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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검무적 Dec 31. 2021

술의 기원 4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술, 소주의 역사

지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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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주는 어떤 과정을 거쳐 지금에 이르렀을까?


소주는 조선시대에 접어들면서 더욱 발전하였다. ‘는지’로 만들던 소주도 흙으로 된 고리와 구리로 된 고리를 이용하여 만들게 되었다. 서울 공덕리 같은 곳에서는 대량의 소주를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전술했던 바와 같이 원나라 때의 전통에서 시작되어 고려 때부터 유명하였던 안동소주의 명성은 더욱 높아졌다.

근대에 접어들면서 북부에는 중국의 소주가 들어오고, 1876년(고종 13) 강화도조약이 체결됨에 따라 일본에서 알코올이 수입되고, 일본의 탁주나 청주도 만들어지게 되었다. 일본의 청주는 상품명의 하나인 ‘정종(正宗)’이라는 이름으로 널리 퍼졌다.

 

1909년에 「주세법」이 발표되어 일본인은 보다 효율적으로 주세를 받아들이기 위하여 술빚기에 여러 가지 방법으로 우리 국민들을 통제하기 시작한다. 이에 따라 그토록 다채롭던 우리의 누룩이나 술은 매우 단순하게 규격화되면서 전통적인 술은 법적으로 점차 만들지 못하게 되었다. 누룩은 ‘조국(糟麴)’과 ‘분국(粉麴)’의 두 가지만으로 통일되었고, 이것마저 1927년부터는 곡자 제조회사에서 만들게 되어, 우리의 술은 일제의 의도대로 획일화의 수순을 밟게 된다.

 

조국(糟麴)은 밀을 세 조각 정도로 낸 그대로를 원료로 하여 만든 누룩으로 탁주나 소주를 만드는 데 사용된다. 충청도·경상도에서는 밀을 부수어서 얻은 가루의 20∼40%를 체에 밭쳐낸 나머지를 원료로 하여 만든다. 또 밀가루를 전부 걸러낸 밀기울만으로 누룩을 만들기도 한다. 한편 분국(粉麴)은 약주나 과하주 제조용으로서 밀가루만으로 만든 것으로 ‘백국(白麴)’이라고도 한다.

 

이밖에 함경북도 등지에서는 귀리·피·호밀 등을 술지게미와 섞어 누룩을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은 자신들이 먹을 것을 만들 때만 사용할 뿐, 판매용은 전부가 밀로써 만들게 되었다. 평양·원산·서울 공덕리 등의 곡자, 남한산의 산성 곡자, 경상도 유천·선산의 곡자, 동래의 산성 곡자 등의 곡자가 유명하였다. 약주 빚기도 단순해졌다.

 

「주세법」에 따른 약주는 일본의 청주보다 신맛과 단맛이 강했다. 대개의 경우 주모(酒母; 누룩을 섞어 버무린 지에밥)를 만드는데, 주모는 독에다 물과 가루 낸 곡자를 넣어 이른바 물 곡자로 하고, 여기에 멥쌀을 가루내어 쪄서 떡 모양으로 한 것을 넣어 주모를 만들고 다시 멥쌀·분곡·물로 빚어 이것을 젓지 않고 발효시킨 다음 술 밑에 용수를 박아놓는다. 용수 속에 괸 술을 ‘전주(全酒)’ 또는 ‘순주(醇酒)’라 한다.

 

다음에 술밑에 물을 조금 넣어 휘저은 것에 용수를 박아 술을 다시 얻는데, 이것을 ‘후주(後酒)’라 한다. 전주와 후주를 따로 저장해 두었다가 마실 때 적당히 섞는다.

 

서울에는 ‘백주(白酒)’라는 것이 있었다. 이것은 탁주와 약주의 중간에 해당하는 것이다. 술독에 물·멥쌀가루 찐 것, 곡자가루를 섞어 떡모양으로 하고, 찹쌀 지에밥을 넣어 7∼10일간 발효시켜서 그 술밑을 탁주처럼 체 위에서 손바닥으로 짜낸 것이다.

 

소주고리에서 고아낸 소주는 값이 비쌌다. 그런데 1897년경부터 주정(알코올)을 수입하여 이것을 재래 소주에 섞어 물로 희석하여 만들어 마시는 방식이 자리 잡게 되었다. 희석 방식이 퍼지면서 제조비가 확 절감되면서 실제 소주의 가격이 저렴해지면서 소주를 즐기는 수요가 급격히 많아졌다. 그때부터 남부는 탁주, 중부는 약주, 북부는 소주를 많이 마시는 경향을 나타내게 되었다.

일제치하 당시 전라도 쌀소주의 대표였던 함평소주

소주나 약주에다 다른 물질을 섞어 조미하는 혼성주(混成酒)도 「주세법」에서는 허용되고 있었다. 서울의 과하주를 비롯하여 송순주·감홍로(甘紅露)·이강주(梨薑酒)·오미자주 등이 이 혼성주에 해당한다.

 

일제 식민지 시기에는 일본식 청주 제조업이 크게 발달하였다. 원래 우리 땅에 사탕무를 심어 당밀로 소주를 만들겠다고 한 기업이 호기롭게 술 제조에 들어갔지만, 보기 좋게 실패함에 따라 고구마로 알코올을 만드는 방식으로 바뀌게 되었다. 대만에서 싸구려 알코올이 수입되면서 소주는 알코올에다 재래 소주를 20% 정도 섞는 방식으로 바뀌게 된다.

 

1938년경부터 일본의 대동아전쟁으로 인해 군량으로 국민들의 식량이 대거 차출되어 동원되기 시작하면서 우리나라에도 심한 식량부족 현상이 일어난다. 즉, 술 원료인 쌀이 부족해지면서 일제의 전격적인 통제하에 술을 함부로 만들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게 된 것, 1940년부터 탁주 이외의 술은 배급제로 변경된다. 탁주만은 농주(農酒)로서 특혜를 받았고, 이에 따른 탁주의 밀주도 성행하게 된다.

 

1934년부터 일본의 삿포로 맥주회사와 쇼와 기린맥주회사가 서울 영등포에 맥주공장을 세워 맥주를 한국에서 출시하게 된다. 한편, 술의 원료인 곡물 부족 현상 때문에 본토의 일본인들 역시 대용 청주를 개발하게 되는데, 알코올에 포도당·엿·호박산·젖산·글루탐산소다 등을 섞어 일본식 청주와 비슷하게 만들어 출시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이연주(理硏酒)’이다. 일본의 이 방식은 우리나라에서도 당연히 들어와 당시 군내에서 조금씩 만들어 마셨다는 기록이 있다.

 

1940년 일본인 나가시마(長島長治)가 청주 술 밑에 알코올을 첨가하여 이른바 ‘제일 청주’라는 것을 만들게 되는데, 1942년에는 기존의 제일 청주에, 포도당·젖당 또는 호박산을 첨가한 이른바 ‘제이 청주’까지 만든다. 이러한 영향으로 우리나라에서는 1942·1943년에 ‘제일 청주’·‘제이 청주’라는 술이 유통되기도 하였다.

 

일제시대 인기있던 금강소주

광복 후 소주는 일제의 영향에서 벗어났을까?

 

광복 후 우리나라는 만성적인 식량 부족 상태에서 해마다 외국의 양곡을 도입해야 하였던 실정이었다. 따라서 쌀로 술을 빚을 형편이 못되었다. 1962년부터 소주의 원료인 알코올 제조에 잡곡만을 허용하였다가 지금은 고구마와 당밀만으로 만들고 있다.

 

소주 업자는 국세청에서 배정받은 알코올에 물을 부어 농도를 낮추고 설탕·포도당·구연산·인공감미료·무기염류 등을 섞는다. 결국 소주는 같은 재료가 제조사의 조미 방법에 따라 맛이 약간(?) 달라졌을 뿐 만드는 방식이나 원재료의 차이가 없다. 다시 말해, 소비자는 그저 상표에 대한 선입관에 의하여 자신의 입맛이라며 특정 브랜드를 선호하며 마시는 것이다.

1919년 세워졌던 인천의 조일 양조장

쌀을 원료로 하던 막걸리와 약주도 1964년부터 쌀의 사용이 금지됨으로써 밀가루 80%, 옥수수 20% 외 도입 양곡을 섞어 빚게 되었다. 그래서 당분이 완전히 발효되지 않고 걸쭉하게 남아 있게 된 것이다. 이것으로 탁주 특유의 감칠맛과 혀에 닿는 촉감, 목을 넘어가는 느낌을 만들어내게 된 배경이 된 것이다. 잡곡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쌀로 만든 것과 달리, 술잔에 따라 놓으면 위는 맑아지고 밑에 앙금이 생기게 된 것이다.

 

그러던 중, 우리나라에도 쌀 생산량이 늘어나 쌀이 넉넉하게 되면서 쌀 막거리·쌀 약주를 만들게 되었다. 그러나 방식의 차이 때문일까 전통의 술맛은 아니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옛날에는 잘 도정한 쌀에 밀 곡자를 섞어 빚었으나 지금은 종국을 써서 만든 누룩을 쓰고 있기 때문에 만드는 방법부터가 다르기 때문에 맛이 같을 수 없는 것이다. 정작 그 이유를 개선하지는 못한 채, 소비자들에게 외면당하자 쌀 막걸리는 1년 만에 다시 밀가루 막걸리로 돌아가게 된다.

 

술에 대한 세금은, 주종에 따라 다르다?

 

술에 대한 세율은 1986년에는 위스키는 과표액의 200%, 맥주와 브랜디는 150%, 청주 120%, 약주 60%, 소주 35%, 막걸리 10%이었다. 여기에서 위스키·브랜디·맥주·청주 등 주세율 100% 이상인 것은 주세 30%의 방위세를 납세하고, 100% 이내의 약주·과실주·소주·막걸리는 주세의 10%를 납세하는 방식이었다. 거기에 더해 생산자 가격에 주세와 방위세를 합한 출고 가격의 10%를 부가세로 납세하게 되어 있었고, 1982년도부터는 소주·막걸리·약주를 제외한 모든 술에 교육세를 주세의 10% 납세하게 되었으므로 세금 비율은 더욱 높아졌다.

 

1999년 12월에 세계 무역기구의 권고를 이행하기 위하여 소주·위스키·브랜디·일반증류주·리큐르 등 증류 주류의 세율을 일률적으로 80%로 단일화하고, 맥주의 세율을 현행 130%에서 100%로 단계적으로 인하하여, 2000년 1월 1일부터 발효 주류인 탁주는 5%, 약주·과실주는 30%, 청주는 70%, 맥주는 100%, 증류 주류는 72%, 기타 주류는 72% 또는 10%, 30%로 세율을 적용하게 되었다.

 

이들의 소비추세를 술 종류별로 주세액 비율을 산출하여 보면, 1982년도에는 막걸리 3.6%, 소주 17.7%, 맥주 63.6%, 청주 4.3%, 양주 6.1%, 고량주 1%, 인삼주 0.1%, 과실주 0.3%, 약주 0.7%, 기타 재제주 2.6%이었던 것이, 1999년에는 맥주 65.3%, 소주 17.2%, 기타 5.6%, 위스키 10.8%, 탁주·약주가 1.1%로 그 양상이 달라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전통적인 주도(酒道)의 역사와 방식

 

우리나라에서는 예부터 유학의 영향으로 생활에서도 예의범절을 중히 여겨왔다. 비록 취하고자 하여 마시는 술이라 하더라도 심신을 흐트러지게 하지 않고, 어른께 공경의 예를 갖추고 남에게 실례를 끼치지 않는 것이 음주의 예절이라 경계해온 것이다. 음주 때의 이러한 예절이 주례(酒禮)이고, 이것을 지키는 방식이 바로 주도(酒道)였다.


주도는 특히 어른을 공경하는 데에 뜻이 있다. 온 고을 사람들이 모여 향약(鄕約)을 읽고, 술을 마시며 잔치하는 예절로서 향음주례(鄕飮酒禮)를 행하던 때가 있었다. 이때 젊은이와 어른은 나이를 따져 차례를 정하고, 연장자에게 먼저 술잔을 올려 대접한다.

정도전(鄭道傳)은 『삼봉집(三峯集)』의 「향음 주조」에서 향음주례(鄕飮酒禮)를 설명하며, “이때의 술은 즐겁게 마시되 함부로 하지 않으며, 엄히 하되 어른과 소원해지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잔치 때에 웃어른을 의자에 모시고 식탁 위의 음식으로 술을 대접하지만, 지체가 낮은 이에게는 좌상에 마주 앉아 마시도록 하였던 것이 『고려도경』의 「향음조」에 전하는 옛 술자리에서의 예법이었다.

 

『소학』의 설명에 따르면, 어른이 술을 권할 때는 일어서서 앞으로 나아가 절을 하고 술잔을 받고 어른이 이를 만류할 때야 제자리에 돌아가 술을 마실 수 있다. 어른이 들기 전에 먼저 마셔서는 아니 되고, 또한 어른이 주는 술은 감히 사양할 수 없다는 것이다. 『소학』을 생활의 규범으로 삼던 사회에서는 이러한 의식을 더욱 중히 하였다.

 

술상에 임하면 또 어른께 술잔을 먼저 권해야 한다. “찬물에도 위아래가 있다.”라고 하여 음주에는 장유유서(長幼有序)를 반드시 지켰다. 어른이 술잔을 주면 두 손으로 공손히 받아야 한다. 어른 앞에서 함부로 술 마시는 것을 삼가 윗몸을 뒤로 돌려 술잔을 가리고 마시기도 한다.

 

어른께 술을 권하는 데는 정중한 몸가짐을 하여 두 손으로 따라 올린다. 오른손으로 술병을 잡고, 왼손은 오른팔 밑에 대고, 옷소매 또는 옷자락이 음식에 닿지 않도록 조심하여 따른다. 도포를 입던 옛날 술병을 든 오른손의 긴 소맷자락이 음식에 묻지 않도록 왼손으로 지켜 올려 따르던 예가 양손으로 공손히 하는 주례로 자연스럽게 변화된 것이다.

 

이덕무(李德懋)는 『사소절(士小節)』에서 받은 술이 아무리 독하더라도 못마땅한 기색을 해서는 안된다고 하였다. 그렇다고 경한 모습으로 훌쩍 마시는 것도 예가 아니다. 박지원(朴趾源)이 「양반전(兩班傳)」에서 술을 마실 때에 수염을 빨지 말아야 한다고 한 것도 역시 주례의 하나다. 술을 못하는 사람은 권하는 술을 사양하다가 마지못하여 술잔을 받았을 때에는 싫증을 내고 내버릴 것이 아니라 점잖게 입술만을 술에 적시고 잔을 놓아야 한다.

술상에 앉으면 대작하여 술을 서로 주고받는 수작(酬酌)을 하고, 잔에 술을 부어 돌리는 행배(行杯)의 주례가 있다. 이때 권주잔은 반드시 비우고 되돌려주는 반배(返杯)를 한다. 반배는 가급적 빨리 이행하고 주불쌍배(酒不雙杯)라 하여 자기 앞에 술잔은 둘 이상 두지 않는 것이 술자리에서의 예절이다.

 

이야기하고 싶은 것들은 아직 산적해 있으나, 술맛 보겠다고 기다리다 숨넘어가는 사람들이 많은 듯하니, 다음 편부터는 드디어 술의 종류에 대한 세론에 들어가기로 하고 술 이야기의 개론을 이쯤에서 마치고 내일부터는 각론에 들어가기로 한다.

 

다음 편은 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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