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에 가지 않고서 이 사안을 보도할 수는 없으니까요. 게다가 조만간 인사발령이 있을 예정이라 제가 언제 다시 사회부로 복귀할 수 있을지도 모르고 이제 제 연차도 데스크와 후배 기자들 사이에 있는 어중간한 시기여서요, 한 번쯤 의미 있는 보도를 해보고 싶었습니다.”
소년 같은 그의 눈이 천진난만한 의지를 가지고 박 교수를 빤히 응시하고 있었다.
“그렇게 이야기해주는 거야 내 입장에서는 고마운데, 의외이기는 하네요.”
박 교수의 황당한 반응이 오히려 공 기자가 선선히 웃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그동안 많은 기자들과 많은 프로그램에 접촉을 하셨겠지요?”
“아, 네. 그랬지요. 결과는 알아보셨다시피였지만요.”
“제가 이런 말씀드리는 것도 참 이율배반적이긴 한데요. 방송이라는 곳이, 기자라는 것이 그러면 안되는데 뭔가 이슈가 되거나 자극적이지 않으면 이제 점점 취재원들에게 관심을 갖지 않고 골라먹으려는 경향들이 점점 더 강해져가고 있어요. 저는 개인적으로 그런 흐름들이 굉장히 불편하긴 한데, 어찌 되었든 조직이라는 곳에 몸담고 있다 보니 조직이 갖는 특성이라는 것이 있고 그것도 시대에 따라서 흐름이 있어서 변화하고 있거든요.”
“긍정적으로 변화하는 것 같아 보이진 않더라고요. 결국 기자들도 공기자를 포함해서 다들 집에 돌아가면 똑같은 아이 아빠고 똑같은 입장일 텐데 말이죠.”
박 교수가 이제까지의 경험을 농축한 뼈 있는 한 마디를 던졌다. 공기자가 그 말에 함축된 농도를 느끼던 느끼지 않던 그것은 박 교수의 솔직한 마음이었다. 언론과 접촉하더라도 행여 그런 일말의 기대 따위는 하지 않고 드라이하게 접근하라고 충고하던 스승의 말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배우고 익혔던 것과 너무도 괴리된 언론 미디어의 태도들을 보면서 넌더리가 나는 것도 사실이었다. 타이완의 쓰레기 언론에 데인 것도 있지만, 한국의 기레기들도 그에 못지않다는 생각을 갖게 만들었다.
“아, 그런데 오늘 이렇게 급하게 뵙자고 한 건, 물론 다른 매체랑 더 잘되면 그건 그대로 진행하셔도 되구요. 저에게 확실하게 기회를 달라고 직접 뵙고 말씀드리려고 했던 것과, 제가 개인적으로 궁금한 것들을 좀 크로스 체크하고 싶어서였습니다. 괜찮으시면 몇 가지 여쭤봐도 될까요?”
“네. 얼마든지요.”
“일단 질문드리기 전에 워낙 많은 매체들에게 똑같은 말씀을 많이 하셨을 테니까... 자질구레한 내용들은 각설하고 본론으로 들어가서 말씀드리자면 저는 외교부는 조금씩 나눠서 뒤에서 까더라도 본래 타이완에서 있었던 그 여학생 건에만 좀 집중하고 싶어요.”
“네?”
공 기자의 의외의 발언에 박 교수가 다시 눈을 크게 뜨며 되물었다.
“통화에서도 말씀드렸고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제가 이 보도의 초점을 맞추고 싶은 곳은 정확하게 역 미투의 악랄함입니다. 그래서 타이완까지 가야 한다고 아까부터 말씀드렸던 거구요.”
박 교수는, 문득 강 피디가 이번에 함께 타이완에 같이 들어가게 되면 공 기자는 어떻게 겹치는 취재를 할지에 대한 생각이 들었다. 박 교수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가만히 반응을 보던 공기자가 다시 말을 이었다.
“그래서 저는 현지 가이드를 포섭하는 것도 그렇지만, 그 보내주신 서류들을 보다가 판판이라는 타이완의 목사 딸이라는 그 결정적 증인을 꼭 먼저 만나서 접촉을 해보고 싶어서요.”
“판판을요?”
“네. 아무래도 뉴스 보도이다 보니까 가장 결정적인 반증을 할 수 있는 증인이 있으면 그게 가장 효과적이거든요. 같은 여자이고, 타이완 사람이고, 게다가 결정적으로 그 문제의 날에 함께 그 문제의 여학생과 함께 있어서 모든 정황을 봤고, 심지어 재판에 증인으로까지 나서 주었다는 점에서 가장 반향이 클 키를 쥐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으음. 맞는 말씀이긴 한데, 그럼 당연히 외교대가 중심이 되어야 할 텐데요.”
“네. 그래서 그걸 좀 여쭤보고 싶은데요. 그 문제의 성평회 서류를 여학생 측 변호사가 제출했다고 하셨었잖아요? 그런데, 정리하신 서류를 보면 주영희와 실세였던 전 여자 학과장이 함께 검찰에 그 서류를 가지고 왔다고 기록하신 게 있어서요.”
“네. 그렇지 않아도 오늘 외교부 감사실 과장이라 그 얘기를 하다가 내가 열이 받아서...”
“네? 외교부 감사실에도 그 얘기를 하셨나요?”
“네.”
“그쪽에서는 그렇게까지 얘기했는데도 반응이 아마 없었을 것 같은데요. 외교부 애들은 웬만한 언론사의 취재에도 자기들이 갑이라고 생각하면서 도통 협조도 안 하고 잡아떼면 그만이라는 태도를 보이는 걸로 악명이 높습니다.”
“외교부가 그렇게 대단한 애들이던가요?”
“물론 지금은 많이 사그라들었다고들 하는데, 외무고시가 있던 시절에 그 사람들이 자격지심이라고 해야 할까? 해외에 나가게 되면 자기네들이 나라를 대표하는 것은 물론이고 전권을 쥐게 되니까 아무래도 조금 그런 점에서 오만함을 장착한다고 해야 하나? 그리고 자기네 조직끼리 보호해줘야 타 중앙 부서 공무원들에게 밀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의식이 굉장히 강하더라구요. 그리고 같은 고시인데, 행정고시나 사법고시 출신들에 비해 자신들이 평가 저하되고 있기 때문에 자기네들끼리라도 똘똘 뭉쳐서 대우해주고 서로 대접해야 자기네들이 올라가는 거라는 이상하고 묘한 분위기가 있습니다.”
“그렇군요. 내가 느낀 그 위화감이 그런 배경이 있었군요.”
“얘기가 좀 옆으로 샜네요. 그래서 그 서류를 정확하게 누가 어떻게 검찰에 전달하게 된 것인지...”
“나중에 법정 기록에는 변호사가 제출한 것으로 되어 있는데, 검찰에 조사를 받으러 갔을 때, 우연히 검찰에서 처음 봤어요. 그 주영희라는 타이완 친일파를.”
“아, 원래 전혀 모르는 사이셨던 거예요? 공식적으로는 그 학과 강사로 되어 있던데...”
“그러게요. 단 한 번도 일면식도 없던 자였어요. 그런데 그날 그자와 전 여자 학과장이 눈에 훤히 보이게 그 서류의 커버가 보이게 들고서 검찰에 들어가는 순간에 딱 맞닿뜨린 거였어요.”
“그러면 학교 측 서류를 입수한 건 그 여자 학과장을 통해서였다는 결론이군요.”
공 기자가 눈을 반짝이며 수첩에 계속 메모를 하며 눈을 반짝거렸다.
“네.”
“혹시 타이완에 갔을 때 그 이전 여자 학과장을 압박할 때 쓸 수 있을 것 같은데.... 한국 재단에서 받은 돈을 횡령해서 재판까지 가게 될 뻔했다는 이야기는 어떻게 된 건가요?”
“아, 그 얘기....”
박 교수는 타이완 교수에게 들었던 그 이야기를 다시 떠올렸다.
“타이완 교수에게 직접 들은 얘기고, 한국어과 관련 교수들 사이에는 소문이 이미 파다했다고 들었어요, 실제로 그 여자 학과장이 대외활동이 전혀 얼굴을 비추지 않길래 왜 그렇게 공식적인 자리를 피하지? 싶었거든요. 사실 내가 부임하기 전, 그러니까 그 여자가 학과장일 때는 지금 검색해도 외교대학교 한국어학과 행사란 행사는 다 그 여자가 앞에 나서서 사진 찍고 여기저기 끼지 않은 데가 없었거든요.”
“그랬군요. 이른바 실세였다는 거네요.”
“그런데, 내가 부임하고 나서도 신임 학과장이 무슨 바지사장처럼 가장 어리고 젊으니까 일을 시키는 분위기인 것 같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어요. 그러다가 타이완 교수에게 그 얘기를 듣게 된 거죠. 그것 때문에 학교를 짤리고 형사처벌까지 받네 뭐하네 말이 많았었다면서 얼굴이 반쪽이 된 거라고. 그런데 정말로 우연히 만났는데 사진에서 봤던 거에 비해서 무슨 억지로 다이어트 한 사람처럼 고생을 엄청했는지 홀쭉한 얼굴이 되어 있더라구요, 들은 대로. 그나마 제대로 얼굴도 비추지 못하다가 내가 부임했을 즈음에는 그나마 비공식 행사에는 얼굴을 내밀며 자기가 죽지 않았다는 걸 보이고 싶어 하는 것처럼 굴었다고 들었어요.”
“그 재단이라는 곳에서는 한국의 돈이 갔는데 그렇게 자기 개인적으로 횡령을 한 것에 대해서 어떻게 그렇게 쉽게 재판을 접고 말죠?”
“한국 쪽의 한국학 관련 지원이라는 게 다 그래요. 그런 재단들은 만에 하나 자기네가 지원한 사업에 그런 불미스러운 일이 생겨서 방송에 보도라도 되는 날에는 자기네들의 관리 소홀로 감사를 받거나 일이 커질 수 있으니까, 해먹은 돈을 다시 회수하거나 문제를 덮는 방향으로 수습하려고 들죠.”
“아, 그래서....”
공 기자가 뭔가 자신의 추리와 맞아떨어져 가는 그림이 그려지는 것처럼 신이 나서 수첩에 계속해서 뭔가 적어 내려 가며 박 교수의 입 끝을 응시했다.
“네. 그런데 아마 한국 쪽 재단에서도 보도만 안되었지 타이완의 모든 관련 교수들이 알 정도로 파문이 커졌고, 그 여자가 먹은 걸 부인하고 토하지 않으니까 그런 고소와 재판까지 압박하는 방법을 썼던 거니까 관련자들을 몇 명만 크로스체크 보도하면 바로 알 수 있으실 겁니다.”
“그런데 그 여자 교수는 왜 그렇게까지 그 음모에 가담하게 된 거죠? 주영희와 내연관계인 건지 제 상식으로는 이해하기가 어려워서요.”
“풋! 내가 하나 물어볼게요. 사회부 기자가 보기에 외교대학교 한국어학과의 현재 학과장을 비롯해서 학과에서는 왜 그렇게까지 했을 거라고 생각합니까?”
박 교수의 반문에 공 기자가 잠시 수첩을 덮으며 앞에 있던 커피를 들어 한 모금 목안으로 밀어 넣었다.
“으음. 물론 교수님은 기본적인 공격 기조를 그들의 혐한 정서로 잡으셨고, 저 역시 타이완의 혐한 정서에 대해서 조사하면서 이렇게까지 심각한 이율배반적인 모습을 보이는 나라는 또 처음이라 우리가 타이완에 대해서 정말로 많이 모르고 있구나, 하는 걸 배우긴 했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과장을 필두로 모두가 그랬다는 건, 한국적인 마인드로 생각하면, 그들의 이익을 교수님이 건드리는 일을 했을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절반은 맞는 얘기네요?”
박 교수가 살짝 미소 지으며 그의 추론에 점수를 매기듯 대답했다.
“그러면 나머지 절반은요?”
“내가 묻는 거예요. 자신들의 이익을, 아니, 개들이 그러죠, 사람이 밥 먹을 때 다가가면 자기 밥 빼앗아 먹는 줄 알고 으르렁거리잖아요. 사람이 개밥을 빼앗아 먹을 리도 없을뿐더러 그런 마음을 먹지도 않았는데 말이죠.”
“그거야 그렇죠.”
“내 질문은 그런 동물적인 본능이 그 자들의 베이스에 깔린 건 잘 읽었다는 말이에요. 그런데 개는 으르렁거리지 물지는 않잖아요? 왜 그들은 그렇게 끝까지 악랄하게 물고 놓지 않았을까요?”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정말로 뭔가 있는가 싶은데요.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공 기자가 다시 펜과 수첩을 잡고서 박 교수의 대답을 기다렸다.
“일단 아까의 대답부터. 그 전 여자 학과장이 왜 그렇게까지 학교 비밀을 빼서 그랬는가, 공기자의 추론처럼 복합적인 게 있죠. 일단 주영희라는 타이완 친일파가 그쪽의 OB라는 점은 상당히 커요. 그쪽은 정치도 70이 넘은 1세대 노인네들이 헤게모니를 쥐고 젊은 사람들에게 권력을 넘겨주지 않고 자기네들이 멋대로 휘두르려고 하는 묘한 사회구조를 가지고 있거든요. 그런데, 가장 큰 요인은, 물론 이 분석은 내 분석이 아니라 타이완 교수에게 들은 거예요. 그 여자는 한국의 재단 횡령사건을 겪으면서 한국에 묘한 배신감 같은 걸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구요.”
“배신감이요? 자기가 횡령하고서?”
“물론 내가 정리된 문건에도 썼지만, 그들에게 한국은 그저 ATM(현금인출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에요. 특히나 타이완 정부에서 지원해주는 금액적 베니핏이 하나도 없기 때문에 한국어학과의 경우 한국의 지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하죠. 그런데 거기서 오는 괴리감이 있는 거예요. 돈은 한국의 돈을 받지만 한국에서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건 듣기가 싫은 거예요. 말 그대로 돈 많은 꼴 보기 싫은 사람에게 돈을 받아야 하니 앞에서는 알랑거리지만 결국 그 돈을 받게 되면 자기네들이 원하는 대로 쓰는 거죠. 그런데 해외대학이다 보니 아무래도 한국에서 직접적인 감사를 하거나 제대로 돌아가는지 볼 수가 없잖아요. 그러면 그걸 누가 체크해줄까요?”
박 교수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공 기자가 멈칫하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체크 자체가 하기 어려운 거 아닐까요? 어차피 형식적으로 장부나 결과보고서 정도로만 문제가 없으면 재단에서는 넘어가는 방식으로 하겠죠?”
“맞아요. 그런데 나처럼 한국인 교수들이 파견되거나 하면 따로 객관적인 정보를 받을 수 있잖아요. 물론 내가 그런 감사직을 수행한 것도 아니고 그쪽에서 그렇게까지 오버를 한 것 같지는 않지만, 이 여자는 자기가 그렇게 돈을 자기 멋대로 자기 생활비로 쓰고 비싼 식당에 식비로 쓰고 펑펑 써 댄 것이 발각이 되자, 수치스러움을 견딜 수 없었대요. 사실 그렇잖아요. 그 나라를 대표하는 유일한 국립대의 한국어학과인데 그 학과장일 1~2년 한 여자도 아니고 재단의 지원금 결정도 다 자기가 끌어온 건데, 졸지에 도둑년으로 몰려서 감옥에 가고 교수직도 날아갈 판이니 그 여자 입장에서는 인생이 완전히 날아가는 꼴이 되는 거 아니었겠어요?”
“그랬겠네요, 그 여자 입장에서는.”
“그러니까 자기가 잘못한 것을 반성하고 수습할 생각보다는 자기에게 공격을 가했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타이완의 반도체 업체에서 삼성의 반도체와 한참을 싸우던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그런 상황이 아주 똑같았다고 하더라구요. 알아요? 당시에 그런 이야기들?”
“뭐 산업스파이에, 삼성의 직원들을 매수해서 정보 빼내고 그런 거 말씀하시는 건가요?”
“네. 그런데 삼성 측에서 타이완에 스파이를 보내거나 그런 건 전혀 없었고, 전부 타이완 측에서 삼성의 직원들을 빼내거나 돈으로 매수해서 중요 정보를 빼내오라고 사주하거나 그런 범죄들이 대부분이었거든요.”
“네.”
“그런 상황에서도 그 사람들은 뉴스나 진실이 중요하지 않고, 삼성이 그리고 한국이 자기네들이 누려야 할 것들을 빼앗아갔다고 이상한 심리구조로 자기네 알량한 자존심을 세우고 보호하려 들어요.”
“아! 그런 심리적 이면이 혐한으로 연결된 거군요.”
“맞아요. 나도 이번 일이 있고 나서 타이완의 혐한이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 봤는데, 정말 웃겨요.”