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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검무적 Jan 13. 2022

중국에는 바이주만 있는 게 아니다?!

중국 명주 기행 8

지난 이야기.

https://brunch.co.kr/@ahura/678


1989년 ‘송하량액’은 제5회 전국 주류 평가대회에서 금장을 받아 ‘중국 명주’가 되면서 최고의 전성기를 누린다. 하지만 90년대 후반에 이르러 송하주는 쇠락의 길을 걷게 된다. 국영기업이 가지는 폐쇄성과 그에 따른 시장 적응력의 부족했던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해마다 매출이 떨어지던 송하주는 2001년 거의 존폐의 기로에서 매각될 위기에 놓인다.

 

결국, 2002년 9월 중국 유수의 제약회사, 보인(輔仁)그룹이 주식의 85%를 장악하면서 매각급 민영화로 들어가게 된다. 그 결과 2004년 당시 3억8000만 위안을 기록하여 같은 업종 전국 18위에 지나지 않았던 송하주의 매출액은 2007년에는 7억5000만 위안으로 급성장을 이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송하주가 나아갈 길은 아직도 멀고 험난하다. 마오타이, 우량예 등에 비하면 송하량액은 아직도 2류급 바이주라는 소비자들의 인식이 강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2006년부터 서봉주(西鳳酒)와 낭주(郎酒)가 ‘송하량액’을 추월하며 술의 춘추전국시대의 가속도를 붙이고 있는 형편이라 만만찮은 상황이다. 송하주가 아직 하남이라는 지역성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지역성의 탈피와 브랜드 라인업의 정리, 경쟁력 있는 디자인의 확보 등 당면한 과제들을 어떻게 해결하는가가 앞으로의 지켜볼 관건 포인트라 하겠다.

 

송하량액은 지역에서 생산되는 수수를 원료로 하며 맑고 단맛이 도는 광천수를 쓴다. 수수와 같은 원료는 꼭 당해에 생산된 것을 쓰며 동시에 질 좋은 밀로 누룩을 만든다. 누룩을 만들 때는 사람이 직접 발로 밟는 방식을 쓴다. 증류를 할 때도 전통의 기법을 쓰며 단계별로 적당량의 술을 받아 급수를 구분하여 창고에 넣는다.

 

양조 과정에서 송하가 여느 술과 갖는 가장 큰 차이점은 배합(블렌딩)을 먼저 하고 그리고나서 저장과 숙성과정을 거친다는 점이다. 여타 술처럼 저장과 숙성을 먼저 하고 배합을 나중에 하는 것과 큰 차이가 있다. 술을 배합할 때는 5년 이상 숙성시킨 원주(原酒)를 일정량 섞는다. 그리고 어느 계절에 받은 술인가, 어느 구덩이에서 발효를 거친 술인가 등을 따져 서로 같지 않은 유형의 술을 섞는다.

한 번 술을 받아내고 남은 원료는 넓은 장소에서 펴서 잘 식힌다. 휘발산과 표면의 수분이 날아간 원료에 새 원료를 보태고 누룩을 뿌리면 다시 발효지에 넣을 수 있는 새 원료가 되는 것이다. 원료를 발효 구덩이에 넣고 나면 입구는 진흙으로 봉한다. 송하주의 발효 기간은 60일이다. 증류로 얻은 술은 상수리나무통에 담아 창고에서 묵힌다. 어둡고 건조한 저장고에서 조용히 10년 또는 그 이상의 시간을 기다리는 것이 바로 저장·숙성이다.

 

송하에서 생산되는 상품들은 국가 명주인 ‘송하량액’ 계열과 하남 명주인 ‘녹읍 대곡(鹿邑大曲)’ 계열 그리고 기타 계열로 구성돼 있다. 송하량액 중에서 최고급품은 ‘노자(老子)’라는 상표를 쓰고 있으며 그 다음 고가품으로는 ‘공영천하(共天下)’가 있다. 대표 브랜드인 송하량액도 5성급(星級), 4성급, 3성급으로 구분된다. ‘녹읍(鹿邑)’ 또는 ‘녹읍대곡(鹿邑大曲)’이라는 상표는 대개 저가 제품에 사용된다.


• 호남(湖南)

 

◦무릉주(武陵酒) - 장향형 (酱香型)

후난성(湖南省) 창더시(昌德市)의 양조장에서는 원래 더산따취(德山大曲)를 생산했는데, 1979년 새로운 술을 생산하기로 결정하고 지명을 따 술 이름을 붙인 것이 바로 무릉주(武陵酒)이다. 1987년 분가하여 양조장 이름도 ‘우링(武陵) 양조장’이라고 바꾸게 된다.


하지만 1990년대 시장의 변화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고전을 면치 못하다가 1994년 해체되어버리고 10년의 방황의 시간 끝에 결국, 2004년에 앞에서 언급했던 노주노교(泸州老窖)의 실질적인 자회사로 편입되며 겨우 다시 조금씩 부활의 길을 걷고 있다.

 

• 호북(湖北)

 

◦특제황학루(特制黃鶴樓) - 청향형(淸香型)

 

특제황학루주(特制黃鶴樓酒)는 중국 3대 청향형(淸香型) 백주(황학루주, 보풍주, 분주)로 한수(汉水)의 분주(汾酒)라 하여 한분주(汉汾酒)라 부르던 술이 원조였다. 1929년 한분주는 중국국산품박람회(中华国货展览会)에서 1등상을 획득하였다. 1952년 무한시주창(武汉市酒厂)은 노천성(老天成)등의 몇 개 노조방(老糟坊)이 기초가 되어 세워져 전통기술로 계속 한분주를 생산하였다.


1984년 한분주(汉汾酒)를 이 지방 유명한 고적 황학루를 중건하면서 개명하여 출시하게 된 것이 ‘황학루주(黄鹤楼酒)’였고 그 앞에 특제(特制)를 붙여 같은 해 주류 품평회와 그다음 주류 품평회에서 연속 중국 명주의 칭호를 획득한 것이다.

 

이 술의 산지는, 코로나의 최초 발생지로 우리에게 기억되는 우한(武汉)이다. 원래 우한(武汉)은 무창(武昌), 한구(汉口), 한양진(汉陽鎭)으로 구성되었다. 우한(武汉)의 양조 역사는 송나라 때부터 유래하여 상당히 오래된 역사를 지니고 있다. 그렇게 1929년 한분주(汉汾酒)가 중국 국산화 박람회에서 수상을 하게 되면서 이름을 떨치고 그 전통이 이어지다가 1984년 황학루(黄鹤楼)를 중건하면서 새롭게 거듭나게 된 것이다.

황학루(黄鹤楼)는 원래 촉(蜀)의 비위(費褘)가 신선이 되어 황학을 타고 이곳에서 쉬었다 하여 이 이름이 유래되었다고도 하고, 신씨(辛氏) 술집에 온 사람이 술값 대신 벽에 누런 학을 그렸는데 후에 그 그림 학이 날아가 버려 신씨가 누각을 세워 황학루라 했다고도 하며, 선인(仙人) 자안(子安)이 황학을 타고 여기를 지났다고도 한다. 삼국시대에 오(吳)나라가 형주(荊州)를 빼앗아 촉과 싸우기 위하여 서산 서쪽 기슭의 황구산(黃鵠山)에 세운 높은 건물이 황학루의 모체라고 한다.


현재 존재하는 황학루는 문헌에 근거하여 1984년 재건된 것이며, 그 위치 또한 양쯔강 기슭에서 고관산(高觀山) 위로 옮겨졌다. 이야기가 나온 김에 이 술의 배경이자 브랜드가 된 황학루(黄鹤楼)를 유명해지게 만든 이 시를 소개하지 않을 수 없다.

 

昔人已乘黃鶴去, 

옛 사람은 이미 황학을 타고 떠나버려

此地空餘黃鶴樓. 

이곳에는 부질없이 황학루만 남았구나.

黃鶴一去不復返, 

황학은 한 번 떠난 후 다시 돌아오지 않고

白雲千載空悠悠. 

흰 구름만 천 년 그대로 유유히 떠도네.

晴川歷歷漢陽樹,

맑은 강에는 한양의 숲 또렷하게 비치고

芳草萋萋鸚鵡洲.

앵무주에는 향긋한 풀만 무성하네.

日暮鄕關何處是, 

날은 저무는데 내 고향은 어디인가

烟波江上使人愁. 

안개 낀 장강 언덕에서 시름겨워하노라.

 

바로, 성당(盛唐)의 시인이라 불리던 최호(崔顥)가 쓴 유명한 시 <황학루(黃鶴樓)>이다. 당나라 7언율시 가운데 최고의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으며, <등황학루(登黃鶴樓)>로 불리기도 한다. 이태백은 황학루에 대해서는 최호보다 더 나은 시를 지을 수 없다며 탄복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청나라의 시인 심덕잠(沈德潛)은 위 시를 두고 ‘천고의 기재(奇才)를 떨쳤다(擅千古之奇)’고 언급했다. 황학루는 중국 후베이성(湖北省) 우한시(武漢市)에 있는 누각이다.

 

2. 황주(黄酒)

황주(黄酒)는 기본적으로는 청주나 사케와 유사한 양조주의 주조방식을 사용하나 사용된 원료와 발효된 술을 압착으로 밑술을 뽑을 때 불순물의 함량에 의해서 청주나 사케같은 맑은 미황색이 아니라 다소 탁한 적황색에서 맑긴 하지만 황색이 나타나며, 탁한 백색의 밑술이라도 숙성 중 분해되는 성분들에 의해서 황색이 나타나는 술이다.

 

쌀농사를 주로 하는 중국 하남 지방에서 발달한 술로 쌀이나 좁쌀을 원료로 하여 발효한 후 압착해서 밑술을 뽑고, 이 밑술을 장기 숙성시켜 만든다. 알코올 함량은 14~20% 수준으로 일반적인 양조주와 같으며 막걸리처럼 탁한 것에서 거의 투명할 정도로 맑은 황색을 띠는 것에 이르기까지 종류가 다양하다. 곡물을 발효시켜 거칠게 내린 양조주인 관계로 필수 아미노산 등 영양성분을 풍부하다.

 

종류가 많으므로 각 종류에 알맞은 음주 방법으로 마시지만, 일반적으로는 중탕 상태로 가열하여 35~40도 정도로 따뜻하게 마시는 것이 특징이다.

 

(1) 황주의 역사

황주로 추정되는 술에 대한 언급이 발견되는 것은, 기원전 10세기 상(商) 나라, 주(周) 나라 때부터인데, 주요 산지로는 지금의 저장성(浙江省) 일대로 월(越) 나라, 오(吳) 나라가 있던 곡창지대에 해당한다. <사기(史記)>의 ‘오월춘추(吳越春秋)’에 나오는 기록으로 미루어보건대, 오나라 문화의 발원지인 우시(无锡, 무석)에서의 양조 역사는 이천 년도 더 되는 셈이다. 오나라 술 문화를 대표하는 후이취안황주(惠泉黄酒)와 사오싱황주(绍兴黄酒)는 중국 황주를 대표하는 양대산맥에 해당한다.

 

진(秦)나라 때 강통(江統)이 지은 <주고(酒誥)>에 따르면 “밥을 설익게 지어 뽕나무 통에 담아두면 뭉쳐져서 맛이 나고 시간이 지나면 좋은 향기가 난다. 이렇게 만들어지는 것이지 기이한 방법을 쓰는 것이 아니다.(有飯不盡, 委於空桑, 欝結成味, 舊蓄氣芳. 本出御此, 不由奇方.)”라는 설명이 보이는데, 진나라 이전부터 이미 쌀로 술을 빚은 기록이라고 보는 자료로 학계에서 주로 인용되는 것으로 이 기록을 황주의 기원으로 본다.


풍몽룡(馮夢龍)의 <경세항언(醒世恒言)>에는 ‘혜산천주(惠山泉酒)’라고 지명이 붙은 술 이름이 언급되기 시작한다. 후이취안주(惠泉酒)는 쑤저우식 숙성주의 전형이기도 한데, 이는 강남 지하수와 강남의 좋은 쌀을 원료로 한 수천 년 역사가 있는 반첨형(半甛型) 황주 제조방법으로 제조되어 명나라 때에 이르러서는 이미 강남의 명주가 되었다.

 

명나라 때에는 황주를 백주(白酒)라고도 불렀는데, 이는 현재의 증류주인 백주를 의미하는 단어가 아닌, ‘삼백주(三白酒)’를 줄여서 부르는 말, 흰 쌀, 흰 곡물, 흰(맑은)물을 사용해서 만든다고 붙인 이름이다. <양여월령(養餘月令)>에, “황주, 백주라는 것은 소주를 조금 넣면 보관하는 중에 시어지지 않는다.(凡黃酒白酒, 少入燒酒, 則經宿不酸. )”라는 내용에서 백주를 현재의 소주(증류주)와 다른 의미로 사용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좁쌀 등 다른 곡물을 섞지 않고 쌀 단독으로 술을 만들어 짜 낸 밑술에는 미황색에서 백색에 가까운 탁한 술이 나오는데 이후 저장 중의 아미노산 등이 분해 생성되면서 황색 혹은 적황색으로 변한다. 굳이 당시의 기준으로 구분하여 설명하자면, 황주는 장기 숙성해서 만들어진 술이며, 백주는 양조 시간이 짧은 쌀 술을 말하는 것이다.

 

청나라 때에 이르러서, 황주는 황궁에서 쓰기 위한 술로, 황제에게 진상하는 목록에 오를 정도로 인정받았던 술이었다. 1722년 강희제가 죽고 옹정제가 즉위했을 즈음, <홍루몽>의 작가, 조설근(曹雪芹)의 아버지가 장닝(江宁)에서 직조(織造) 벼슬자리에 있을 때, 한 번은 후이취안주(惠泉酒)를 북경으로 마흔 항아리나 올려 보냈다는 기록이 있다. 우시(无锡, 무석)의 후이취안주(惠泉酒)는 이때부터 이미 귀족 집안에서는 마시던 술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평범한 서민들의 황주에서 시작하여 황실에 진상할 정도로 격상된 술로써 황주는 중국의 긴 역사와 함께 오늘날에 이르게 된다.

 

현재는 현대적인 제조기술과 과학적인 관리방법을 적용하여 쑤저우식 숙성주의 품질은 더욱 올라가게 되어 더욱 부드럽고 풍부한 맛을 가지고 있으며 뒷맛은 길게 여운이 남는 술로 발전하게 되었다.

(2) 황주의 재료

 

역사적으로 황주의 생산원료는 양쯔강 북쪽 지역의 수수(高粮)나 좁쌀(粟)을 주로 사용하였는데, 소주(燒酒)인 백주를 만든 방식과는 달리 남쪽 지역에서는 주로 산출되는 곡물인 일반적인 쌀을 원료로 황주를 만들고 좁쌀이나 기타 곡물이 소량 들어가기도 한다.

 

사용하는 누룩은 밀가루를 띄워 만든 맥곡(麦曲)이나 저온 발효용의 소곡(小曲)을 사용한다.

 

다음 편은 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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