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에 사는 악녀 - 109

외교부 감사실에 쳐들어가다. 1

by 발검무적

지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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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어떻게 된 거예요? 언제 전화를 건 거예요?”


박 교수 아내의 목소리는 아주 오랜만에 살짝 설레어있는 듯 톤이 높아져 있었다.


“어제 만난 그 J방송사의 피디가 오늘 오전에 직접 전화를 걸었대.”

“어머! 대박이다. 학과장 완전히 쫄았는데요? 정말 거기서 취재를 타이완에 가서 하겠대요?”

“일단 어제 그렇게 얘기를 하긴 했는데...”

“정말루요? 그러면 그냥 당신이 이번에 들어가면서 같이 들어가면 제일 좋겠네요.”

“응. 피디가 그렇게 하겠대.”

“정말요? 잘됐네요. 그렇게만 되면, 1심 결과는 차치하고서라도 그쪽 당사자들이 변명하느라 난리가 나겠네요. 그런데....”

“응. 그런데, 뭐?”

“아니, 그러면 당신 실명이나 얼굴도 방송에 나오게 되는 거 아니에요?”


아내의 걱정스러운 질문에 박 교수는 강 피디가 데스크를 언급하면서 전면적으로 얼굴을 공개해야 한다는 조건 아닌 조건을 언급한 것에 대해 설명을 해줘야 할지 잠시 머뭇거렸다.


“구체적인 이야기는 안 나왔는데, 만약 그렇게 해서라도 방송에 나오게 된다면 그렇게 해야 하지 않을까?”

“얘들은요? 당신도 물론 잘 생각해서 결론을 내리겠지만, 아이들도 생각해야 할 것 같아요. 물론 한국에 들어오면서 불가피하게 이사를 해서 이전 학교를 안 가는 걸로 자연스럽게 해결하기는 했지만, 그렇게 학교 학부모란 것들이 하이에나처럼 물어뜯겠다고 달겨드는 게 한국인데, 당신이 아무리 결백하다고 결론이 난다고 하더라도 저는 걱정되고 두려워요.”

“알아. 당신이 뭘 걱정하는지. 나도 좀 생각해보고 결정할게.”

“알았어요. 이따 들어가서 얘기해요.”

전화를 끊고 박 교수는 바로 광화문에 있는 외교부 건물로 향했다. 몇 번이나 전화를 걸어 항의를 한 끝에 감사실 직원과 드디어 만나기로 한 것이었다. 이른바 모피아의 본부로 쳐들어가는 느낌을 받았다. 지하철을 타고 강북으로 넘어가면서 가만히 지하철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박 교수는 조금 혼란스럽기 시작했다.


한국에 한 달간의 일정으로, 그렇게 가슴을 졸이며 기적적으로 들어왔을 때 했던 생각은 한 달안에 어느 방송팀이 되었든 설득을 해서 전면에 폭탄을 던져 전면전을 해서 이 지겨운 전쟁을 끝마치겠다는 의지가 불탔었다. 그리고 들어오자마자 3주 가까이를 소진하고, 이제 바로 다음 주에 다시 들어갈 일정을 보면서 조바심이 났던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정작 강 피디의 적극적인 촬영 의지를 확인하고 나서는 얼굴을 드러내고 인터뷰를 하고 신분을 노출하는 것이 맞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한국에 들어오게 되면 다시 대학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에 대한 생각은 할 겨를조차 없었다. 아직 어디로 어떻게 들어갈지 하루 앞도 생각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그런 것을 예단할 마음의 여유조차 없기도 했지만, 이제까지 주영희들이 한 짓으로 보건대, 만약 이번에 뒷문을 연 것처럼 그들의 의도대로 그냥 한국에 들어와 버린다면, 그들은 들어온 것을 두고 도망이라고 여기저기 떠들어 댈 것이고, 한국의 언론은 물론이고 인터넷에 도배해서 어떻게 해서든지 박 교수를 물고 늘어져, 평생을 박 교수의 인생에 고춧가루를 뿌리겠다고 달겨들 것이 빤히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더 확신할 수 없었다. 아이들의 학교에서 그렇게 친한 척하며 굽신거리고 비굴한 미소를 지어 보였던 그 학부모들이 자기 아이들앞에서 있지도 않은 뒷담화를 퍼뜨려가며 떠드는 것은 물론이고, 학교를 들락거리며 교무실의 선생들에게까지 하이에나처럼 그런 뉴스들을 퍼트리고 다녔다는 사실만으로도 토악질이 나올 것 만 같았다. 그러한 사실만 보더라도, 충분히 한국도 타이완의 그 허접한 것들과 크게 다르다고만 할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멍하니 생각에 빠져 있다가 내릴 정차역을 놓칠 뻔한 박 교수는 서둘러 경복궁 역에 내려 그들이 말한 광화문 옛 청사의 뒤쪽 건물로 찾아 들어갔다. 현관에서 신분증을 맡기고 용건을 이야기하면 그들이 밑으로 내려온다고 했다. 조금 기다리고 있자니, 양복을 입은 한 남자가 서둘러 뛰어와 박 교수를 맞았다.


“박 교수님이시죠?”

“네. 맞습니다. 감사실의....?”

“저는 감찰담당관 최우식이라고 합니다. 저희 과장님께서도 지금 내려오고 계실 겁니다.”

“아, 그래요? 저랑 통화하셨던 그 과장님이신가요?”


박 교수가 핸드폰의 녹음 버튼을 지그시 누르며 물었다.


“어떤 분이랑 통화하셨는지는 모르겠는데, 아마 아닐 겁니다. 이 과장님은 이제 부임하신 지 얼마 되지 않으셨거든요.”

“감사와 감찰이 나눠져 있던데 이 분은 어느 쪽인가요?”

“그게, 조금 전문적으로 나누기는 하는데요. 편의상 외교부의 감사는 공직자 재산등록이라던가 감사원과 공조한다던가 퇴직자 취업제한이라던가 정말 내부자들에 대한 부분을 다루고 감찰 쪽은 특별 감사이긴 한데, 이게 공직기강 쪽이 들어가 있기 때문에 저희가 대응하고 있긴 한 건데..., 저희에게 연락 주신 게 너무 오래전부터셨고 그 부분에 대해서는 책임자와의 상담을 요구하셨기 때문에 재외국민 보호과의 감찰을 포함해서 저희 쪽에서 담당하기 때문에 과장님이 내려오시기로 한 겁니다.”


그가 이야기를 마치려다 말고 번쩍 일어서며 부동자세인냥 깍듯하게 들어오는 남자를 맞았다.


“아, 이분이신가?”


거들먹거리며 들어온 남자는 악수를 청하지도 명함을 내밀지도 않으며 꼿꼿하게 서서 박 교수를 쳐다보며 부하 직원에게 물었다.


“아, 이 분이 과장님이신가요?”

“네. 저희 과장님이십니다.”

“자기소개도 없으시고 명함도 안 주시네요? 신분을 밝히기가 곤란하신가요?”


박 교수의 다소 당찬 선공에 과장이 자리에 앉자마자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아, 죄송합니다. 제 명함이...”


그제야 주섬주섬 자신의 안주머니를 더듬는 과장의 대답과 아랑곳없이 박 교수가 부하직원에게 다시 물었다.


“이렇게 무슨 교도소 면회실 같은 공간 말고 사무실 쪽으로 올라가서 이야기를 할 수 없는 건가요?”

“아, 그게 저어, 저희 사무실 건물에는 아무나 들어갈 수 없게 통제를 하고 있어서요.”

“풉! 국가 보안시설쯤이라도 되는 곳인가요? 다들 들어가던데요. 기자들도 그렇고...”


과장이 겨우 꼬깃거리는 명함을 내밀며 박 교수에게 빼앗긴 기선을 제압하려는 듯 대답했다.


“오신 용건에 대해 이야기 나누시지요. 이야기가 장소에 따라 달라지는 것도 아니고...”

“맞는 말씀이긴 한데, 이건 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회의실도 아니고 너무 형식적으로 끌려 나오신 것 같은 모양새라서 드린 말씀입니다.”

“저기...”


중간에 곤란한 표정을 짓고 있던 감찰관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부하직원이 안절부절못하며 다이어리를 꺼내 박 교수에게 다시 물었다.


“그러니까 오늘 만나자고 하신 이유가...”

“그래요. 단도직입적으로 말합시다. 제 사건에 대해서 과장님은 어느 정도 알고 계신가요?”

“보고도 받았고, 서류상으로 검토한 내용으로는 이미 저희가 해드릴 부분은 다 해드린 것으로 알고 있는데, 전화상으로는 전혀 사실관계가 다르다고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지난번 내가 감사실에 전화했을 때 통화한 분이시던가요?”


박 교수의 질문에 과장이 얼굴을 구기며 말을 바꿨다.


“그러니까 정확하게 뭐가 사실관계가 다르다는 거지요?”

“내가 먼저 물었습니다만, 뭐 됐습니다. 아까 말씀하신 서류상으로 보고 받았다는 것은 타이베이 대표부에서 정리해서 보내준 그 내용을 말씀하시는 거겠죠? 지금 외교통상위원회 위원장실에 제출되었던 그 허접한 세 장 짜리 답변 문건을 말씀하시는 게 맞는지요?”


계속해서 날 선 대화를 유지하는 박 교수의 대화 방식이 불편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트집을 잡기에는 뭐라고 표면적으로 문제가 되는 표현을 쓴 것도 아니고, 딱히 화를 내기에도 애매한 줄타기식 불쾌감에 과장은 다시 목소리를 가다듬고 마음을 삭혔다.


‘니가 그런 식으로 해서 무슨 도움을 받았을 수 있는지 한번 보자.’

“대답이 없으시니 맞다 치고 제가 묻지요. 이 문건을 보면, 2017년 6월 30일에 경찰에 연락을 취해서 제대로 조사를 해달라고 했다고 적혀 있지요? 경찰 조사는 6월 29일이었습니다. 이미 조사가 끝난 다음에 조사를 제대로 해달라고 한 것이 대표부의 답변입니다. 원래 외교부는 현지 공관에서 거짓말을 하면 그냥 그 거짓말을 크로스체크도 하지 않나요?”

“뭐 날짜 같은 것은 기록하다 보면 간혹 틀리고 그럴 수도 있습니다만, 저희가 현지 공관의 답변을 받고 다시 확인해야 할 정도라면 굳이 두 번이나 그런 일을 하는 게 의미가 있을까요?”


느기작거리며 대답하는 과장의 태도에 박 교수가 버럭 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공관에서 일어난 불미스러운 일에 대한 민원이 들어갔는데, 같은 외교부 측인 민원 대상자의 변명만 듣고 아무런 문제가 없다면서 크로스 체크를 통해 팩트 체크를 하지 않고 그대로 듣는다면 뭐하러 감사실이 있는 겁니까?”

“그게, 그런 뜻이 아니라...”

“그런 뜻이 아니라, 뭐요?”

“아이, 교수님. 여기서 이렇게 언성을 높이고 그러시지 마시고...”


부하직원이 다시 좌불안석인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박 교수에게 손짓까지 해가며 저지의 표시를 해 보였다.


“재외국민 보호과장, 사건 이후 저와 통화했던 그 사람이 그대로 자리에 있는 것으로 압니다. 전임자가 미국으로 가기 전에 자기가 모든 내용에 대해서 모두 말하고 갔고, 핵심 내용도 정리했다고 분명히 말했는데, 한 달이 넘도록 연락이 없다가 내가 연락을 했더니 자기는 그런 보고나 내용을 받은 바가 없다고 합디다. 재외국민 보호과가 원래 하는 일이 그렇게 안일하게 일처리를 하고 그냥 적당히 시간 보내다가 다시 영미권의 좋은 지역으로 나가면 되는 그런 자리입니까?”

“아니, 교수님 왜 자꾸 그런 식으로 말씀하십니까?”

“내가 감정적인 것이 아니고 정확하게 그럼 물어봅시다. 재외국민 보호과장이라는 자가, 이 상황에 대해 설명하는 과정 중에 자기는 모르겠고, 재외공관에서 그렇다고 하니까 할 말 없다 전화 끊겠다. 더 이상 유선 연락을 받지 않겠다, 이러는 게 정상인가요?”

다음 편은 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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