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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검무적 Jan 01. 2022

신년 하례(新年 賀禮) - 글쓰기와 무소유

초심(初心)으로 돌아가자.

평소와 다름없이 일주일에 한 번 나가서 장을 보는 금요일이 마침 (양력) 섣달 그믐날이었던 것은 특별할 우연도 아니었다.


영하 20도 밑으로 내려가는 혹한이 계속되어 바다가 꽁꽁 얼어있는 것을 보며 버스를 타고 시내를 향했다. 특별히 개의치 않아했음에도 아침부터 켜 두었던 한국 라디오 방송에서는 호들갑스럽게 이 해의 마지막 날인 것을 끊임없이 강조했다.


갑자기 마음이 공허해져 왔다.

9월 10일에 한국을 떠나와 이제 4개월이 조금 안된 시기, 혼자서 몇 평 되지 않는 사택 호텔방에서 강의하고, 밥 해 먹는 시간 이외에는 모든 시간을 책상에 앉아 글을 썼다. 써대는 수준이 맞았다. 하루에 A4 20장 분량을 아침 점심 저녁 밤, 장르별 4편씩을 매일 써댔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겠으나 어느 사이엔가 마감에 쫓기듯 글을 쓰느라 강의나 공식적인 회의 이외에 따로 밖에서 누군가를 만나기라도 하면 약속 전에 원고를 급히 쓰거나 돌아오는 발걸음을 재촉하여 그 연재 약속을 지키려 바둥거렸다.


5월 말에 브런치를 시작했으니 정확히 7개월을 꽉 채웠다.

발행 글 수 614편.


처음 시작은 아침마다 읽는 <논어로 세상 읽기>와 <실패한 대가들의 이야기>였다.

https://brunch.co.kr/magazine/ahura3


https://brunch.co.kr/magazine/ahura5


여유 있는 시간에 한 편당 A2장을 채 채우지 않는 가벼운 글쓰기였다. 당연히 일상에 부담이 갈 정도의 글도 아니었고, 즐기는 기분으로 매일매일을 썼다. 물론 주말에는 글을 읽는 이들도 쉬겠거니 하는 생각에 연재를 쉬었다.

 

차차 연재가 계속되면서 글의 체계가 잡혀갔고,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되어가면서 조금씩 그 틀이 잡혀갔다. 한 편에 쓰는 양이 2배로 늘어났고, 체계에 맞춰 글쓰기에 쓰는 시간이 조금씩 늘어갔다.

 

9월 10일, 한국을 떠나오기 일주일 전부터, 주말에도 재미있고 가벼운 글로 독자들을 즐겁게 해 줘야지, 하는 생각에 20여 년 전에 잡지사에 글을 연재하던 원고를 들춰 리뉴얼하면서 심리분석 시리즈를 주말 연재로 시작했다.

 

여름휴가에 글 연재를 못할까 싶어 글을 써두었다가 발행하는 해프닝을 벌이며 연재를 펑크 내지 않았다.

 

물론 공식 연재 글 이외에도 간간이 <누가 우리 사회를 좀 먹고 있는가>라던가 여름 특집 장편소설 <설녀 이야기>, 영화 비평 <명화 극장>등을 발행하기도 하였다.

 https://brunch.co.kr/brunchbook/snowgirl


그렇게 9월 10일 가족과 떨어져 다른 나라에 와서 혼자 지내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어려움과 함께 한국의 핸드폰을 두고 오면서 잡다한 일에 신경 쓰는 것이 줄어들면서 글쓰기가 좀 더 강화되었다. <논어 읽기>는 매일 아침 출근 시간 전에 작성되며 A4, 4장 전후를 유지했으며, <실패한 대가들의 이야기>는 오후나 저녁에 발행하며 이미 평균 분량 A4, 6~7장으로 늘어 있었다. 매일 10장 정도를 쓰면서 강의를 시작했고, 일정을 소화해냈다. 일주일에 한 번 일용할 양식을 장 보러 나가는 것 외에 공식일정을 따로 잡으면 약간 신경 쓰일 정도였다.

 

그렇게 해외 생활이 한 달이 채 되기 전, 처음 브런치를 시작할 때 올렸던 르포소설 <대만에 사는 악녀>를 촘촘히 읽는 독자가 왜 10편까지밖에 없느냐는 질문과 응원을 보내왔다.

https://brunch.co.kr/brunchbook/ahura


감사한 일이었다. 그렇게 10편까지만 올리고 소설에 별 흥미를 보이지 않는 브런치의 특성을 감안하여 휴재 중이었던 소설의 연재를 시작했다. 초고를 3권 분량까지 써두었던 터라 천천히 흐름을 다듬으며 발행하는 것으로 하루에 3편으로 연재가 늘어났다. 하루 평균 A4, 7장. 소설은 주말에도 쉬지 않고 달려왔다.

 

그리고 한국을 떠나온 지 한 달이 되던 날, 스스로와 독자들에게 했던, 글쓰기 중량을 올린다던 약속대로 낮에 연재하기 위한 시리즈를 시작했다. 첫 시작은 <중국 10대 명차 시리즈>였다.

https://brunch.co.kr/brunchbook/chinatea


하루 평균 연재량 A4, 7~8장. 시간에 여유가 생기면 아무래도 불합리한 주변의 일이나 한국에서 간혹 들려오는 신경이 날카로워질 사건에 집중하게 될까 싶어, 침대를 함께 쓰던 분이 차라리 글에 파묻혀 입에서 단내 날 때까지 쓰며 쓸데없는 생각을 하지 않는 좋은 방편이라 허락한 일이었다.

 

그렇게 연재는 총 4편(하루 평균 집필량 A4 20장)으로 하루 일과를 꽉 채우게 되었다. 강의와 식사를 챙겨 먹는 시간과 자는 시간을 빼고는 글쓰기에 모두 할애한 그야말로 전업 브런치 작가 생활이었다. 주말까지 쉬지 않고 심리분석 시리즈로 채워가며 지내왔다.


일주일에 300페이지짜리 단행본 한 권이 툭툭 컨베이어 벨트에서 떨어졌다.

 

체력관리를 위해 바닷가 1시간 산책이 유일한 여유시간이었는데, 날이 추워지면서 밖을 못 나갔고, 캠퍼스 수영장은 마침 리모델링 중이라 운동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글쓰기에 파묻혀 지냈다. 그러다가 겨우 12월이 되면서 수영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나마도 오랜만에 체력을 끌어올리려니 버거우면서도, 하루 일정 중에 2시간가량을 빼먹어야 하니 글쓰기 시간을 잡아먹는다는 초조함이 있었다.

 

르포소설 <대만에 사는 악녀>가, 초고로 준비되어 있던 3권 분량을 훌쩍 넘어서면서, 라이브로 집필을 해야 되는 상황이어서 매일 쓰던 분량이 A4, 4장으로 재조정되었다. 자꾸 감정이입이 되어 쓰기 힘든 클라이맥스 부분의 힘겨운 이야기를 풀어내야 하는 관계로 초고를 쓰지 못한 채 놔두었던 탓이었다.

 

기말기간이 되면서 확진자가 자꾸 나와 학사일정이 조정되고 학생들을 챙겨줘야 할 잡다한 일들이 생기면서, 신경이 분산되었고, 그것을 실수없이 채워나가기 위해 수면시간이 점점 줄어들었다. 연재 펑크를 내면 안 된다고 하는 매체의 담당 기자가 있는 것도 아닌데, 매일 시간에 맞춰 써내야 한다는 부담감이 어느 사이엔가 더 커져버렸다.


지금도 그리 많진 하지만 구독자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매일 댓글을 통해 소통하는 독자들과 이른바, '발검 스쿨'의 학도(學徒)들이 늘어나면서 ‘그래도 써야지’하며 책상에 앉는 시간들이 늘어났다. 글의 퀄리티나 완성도가 떨어지는 것은 당연했다.

 

그믐날인 어제, 브런치 내의 해프닝 때문에 나에게 카톡으로 SOS를 치곤 하던 친구가 다시 사고(?)를 쳤다며 SOS를 요청했고, 저녁 연재까지는 발행하였는데, 한참 상담해주다 보니 <대만에 사는 악녀>의 글을 쓸 시간이 날아가버렸다. 내심 그믐날이니 마지막 날은 다른 글로 대신하고 조금 쉴까, 하던 생각도 있긴 했다.

 

그리고 새해 카운트 다운을 하며, 반장과 함께 새해를 맞았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내가 우려했던 요 근래의 상황을 이야기했더니 반장이라 그런지 그 역시 전에 없던 글의 흔들림이 보여 우려가 되었었다며 조심스레 일주일 정도 휴재 공고를 하고, 재충전을 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진심 어린 조언을 건네왔다.

 

글쓰기에 진심이고, 6월 말부터 함께 공부해온 반장의 걱정은 진심이었기에 부끄러웠다. 누구를 위한 글쓰기이고 연재였는지 모호해져 버린 상황에 스텝이 꼬여 넘어지기 직전일 때까지 부정하고 싶어 했다니.

 

하여, 새해 아침부터 지금까지 뭘 위해 사는지, 쓰는지 다시 초심을 찾기로 했다.


퀄리티가 떨어지는 꾸역꾸역 발행된 글을 읽고 싶어 하는 독자는 없을 것이고, 누구보다 내 글의 첫 독자는 나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내가 읽고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글로, 다른 이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 리 없다.


하여, 일단 오늘과 내일, 이틀을 아무것도 하지 않고 망중한(忙中閑)을 즐겨보려고 한다.


여유 있는 휴식을 보내보고, 쓸데없는 것들을 머릿속에서 툴툴 털어내고 월요일부터 다시 뭔가 시작해볼지 도저히 안 털어내지, 반장의 말처럼 일주일 휴가를 오롯이 가져볼지 판단해보고자 한다.

 

발행되던 주말 연재 심리분석 시리즈를 기다렸던 분들이나 어제부터 끊긴 <대만에 사는 악녀>의 이야기가 궁금하신 분들에게 미안하지만, 조금 한 템포 쉬며, 함께 우리의 초심을 되새기는 새해 첫날을 맞이하는 것도 크게 나쁘지 않을 듯하다.

그동안 변변찮은 글을 읽어주신 독자분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모두 마음에 품은 소망들이 이루어지는 한 해 되시길 기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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