이 나무랄 데 없고 올바르며, 하느님을 두려워하고 악에서 떠나 있는 사람은 땅에 없다. 너는 까닭 없이 그를 대적하여 삼키도록 나를 부추기지만, 그는 여전히 충절을 굳게 지키고 있다.” 그러나 사탄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말하였다. “가죽은 가죽으로. 사람은 자기 영혼을 위해서라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줍니다. 이번에는, 부디 당신의 손을 뻗으시어 그의 뼈와 살도 치시고, 그가 당신의 얼굴에 대고 당신을 저주하지 않나 보십시오.”

<세 번째의 대화)


(마태 4:1-11) 그리고 나서 예수께서는 영에 의해 광야로 인도되어 마귀에게 유혹을 받으셨다. 그분은 밤낮 사십 일을 단식하신 후에 배고픔을 느끼셨다. 그런데 ‘유혹하는 자’가 와서 그분에게 말하였다.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이 돌들에게 말하여 빵이 되게 하시오.” 그러나 그분은 대답하여 말씀하셨다. “‘사람이 빵으로만 살아서는 안 되고,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아야 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자 마귀는 그분을 거룩한 도시로 데리고 들어가서 성전 흉벽 위에 세우고 그분에게 말하였다.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아래로 몸을 던지시오. 기록되기를 ‘그분이 천사들에게 너에 관하여 명을 내리실 것이며,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결코 너의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할 것이다’라고 하였소.”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너의 하느님 여호와를 시험해서는 안 된다’고도 기록되어 있다.” 다시 마귀는 그분을 유달리 높은 산으로 데리고 가서 세상의 모든 왕국과 그 영광을 보여 주며 그분에게 말하였다. “당신이 엎드려 내게 숭배 행위를 한다면, 이 모든 것을 내가 당신에게 주겠소.” 그때에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사탄아, 물러가라! ‘너의 하느님 여호와를 숭배해야 하고, 오직 그분에게만 신성한 봉사를 드려야 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자 마귀는 그분을 떠났다. 그리고 보라! 천사들이 와서 그분을 섬기기 시작하였다.


편은 여기에...

https://brunch.co.kr/@ahura/512


매거진의 이전글 타락천사와 악마, 그 역사의 시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