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에 사는 악녀 - 114

외교부 감사실을 쳐들어가다 6

by 발검무적

지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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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겠습니다.”

“제 이메일은 알고 계시나요? 제가 곧 다시 타이완으로 돌아가니까요.”

“아, 여기에 하나 적어주세요.”


박 교수가 자신의 이메일과 타이완 전화번호를 적는 사이에 과장이 이건 꼭 이야기해야 하겠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마지막으로 제가 말씀드리는 거는, 저는 그래요. 저희 감사실이 굳이 대표부 얘기만 들을 이유도 없다고 생각하구요. 왜냐면은 그쪽에서 하는 얘기가 있고, 또 선생님이 하는 얘기가 있는데, 한쪽만 굳이, 제가 뭐 대표부에 아는 사람도 없는데, 그쪽 얘기만 들을 이유는 없어요.”

박 교수가 그의 이야기가 끝나기도 전에 코웃음을 치며 말을 막았다.


“제가 경험상 여태까지, 오늘을 포함해서요.”

“네.”

“여태까지 그러셨잖아요.”

“네?”


좋게 마무리가 되는 줄 알고 적당히 두루뭉술 넘어가려던 과장의 양심에 직격탄이 날아와 박히는 순간이었다. 그렇다고 과장이라고 나와서 부하직원 앞에서 장렬히 쓰러지는 모습을 보일 수만도 없다고 생각한 그는 다시 맞섰다.


“그건 선생님 생각이구요.”

“아니, 아까부터 제 생각이 아니라 말씀을 여쭌 것이...”

“네.”


과장이 입맛을 다시며, 괜한 소리를 꺼내서 확전을 시켰구나 싶은 생각에 혀를 깨물었다.


“진실 여부 확인이라는 것이, 둘이 서로 다른 얘기를 하고 있으면...”

“그거 참고하고 확인한다고 했잖아요.”


과장도 한 마디로 질 수 없다고 다시 전의를 다지며 말을 끊었다.


“제 말이요. 누구든 그 사실관계가 당연히 서로 다투고 다른 주장을 할 수는 있어요. A와 B가 말이죠.”

“예예.”

“그런데 B가 처음부터 문제제기를 할 때, ‘A가 거짓말을 합니다. 그런데 당시에 A와 이야기를 나눴던 A가 아니라고 우기는데, 그 당시 대화를 녹취한 증거가 저에게 있습니다.’라고 하면 지금 말씀하신 것처럼, ‘난 누구의 편도 아니고 공정한 조사를 하는 사람이야.’라고 하려면, ‘그렇다면 그 관련 증거 자료를 주세요, 저희가 조사하고 판단할게요. 간단하네요.’라고 했던 사람이 그 당시부터 오늘까지도 한 사람도 없었다는 건...”

“네네.”

“그 의심을 충분히 살 수 있지 않나요?”

글쎄요. 그것만으로 의심을 살 수 있다고 저희는 보기 어려울 것 같아요.”


그의 얼토당토않은 뭉개기 식 대답에 박 교수도 이번에 가만있지 않았다.


“그러면 사실관계 확인을, 그 여부를 도대체 어떻게 조사합니까?”

“사실여부 판단이라는 건 저희가 조사를 해서 판단을 하는 거구요. 선생님이 원하시는 대로 왜 내가 이렇게 하라는데 내가 시키는 대로 안 하냐 이런 식으로 말씀하시면...”

“내가 언제 내가 원하는 대로 해달라고 했습니까? 문제를 제기한 사람이 바로 저잖아요! 그 사람들이 자기네가 문제가 있다고 조사를 해달라고 한 것도 아니고, 본부의 감사실에서 문제가 있다고 해서 조사에 들어간 것도 아니잖아요.”


그때 과장을 살리듯 또 핸드폰이 울리며 대화의 맥을 끊어주었다. 과장은 이제 짜증이 아니라 할렐루야를 부를 지경으로 속에서 터져 나오는 외침을 참으며 표정관리를 하고 전화를 받았다.


“예. 여보세요? 아, 아휴! 알겠습니다. 조금만 기다리세요.”

“아니, 감사과장과의 통화도 그렇고....”


박 교수의 치명타가 계속 들어올 기세를 과장은 어떻게든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일단 말을 끊고 막았다.


“아니, 지금 그렇게 말씀을 하시는데...”

“네.”

“아니. 니가 지금까지 내 편 안 들고 쟤네 편만 들어줬잖아. 뭐 이런 식으로 말씀하시면...”

“저는 그런 식으로 말씀드린 게 아니에요. 지금 이후로 저에게 약속을 하신 게, 조사 제대로 할 거구요. 필요하면 자료도 요청하겠습니다. 까지 얘기를 하셨어요.”

“참고하겠다고 말씀을 드렸지요.”

첨예하고도 미묘한 표현의 차이로 마지막 반집 승부의 패싸움을 하는 듯 과장도 박 교수도 조금의 양보가 없이 말을 이어나갔다.

“네. 필요하다면 자료도 요청하겠다고 말씀을 하셨어요. 지금 반드시 그 자료가 필요합니다도 아니었고.”

“네.”

“그럼, 지금 제가 뭔가 약속을 강요한 적도 없고, 약속을 받은 것도 하나도 없어요. 그죠?”

“예. 예,

“오늘 이렇게 길게 얼굴 보고 얘기하고서도 저는 약속받은 것도 하나도 없고, 그저 민원제기를 지속적으로 해서 상담을 한답시고 얼굴을 직접 보고 만났고”

“예, 예.


굳이 대답을 꼬박꼬박 추임새를 넣는 것은, 과장이 외교부에서 배운 상대에게 뭔가 촉급한 상황으로 몰아가게 만들어 대화를 빨리 끝내고 싶다는 무언의 사인을 압박하는 고급 기술에 해당했다. 하지만, 추임새와 상관없이 박 교수는 그날의 대화를 정리해나갔다.


“처음 만나서 어, 입장을 들었습니다. 뭐 못 봤던 자료도 직접 보여주셔서 보고 설명도 들었습니다. 이게 오늘 대화의 다라구요, 지금.”

“네, 네.

“진전되거나 약속받은 것도 하나도 없구요.”

“제가 왜 선생님에게 약속을 해야 하죠?”

과장이 아무렇지도 않게 되물었다.

“무슨 약속을 해야 한다는 게 아니라, 약속을 받은 게 없다고 확인한 겁니다.”

“그러니까요. 제가 무슨 약속을 해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

“아니. 약속받은 게 하나도 없으니까 내가 당당할 수 있다는 얘기를 하는 겁니다. 그저 민원인의 말씀을 경청했고, 오늘은 얘기를 들은 것뿐이다. 이후에 대해서는 우리가 알아서 판단하겠습니다. 이게 지금 오늘 얘기 결론의 다잖아요?”

“그럼 어떻게 판단을 해요? 더 이상?”

“제 말이요. 그러니까 제가 말씀을 드린 거예요. 지금 방금 말씀하신 것처럼 이게 제가 오늘 처음 와서 사안을 처음 알게 되었으니까 지금부터 전후관계를 살펴보겠다고 할 사안이 아니라 2년도 전에 벌써 발생한 일이란 말이에요.”

“예예. 그렇죠.”

지금껏 히스토리가 있잖아요.”

“네. 있죠.”

“그리고 대강 어떤 일이 터졌는지 양쪽의 얘기를 들어서 확인을 이미 하셨고, 진행과정에 대해 알고 있는 건이고, 그런데 그 과정에서 어떤 거짓말이 있었고 뭐가 중요한 문제였는지를 오늘 얼굴 보고 얘기를 하고 증거를 다시 정리해서 설명한 거예요.”

“예. 그러셨죠.”

“증거를 다 대면서, 그런데 지금 말씀하시기를, 제가 굳이...”

“아니, 말씀하신 거를 제가 들었잖아요.”

과장이 짜증과 억울함이 섞인 목소리로 말을 다시 끊어왔다.

“그리고 알겠다고 다 말씀드리고, 참고하겠다고도 말씀드리고, 선생님도 그런 차원에서 보자고 하신 거잖아요?”

“......”


그의 화제 전환과 원래의 의도에 물타기를 하는 것이 너무도 어설퍼 박 교수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대꾸를 하지 않고 빤히 과장을 노려보았다.


“아니, 제가 만약 선생님의 의도를 오해했다면은, 그거는 뭐 제가 그거는 말씀 못 드리겠어요.”

“......”

“그런데 지금 이 자리에서 니가 내 얘기를 안 들었으니까.”

“저는 그렇게 이야기한 적은 없어요.”

“아니, 그렇게 얘기하시면 저도 더 이상드릴 말씀은 없어요.”


과장이 뭔가 빌미를 잡았다는 듯이 대화를 끊어버릴 테크닉을 구사하기 시작했다. 감정적 대응을 문제 삼으며 이제 자리를 피하겠다는 거였다.


“내가 그런 식으로 말한 적은 없다고요.”

“네네. 알겠습니다. 그러면 저도 벌써 한 시간이 넘었는데, 저도 일이 있기 때문에, 오늘은 이쯤에서 마무리 짓도록 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오늘 귀한 시간 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어차피 박 교수도 알았다. 지금 여기서 굴복시키거나 그를 짓이겨놓는다고 해서 상황이 달라지거나 그가 갑자기 개과천선하여 일본의 총영사로 가 있는 박준기를 사법적으로 고발하거나 불이익을 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렇게 도망가겠다는 과장과 옆에서 계속 낙서하며 뻘짓을 하던 감찰관과 인사를 하고 광화문 뒷골목을 나섰다.


막 경복궁 역으로 향하려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여보세요?”

“네. 지난번에 전화드렸던 공영방송 사회부 공 기자입니다. 바쁘신가 봐요. 아까부터 몇 번이나 연락드렸었는데... 연락을 안 받으셔서요.”

“아, 네. 미안합니다. 정신이 좀 없었네요. 지금 광화문에 외교부 본부에 와서 감사실 과장이랑 만나서 미팅하느라 정신이 없어서 전화기를 무음으로 해놓고 있었는데 전화를 주셨나 봐요.”

“그러셨군요. 그러면 지금 광화문이세요? 그러면 그 근처 커피숍 편한 곳에 들어가서 조금 기다려주시겠어요? 제가 지금 여의도에서 출발하면 차가 막히는 시간이 아니니까 바로 갈 겁니다.”

“그럴까요? 알겠습니다. 근처에 들어가서 다시 전화드릴게요.”

“네. 지금 출발하겠습니다.”


근처 가장 커 보이는 커피숍에 들어가 차를 시키고 바로 문자로 커피숍의 이름과 위치를 전송했다. 그리고는 멍하니 광화문의 오가는 차들을 보며 아까 대화의 녹취파일의 이름을 설정하며 생각을 정리했다. 다음 주면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야 했다. 사실 저녁에 아이들과 아내가 함께 하는 것만으로도 숨통이 좀 트이는 것 같았는데, 다시 그 스카이라운지에 가서 시먼딩의 시커먼 야경을 보며 고독한 싸움을 해야 하는 것이 죽기보다 싫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강 피디와 함께 들어갈 경우, 과연 어떤 반향으로 어디까지 자신의 인생에 또 어떤 식의 영향을 미칠지도 두렵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벌써 2년이나 피 같은 시간들을 피를 토하며 지낸 것을 감안하면 이렇게 흐지부지 끝낼 수는 없었다. 최소한 박 교수 자신의 인생을 넘어 자신을 믿고 존경한다는 아들과 딸에게 오점을 남길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저기, 박 교수님...”


머리를 깔끔하게 밀어버린 남자가 박 교수의 앞에서 조금은 가쁜 숨을 내쉬며 말을 걸어왔다.


“아, 공 기자님이신가요?”


자신을 서울대 후배라고 소개한 음대 출신 공 기자는 나긋나긋한 여성스러운 말투로 자신을 소개하며 눈을 반짝거리며 물어왔다.


“제가 전화로도 말씀드렸었지만, 미투 광풍이 지나가면서 아무래도 잘못된 역 미투 건에 대해서 꼭 한 번은 다뤄보고 싶다고 생각하던 참이었거든요.”

“네.”

“한국 건에 대해서 건드리는 건 지금 미디어에서 마치 금기처럼 되어버려서 마침 교수님의 연락을 받고 그동안 신문이나 S사에서 방송으로 다뤘던 것들까지 하나하나 다 찾아서 조합해봤습니다. 교수님이 보내주신 정리 자료가 워낙 잘 되어 있어서 따로 타임라인 정리까지 안 해도 되어서 명료하게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박 교수가 약간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운을 떼었다.


“네. 편하게 말씀해주세요.”

“사회부 기자시면, 아무래도 방송뉴스에 나가는 건데, 그러면 3분을 넘기기 어려운 거 아닌가요?”

“아! 잘 알고 계시네요. 일단 말씀하신 대로 뉴스에 방송하게 되면 3분을 넘기긴 어려운데요. 기획취재의 형태로 커질 수도 있고, 3분만 방송을 하게 되더라도 저는 이 사안에 대해서 타이완에 직접 가서 한번 취재하고 싶어서요.”

“3분 뉴스 보도를 위해서 해외 출장을 가는 게 가능한가요?”


박 교수가 의외라는 표정으로 공 기자에게 물었다.

다음 편은 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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